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래플즈 병원의 썀 쌍둥이 수술 제 2팀의 팀장인 버그만 박사는 래플즈 병원의 슈퍼스타인 케이스 고 박사와 함께 가장 높은 성공률을 기록 중인 샴 쌍둥이 분리수술 집도의로 평가받고 있다.
해마다 학회에 발표되었던 그의 논문은 새로운 분리 수술의 척도를 열어주었고 지난 해에는 20년 동안이나 머리를 붙이고 살았던 이슬람 자매의 52시간에 걸친 분리수술의 성공으로 일약 세계의학계의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그에겐 최소한 두려움이 없었다.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는 서슴없이 칼을 들었고 그의 칼 아래 하나의 몸뚱이로 함께 살아야 했던 두 인격체가 각 각의 독립된 한 사람으로 재탄생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버그만 박사는 이 한국에서 온 24살 청년들의 부모들에게 무어라 설명을 하여야할지 답답하기만 했다.
이미 24년간이나 등이 붙은 체로 살았던 이 쌍둥이중 하나는 지금 너무나 쇠약해져서
최소한 30시간 이상을 요하는 장시간의 수술조차 견딜 수 없는 몸이 되어있었다.
“휘유우........ OK!"
박사는 하늘을 향해 잘 만들어지지 않는 커다란 하얀 도넛 모양의 시가 연기를 뿜어 내고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상담실의 문을 열었다.
“확신 할 수 없습니다.”
박사는 자신의 의지가 흔들릴까 오히려 더욱 담담하고 굳건한 표정으로 수술 동의서를 한국에서 온 두 청년의 부모 앞에 내려놓는다.
“이미 쌍둥이 중 동생 쪽은 체력적으로 너무나 약해져있어서 분리수술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원칙적으로는 분리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시기적으로 앞으론 더 이상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즉 둘 중 하나가 병균에 침입이라도 당한다면 둘에게 다 치명적일 수 도 있으며 또한 만약 한쪽이 목숨을 잃는다면 남은 한쪽은 죽은 한쪽을 등에 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수술은 하셔야하지만
약해진 동생 쪽은 수술 후 생명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동의서에 사인을 하시면 됩니다.“
두 형제의 부모들은 맞잡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버그만 박사는 그렇게 밖에 말할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함이 안타까웠지만 이 동양인 부모들을 위해 할수 있는 일이라고는 조용히
커피 두 잔을 그들의 앞에 준비해주는 일 뿐이었다.
“정말 그럼 우리 하윤이는 힘든 건가요?”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힘들 것 같습니다.”
버그만 박사는 차가우리만치 냉정하게 끊어 말했다.
“그럼 수술을 하면 우리 세윤이 만큼은 건강하게 정말 완전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조금은 정신을 차린 쌍둥이의 아버지가 힘겹게 박사에게 물었다.
“네....”
“그럼......, 여보 우리 그렇게 라도 합시다. 지금 이제 하윤이를 보내줍시다. 세윤이라도 이제 완전한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그렇게 합시다. 하윤이는 우리가 다음에 저 먼 곳에서 가서 용서를 빕시다. 여보.......”
쌍둥이의 아버지는 목으로 숨을 삼키며 눈물을 삼키던 아내의 손을 꾸욱 잡고 말했다.
그리곤 도저히 그려지지 않을 것만 같던 수술동의서에 두 부부는 꾸욱 꾸욱 또박또박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사인을 하고 있는 자신들의 손이 믿기지 않았는지 아니면 아들들에 대한 자신들의 어쩔수 없는 선택을 책망이라도 하듯이 두 부부는 한번만 쓰면 되는 사인을 여러 번 위쪽에 덧칠하고 또 덧칠하고 있었다.
박사가 그들의 손에서 동의서를 서둘러 가져갈 때까지.......
한쪽이 쓰러질까봐 서로의 축쳐진 어깨를 기대고 나가는 두 동양인 부부를 보며
박사는
‘샴 쌍둥이의 부모 역시도 다른의미의 샴쌍둥이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두 부모의 뒤에 박사는 일부러 큰소리로 소리를 쳤다.
“기적을 믿어 봅시다. ”
“챠르르...챠르르..”
