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은퇴후 삶

2024.02.23
조회20,318

우리 부모님은 대기업 생산직에서 사내커플로
결혼하셨고
IMF가 오기 전에 퇴직하셔서
모아놓은 돈, 퇴직금도 있었음

그리고 내가 3살쯤? 조그마한 가게를 차리셨는데
IMF가 터지면서 당시 5천만원에 빚을 지고
쫄딱 망해서
새우깡 살돈도 없어 엄마가 저금통 탈탈 털어서
주던게 생각남

10살 때
평소보다 학교를 일찍 등교하는 길에
보게 된 환경미화원 아저씨였음
큰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담고
이상하게 그날따라 그 분이 눈에 들어왔음

그리고 몇달 뒤에 아빠가 환경미화원이 되었다는 말을
엄마한테 들었는데
갑자기 그 아저씨가 생각이 났음

어느날 학교가 끝나고 동생이랑 집에가는 길에
아빠가 트럭에 종량제 봉투를 힘들게
싣는 모습을 봤는데
순간 창피하면서 아빠가 부끄러웠음
그런데 내동생은
길에서 만난 아빠가 반가워서
아빠~~~^^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이 날을 또 잊지 못함
그리고
내 자신이 아빠한테 너무 부끄러웠던 날이었음

이 후 나는 친한 친구들이나
누가 너희 아버지가 뭐하시니? 라고 물어보면
환경미화원이요 라고 했음

우리 아빠가 나랑 내동생 먹고 자고 공부하라고
돈 버는건데 내가 아빠를 모른척 하면
나는 사람새끼도 아닌거지.

그렇게 나는 대학도 졸업하고
결혼도 했음


그런 아빠가 이제는 은퇴를 하셨고
이제는 노인 목욕 일을 하시는데

어떻게 사람이 보람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일을 하시는지.

퇴직금도 생각보다 많이 나왔고
은퇴하고 쉬시라고 했는데
나중에 쉬면 된다고 구태여 일을 시작하시는거임

그런데 어르신들 만나면서
아빠에게 고마워하시는 그 분들이
삶에 원동력을 북돋아주시는거 같음

때때로 고맙다며
커피 쿠폰, 과일 등을 주시는데

목욕을 받으시는 분들에 가족들이
정말 성심성의 있게
고마움을 표현주신다는게 느껴져서

나도 이제는 아빠 일 그만 두시라는 말을 안하게 됨

물론 아빠가 몸은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내가 태어나서 본 어느 때보다
아빠는 마음도 편해보이고
짜증, 욱함 이런게 없어졌음

처음에는 일할 때 쓰는
바디워시가 집에서 쓰는 것과 향이 동일해서
아빠가 집에서까지 그 냄새 맡는걸 힘들어하셨음
그래서 바로 다른 바디워시 샴푸로 바꿨고

몸무게가 많이 나가시는 어르신을
도와드린 날은 허리가 아파
집에 와서 너무 힘들어 하셨고

아마 가족들에게는 다 하지 못할 말들이 너무 많았을거임

그럼에도
이 일이 나에게 천직인거 같다며
열심히 일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까

그냥 괜히 아빠가 대단해 보여서
끄적여 봤습니다.

우리아빠는 환경미화원으로 근무 하셨을 때도
이 일이 나에게 천직이다라고
하셨는데.

사실은 지긋지긋하고 힘든 일들 일테지만
일을 하는 순간에는
마음속에서 어떤 무한한 긍정에 에너지가
나오는건지.


뉴스에서는
요양원이나 어르신들 봉사하는 나쁜 사람들만
보도되는데.

나는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수도 있는거 같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