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 사는 30대 후반 여자입니다.
생각만해도 울화가 치밀어서 어찌해야하나..고민에 고민을 하다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에겐 남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로 라기보단 일방적으로 내외당하고 있구요 저의 잘못은 없다고 동생도 인정했던 부분입니다.
여튼 다른걸 다 떠나 저희아버지는 2015년 7월 경 k대학병원에서 간암3기 판정을 받으시고 2020년 3월 작고 하셨습니다.
저는 저희 아버지가 제 인생의 전부였기에 5년여간 간병을 했었습니다. 당연히 해야될 일이었고 아버지 없인 살수없었고 물심양면으로 까진 아니어도,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도 없지만, 아버지랑 둘이 서로 위로와 격려해가며 잘 버텨왔습니다. 아버지 스스로의 노력과 저도 약간의 도움을 드리며 병원치료도 운동도 식단조절도 정말 아버지 소신껏 정말 열심히 노력하셨구요, 간암환자분들 대부분이 간손상으로 인해 낯빛이 검어지시거나 어두우신데 비해 저희 아버지는 저보다 얼굴이 더 좋아보이실 만큼 호전되셨습니다. 정말 누가봐도 간암3기 환자로는 보이지 않을만큼요. 정말 행복했고 아버지한테 감사했고 그 힘든 색전술도 다 견뎌내셨고 병원내원도 치료도 게을리하지 않으셨었죠. 성실함의 표본 그 자체셨습니다.
하지만 결국은..패혈증으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무너졌고 저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매일 술을 마셨고 하루빨리 죽고싶었고 난생 처음 가위도 눌려보고 헛것도 보고 환청도 들리더라구요.
정말 정말 죽고싶었습니다. 방안에 있는 모든것들이 다 죽음과 연관되어 보일정도로 힘든 시간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저희 아버지의 5년의 투병 기간보다 앞으로 살아내셨을 미래의 시간이 사라진 것 보다 힘들진 않았을 겁니다.
아버지의 투병기간동안 아버지와 저는 어머니, 동생과 초반까지만 연락하고 지냈고 사실상 남처럼 지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선택했고 가족보다 남을 더 우선시 했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가족이 우선인 사람들이었기에 더욱 돈독하게 잘 버티고 이겨내고 지내왔습니다.
동생은 어머니의 부탁으로 캐피탈을 껴서 아버지에게 차를 선물한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차와 관련한 부분은 그들만의 이야기이기에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자세히 모르기도 하구요. 하지만 차로 인해 트러블이 생긴 이후로 남동생은 아무 잘못없는 아버지와 저까지 연락을 끊어버렸습니다.
전 아주 이따금씩 동생에게 아버지와 식사라도 하라고 연락을 취했고 동생은 연락을 씹거나, 아버지한테 들은바로는 한번정도 식사를 했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5년동안..단 한번요..
그리고 동생에겐 여자친구가 있다고 들었었고 꽤 오랜기간 교제를 하길래 결혼은 언제하냐 물은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동생이 얘기해준 정보들은 다 거짓이었습니다.
안면은 없지만 사진으로 봤던 애있는 유부녀였던 오랜친구였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건 인스타를 통해서였습니다. 인스타 알고리즘에 뜨더라구요, 그 여자애 가족들과 나들이가서 풍등에 써있는 문구를 보고 알게됐습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기 때문에요, 하지만 아버지와 만나기는 커녕 연락자체도 안하는 동생을 보며 또 그 여자를 보며 자식가진 부모란 사람이 도통 이해가 안됐습니다.
아버지는 욕설을 일체 안하시고 정말 성실하신 정말 참된 아버지의 표본..다시 태어나도 제 아버지의 딸이고 싶을만큼 완벽하신 분..그런데 그런 제 아버지가 제앞에서 제 동생을 욕하시더라구요 강아지라고.. 누나인 저도 울분이 터지는데 하물며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갈가리 찢어졌겠습니까..
