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안 믿으면 다가 아니다.

까니2024.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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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는 이미

지구“촌”이다.

 

 

자신은 알지 못했다고 사후세계에서 변명은 가능하지 않다.

분명히 들었다. 그만큼 세상을 지구“촌”이라고 불린다.

 

하나의 촌으로 볼만큼 세상 곳곳은 너무나 금방 오고 갈수 있고,

정보 또한 촌에서처럼 금방 번져나간다.

 

 

게다가 모든 것을 아시는게 신이며 그 존재가 확실히 있었다.

가상이 아니였단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런 신이 진짜로 있는데,

 

“신 중의 신”이라는 호칭을 가지신 하느님이시면

그 능력은 일반신을 더 초월할 것이다.

 

예를 들면, 이미 일반신들보다도 마음을 읽는 것을 넘어서서,

더 마음속의 매우 깊은 심연까지 꿰뚫어 보신다는 사실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

 

 

불교의 얘기에서는 다음 세상은 있다. 후생이라고 한다.

하느님을 믿는 종교에서도 다음세상, 즉 사후세계가 있고 또는

 

“새로 창조될 세상”이라고도 한다.

 

 

 

 

이 세상은 사라지고 다시 새창조된다고 하시며,

우리는 그 새로운 세상, 즉 다음세상에서 살게되지

 

구름모양의 천국에서 사는 것이 아니다.

 

 

 

만약 천국에서 산다고 생각하겟지만,

사실은 새로운 세상 없어지고 다시 생긴

 

즉 다음세상이다.

 

 

 

 

불교처럼 생각해도 될만큼 비숫하지 않은가.

불교의 전생이 좋아서 불교를 믿었다면

 

천주교를 믿어도 비슷한 맥락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더 확실하기까지 하다.

 

 

 

천주교를 믿어도 불교를 믿어도 비슷하단 말이다. 그런데도 동물이 되는 위험을

감수 하면서까지 불교를 믿으려 하는가.

 

 

하느님을 믿어야 정석인 것이다. 아니 제 정신인 것이다.

 

그러면, 불교가 1위인 국가인 대한민국의 바람처럼,

불교의 후생의 관점에서 볼때에는


잘 살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의 바람처럼

하느님의 종교 역시 똑같다.

 



만약 목적이 사후세계를 위해서라면 하느님을 믿는 종교들은

“현실에서 하느님을 믿고 좋은일을 많이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관점에서의

후생의 전생은 오늘날이기 때문이다.

 

 

 

 

 

그게 “새로운 세상에서의 나”의 모습을 지금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전생과 상관없이 말이다.

 

 

 

바로 “현재 지금 노력하는 모습”이 그 수많은 노력에 의해서

나중에는 “새로운 세상에서의 미래 모습이 지금의 노력에 의해 훨씬 더 좋게”

 

변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현재의 노력들에 의해서 말이다.

미래의 내 모습이 결정된다.

 

 

 

 

 

 

 

자신의 현재의 노력들이

직접적으로 내 나중의 내 모습에 영향을 끼쳐서

 

지금의 형편없는 모습과는 다른

새롭게 변화된 모습을 미래에서는 가지는게 가능하다.




자신의 지금 노력이 미래모습에 반영된다는 이야기를 

자꾸 반복하고 있다.




 

지금 하느님을 따르며, 하는 좋은 일들에 의하여

 

진짜로 실속있게 허구가 아니라

진짜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쪽으로 변화된 모습을

미래에서는 가지고 싶다면 말이다.


이것은 허구가 아니다.

 

 

 

불교처럼 전생이라고 못박아서 건들 수 조차 없는게 아니라는 얘기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시는 새 세상은

현재의 노력이 자신의 나중의 내 모습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얘기이다.

 

 

 

신이 있다고 밝혀졌으므로, 이 말들은 허구가 아니다.

 

 

 

 

 

다시 복습하여 짚고 가자.

 

 

“우리는 천국이 아니라, 새 창조된 새로운 세상에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