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1절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때에 = 종말 때에.
“천국은 마치...... 같다 하리니”
천국은 믿는다고 다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예비한 자들은 들어가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못 들어가는 곳이다.
등 = 예수.
등을 들다 = 예수를 증거하다.
등을 들고 어둠을 밝히고 있는 처녀 = 예수님을 증거하며 어두운 세상을 예수님의 빛으로 밝히고 있는 성도들.
등에서 기름이 타며 빛을 낸다. 빛은 하나님.
등에서 타기 위해서는 기름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태워 빛을 낸다. 당신의 몸을 태워 하나님을 증거하셨다.
2-4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등은 가지되 = 예수를 믿고 예수를 그 안에 소유하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기름이 무엇이냐?
성령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기름 = 태워 빛을 내야 한다.
빛을 내다 = 아버지를 증거하다.
아버지를 증거하다 = 나의 행함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다.
등에서 기름이 타서 빛을 내다.
내가 예수님 안에서 나를 태워 하나님을 증거한다.
기름 = 감람유(올리브 기름)
감람유는 감람나무에서 짠다.
감람나무 = 이스라엘의 종교적 상태.
이스라엘이라는 감람나무에서 기름을 짜서 태워 빛을 내어 길을 밝히다.
믿는 우리는 다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
“너희는 나의 소유이니 너희 몸을 태워 어두운 세상에 나의 진리를 밝히라”
믿는 자의 삶은 나를 태워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
헌신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 = 빛을 내는 것.
그런데 이 기름은 등 안에서 타야 한다. 예수 안에서 타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슬기 있는 여자 = 그릇에 기름을 준비한 성도.
예수님을 내 안에 소유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예수 안에서 자신을 태우는 성도.
예수 안에서 = 예수님의 계명 안에서. 예수님의 뜻을 따라.
미려한 여자 = 그 그릇에 기름이 없는 성도. 혹 부족한 성도.
예수는 믿으나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을 태울 준비가 안 된 성도, 혹 준비가 덜 된 성도.
맞을 준비를 하지 않고 맞으러 나온 성도 = 미련한 성도.
종말을 위한 믿음의 준비가 안 된 채 재림 예수를 맞고자 하는 신도들.
세 가지 성도(교회)
1) 등이 없는 신자 = 그 안에 예수를 소유하지 않은(못한) 신자.
2) 등을 가졌으나 기름이 없는 성도 = 미련한 성도.
3) 등을 가졌고 그 기름을 태워 빛을 내는 성도 = 슬기 있는 성도.
열 처녀의 비유의 주제는 실은 기름 준비가 아니라 그 기름을 태워 빛을 내는 것이다.
기름 그 자체를 재림 예수께 드리는 것이 아니다. 그 기름을 태워 주님 오실 때 어두움을 밝히는 것이 이 비유의 참 주제이다.
어두움을 밝히고 있어야 재림 예수를 영접할 수 있다.
5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새”
“다 졸며 잘 새”
초대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곧 자기들 살고 있는 동안에, 오실 줄 알았다.
중세 교회에서는 1000년에 오실 줄 알고 교황을 위시해서 모든 교회가 그날을 위해 마지막 마사를 준비하고 모든 주민들이 다 성당에 나와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주님 승천하신지 200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오시지 않고 있다.
그래서 주를 기다리던 성도들이 그만 지쳐 버렸다. 기다리는 것을 포기했다.
6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그런데 한 밤중에 주신 오신다는 소리가 들린다.
밤중 = 종말의 때. 진리의 빛이 없어서 캄캄한 시대.
예수님은 밤에 오신다. 예수님을 맞기 위해서는 등이 있어야 하고 그 등에서 기름이 타고 빛을 내어야 한다.
진리가 없고 악한 세상에서 나를 태워 빛을 내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 그래서 교회는 등대로 표현된다.
이런 교회의 사명을 주님 오실 때까지 다 하고 있는 교회와 성도가 바로 기름을 준비한 처녀.
예수님은 밤에 오신다. 예수님은 아침이나 낮에 오시지 않는다.
아침 = 모든 사람이 잠에서 깨어서 활동하기 시작한 시간.
교회사적으로는 초대 교회. 믿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깨어 성령 충만하여 활동한다.
낮 = 모든 사람들이 한참 일하고 있는 시간 = 교회 성장 시대. 교회가 강한 힘을 가지고 확산되어 나간다.
이때에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는다.
예수님은 밤에 오신다. 교회사적으로는 종말 교회 시대. 많은 교회가 능력을 잃고 영적 잠에 빠져 있다.
깨어 있는 사람들만 주를 영접할 수 있다.
예수님은 빛. 따라서 등에서 기름이 타며 빛을 내는 사람만이 밤에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할 수가 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 소리가 들리는 시점은 언제인가?
지금 재림 예수님이 저 공중에 나타났다는 뜻이 아니다.
7년 환난이 이제 시작되려는 시점이다.
누가 외치는가? 종말 때의 주의 종들이 외친다.
주 재림을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든 처녀들은 이 소리에 잠을 깬다.
정신을 차린다. 믿음을 다시 찾는다.
등을 준비한다. 그리고 등에 불을 켠다. 신량 맞을 준비를 한다.
7-8절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하거늘”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처녀 = 예수만을 믿고 따르는 성도.
처녀들이 일어나다 = 예수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을 차린다. 믿음을 다시 정리한다.
열 처녀 외의 다른 신도들은 등도 없고, 예수님 맞으러 나올 생각도 안 한다.
그들은 아직도 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하는 생각 밖에는 없다.
“등을 준비할새”
믿음을 다시 정비하다.
그러나 미련한 여자들은 등을 손질하여 불을 켰으나 기름이 부족하다.
미련한 처녀들은 슬기 있는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나누어 달라고 한다.
9절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기름은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 대가를 지불하고 사야 한다. 각자 자기가 사야 한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미리 기름을 샀어야 했다.
지금이 각자 기름을 사야 할 시기이다. 기름을 사서 예비하라.
어디다 예비해 두나? 그릇에, 곧 내 몸 안에.
다시 한 번, 기름이 뭐지?
나를 불태워 아버지를 증거하기 위한 나 자신.
기름이 타다 = 나를 희생하여 진리가 없는 어두운 시대에 참 진리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증거하는 것.
자동차로 비유한다면,
자동차 = 하나님.
엔진 = 예수님.
차가 가기 위해서는 기름이 엔진 안에서 타야 한다.