한동안 연락을 안하다..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병원외래날, 아버지를 모시러 갔는데 아버지가 병원가는걸 굉장히 힘들어 하셨어요. 아버지의 컨디션은 완전 바닥이었습니다..하지만 담당교수님의 빙모상으로 외래가 한번 취소되었던 상태이기에 꼭 가야만 하는 날이었고..아버지는 집을 나서기전 화장실에 다녀오시겠다며 볼일 후 나오시다가 저와 마주본 상태에서 "XX아 아빠 어지러워.." 하시며 그대로 뒤로 넘어가셨습니다..그 모습을 정면으로 봤을때 저도 기절할뻔 했습니다..너무 충격적이고 너무 무서웠어요..그때가 3월이라 아버지가 점퍼를 입으신 상태였기에 아버지의 멱살쪽을 부여잡고 다행히 아버지 뒷머리는 다치지 않을수 있었습니다. 정말 울부짖었습니다. 아버지가 이대로 못 깨어나실까봐 돌아가실까봐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고 동생은 일하는중에 달려와줬고..아버지가 정신을 잃지않도록 아버지 얼굴쪽 시트를 치면서 계속 아빠를 불렀습니다.
아버진..5년을 건강히 운전하고 걸어다시시던 병원을..휠체어를 타고 들어가셨고..고혈압으로 거의 평생을 사셨는데..손발이 너무 차고..혈압조차 잡히지않는 저혈압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고....보호자였던 저는 응급실에서 수속을 마쳤고..또 보호자로써 환자에게 필요한 물품내역을 들으러 중환자실에 들어갔는데..우리 예쁜 아빠가..기도삽관을 하신 상태로..내가 평생을 알고 지냈던 예쁘고 잘생긴 얼굴과는 전혀 다른상태로 계셨습니다.
그날 저는 드라마에서나 듣던 '오늘을 넘기기 힘드실 것 같다' 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기적을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우리아빠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꺼야..기적이 일어날꺼야, 우리아빠 평생을 성실하고 남한테 싫은소리도 못하고 능력있고 멋있고 최고의 남편이자 아버지..착하지만 강단있고 완벽한 우리 아빠, 꼭 일어나실꺼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중환자실 입원 3일만에 돌아가시게 됐습니다..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신 동안 어머니도 동생도 꾸준히 와주었고 저는 그것만으로도 그동안의 응어리들이 조금은 풀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보호자대기실에서 조차 언쟁을 벌였고 전 그들을 달래야만 했습니다..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중환자실 의사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시간을 대강 예상하여 알려주었고..5년동안 아버지와 밥한번 먹지않았던 그여자가 왔습니다. 근데 굳이..아버지가 돌아가신 모습을..보여주고 보려고 하더군요. 미친새끼들인줄 알았습니다. 눈이 돌았습니다. 제정신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빈소를 차렸습니다. 그 여자가 굳이 상복을 입도록 사이즈를 체크하더군요.. 고모들을 말리고 작은아빠들을 말렸지만 굳이 상복을 입히고 이틀을 왔다가더군요.
다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지들이 뭘 안다고..아빠랑 나랑 그들을 원망했던 기간이 얼만데 뭘안다고 입히네마네..
상복에 귀걸이피어싱잔뜩, 파츠잔뜩네일.. 동생 통해 한마디 했습니다. 적어도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고있으면 정도는 해야되겠죠..그런데..돌아온 대답이 정말 돌머리같은 대답이더군요..'언니친구들은 악세사리 다하고 왔는데도 뭐라 안하면서 자기한테만 그런다고'
......그런 마인드면 상복을 쳐 입질 말아야겠죠.
뻔히 동생이 며칠 중환자실에 왔다갔다한걸 알면서..
충분히 단도리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치렁치렁..
아버지 빈소를 찾아준 고마운 제친구들을 본인이랑 비교하면서 말하는 꼬락서니가 가관이더군요. 하지만 장례식 중 이틀째 되던 날 그여자 가는길에 수고했다, 고생했다 해줬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아버지 장례식에 상주로 3일, 아버지 중환자실에 몇번 찾아왔던 3일, 고마워서 동생에게 700만원 정도를 건네고 700만원을 그 여자에게 다 줬다하길래 그래도 남자한텐 돈이 있어야 한다고 다시 건네준 100만원, 그리고 그 아들한테 용돈으로 준 10만원 등 다시 돌려받고 싶네요.
돈을 줄때 꼭 얘기했습니다. 우리 지난시간들은 다 잊고 잘 지내보자, 엄마까지 돌아가시면 세상에 가족은 우리 둘뿐이다 상주로 고생많았다.. 잘 지내자 했고 동생도 동의했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첫 제사때 한번 왔습니다..
아버지의 제사는 제가 지냅니다. 남의손에 못맡기죠.
집에도 친가에도 신경쓰기 힘들다길래 2년의 유예기간을 달라기에 줬고 2년이 지나고도 연락한번을 안하고 있네요.
