잠이 안 와서 쓰는 글

쓰니202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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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러고 있는걸 누가 보면 주접떤다 궁상떤다 할 수도 있겠지만 친구한테도 못하겠고 누구한테도 이런 말 할 수 가 없어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외치는 마음으로 쓰는거야.

내가 이러고 있다는걸 나 자신한테도 보이기 싫어서 검색어에도 안 남기려고 시크릿탭에 헤어진 후 정리 이런거 쳐보다 너가 평소에 너가 종종 본다던 판까지 흘러들어와서 난생 처음으로 여기에 글을 쓰려고 가입까지 했네. 너가 전화로, 카톡으로, 집 앞까지 찾아와서 몇번이고 붙잡는 동안 거절했지만 나는 헤어지자는 말을 꺼낸 그 순간부터 울면서 미안하다는 너를 안아주면서 미안하다 말하고 싶었어. 이런 말 직접 안하고 여기서 내가 이 시간에 이러고 있다는건 이 이야기를 직접 말하려는 용기가 없는 찌질한 사람이라, 너하고 다시는 연락 안할거라 내가 먼저 이야기해서 혹여 너가 이 글을 보고 먼저 다시 연락해줬음 하는 비겁한 마음도 좀 있는것 같아

헤어지고 몇 주는 주변 사람들한테 헤어졌다는 이야기조차 못했어. 주변 사람들한테 이야기하면 내가 진짜 너하고 헤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해서? 헤어진게 그냥 쪽팔려서? 왜 헤어졌냐는 사람들한테는 널 떠올리는것도 너가 대화주제가 되는것도 싫어서 대충 얼버무리면서 그냥 안 맞아서 짜증나서 내가 찼다고 센 척 하면서 어물쩍 넘어갔어.

너가 몇 년동안 수십번 이별을 고하는 동안 난 붙잡으면서 약속했잖아 절대 너하고 헤어지는 일은 없을거라고 서로 조금만 노력하면 잘 지낼수 있을거라고. 나는 우리가 헤어지고 만날때마다 조금씩 나아졌다고 생각해. 어쩌면 이번에도 늘 그랬던 것 처럼 조금 나아졌을지도 진짜 헤어지지 않았을수도 있지 않았을거야.

널 만나면서 수백번째 싸우고 수십번째 헤어진 날에도 평소처럼 싸운 날이였던 것 같아. 서로가 서로한테 상처 주면서, 분명 후회할걸 알면서도. 딱 하나 달랐던건 헤어지자 말한게 너가 아니라 나였다는거? 아마 다른 사람들 (어쩌면 이걸 읽는 모르는 사람들도) 내가 너하고 지쳐서 헤어졌다는 말을 들으면 비겁하다거나 널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할거야.

변명이라 들려도 너를 정말 많이 사랑했어. 헤어지자는 말을 싸울때마다 꺼낸 초반에는 거의 반사적으로 붙잡고 다시 만나면서 나만 괜찮다면, 나만 아무렇지 않게 널 대한다면 우린 전처럼 다시 잘 지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다시 사이가 좋아지고 나면 넌 나한테 사과하면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거라 말했고 나는 그 말을 믿는다고 말했지만 나 스스로도 알고 있었어. ‘믿는다’ 는 말은 단지 나의 바람일 뿐이고 ‘믿고싶다’ 라고 생각하고 있던걸.

사실 모진말을 쏟아내는 널 붙잡는건 정말 마음이 무너지는 일이였어. 내가 이렇게 해서 널 다시 만날수만 있다면 난 아무래도 좋다는 심정이였지만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한테 그런 말을 듣고 난 후에도 널 많이 사랑하니까 이런건 수백번도 할 수 있다고 말하던 그 심정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놓을 수 없었어. 바뀔수 없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어. 너가 날 보면서 웃어주면 정말 세상 모든걸 다 가진 느낌이라는게 뭔지 알 수 있었어. 다른 문제들은 사소하게 느껴질 만큼 행복한 감정이였어. 입도 짧고 가리는 것도 많은 너지만 그래도 다 좋았어. 인스타에서나 보던 이름도 기억 안나는 디저트여도 난 뭐든 다 잘 먹으니까 너가 좋아하는걸 먹고 너가 행복해하면 그걸로 충분했어.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고 나와서 행복하게 웃는 그 모습이 좋아서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남자지만 너가 좋아하던 애니메이션만 보고싶었어. 살면서 본 적도 먹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던 것들이지만 너가 좋아하는건 다 좋았어. 처음 느껴본 종류의 행복이였어. 그 행복을 내 손으로 포기할 수 없었어.