기름 = 나
기름 탱크 = 나의 육산.
기름만 있다고 엔진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불이 붙어야 기름이 탄고 차가 달린다.
기름에 불을 붙이는 배터리 = 성령.
그러나 차가 있고 엔진이 좋고 배터리 성능이 좋아도, 내가 차를 운전하고 갈 마음이 없으면 차는 가지 않는다.
자동차. 엔진. 배터리 = 3위 1체의 하나님.
자동차는 하나님이 준비하셨다. 최고급 차. 우리에게 거저 빌려 주셨다.
그러나 차가 달리기 위해 곡 필요한 기름은 내가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시동을 걸고 달려 나가야 한다.
슬기 있는 처녀 = 장거리 운행을 예상해서 기름을 충분히 준비한 자.
미련한 처녀 = 기름을 조금밖에 넣지 않은 게으른 처녀.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다 = 나의 주님을 향한 믿음과 충성과 사랑이 다시 오시는 신랑을 맞을 만큼 내 안에 충분하다.
슬기로운 처녀 = 마지막 때의 주를 맞을 지혜로운 상도, 교회.
10-11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준비가 부족한 자들은 혼인 잔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
미련한 다섯 처녀 = 잘 믿는 성도들. 그들은 등을 소유했고, 예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당연히 구원 받는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예수님을 기다렸다.
그러나 미련했다. 뭐가 미련한 것인가?
기름 준비가 부족한 것이 미련한 것.
믿음도 좋고, 말씀도 잘 알고, 재림 예수를 늦게까지 기다리고, 등도 가졌고. 기름이 없는 것도 아니고, 부족했다.
“문은 닫힌지라”
열 처녀는 재림 때까지 깨어서 주 재림을 영접한 성도들.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신랑 예수님과의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
다섯 처녀들과 예수님의 혼인 잔치 = 천년왕국에서의 혼인 잔치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남은 다섯 처녀들은 천년왕국 밖에서 자기들도 들어가겠다고 문을 열어달라고 조른다.
12-13절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전혀 알지 못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정말로 누군지 모르신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 당신의 신부로서 모르신다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에서 신랑이 결혼 잔치를 위해 신부 집에 왔을 때에 신랑을 맞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신랑은 그냥 돌아가 버린다. 그리고 이 약혼은 무효가 된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깨어서 준비를 하고 있으라.
잠을 자다 = 아무 일도 못하다.
깨어 있다 = 단지 영의 눈을 뜨고 있으라는 뜻만 아니라, 활동을 하라, 주를 맞을 준비를 계속 하고 있어라, 계속 아버지를 증거하는 믿음 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라는 뜻.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날과 시를 안다면 그 때 가서 준비를 하면 된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미리, 또 충분히 준비를 해야 한다.
바울 사도 같은 신령한 종도 주님 오실 날을 알지 못했다.
미리 = 의외로 빨리 오실지도 모르니까.
충분히 = 의외로 더디 오실지도 모르니까.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을 등에 넣었지만, 더디 오시므로 기름이 떨어졌다.
미련한 처녀들은 일찍 준비를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더디 오셨다.
이것이 그 미련한 처녀들이 실패한 원인.
슬기 있는 처녀들은 일찍 준비를 했고, 넉넉히 준비했다.
14절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달란트의 비유.
어떤 사람 = 예수님.
타국에 갈제 = 부활하여 천국으로 갈 때에.
천국이 왜 타국이냐? 사람들 입장에서는 타국이다. 타국 = 먼 나라.
주의 종들을 불러서 당신의 소유를 맡기다.
당신의 소유 = 주님에 우리에게 맡겨 주신 능력, 은사, 재능. 물질.
우리가 받은 이런 것들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에게 임시 맡기신 것.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오셔서 우리와 회계를 하신다.
15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사나 능력을 주실 때, 그 재능대로 주신다.
그가 타고난 재능을 따라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다.
달란트 = 능력, 은사. 재능, 재물.
그 사람의 재능을 따라 많게 혹 적게 주신다.
내가 받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충만하기를 바랄 것.
은사는 나의 타고난 재능 이외의 것에는 욕심을 내지 말고, 내가 받은 은사가 충만하기를 바랄 것.
16-17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달란트 = 무게의 단위 중 가장 큰 단위. 34.27Kg.
한 달란트의 금의 화패가치는 6000 데나리온.
금 한 달란트 = 6000 데나리온 = 당시 노동자의 16년간의 노임과 같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 받을 자격이 있다.
장사하다 = 이익을 남기다 = 주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을 사용하여 열매를 얻다.
우리는 다 장사군. 장사해서 남겨야 한다. 영의 장사군.
바로 가서 = 즉각적인 헌신.
다섯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를 남기다 = 갑절로 남기다.
= 받은 것만큼 남기다.
많이 받은 자는 많이 남겨야 하고 적게 받은 자는 적게 남겨야 한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두 달란트만 남기면 족하다.
하나님은 두 달란트 받은 자에게 다섯 달란트 남겨올 것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18절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한 달란트 받은 자 = 가장 적게 받은 자.
땅 = 내의 육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와 능력을 자신의 육체 속에 파묻어 버렸다.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다 = 은사를 감추어 두었다. 사용하지 않았다.
적게 받은 자들은 그 적은 은사와 능력을 경하게 여기고 파묻어 버리기 쉽다.
19-21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열 처녀의 비유 = 밤에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는다. 종말 때의 성도들.
달란트의 비유 = 오랜 후에 예수님이 오신다. 은혜 시대에 태어나 주의 일을 하다가 환난 전에 죽은 자들에 대한 것.
“오랜 후에”
성경에는 재림 예수가 “곧 오시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랜 후는 천년왕국이 끝나고 마지막 심판 때를 뜻한다.
많은 학자들은 예수님 재림 때에 모든 죽은 믿는 자들이 다 부활해서 천년왕국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을 잘 연구해 보면 그렇지 않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그 종들의 주인 곧 예수님이 돌아 오셔서.
“저희와 회계할새”
무엇을 회개하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과 그것을 가지고 각자 남긴 이익을 계산한다.
주신 것은 반드시 다시 찾으신다. 갚아야 한다.
은혜 받았다고, 축복 받았다고 좋아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갚을 궁리를 해야 한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 오는 것이 잘하는 일이다.
또 착한 종이며, 충성된 종이다.
달란트를 가지고 달란트를 남기다 = 금을 가지고 금을 남기다.