명절에도 기제사때도 카톡한번을 안보내고..아버지의 납골당은 10번도 안가고..솔직히 모르겠습니다. 5번도 안간듯 싶네요, 전 매달가서 아버지 납골당 사진을 찍어오기에..확실할것 같구요..어차피 가지도 않은 동생이니 납골당 계약자 상주명을 바꾸자 했는데 그게 누나와 나의 유일한 끈이라 생각한다며 거부하더니 아버지는 나몰라라 그 여자 조상한테 찾아가고 있네요..
알고보니 어머니한테도 몇백을 받아갔던데..상주알바 3일하고 천만원 이상을 꿀꺽했네요..
그사이 둘은 혼인신고를 했고 또 최근엔 아들 성씨도 바꿨던데 기분이 정말..엿같네요. 동생 성씨는 저와 같기에 또 찾아뵙지도 않는 제 아버지의 성씨이기에 분통이 터질 따름입니다. 돈을줄때 잘지내잔 전제조건을 걸었으나 실행된 바 하나없고 연락도 안하고 아버지 납골당도 찾질않으니 돈받아쳐먹을 자격이 없지 않습니까.
이젠 니들끼리 살던 뒤지던 알빠아니고..돈이라도 주길 바란다..
그 아들은 이번에 중학생이 되었더군요..
그 여자는 필라테스를 운영중이구요..대표는 친언니이고 본인은 원장이네요..제 동생은 그 상호를 아무도 쓰지 못하도록 어디에 등록을 했던데 그런 구린 상호는 아마 아무도 안쓸듯하고..ㅇㅂ
이 이야기는 본인아니면 아무도 모를 내용입니다..
본인엔 저 남동생 그리고 그여자가 해당되겠습니다..
이 글이 이대로 묻힐수도 있겠구요. 하지만 저는 정말 마지막으로 믿었던 내 가족에게 너무 크나큰 실망을 했고 마음이 아프다못해 찢어질것 같습니다..
그냥 한마디만 하자면 돈 내놔 우리아빠가 모아둔 돈, 멍청하게 끝까지 가족이라고 널 믿고 준 돈, 내놓고 니가 원하는대로 지금 살고있는대로 연끊자.
개키우면서 개 새끼만도 못하게 개 같이 사는 개 인간같지도 않은 인간들..그 내동생 여자ㄴ은 아침에 날 보고서도 모른척하던데..덜 떨어진 ㄴ..그냥 뒤졌으면 좋겠다 진심
동생과 그의 와이프
경기도에 사는 30대 후반 여자입니다.
생각만해도 울화가 치밀어서 어찌해야하나..고민에 고민을 하다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에겐 남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은 서로 라기보단 일방적으로 내외당하고 있구요 저의 잘못은 없다고 동생도 인정했던 부분입니다.
여튼 다른걸 다 떠나 저희아버지는 2015년 7월 경 k대학병원에서 간암3기 판정을 받으시고 2020년 3월 작고 하셨습니다.
저는 저희 아버지가 제 인생의 전부였기에 5년여간 간병을 했었습니다. 당연히 해야될 일이었고 아버지 없인 살수없었고 물심양면으로 까진 아니어도,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도 없지만, 아버지랑 둘이 서로 위로와 격려해가며 잘 버텨왔습니다. 아버지 스스로의 노력과 저도 약간의 도움을 드리며 병원치료도 운동도 식단조절도 정말 아버지 소신껏 정말 열심히 노력하셨구요, 간암환자분들 대부분이 간손상으로 인해 낯빛이 검어지시거나 어두우신데 비해 저희 아버지는 저보다 얼굴이 더 좋아보이실 만큼 호전되셨습니다. 정말 누가봐도 간암3기 환자로는 보이지 않을만큼요. 정말 행복했고 아버지한테 감사했고 그 힘든 색전술도 다 견뎌내셨고 병원내원도 치료도 게을리하지 않으셨었죠. 성실함의 표본 그 자체셨습니다.
하지만 결국은..패혈증으로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무너졌고 저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매일 술을 마셨고 하루빨리 죽고싶었고 난생 처음 가위도 눌려보고 헛것도 보고 환청도 들리더라구요.
정말 정말 죽고싶었습니다. 방안에 있는 모든것들이 다 죽음과 연관되어 보일정도로 힘든 시간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봤자 저희 아버지의 5년의 투병 기간보다 앞으로 살아내셨을 미래의 시간이 사라진 것 보다 힘들진 않았을 겁니다.