언제나처럼 이렇다. 이 언덕의 이 골목을 지날 때면 언제나처럼 자전거의 체인은 빡빡한 소리를 내며 잘 돌아가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우유배달을 하진 않지만 장미는 언제나 등하교의 길에 이 골목을 지나간다.
그리곤 장미를 위해 언제나 저 창문에서 기다려준 세윤과 하윤의 소중한 기다림들과 그들로 인해 콩닥거렸던 작은 자신의 가슴, 추억들을 생각하며 지난 12개월 동안 단 한번도 다시 열리지 않은 저 2층의 창문을 바라다보고 있다.
언젠가는 저 문이 열리기 바라며 골목을 돌때마다 일부러 큰소리로
“셋 둘 하나”를 외쳤지만
이제 저 하얀 2층엔 아무도 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 저 집은 장미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인지 단 한번도 저 창문의 커튼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장미는 그때 왜 자신이 저 방에서 도망쳤었는지....... 스스로가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때 그러지 말 것을........
‘유난히 두 형제는 내가 가져다 주는 우유를 좋아했었는데 한 컵씩 벌컥 벌컥 마셔대곤 입가에 우유 크림을 잔뜩 묻힌 체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난 친구가 되어주기로 해놓고 오빠 들을 마음속으로 그렇게 좋아해놓고 단지 등이 붙어있다는 이유로 오빠들의 믿음을 배신해버리고 나야 말로 정말 마음이 불구인 나쁜 년이야’
장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이 언제나 두 형제를 위해 애정을 담아 배달했던 우유배달 통을 천천히 열어보았다.
이미 몇 개월 지난 우유팩들이 수북히 쌓여있었고 받지않은 우편물들이 그 위를 덮고 있었다. 그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추억을 정리하고 싶음이었는지 장미는 지난 우편물들과 우유팩들을 하나하나 차곡 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장미는 보내는 이가 없는 싱가포르에서 온 우편물 하나를 발견하고 자세히 들여다 본다. 그런데 놀랍게도 받는 이란 장미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게 아닌가.
장미는 조심스레 우편물을 뜯어 보았다.
“2004년 3월 14일 오전 10시 인천 국제 공항 도착”
장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오늘의 날짜와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휴대폰의 푸른 액정화면은 장미에게 오늘의 시간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다.
‘2004년 3월 14일 오전 7시30분’
“틱틱”
장미는 지금 자신이 왜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지 알 수 가 없었다. 유아기적 버릇은 이미 끝낸지 오래고 더욱이 며칠 전에 3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한 네일아트가 그려진 아까운 손톱인데두 장미는 잘 씹어지지 않는 오징어 다리라도 뜯듯이 어금니에 힘을 주어 잘근 잘근 물어뜯고 있었다.
아직 싱가포르발 비행기가 도착하지 않았는 데두 불구하고
공항 대합실 안내 전광판이 바뀔 때마다 장미는 서둘러 고개를 들어 세윤과 하윤을 찾아보았다. 그리곤 내리는 승객들 속에서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 마다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다.
드디어 대합실의 전광판이 싱가포르 발 KAL4210 호의 도착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일년간의 서글프고 아름다웠던 추억들 마냥
슬프고 즐거운 각양 각색의 표정의 사람들이 장미의 눈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가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그때 그 2층 창문에서 내려온 듯한 살가운 모습으로
그는 그렇게 기분 좋은 갈색 웨이브 머리에 하얀색 드레스 셔츠를 입고 그렇게 공항 대합실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장미는 눈물이 울컥 올라오는 것을 꾸욱 참기 시작했다. 최소한 이번만큼은 그때 그 방에서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셋! 둘! 하나!”
장미는 두 손을 입에 모은 체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장미의 큰소리에 대합실에 마중 나온 사람들도 내리는 승객들도 모두 장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곳은 장미에겐 더 이상 복잡한 공항대합실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이미 그곳은 그와 장미를 만나게 해준 그의 집 앞 골목이었다. 그 골목엔 오직 장미와 그 둘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안녕 세윤 오빠”
“안녕 장미야! 나와 주었구나. 오랜 만이야”
그는 장미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보다 더 자연스럽고도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웃음 뒷 곁으로 어딘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장미는 서서히 그를 눈 가까이 두기 시작하다 그의 등 쪽에 언제나 같이 있어야할 하윤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는 무언지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저기 하윤오빠는.......”