이 말씀의 정확한 뜻은,
영의 생명을 받아서 영이 죽은 사람에게 생명을 얻게 해 주다.
영의 생명으로 영의 생명을 낳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것은 구원 받은 생명뿐이다. 곧 알곡뿐이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작은 일에 충성하다 = 달란트를 받아 달란트를 남기는 것은 작은 일.
우리가 땅에서 하는 일은 작은 일.
작은 일을 잘 하면 하나님은 많은 것을 맡기신다.
맡기다 = 주시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네 주인 = 예수님.
주인의 즐거움 = 천국에서의 잔치. 마지막 영원 천년에서 주님이 인간 창조의 역사를 완성하시고 즐거워하실 때, 그 즐거움에 함께 참예한다.
22-23절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아 두 달란트 남긴 종도 똑같은 상급을 받는다.
많이 받은 자는 많이, 조금 받은 자는 조금 남기면 된다.
받는 상급은 똑같다 = 하나님의 계산법.
24-25절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굳은 사람 = 인색하고 엄한 사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인색하고 엄한 사람으로 알았다.
하나님을 잘못 알았다.
이것이 큰 문제.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을 잘 못 알면. 잘 못 믿는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못 알고 그래서 잘 못 믿고 있다.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
심지도 않고 헤치지도 않고 인색하게 굴며 재물을 모으다.
“두려워하여”
주인이 그렇게 엄하신 분이라 만일 한 달란트를 잘못 해서 잃거나 도둑을 맞기라도 하면 큰일이라 생각하고 땅에다 묻어 두었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자, 이제 당신의 한 달란트가 여기 있습니다.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지 않고 잘 보관했습니다. 자, 받으시옵소서.
하나님은 심은 데서 거두시고, 헤치시고 모으시는 분이다.
심지 않은 데서는 거두지 않고, 헤치지 않고는 모으시지 않는다.
심으시고, 그 열매를 원하신다.
헤치시고 곧 나누어 주시고, 그런 다음에 다시 모으신다.
심으시고 거두시다 = 농부이신 하나님.
헤치시고 모으시다 = 장사꾼인 하나님.
심고 거두시다 = 미래에 더 많은 소출을 얻기 위해 지금 있는 씨앗을 땅에 뿌리다. 그런 다음 많은 열매를 거두다.
헤치고 모으다 = 미래에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지금 있는 돈으로 물건을 사고 그 물건을 팔아 더 많은 돈을 남기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나에게 달란트를 빌려 주신 것은 그것으로 장사를 해서 더 많은 달란트를 남기라는 하나님의 뜻.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것은 그들을 통해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얻기 위한 하나님의 뜻.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에게 많은 복을 주신 것은 아브라함을 땅에 심어 이스라엘 백성을 얻기 위한 하나님의 뜻.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교회를 통해 많은 백성들을 얻기 위한 하나님의 뜻.
심으신 데서 거둘 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심판.
헤친 데서 모을 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은 나를 왜 이 땅에 심으셨는가?
알곡을 거두시기 위해.
하나님은 왜 우리들을 이 세상에 헤치셨는가?
마지막 때에 모으시기 위해.
마태복음 24장 31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그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니까.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짜로 안 주시고, 당신도 공짜로 안 가지신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
우리 죄를 거저 용서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을 대속물로 주셨다.
이것을 모르고, 하나님은 공짜다, 은혜다, 천국은 거저 들어간다...따위 외치는 사람은 한 달란트 받아 땅에 묻어 둔 사람과 같은 사람.
한 달란트 받은 사람 = 하나님에게서 은혜와 은사를 받았으나 그것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남은 것이 없는 사람.
천국은 거저 들어가는 줄 아는 사람.
은혜로 거저 빌려 주신 것 = 달란트.
받은 달란트로 다른 달란트를 남겨야 주님 잔치에 참예한다.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무엇이 두려운가?
혹 주인의 달란트를 장사를 잘 못해서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서.
하나님을 잘 못 알 고 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주인을 오해 한 것 두 가지.
1)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 능력으로 마음대로 열매를 만들어 가지실 수 있다고 생각한 것.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하실 것.
2)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맡긴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를 하다 실수해서 달란트를 잃으면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시고 벌을 주실 줄로 생각한 것.
그래서 어떤 사람은 두려워 은사 받기를 겁낸다.
이 두 가지 생각을 바로 잡자.
1)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통해 역사하신다. 우리가 땅에서 매면 하나님은 하늘에서 동시에 같은 것을 매신다.
2) 장사를 하는 것은 우리들 사람이지만, 그 장사를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달란트를 주시고, 일을 하게 하시지만, 실은 그 뒤에서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
그러면서도 그 이루어진 일에 대한 상급을 우리에게 주신다.
이것이 은혜요 ,사랑이다.
공짜로 거저 주시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일은 우리에게 시키시지만,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이루시고, 그것을 우리에 공로로 여겨 주시는 것이 은혜요, 공짜로 받는 것이다.
26-27절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악한 종 = 하나님을 잘 못 안 종.
만일 그가 주인이 그런 분인 줄로 생각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일을 취했어야 했다.
그게 어떻게 하는 것인가?
취리하는 자에게 두는 것이다.
취리하는 자에게 두는 것 =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그 달란트를 빌려 주는 것.
그렇게 했다면 본전도 보존되고 이자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도 않고 땅에 묻어 두었다 = 게으른 종.
악하고 게으른 종 = 이중으로 나쁜 종.
28-29절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많은 은사와 은혜를 받은 자는 그 것으로 인해 많은 일을 하게 되고 더욱 많은 은혜 가운데 있게 된다.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적게 받은 자는 그것을 잃기 쉽다.
적게 받은 자는 그래서 빼앗기지 않도록 빨리 그것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적게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늘릴 지혜가 부족하다.
적게 받은 자가 악하고 게으르면 어두운 데로 내어 쫓기지만, 많이 받은 자가 세상 욕심을 내면 곧 악하면, 하나님을 배역하게 된다.
3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무익한 종 = 달란트를 받고도 아무 일 하지 않은 종.
유익한 종 =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 뜻대로 남긴 종.
바깥 어두운 데 = 그 곳이 어디냐?
천국 밖이다.
그는 예수를 믿고 주님으로부터 달란트 까지 받았지만 구원을 놓치고 만다.
그는 그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며 후회한다.
그때 가서 울며 이를 갈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많은 이익을 남길지어다.
