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주기도에 대한 새로운 견해일뿐.(3)

까니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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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에 집중할 만큼, 실제 사람의 동작이 간단하지가 않고,

조금의 동작도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스토리에 충실하기보다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인간의 동작에 집중하는 것이다.

 

 

 

스토리보다는 “실제”에 집중하여 하나의 동작을 선택하는 것이다.

성령에 이끄심으로 어떤 동작을 할지 골랐다면 오직 “실제처럼” 묵상하여

 

완성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스토리에 관련된 동작을 말이다. 어느것이나 상관없다. 관련만 있다면 말이다.

예를 들면, 환희의 신비 1단, 마리아께서 예수님을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의 내용과

관련만 된다면, 어느 상황의, 어느 동작이든 좋다는 얘기다.

 

앞서 말했지만, 실제처럼 한다면, 묵상은 길지만,

실제 움직인 동작시간은 짧을 수 밖에 없다.

 

 

 

 

그만큼 하느님의 엄청난 인간의 창조에 대하여

심혈의 공을 들인 흔적이

 

묵주기도를 바치면서부터, 드디어 보인다는 것이다.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 1단 내용인, “잉태하심”과

관련된 묵상이 조금이라도 관련만 있다면 말이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어떤 동작을 해야 할지 골랐다면,

(앞서 말했지만 성령의 직분은 가르치시는 직분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실제”처럼 세세히 들여다보면서

묵상할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최대한 “실제같이”, 실제같이만이 중요한 것이지,

지신의 생각이나 상상을 첨가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실제같이는 어떻게 하느냐? 물을 것이다.

 

 

 

실제같이 묵상할려면, 자신의 실제 경험들을 토대로 생각해내어서, 끼워 맞추는 것이다.

도리가 없다.

 

자신의 실제경험은 실제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실제처럼 묵상하려고 하는 데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

 

 

 

그리고 예수님이 집중이 어렵거나 안된다면, 주변의 실제 사람을 대입해서

그 상황에서의, 그 사람의 행동이 어떠할 것인지를

 

묵상하여 적용한다.

 

 

예수님이라는 막연한 대상보다

실제 대상인 주변사람을 대입하여 묵상하는 것은 역시 같은 사람이므로,

 

인간인 것은 동일하다.

 

 

 

 

게다가 이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이시라면 어떠했을까라는 막연한 것보다

훨씬 더 묵상이 잘된다는 장점이 있다.

 

같은 인간이므로 상관없다고, 나는 앞서 이야기 했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예수님을 막연히 묵상하는것보다는

묵상이 더 잘되니까 말이다.

 

 

 

 

 

이번에도 저번처럼 역시 “실제처럼”만이 중요하다고 다시한번 강조를 드린다.

“실제처럼”만이 중요하다.

 

 

 

 

하느님께서는 나의 상상이나 묵상이 아닌,

너무나 어려운 실제를 창조하셨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