우리는 흔히들 겪는 그런 권태기를 겪고 헤어진건 아니였잖아. 너가 헤어질 때 나한테 왜 그렇게까지 하냐 말했었지? 그땐 그냥 더이상 못하겠다 말하고 끝냈는데 여기서 말하지만 나는 그 순간에 인정하기로 마음먹었어. 우리는 바뀔수 없다는걸. 계속 만난다면 비슷한 문제로 우린 수도없이 싸울거고 조금씩 나아지고 서로에게 맞춰 나가겠지만 결국 바뀌지는 못할거라는걸 스스로 인정했어. 그러니까 화도 나지 않고 슬프지도 않고 마음이 편해지더라. 내 진짜 모습은 이렇지 않은데 맞추는걸 그만하고 싶었고 똑같은 문제로 나만큼이나 스트레스 받았을 너한테 맞지 않는 모습을 요구하고 싶지 않았어. 너의 진짜 모습은 그 모양이 아닌데 억지로 끼워맞추면서 스트레스 받아하는걸 보고 싶지 않았어. 보고싶지 않았다기 보다는 진짜 너가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랬어. 너한테 말했던 다른 이유들 보다는 이런 마음이 컸어. 너무 늦었지만 그 때 이렇게 차분하게 이야기 해줬으면 좋았을텐데.

널 다시 만나도 똑같은 문제가 반복될거라고 나 스스로 설득하면서 약해지는 마음을 부여잡았고 나름 성공했다고 생각해. 보고싶을 때마다 연락하고싶을 때마다 추억은 미화된다고, 좋았던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과 좋았던 기억을 그리워하는거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널 다시 만나지 않았고 다시 연락하지도 않았어. 이제 마음이 편해야 할텐데 왜 자꾸 너가 보고 싶을까. 너가 많이 보고싶다.

몇 년을 만났지만 애칭이 아닌 너라는 호칭으로 불리는것도 싫어했던 너가 많이 보고싶다. 다시 만날수도, 만나는게 좋지 못하다는것도 알지만 그냥 얼굴 한 번 보고 우리 자주 가던 밥집에서 밥 한끼 먹고 자주 가던 카페에서 자주 먹던 디저트 한 번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 내 집에서 몇 시간씩 걸리던, 너가 아니라면 평생 갈 일도 없을 그 동네에서 너가 퇴근하는 늦은 시간까지 앞에서 기다리다 그 동네에서 술 한 잔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 진짜 그 동네 좋아하는데. 우리 약속한것도 중에 아직 같이 못한게 많아. 너하고 여행가려고 준비한거 아직 다 그대로 남아있는데. 아직 내 휴대폰 비밀번호도 너랑 나만 아는 그 숫자인데. 헤어지고 나면 조금씩 잊혀진다는데 아직은 좀 시간이 부족한가봐. 나도 언젠가 다른 여자를 만나고 그러면 잊혀지고 이런 글 쓴것도 부끄러워서 삭제할수도 있어. 근데 오늘은 산책 다녀왔는데도 문득문득 너가 계속 생각나서 속이 터질것 같은 심정인데 말할 사람이 없어서 몇 글자 썼어.

너가 어쩌다 이 글을 보고 기분 나빠할수도 있겠지? 넌 다 잊었는데 내가 차놓고 연락하지 말라 그러고 막상 내가 이러고 있는걸 보면 속 시원해하려나?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냥 지금 나는 너가 많이 보고싶고 언젠가는 너도 내가 생각나는 날이 있을거니까. 너하고 다시 만났으면 하는 마음에 이러고 있는건 아니야. 그냥 너가 보고싶을 뿐이야. 내가 써놓고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딱 그런 마음이야. 잘 지냈으면 좋겠고 항상 행복했음 좋겠어. 나 만나면서 나 때문에 못했던것도 맘껏 다 하고. 솔직히 다른 남자 만나서 행복했음 좋겠다는 말은 아직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언젠가 너가 좋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겼을 때까지 내 마음이 다 정리 됐으면 좋겠다. 몇 년 동안 정말 고마웠고 많이 사랑했어.


혹시나 이런 글 쓰면 안되는 곳이면 말씀해주세요. 바로 지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