31-40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31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인자 곧 초림 예수는 당신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러나 재림 때에는 천사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가지고 오신다.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재림하신 후 양과 염소의 심판을 위해 심판장 자리에 앉으신다.
마지막 대 환난을 육체를 가지고 살아서 통과한 사람들을 양과 염소로 가르시는 심판을 하신다.
25장의 세 가지 비유.
열 처녀의 비유 = 종말 때에 예수님 재림을 보며 휴거될 자와 휴거에 탈락할 자들.
달란트의 비유 = 은혜 시대의 종들. 마지막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부활.
양과 염소의 비유 = 종말 때에 예수님의 재림을 보며 구원을 받아 육체를 가지고 천년왕국에 들어 갈 자와 버림을 받을 자.
32-33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환난이 끝난 후에 있을 예수님의 세상 심판.
모든 민족 곧 온 세상에 그 때까지 살아남은 인간들은 다 그 앞에 나와 심판을 받는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이스라엘의 양치기 목자들은 양을 키우는데 염소도 함께 키운다.
양들은 게을러서 이리저리 풀을 찾아 이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기만 한다. 그러면 염소가 가서 양들을 뿔로 받거나 그들 사이를 뛰어다니거나 해서 양들로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이동하게 만든다.
양을 잘 키우기 위해 염소도 함께 키운다.
그러나 밤에 잠을 잘 때에는 양과 염소를 구별해서 양은 양 우리에, 염소는 염소 우리에 넣는다.
양 = 하나님의 자녀.
염소 = 사단의 자식.
하나님은 사단의 자식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훈련하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 때에는 양은 구원으로, 염소는 멸망으로 들어간다.
양과 염소를 처음에는 함께 기르신다. 양을 잘 키우기 위한 도구로.
염소들은 그것도 모르고 함부로 날뛰며 양들을 뿔로 받고 몸으로 밀고 한다.
양도 염소도 다 한 목자 밑에 있다.
교회 안에는 양과 염소들이 함께 있다.
염소들이 언제나 의기양양하고, 활동적이고, 양들을 업신여긴다.
눈먼 목자는 염소를 더 좋아 한다. 염소가 믿음이 더 좋고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계에서는 염소 같은 목회자가 성공을 한다.
염소 같은 목회자가 있어야 양들이 정신을 차리고 잘 믿게 된다.
다만, 심판 때에 염소 같은 목회자는 버림을 받는다.
34절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
천년왕국.
천년왕국은 창세 때 이미 예비 되었던 곳.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의 모든 과정이 창세 때에 이미 다 정해졌다.
양 같은 성도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
그렇다면 그 양 같은 성도들이란 어떤 자들인가?
35-36절이 그에 대한 설명.
35-39절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의인들은 그들이 주에게 그렇게 한 일이 없다고 대답한다.
의인들이란 자기들이 선한 일을 하고도 그 한 일을 기억 못한다.
또 자랑할 줄 모른다. 마땅히 할 것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
40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것은 7년 환난 중에 믿는 자끼리 함께 고통하며 함께 도우며 환난을 통과하는 것을 뜻한다.
아무에게나 한 것이 아니라, 주를 믿는 형제에게 한 것.
환난을 살아서 통과하는 자들에게 부과된 하나님의 시험.
함께 교회를 다니고, 함께 주여, 하고 외치며 기도를 했지만, 양이냐 염소냐, 하는 것을 분별 당하는 시험.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다.
평소라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환난 중 쫓겨 다닐 때에는, 때로는 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하나님은 이것으로 우리가 양인지 염소인지를 구별하신다.
41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왼편으로 분리된 자 = 저주를 받은 자들. 믿었으나 사랑의 행함이 없었던 자들.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
지옥.
지옥은 마귀와 그 사자인 귀신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
이곳에는 영원한 불이 타고 있다.
사람이 이곳으로 가면 어떻게 되나?
사람의 영은 곧 불에 타서 소멸되고 만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산 채로 들어가 마귀와 함께 영원히 고통을 당한다.
계시록 19장 20-21절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42-44절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의인들은 우리가 어느 때에 그렇게 하였나이까? 하고 반문.
악인들은 우리가 어느 때에 그렇게 하지 아니하더이까? 하고 반문.
의인 = 하고도 한 것을 잊거나 선한 일을 별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
악인 = 내가 언제 좋은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자기는 늘 선한 일만 하고 산 사람처럼 생각하고 있다.
45절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예수님의 제자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에게 한 것이다.
악인들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았다. 곧 예수님에게 하지 않았다.
악인들이란?
1) 예수 믿지 않았고,
2) 믿었다고 해도 영의 눈이 없어서 예수님의 제자가 누구인지 몰랐고,
3) 주님의 가르침인 사랑의 실천도 없었다.
46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악인들 =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못 알아보는 자들, 혹 알아보았다 해도 고통의 나눔이 없는 자들, 영벌에 들어간다.
반면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간다.
의인들 = 예수를 믿어, 예수님의 제자들을 알아보며,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눈 자.
예수님의 제자 = 세상 일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 일만 하는 사람들.
사랑의 나눔 = 내가 풍요로울 때, 혹 여유가 얼마간 있을 때 나누는 것.
고통의 나눔 = 나도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나누는 것.
의인은 예수를 믿으며, 고통 중에 있으면서 제자들을 알아보고 고통 중에 고통을 나눈 자들.
마지막 환난 때 나누는 것 = 고통의 나눔 = 의인.
마지막 때에, 환난 중에 제자들과 고통을 나누는 것 = 의인.
지금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분별하라!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다 = 천년왕국 육체 성도로 들어가서 살다가 죽어 다시 마지막 부활 때 부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
악인들은 영벌에 들어간다.
영벌이 무엇인가?
영벌 = 콜라신 아이오니온.
콜라신 = “절단하다” “베어내다”
아이오니온 = “오랜 동안” “영원히”
영벌 = 구원으로부터 영원히 절단하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에게서 영원히 베어내다.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단절되다.
마태복음 25 장 .....
마태복음 25장
25장 1-13절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1절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때에 = 종말 때에.
“천국은 마치...... 같다 하리니”
천국은 믿는다고 다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예비한 자들은 들어가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못 들어가는 곳이다.
등 = 예수.
등을 들다 = 예수를 증거하다.
등을 들고 어둠을 밝히고 있는 처녀 = 예수님을 증거하며 어두운 세상을 예수님의 빛으로 밝히고 있는 성도들.