“........”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웃던 그의 입술이 굳게 닫히고 장미는 그의 윗 입술에서 가벼운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하윤오빠 한테 사과해야하는 데 나 정말 그래야하는데.......”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걱정마 장미야 하윤이 24년 동안 내 등 뒤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젠 앞으로 남의 내 생에 동안 내 가슴속에 존재할거야. 녀석이 뒤쪽이 지겨워 졌나봐 그래서 이젠 앞으로 이동한 거 뿐이야 그것뿐이야........”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애써 장미를 안심시켰다.
장미는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차마 사과를 하지 못한 자신이 그리고 언제나 자신에게 장난스럽게 말을 걸던 하윤의 미소가 금방이라도 눈물이 되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장미는 지금 알고 있었다.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란 걸....... 그리고 지금 자신의 몫은 눈 앞에 있는 한 남자의 아픔을 덜어줘야 하는 것임을 이제 남은 그녀의 마음을 그에게 온전히 줘야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힘들어하는 그의 곁에 장미는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왼쪽 팔짱을 끼고 조용히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오늘따라 더욱 화창한 태양은 그의 투명한 피부를 더욱 밝게 비추고 있었다.
투명한 그의 피부와 웨이브진 그의 갈색머리 그리고 그를 비춰주는 태양아래
장미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제서야 오래동안 참았던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그의 왼쪽 목덜미 뒤엔 검은 점이 있었다.
장미는 꾹꾹 떨어지는 눈물을 그의 두 사람분의 그의 어깨에 훔치면서 어렵게 아주 어렵게 말을 꺼낸다.
[단편소설] 장미 하나 사랑 둘 4
[단편소설 : 장미 하나 사랑 둘 4]
//전편에 이은 글입니다.
"휴“
버그만 박사는 지금 7년째 피지 않던 시가를 입에 물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싱가포르의 래플즈 병원의 썀 쌍둥이 수술 제 2팀의 팀장인 버그만 박사는 래플즈 병원의 슈퍼스타인 케이스 고 박사와 함께 가장 높은 성공률을 기록 중인 샴 쌍둥이 분리수술 집도의로 평가받고 있다.
해마다 학회에 발표되었던 그의 논문은 새로운 분리 수술의 척도를 열어주었고 지난 해에는 20년 동안이나 머리를 붙이고 살았던 이슬람 자매의 52시간에 걸친 분리수술의 성공으로 일약 세계의학계의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그에겐 최소한 두려움이 없었다.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그는 서슴없이 칼을 들었고 그의 칼 아래 하나의 몸뚱이로 함께 살아야 했던 두 인격체가 각 각의 독립된 한 사람으로 재탄생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버그만 박사는 이 한국에서 온 24살 청년들의 부모들에게 무어라 설명을 하여야할지 답답하기만 했다.
이미 24년간이나 등이 붙은 체로 살았던 이 쌍둥이중 하나는 지금 너무나 쇠약해져서
최소한 30시간 이상을 요하는 장시간의 수술조차 견딜 수 없는 몸이 되어있었다.
“휘유우........ OK!"
박사는 하늘을 향해 잘 만들어지지 않는 커다란 하얀 도넛 모양의 시가 연기를 뿜어 내고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상담실의 문을 열었다.
“확신 할 수 없습니다.”
박사는 자신의 의지가 흔들릴까 오히려 더욱 담담하고 굳건한 표정으로 수술 동의서를 한국에서 온 두 청년의 부모 앞에 내려놓는다.
“이미 쌍둥이 중 동생 쪽은 체력적으로 너무나 약해져있어서 분리수술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도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원칙적으로는 분리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지금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시기적으로 앞으론 더 이상 수술을 할 수 없습니다. 즉 둘 중 하나가 병균에 침입이라도 당한다면 둘에게 다 치명적일 수 도 있으며 또한 만약 한쪽이 목숨을 잃는다면 남은 한쪽은 죽은 한쪽을 등에 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지금 수술은 하셔야하지만
약해진 동생 쪽은 수술 후 생명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동의서에 사인을 하시면 됩니다.“
두 형제의 부모들은 맞잡은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버그만 박사는 그렇게 밖에 말할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함이 안타까웠지만 이 동양인 부모들을 위해 할수 있는 일이라고는 조용히
커피 두 잔을 그들의 앞에 준비해주는 일 뿐이었다.
