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굳이 비교를 하려는 이유는 천주교를 잘난체하거나 천주교의 교만이 아니라,실제로 개신교에서는 구원이 없을 수도 있다는 ”객관적인 실제 사실에 대하여“ 우리모두는 객관적인 눈으로만바라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증거는 필히 객관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치하겠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객관적이 되지 않겠습니까.지옥의 달려 있는데 유치한게 문제가 됩니까? 개신교는 구원이 없어도 됩니까? 자신들의 땀과 노력이 허무하게파도에 쓰러지는 바다가의 모래성처럼 되어도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 겁니까? 저는 그렇게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영원한 그리고 끔찍한 지옥이 달려 있다면 말입니다. 그만큼 무지로 인해서라면, 어떻게 해서든지옥에 가는 것만은 막으려고 한다는 그 저의 마음만은 정확히 아셨으면 합니다. ”고해성사“와 ”오웅진 신부님“ 이 두가지 키워드를 꼭 검색해 보아야 하는 계기가.이젠 명확히 생겼습니다. 오웅진 신부님의 기적들... 그리고 목사의 성령의 세기도 눈으로 직접 보고 비교를 하는 계기로 말미암아,천주교는 성령조차 압도적임을 천주교신자가 오히려 개신교인들을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김을 그리고 성체가 하나 더 있는 천주교는오직 성경과 성령인 개신교와는 차원이 다름을 확인하는 겁니다. 개신교는 이렇게나 ”성체“가 걸리적 거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도, 그리고 천주교에서는 이렇게나 당당히성체는 가짜가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내세울만큼 중요하다고 외치는 데도, “성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개신교에 대한 존재감에 대해위기가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성체없이, 성령만을 찾는다면, 아니면 성경만 찾는다면피부로 성령의 세기를 체감하는 방법보다 유치하지만, 더 확실하고 좋은 방법은 없을 듯 합니다. 오웅진 신부님은 미사때마다 성체와 성혈을 드시기 때문에,“성체”에 관련된 비교대상으로서는 손색이 없음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반면, 목사는 어디에나 있는 성령만그리고 베스트셀러라서 어디에나 다 있는 성경에만 심혈을 기울입니다. 성체를 드신것과 안드신것의 차이를,오웅진 신부님과 목사들과의 성령의 세기를 바로 알고,비교함으로써 분명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체가 이토록 중요한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비로서 “성체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 겁니다. 1
(하)개신교 아직도 믿을수 있겠습니까?
내가 이렇게 굳이 비교를 하려는 이유는
천주교를 잘난체하거나 천주교의 교만이 아니라,
실제로 개신교에서는 구원이 없을 수도 있다는
”객관적인 실제 사실에 대하여“ 우리모두는 객관적인 눈으로만
바라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증거는 필히 객관적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유치하겠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객관적이 되지 않겠습니까.
지옥의 달려 있는데 유치한게 문제가 됩니까? 개신교는 구원이 없어도 됩니까?
자신들의 땀과 노력이 허무하게
파도에 쓰러지는 바다가의 모래성처럼 되어도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 겁니까?
저는 그렇게 쉽게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영원한 그리고 끔찍한 지옥이 달려 있다면 말입니다.
그만큼 무지로 인해서라면, 어떻게 해서든
지옥에 가는 것만은 막으려고 한다는
그 저의 마음만은 정확히 아셨으면 합니다.
”고해성사“와 ”오웅진 신부님“
이 두가지 키워드를 꼭 검색해 보아야 하는 계기가.
이젠 명확히 생겼습니다.
오웅진 신부님의 기적들... 그리고 목사의 성령의 세기도
눈으로 직접 보고 비교를 하는 계기로 말미암아,
천주교는 성령조차 압도적임을
천주교신자가 오히려 개신교인들을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김을
그리고 성체가 하나 더 있는 천주교는
오직 성경과 성령인 개신교와는
차원이 다름을 확인하는 겁니다.
개신교는 이렇게나 ”성체“가 걸리적 거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도,
그리고 천주교에서는 이렇게나 당당히
성체는 가짜가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내세울만큼
중요하다고 외치는 데도, “성체”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개신교에 대한 존재감에 대해
위기가 찾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성체없이,
성령만을 찾는다면, 아니면 성경만 찾는다면
피부로 성령의 세기를 체감하는 방법보다
유치하지만, 더 확실하고 좋은 방법은 없을 듯 합니다.
오웅진 신부님은 미사때마다 성체와 성혈을 드시기 때문에,
“성체”에 관련된 비교대상으로서는 손색이 없음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반면, 목사는 어디에나 있는 성령만
그리고 베스트셀러라서 어디에나 다 있는 성경에만
심혈을 기울입니다.
성체를 드신것과 안드신것의 차이를,
오웅진 신부님과 목사들과의 성령의 세기를
바로 알고,
비교함으로써
분명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체가 이토록 중요한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말입니다.
비로서 “성체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