등에서 기름이 타며 빛을 낸다. 빛은 하나님.
등에서 타기 위해서는 기름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태워 빛을 낸다. 당신의 몸을 태워 하나님을 증거하셨다.
2-4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등은 가지되 = 예수를 믿고 예수를 그 안에 소유하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기름이 무엇이냐?
성령이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기름 = 태워 빛을 내야 한다.
빛을 내다 = 아버지를 증거하다.
아버지를 증거하다 = 나의 행함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다.
등에서 기름이 타서 빛을 내다.
내가 예수님 안에서 나를 태워 하나님을 증거한다.
기름 = 감람유(올리브 기름)
감람유는 감람나무에서 짠다.
감람나무 = 이스라엘의 종교적 상태.
이스라엘이라는 감람나무에서 기름을 짜서 태워 빛을 내어 길을 밝히다.
믿는 우리는 다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
“너희는 나의 소유이니 너희 몸을 태워 어두운 세상에 나의 진리를 밝히라”
믿는 자의 삶은 나를 태워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
헌신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 = 빛을 내는 것.
그런데 이 기름은 등 안에서 타야 한다. 예수 안에서 타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다.
슬기 있는 여자 = 그릇에 기름을 준비한 성도.
예수님을 내 안에 소유하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예수 안에서 자신을 태우는 성도.
예수 안에서 = 예수님의 계명 안에서. 예수님의 뜻을 따라.
미려한 여자 = 그 그릇에 기름이 없는 성도. 혹 부족한 성도.
예수는 믿으나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 자신을 태울 준비가 안 된 성도, 혹 준비가 덜 된 성도.
맞을 준비를 하지 않고 맞으러 나온 성도 = 미련한 성도.
종말을 위한 믿음의 준비가 안 된 채 재림 예수를 맞고자 하는 신도들.
세 가지 성도(교회)
1) 등이 없는 신자 = 그 안에 예수를 소유하지 않은(못한) 신자.
2) 등을 가졌으나 기름이 없는 성도 = 미련한 성도.
3) 등을 가졌고 그 기름을 태워 빛을 내는 성도 = 슬기 있는 성도.
열 처녀의 비유의 주제는 실은 기름 준비가 아니라 그 기름을 태워 빛을 내는 것이다.
기름 그 자체를 재림 예수께 드리는 것이 아니다. 그 기름을 태워 주님 오실 때 어두움을 밝히는 것이 이 비유의 참 주제이다.
어두움을 밝히고 있어야 재림 예수를 영접할 수 있다.
5절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 새”
“다 졸며 잘 새”
초대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곧 자기들 살고 있는 동안에, 오실 줄 알았다.
중세 교회에서는 1000년에 오실 줄 알고 교황을 위시해서 모든 교회가 그날을 위해 마지막 마사를 준비하고 모든 주민들이 다 성당에 나와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주님 승천하신지 200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오시지 않고 있다.
그래서 주를 기다리던 성도들이 그만 지쳐 버렸다. 기다리는 것을 포기했다.
6절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그런데 한 밤중에 주신 오신다는 소리가 들린다.
밤중 = 종말의 때. 진리의 빛이 없어서 캄캄한 시대.
예수님은 밤에 오신다. 예수님을 맞기 위해서는 등이 있어야 하고 그 등에서 기름이 타고 빛을 내어야 한다.
진리가 없고 악한 세상에서 나를 태워 빛을 내어 어두운 세상을 밝히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 그래서 교회는 등대로 표현된다.
이런 교회의 사명을 주님 오실 때까지 다 하고 있는 교회와 성도가 바로 기름을 준비한 처녀.
예수님은 밤에 오신다. 예수님은 아침이나 낮에 오시지 않는다.
아침 = 모든 사람이 잠에서 깨어서 활동하기 시작한 시간.
교회사적으로는 초대 교회. 믿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깨어 성령 충만하여 활동한다.
낮 = 모든 사람들이 한참 일하고 있는 시간 = 교회 성장 시대. 교회가 강한 힘을 가지고 확산되어 나간다.
이때에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는다.
예수님은 밤에 오신다. 교회사적으로는 종말 교회 시대. 많은 교회가 능력을 잃고 영적 잠에 빠져 있다.
깨어 있는 사람들만 주를 영접할 수 있다.
예수님은 빛. 따라서 등에서 기름이 타며 빛을 내는 사람만이 밤에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할 수가 있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이 소리가 들리는 시점은 언제인가?
지금 재림 예수님이 저 공중에 나타났다는 뜻이 아니다.
7년 환난이 이제 시작되려는 시점이다.
누가 외치는가? 종말 때의 주의 종들이 외친다.
주 재림을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든 처녀들은 이 소리에 잠을 깬다.
정신을 차린다. 믿음을 다시 찾는다.
등을 준비한다. 그리고 등에 불을 켠다. 신량 맞을 준비를 한다.
7-8절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하거늘”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처녀 = 예수만을 믿고 따르는 성도.
처녀들이 일어나다 = 예수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정신을 차린다. 믿음을 다시 정리한다.
열 처녀 외의 다른 신도들은 등도 없고, 예수님 맞으러 나올 생각도 안 한다.
그들은 아직도 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하는 생각 밖에는 없다.
“등을 준비할새”
믿음을 다시 정비하다.
그러나 미련한 여자들은 등을 손질하여 불을 켰으나 기름이 부족하다.
미련한 처녀들은 슬기 있는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나누어 달라고 한다.
9절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기름은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 대가를 지불하고 사야 한다. 각자 자기가 사야 한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미리 기름을 샀어야 했다.
지금이 각자 기름을 사야 할 시기이다. 기름을 사서 예비하라.
어디다 예비해 두나? 그릇에, 곧 내 몸 안에.
다시 한 번, 기름이 뭐지?
나를 불태워 아버지를 증거하기 위한 나 자신.
기름이 타다 = 나를 희생하여 진리가 없는 어두운 시대에 참 진리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증거하는 것.
자동차로 비유한다면,
자동차 = 하나님.
엔진 = 예수님.
차가 가기 위해서는 기름이 엔진 안에서 타야 한다.
기름 = 나
기름 탱크 = 나의 육산.
기름만 있다고 엔진이 돌아가지는 않는다. 불이 붙어야 기름이 탄고 차가 달린다.
기름에 불을 붙이는 배터리 = 성령.