“정말 그럼 우리 하윤이는 힘든 건가요?”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힘들 것 같습니다.”
버그만 박사는 차가우리만치 냉정하게 끊어 말했다.
“그럼 수술을 하면 우리 세윤이 만큼은 건강하게 정말 완전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까?”
조금은 정신을 차린 쌍둥이의 아버지가 힘겹게 박사에게 물었다.
“네....”
“그럼......, 여보 우리 그렇게 라도 합시다. 지금 이제 하윤이를 보내줍시다. 세윤이라도 이제 완전한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게 그렇게 합시다. 하윤이는 우리가 다음에 저 먼 곳에서 가서 용서를 빕시다. 여보.......”
쌍둥이의 아버지는 목으로 숨을 삼키며 눈물을 삼키던 아내의 손을 꾸욱 잡고 말했다.
그리곤 도저히 그려지지 않을 것만 같던 수술동의서에 두 부부는 꾸욱 꾸욱 또박또박 사인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사인을 하고 있는 자신들의 손이 믿기지 않았는지 아니면 아들들에 대한 자신들의 어쩔수 없는 선택을 책망이라도 하듯이 두 부부는 한번만 쓰면 되는 사인을 여러 번 위쪽에 덧칠하고 또 덧칠하고 있었다.
박사가 그들의 손에서 동의서를 서둘러 가져갈 때까지.......
한쪽이 쓰러질까봐 서로의 축쳐진 어깨를 기대고 나가는 두 동양인 부부를 보며
박사는
‘샴 쌍둥이의 부모 역시도 다른의미의 샴쌍둥이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두 부모의 뒤에 박사는 일부러 큰소리로 소리를 쳤다.
“기적을 믿어 봅시다. ”
“챠르르...챠르르..”
언제나처럼 이렇다. 이 언덕의 이 골목을 지날 때면 언제나처럼 자전거의 체인은 빡빡한 소리를 내며 잘 돌아가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우유배달을 하진 않지만 장미는 언제나 등하교의 길에 이 골목을 지나간다.
그리곤 장미를 위해 언제나 저 창문에서 기다려준 세윤과 하윤의 소중한 기다림들과 그들로 인해 콩닥거렸던 작은 자신의 가슴, 추억들을 생각하며 지난 12개월 동안 단 한번도 다시 열리지 않은 저 2층의 창문을 바라다보고 있다.
언젠가는 저 문이 열리기 바라며 골목을 돌때마다 일부러 큰소리로
“셋 둘 하나”를 외쳤지만
이제 저 하얀 2층엔 아무도 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 저 집은 장미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인지 단 한번도 저 창문의 커튼은 다시 열리지 않았다.
장미는 그때 왜 자신이 저 방에서 도망쳤었는지....... 스스로가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때 그러지 말 것을........
‘유난히 두 형제는 내가 가져다 주는 우유를 좋아했었는데 한 컵씩 벌컥 벌컥 마셔대곤 입가에 우유 크림을 잔뜩 묻힌 체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난 친구가 되어주기로 해놓고 오빠 들을 마음속으로 그렇게 좋아해놓고 단지 등이 붙어있다는 이유로 오빠들의 믿음을 배신해버리고 나야 말로 정말 마음이 불구인 나쁜 년이야’
장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이 언제나 두 형제를 위해 애정을 담아 배달했던 우유배달 통을 천천히 열어보았다.
이미 몇 개월 지난 우유팩들이 수북히 쌓여있었고 받지않은 우편물들이 그 위를 덮고 있었다. 그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아니면 추억을 정리하고 싶음이었는지 장미는 지난 우편물들과 우유팩들을 하나하나 차곡 차곡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장미는 보내는 이가 없는 싱가포르에서 온 우편물 하나를 발견하고 자세히 들여다 본다. 그런데 놀랍게도 받는 이란 장미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게 아닌가.
