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포스트모던 사랑

누렁이2006.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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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포스트모던 사랑

박청호

가시가 박힌 십자가를
어쩌면 장미처럼
손목을 찔러 관통시키며
사랑해, 죽어가면서 짧게 말했어 넌

기억하니 네가 별에서 울었을 때
나도 따라 우니까
왜 울어? 했던 거
소주에 레몬을 타서 몸을 씻고
자러 갔던 일

못 견디겠으면 다른 여자를 써도 돼
너의 손에선 냄새가 안 나
네 손으로 날 죽일 수 없어
손금 사이로 눈물이 다 빠져나간 뒤
손이 없으면 세상도 없어

기억해 비디오방에서 손가락을 빨던
여기서 할까 생리중이야 치마를 입고 왔으면
다른 방에서도 그런 줄 알면서 뻔히 느끼던 불안
감시자들을 위해 벽의 한쪽이 터져 있었지
태어나서 처음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던
그 헤어지는 순간에도 사람
사이에 감옥이

별로 돌아가기 위해 뱀에게
꼬리를 물렸어 짐승과의 교접을
못마땅하게 감옥에서도
윤리가 무슨 빛을 냈을까
푸르게 지는 노을?

상상했던 단 한 여자를 사랑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여자들과의 초야를 어쩔 수 없었다구?
네가 울었을 때
내가 따라 울지 않았다면
사랑에 관한 사건들은 어떻게 끝장났을까
지겨운 소설처럼 설득시키려 들었을까

보석이 반지 속에 진짜 박혔는지 반쯤 꺼내
둘 혹은 없음을 만졌지
분명 하나의 육체는 아니었어
결코 결혼할 수 없었다

십자가는 꽃을 보여주었어
가시 박힌 그리스도의 얼굴을
나는 너와의 간음을
사랑처럼 회개했어
네가 죽는 것을 지켜보았지

죽음의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었을까
아냐 난 그걸 몰라 단 한 번도
내가 나였던 적은 다시는
없을 거야
사랑해, 혼자서 죽어갔지
내가 네 말을 반복하지 않았는데도
그걸 말했어야 했는데

- <박청호 시집, 치명적인 것들, 1995,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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