그러나 차가 있고 엔진이 좋고 배터리 성능이 좋아도, 내가 차를 운전하고 갈 마음이 없으면 차는 가지 않는다.
자동차. 엔진. 배터리 = 3위 1체의 하나님.
자동차는 하나님이 준비하셨다. 최고급 차. 우리에게 거저 빌려 주셨다.
그러나 차가 달리기 위해 곡 필요한 기름은 내가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시동을 걸고 달려 나가야 한다.
슬기 있는 처녀 = 장거리 운행을 예상해서 기름을 충분히 준비한 자.
미련한 처녀 = 기름을 조금밖에 넣지 않은 게으른 처녀.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다 = 나의 주님을 향한 믿음과 충성과 사랑이 다시 오시는 신랑을 맞을 만큼 내 안에 충분하다.
슬기로운 처녀 = 마지막 때의 주를 맞을 지혜로운 상도, 교회.
10-11절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준비가 부족한 자들은 혼인 잔치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
미련한 다섯 처녀 = 잘 믿는 성도들. 그들은 등을 소유했고, 예수 재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당연히 구원 받는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예수님을 기다렸다.
그러나 미련했다. 뭐가 미련한 것인가?
기름 준비가 부족한 것이 미련한 것.
믿음도 좋고, 말씀도 잘 알고, 재림 예수를 늦게까지 기다리고, 등도 가졌고. 기름이 없는 것도 아니고, 부족했다.
“문은 닫힌지라”
열 처녀는 재림 때까지 깨어서 주 재림을 영접한 성도들.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신랑 예수님과의 혼인 잔치에 들어갔다.
다섯 처녀들과 예수님의 혼인 잔치 = 천년왕국에서의 혼인 잔치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남은 다섯 처녀들은 천년왕국 밖에서 자기들도 들어가겠다고 문을 열어달라고 조른다.
12-13절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예수님께서 그들을 전혀 알지 못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정말로 누군지 모르신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 당신의 신부로서 모르신다는 말씀이다.
이스라엘에서 신랑이 결혼 잔치를 위해 신부 집에 왔을 때에 신랑을 맞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신랑은 그냥 돌아가 버린다. 그리고 이 약혼은 무효가 된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깨어서 준비를 하고 있으라.
잠을 자다 = 아무 일도 못하다.
깨어 있다 = 단지 영의 눈을 뜨고 있으라는 뜻만 아니라, 활동을 하라, 주를 맞을 준비를 계속 하고 있어라, 계속 아버지를 증거하는 믿음 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라는 뜻.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날과 시를 안다면 그 때 가서 준비를 하면 된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미리, 또 충분히 준비를 해야 한다.
바울 사도 같은 신령한 종도 주님 오실 날을 알지 못했다.
미리 = 의외로 빨리 오실지도 모르니까.
충분히 = 의외로 더디 오실지도 모르니까.
미련한 처녀들은 기름을 등에 넣었지만, 더디 오시므로 기름이 떨어졌다.
미련한 처녀들은 일찍 준비를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더디 오셨다.
이것이 그 미련한 처녀들이 실패한 원인.
슬기 있는 처녀들은 일찍 준비를 했고, 넉넉히 준비했다.
14절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달란트의 비유.
어떤 사람 = 예수님.
타국에 갈제 = 부활하여 천국으로 갈 때에.
천국이 왜 타국이냐? 사람들 입장에서는 타국이다. 타국 = 먼 나라.
주의 종들을 불러서 당신의 소유를 맡기다.
당신의 소유 = 주님에 우리에게 맡겨 주신 능력, 은사, 재능. 물질.
우리가 받은 이런 것들은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에게 임시 맡기신 것.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오셔서 우리와 회계를 하신다.
15절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사나 능력을 주실 때, 그 재능대로 주신다.
그가 타고난 재능을 따라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다.
달란트 = 능력, 은사. 재능, 재물.
그 사람의 재능을 따라 많게 혹 적게 주신다.
내가 받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충만하기를 바랄 것.
은사는 나의 타고난 재능 이외의 것에는 욕심을 내지 말고, 내가 받은 은사가 충만하기를 바랄 것.
16-17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달란트 = 무게의 단위 중 가장 큰 단위. 34.27Kg.
한 달란트의 금의 화패가치는 6000 데나리온.
금 한 달란트 = 6000 데나리온 = 당시 노동자의 16년간의 노임과 같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 받을 자격이 있다.
장사하다 = 이익을 남기다 = 주님이 주신 은사와 능력을 사용하여 열매를 얻다.
우리는 다 장사군. 장사해서 남겨야 한다. 영의 장사군.
바로 가서 = 즉각적인 헌신.
다섯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를 남기다 = 갑절로 남기다.
= 받은 것만큼 남기다.
많이 받은 자는 많이 남겨야 하고 적게 받은 자는 적게 남겨야 한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두 달란트만 남기면 족하다.
하나님은 두 달란트 받은 자에게 다섯 달란트 남겨올 것을 요구하시지 않는다.
18절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한 달란트 받은 자 = 가장 적게 받은 자.
땅 = 내의 육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와 능력을 자신의 육체 속에 파묻어 버렸다.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다 = 은사를 감추어 두었다. 사용하지 않았다.
적게 받은 자들은 그 적은 은사와 능력을 경하게 여기고 파묻어 버리기 쉽다.
19-21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열 처녀의 비유 = 밤에 재림하시는 주님을 맞는다. 종말 때의 성도들.
달란트의 비유 = 오랜 후에 예수님이 오신다. 은혜 시대에 태어나 주의 일을 하다가 환난 전에 죽은 자들에 대한 것.
“오랜 후에”
성경에는 재림 예수가 “곧 오시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랜 후는 천년왕국이 끝나고 마지막 심판 때를 뜻한다.
많은 학자들은 예수님 재림 때에 모든 죽은 믿는 자들이 다 부활해서 천년왕국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그러나 성경을 잘 연구해 보면 그렇지 않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 그 종들의 주인 곧 예수님이 돌아 오셔서.
“저희와 회계할새”
무엇을 회개하나?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과 그것을 가지고 각자 남긴 이익을 계산한다.
주신 것은 반드시 다시 찾으신다. 갚아야 한다.
은혜 받았다고, 축복 받았다고 좋아만 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갚을 궁리를 해야 한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겨 오는 것이 잘하는 일이다.
또 착한 종이며, 충성된 종이다.
달란트를 가지고 달란트를 남기다 = 금을 가지고 금을 남기다.