장미는 조심스레 우편물을 뜯어 보았다.
“2004년 3월 14일 오전 10시 인천 국제 공항 도착”
장미는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오늘의 날짜와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휴대폰의 푸른 액정화면은 장미에게 오늘의 시간을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다.
‘2004년 3월 14일 오전 7시30분’
“틱틱”
장미는 지금 자신이 왜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지 알 수 가 없었다. 유아기적 버릇은 이미 끝낸지 오래고 더욱이 며칠 전에 3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한 네일아트가 그려진 아까운 손톱인데두 장미는 잘 씹어지지 않는 오징어 다리라도 뜯듯이 어금니에 힘을 주어 잘근 잘근 물어뜯고 있었다.
아직 싱가포르발 비행기가 도착하지 않았는 데두 불구하고
공항 대합실 안내 전광판이 바뀔 때마다 장미는 서둘러 고개를 들어 세윤과 하윤을 찾아보았다. 그리곤 내리는 승객들 속에서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 마다 왠지 모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했다.
드디어 대합실의 전광판이 싱가포르 발 KAL4210 호의 도착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일년간의 서글프고 아름다웠던 추억들 마냥
슬프고 즐거운 각양 각색의 표정의 사람들이 장미의 눈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가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그때 그 2층 창문에서 내려온 듯한 살가운 모습으로
그는 그렇게 기분 좋은 갈색 웨이브 머리에 하얀색 드레스 셔츠를 입고 그렇게 공항 대합실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장미는 눈물이 울컥 올라오는 것을 꾸욱 참기 시작했다. 최소한 이번만큼은 그때 그 방에서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
“셋! 둘! 하나!”
장미는 두 손을 입에 모은 체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장미의 큰소리에 대합실에 마중 나온 사람들도 내리는 승객들도 모두 장미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곳은 장미에겐 더 이상 복잡한 공항대합실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이미 그곳은 그와 장미를 만나게 해준 그의 집 앞 골목이었다. 그 골목엔 오직 장미와 그 둘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안녕 세윤 오빠”
“안녕 장미야! 나와 주었구나. 오랜 만이야”
그는 장미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보다 더 자연스럽고도 따뜻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의 웃음 뒷 곁으로 어딘지 모를 쓸쓸함이 느껴졌다.
장미는 서서히 그를 눈 가까이 두기 시작하다 그의 등 쪽에 언제나 같이 있어야할 하윤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는 무언지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저기 하윤오빠는.......”
“........”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웃던 그의 입술이 굳게 닫히고 장미는 그의 윗 입술에서 가벼운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하윤오빠 한테 사과해야하는 데 나 정말 그래야하는데.......”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걱정마 장미야 하윤이 24년 동안 내 등 뒤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젠 앞으로 남의 내 생에 동안 내 가슴속에 존재할거야. 녀석이 뒤쪽이 지겨워 졌나봐 그래서 이젠 앞으로 이동한 거 뿐이야 그것뿐이야........”
그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애써 장미를 안심시켰다.
장미는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차마 사과를 하지 못한 자신이 그리고 언제나 자신에게 장난스럽게 말을 걸던 하윤의 미소가 금방이라도 눈물이 되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장미는 지금 알고 있었다. 지금은 눈물을 흘릴 때가 아니란 걸....... 그리고 지금 자신의 몫은 눈 앞에 있는 한 남자의 아픔을 덜어줘야 하는 것임을 이제 남은 그녀의 마음을 그에게 온전히 줘야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힘들어하는 그의 곁에 장미는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왼쪽 팔짱을 끼고 조용히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오늘따라 더욱 화창한 태양은 그의 투명한 피부를 더욱 밝게 비추고 있었다.
투명한 그의 피부와 웨이브진 그의 갈색머리 그리고 그를 비춰주는 태양아래
장미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제서야 오래동안 참았던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그의 왼쪽 목덜미 뒤엔 검은 점이 있었다.
장미는 꾹꾹 떨어지는 눈물을 그의 두 사람분의 그의 어깨에 훔치면서 어렵게 아주 어렵게 말을 꺼낸다.
“세윤 오빠!
사랑해....... 정말 사랑해.......”
마지막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