이 말씀의 정확한 뜻은,
영의 생명을 받아서 영이 죽은 사람에게 생명을 얻게 해 주다.
영의 생명으로 영의 생명을 낳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것은 구원 받은 생명뿐이다. 곧 알곡뿐이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작은 일에 충성하다 = 달란트를 받아 달란트를 남기는 것은 작은 일.
우리가 땅에서 하는 일은 작은 일.
작은 일을 잘 하면 하나님은 많은 것을 맡기신다.
맡기다 = 주시다.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네 주인 = 예수님.
주인의 즐거움 = 천국에서의 잔치. 마지막 영원 천년에서 주님이 인간 창조의 역사를 완성하시고 즐거워하실 때, 그 즐거움에 함께 참예한다.
22-23절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아 두 달란트 남긴 종도 똑같은 상급을 받는다.
많이 받은 자는 많이, 조금 받은 자는 조금 남기면 된다.
받는 상급은 똑같다 = 하나님의 계산법.
24-25절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굳은 사람 = 인색하고 엄한 사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인색하고 엄한 사람으로 알았다.
하나님을 잘못 알았다.
이것이 큰 문제.
하나님을 믿어도 하나님을 잘 못 알면. 잘 못 믿는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못 알고 그래서 잘 못 믿고 있다.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
심지도 않고 헤치지도 않고 인색하게 굴며 재물을 모으다.
“두려워하여”
주인이 그렇게 엄하신 분이라 만일 한 달란트를 잘못 해서 잃거나 도둑을 맞기라도 하면 큰일이라 생각하고 땅에다 묻어 두었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자, 이제 당신의 한 달란트가 여기 있습니다.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지 않고 잘 보관했습니다. 자, 받으시옵소서.
하나님은 심은 데서 거두시고, 헤치시고 모으시는 분이다.
심지 않은 데서는 거두지 않고, 헤치지 않고는 모으시지 않는다.
심으시고, 그 열매를 원하신다.
헤치시고 곧 나누어 주시고, 그런 다음에 다시 모으신다.
심으시고 거두시다 = 농부이신 하나님.
헤치시고 모으시다 = 장사꾼인 하나님.
심고 거두시다 = 미래에 더 많은 소출을 얻기 위해 지금 있는 씨앗을 땅에 뿌리다. 그런 다음 많은 열매를 거두다.
헤치고 모으다 = 미래에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지금 있는 돈으로 물건을 사고 그 물건을 팔아 더 많은 돈을 남기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나에게 달란트를 빌려 주신 것은 그것으로 장사를 해서 더 많은 달란트를 남기라는 하나님의 뜻.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것은 그들을 통해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얻기 위한 하나님의 뜻.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에게 많은 복을 주신 것은 아브라함을 땅에 심어 이스라엘 백성을 얻기 위한 하나님의 뜻.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교회를 통해 많은 백성들을 얻기 위한 하나님의 뜻.
심으신 데서 거둘 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심판.
헤친 데서 모을 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은 나를 왜 이 땅에 심으셨는가?
알곡을 거두시기 위해.
하나님은 왜 우리들을 이 세상에 헤치셨는가?
마지막 때에 모으시기 위해.
마태복음 24장 31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를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그렇게 생각한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니까.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짜로 안 주시고, 당신도 공짜로 안 가지신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
우리 죄를 거저 용서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을 대속물로 주셨다.
이것을 모르고, 하나님은 공짜다, 은혜다, 천국은 거저 들어간다...따위 외치는 사람은 한 달란트 받아 땅에 묻어 둔 사람과 같은 사람.
한 달란트 받은 사람 = 하나님에게서 은혜와 은사를 받았으나 그것을 사용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남은 것이 없는 사람.
천국은 거저 들어가는 줄 아는 사람.
은혜로 거저 빌려 주신 것 = 달란트.
받은 달란트로 다른 달란트를 남겨야 주님 잔치에 참예한다.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무엇이 두려운가?
혹 주인의 달란트를 장사를 잘 못해서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나 두려워서.
하나님을 잘 못 알 고 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주인을 오해 한 것 두 가지.
1)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 능력으로 마음대로 열매를 만들어 가지실 수 있다고 생각한 것.
하나님은 전능하시니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하실 것.
2)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맡긴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를 하다 실수해서 달란트를 잃으면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시고 벌을 주실 줄로 생각한 것.
그래서 어떤 사람은 두려워 은사 받기를 겁낸다.
이 두 가지 생각을 바로 잡자.
1)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통해 역사하신다. 우리가 땅에서 매면 하나님은 하늘에서 동시에 같은 것을 매신다.
2) 장사를 하는 것은 우리들 사람이지만, 그 장사를 이루어지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달란트를 주시고, 일을 하게 하시지만, 실은 그 뒤에서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
그러면서도 그 이루어진 일에 대한 상급을 우리에게 주신다.
이것이 은혜요 ,사랑이다.
공짜로 거저 주시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일은 우리에게 시키시지만,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이루시고, 그것을 우리에 공로로 여겨 주시는 것이 은혜요, 공짜로 받는 것이다.
26-27절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악한 종 = 하나님을 잘 못 안 종.
만일 그가 주인이 그런 분인 줄로 생각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일을 취했어야 했다.
그게 어떻게 하는 것인가?
취리하는 자에게 두는 것이다.
취리하는 자에게 두는 것 =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그 달란트를 빌려 주는 것.
그렇게 했다면 본전도 보존되고 이자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도 않고 땅에 묻어 두었다 = 게으른 종.
악하고 게으른 종 = 이중으로 나쁜 종.
28-29절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많은 은사와 은혜를 받은 자는 그 것으로 인해 많은 일을 하게 되고 더욱 많은 은혜 가운데 있게 된다.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적게 받은 자는 그것을 잃기 쉽다.
적게 받은 자는 그래서 빼앗기지 않도록 빨리 그것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적게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늘릴 지혜가 부족하다.
적게 받은 자가 악하고 게으르면 어두운 데로 내어 쫓기지만, 많이 받은 자가 세상 욕심을 내면 곧 악하면, 하나님을 배역하게 된다.
30절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무익한 종 = 달란트를 받고도 아무 일 하지 않은 종.
유익한 종 =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 뜻대로 남긴 종.
바깥 어두운 데 = 그 곳이 어디냐?
천국 밖이다.
그는 예수를 믿고 주님으로부터 달란트 까지 받았지만 구원을 놓치고 만다.
그는 그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며 후회한다.
그때 가서 울며 이를 갈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많은 이익을 남길지어다.
31-40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31절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인자 곧 초림 예수는 당신의 모든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
그러나 재림 때에는 천사들을 데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가지고 오신다.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재림하신 후 양과 염소의 심판을 위해 심판장 자리에 앉으신다.
마지막 대 환난을 육체를 가지고 살아서 통과한 사람들을 양과 염소로 가르시는 심판을 하신다.
25장의 세 가지 비유.
열 처녀의 비유 = 종말 때에 예수님 재림을 보며 휴거될 자와 휴거에 탈락할 자들.
달란트의 비유 = 은혜 시대의 종들. 마지막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부활.
양과 염소의 비유 = 종말 때에 예수님의 재림을 보며 구원을 받아 육체를 가지고 천년왕국에 들어 갈 자와 버림을 받을 자.
32-33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환난이 끝난 후에 있을 예수님의 세상 심판.
모든 민족 곧 온 세상에 그 때까지 살아남은 인간들은 다 그 앞에 나와 심판을 받는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이스라엘의 양치기 목자들은 양을 키우는데 염소도 함께 키운다.
양들은 게을러서 이리저리 풀을 찾아 이동하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기만 한다. 그러면 염소가 가서 양들을 뿔로 받거나 그들 사이를 뛰어다니거나 해서 양들로 이리저리 쫓겨 다니며 이동하게 만든다.
양을 잘 키우기 위해 염소도 함께 키운다.
그러나 밤에 잠을 잘 때에는 양과 염소를 구별해서 양은 양 우리에, 염소는 염소 우리에 넣는다.
양 = 하나님의 자녀.
염소 = 사단의 자식.
하나님은 사단의 자식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훈련하는 도구로 사용하신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 때에는 양은 구원으로, 염소는 멸망으로 들어간다.
양과 염소를 처음에는 함께 기르신다. 양을 잘 키우기 위한 도구로.
염소들은 그것도 모르고 함부로 날뛰며 양들을 뿔로 받고 몸으로 밀고 한다.
양도 염소도 다 한 목자 밑에 있다.
교회 안에는 양과 염소들이 함께 있다.
염소들이 언제나 의기양양하고, 활동적이고, 양들을 업신여긴다.
눈먼 목자는 염소를 더 좋아 한다. 염소가 믿음이 더 좋고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교계에서는 염소 같은 목회자가 성공을 한다.
염소 같은 목회자가 있어야 양들이 정신을 차리고 잘 믿게 된다.
다만, 심판 때에 염소 같은 목회자는 버림을 받는다.
34절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
천년왕국.
천년왕국은 창세 때 이미 예비 되었던 곳.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의 모든 과정이 창세 때에 이미 다 정해졌다.
양 같은 성도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
그렇다면 그 양 같은 성도들이란 어떤 자들인가?
35-36절이 그에 대한 설명.
35-39절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의인들은 그들이 주에게 그렇게 한 일이 없다고 대답한다.
의인들이란 자기들이 선한 일을 하고도 그 한 일을 기억 못한다.
또 자랑할 줄 모른다. 마땅히 할 것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
40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이것은 7년 환난 중에 믿는 자끼리 함께 고통하며 함께 도우며 환난을 통과하는 것을 뜻한다.
아무에게나 한 것이 아니라, 주를 믿는 형제에게 한 것.
환난을 살아서 통과하는 자들에게 부과된 하나님의 시험.
함께 교회를 다니고, 함께 주여, 하고 외치며 기도를 했지만, 양이냐 염소냐, 하는 것을 분별 당하는 시험.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다.
평소라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환난 중 쫓겨 다닐 때에는, 때로는 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수 있는 일들이다.
하나님은 이것으로 우리가 양인지 염소인지를 구별하신다.
41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왼편으로 분리된 자 = 저주를 받은 자들. 믿었으나 사랑의 행함이 없었던 자들.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
지옥.
지옥은 마귀와 그 사자인 귀신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
이곳에는 영원한 불이 타고 있다.
사람이 이곳으로 가면 어떻게 되나?
사람의 영은 곧 불에 타서 소멸되고 만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산 채로 들어가 마귀와 함께 영원히 고통을 당한다.
계시록 19장 20-21절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42-44절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의인들은 우리가 어느 때에 그렇게 하였나이까? 하고 반문.
악인들은 우리가 어느 때에 그렇게 하지 아니하더이까? 하고 반문.
의인 = 하고도 한 것을 잊거나 선한 일을 별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
악인 = 내가 언제 좋은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자기는 늘 선한 일만 하고 산 사람처럼 생각하고 있다.
45절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예수님의 제자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에게 한 것이다.
악인들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았다. 곧 예수님에게 하지 않았다.
악인들이란?
1) 예수 믿지 않았고,
2) 믿었다고 해도 영의 눈이 없어서 예수님의 제자가 누구인지 몰랐고,
3) 주님의 가르침인 사랑의 실천도 없었다.
46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악인들 =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못 알아보는 자들, 혹 알아보았다 해도 고통의 나눔이 없는 자들, 영벌에 들어간다.
반면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간다.
의인들 = 예수를 믿어, 예수님의 제자들을 알아보며,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눈 자.
예수님의 제자 = 세상 일을 버리고 오직 예수님 일만 하는 사람들.
사랑의 나눔 = 내가 풍요로울 때, 혹 여유가 얼마간 있을 때 나누는 것.
고통의 나눔 = 나도 고통 가운데 있으면서도 나누는 것.
의인은 예수를 믿으며, 고통 중에 있으면서 제자들을 알아보고 고통 중에 고통을 나눈 자들.
마지막 환난 때 나누는 것 = 고통의 나눔 = 의인.
마지막 때에, 환난 중에 제자들과 고통을 나누는 것 = 의인.
지금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분별하라!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다 = 천년왕국 육체 성도로 들어가서 살다가 죽어 다시 마지막 부활 때 부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
악인들은 영벌에 들어간다.
영벌이 무엇인가?
영벌 = 콜라신 아이오니온.
콜라신 = “절단하다” “베어내다”
아이오니온 = “오랜 동안” “영원히”
영벌 = 구원으로부터 영원히 절단하다. 천국에 들어가는 자들에게서 영원히 베어내다.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단절되다.
영원한 지옥 불 속에서 영원히 고생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구원으로부터 영원히 절단된다는 뜻이다.
다시는 구원받을 기회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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