아버지의 투병기간동안 아버지와 저는 어머니, 동생과 초반까지만 연락하고 지냈고 사실상 남처럼 지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선택했고 가족보다 남을 더 우선시 했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가족이 우선인 사람들이었기에 더욱 돈독하게 잘 버티고 이겨내고 지내왔습니다.
동생은 어머니의 부탁으로 캐피탈을 껴서 아버지에게 차를 선물한 착한 아들이었습니다. 차와 관련한 부분은 그들만의 이야기이기에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자세히 모르기도 하구요. 하지만 차로 인해 트러블이 생긴 이후로 남동생은 아무 잘못없는 아버지와 저까지 연락을 끊어버렸습니다.
전 아주 이따금씩 동생에게 아버지와 식사라도 하라고 연락을 취했고 동생은 연락을 씹거나, 아버지한테 들은바로는 한번정도 식사를 했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5년동안..단 한번요..
그리고 동생에겐 여자친구가 있다고 들었었고 꽤 오랜기간 교제를 하길래 결혼은 언제하냐 물은적이 있었는데 알고보니 동생이 얘기해준 정보들은 다 거짓이었습니다.
안면은 없지만 사진으로 봤던 애있는 유부녀였던 오랜친구였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된건 인스타를 통해서였습니다. 인스타 알고리즘에 뜨더라구요, 그 여자애 가족들과 나들이가서 풍등에 써있는 문구를 보고 알게됐습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았기 때문에요, 하지만 아버지와 만나기는 커녕 연락자체도 안하는 동생을 보며 또 그 여자를 보며 자식가진 부모란 사람이 도통 이해가 안됐습니다.
아버지는 욕설을 일체 안하시고 정말 성실하신 정말 참된 아버지의 표본..다시 태어나도 제 아버지의 딸이고 싶을만큼 완벽하신 분..그런데 그런 제 아버지가 제앞에서 제 동생을 욕하시더라구요 강아지라고.. 누나인 저도 울분이 터지는데 하물며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갈가리 찢어졌겠습니까..
한동안 연락을 안하다..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병원외래날, 아버지를 모시러 갔는데 아버지가 병원가는걸 굉장히 힘들어 하셨어요. 아버지의 컨디션은 완전 바닥이었습니다..하지만 담당교수님의 빙모상으로 외래가 한번 취소되었던 상태이기에 꼭 가야만 하는 날이었고..아버지는 집을 나서기전 화장실에 다녀오시겠다며 볼일 후 나오시다가 저와 마주본 상태에서 "XX아 아빠 어지러워.." 하시며 그대로 뒤로 넘어가셨습니다..그 모습을 정면으로 봤을때 저도 기절할뻔 했습니다..너무 충격적이고 너무 무서웠어요..그때가 3월이라 아버지가 점퍼를 입으신 상태였기에 아버지의 멱살쪽을 부여잡고 다행히 아버지 뒷머리는 다치지 않을수 있었습니다. 정말 울부짖었습니다. 아버지가 이대로 못 깨어나실까봐 돌아가실까봐 너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고 동생은 일하는중에 달려와줬고..아버지가 정신을 잃지않도록 아버지 얼굴쪽 시트를 치면서 계속 아빠를 불렀습니다.
아버진..5년을 건강히 운전하고 걸어다시시던 병원을..휠체어를 타고 들어가셨고..고혈압으로 거의 평생을 사셨는데..손발이 너무 차고..혈압조차 잡히지않는 저혈압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하셨고....보호자였던 저는 응급실에서 수속을 마쳤고..또 보호자로써 환자에게 필요한 물품내역을 들으러 중환자실에 들어갔는데..우리 예쁜 아빠가..기도삽관을 하신 상태로..내가 평생을 알고 지냈던 예쁘고 잘생긴 얼굴과는 전혀 다른상태로 계셨습니다.
그날 저는 드라마에서나 듣던 '오늘을 넘기기 힘드실 것 같다' 는 말을 듣게 됐습니다..
기적을 바라고 또 바랐습니다. 우리아빠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꺼야..기적이 일어날꺼야, 우리아빠 평생을 성실하고 남한테 싫은소리도 못하고 능력있고 멋있고 최고의 남편이자 아버지..착하지만 강단있고 완벽한 우리 아빠, 꼭 일어나실꺼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중환자실 입원 3일만에 돌아가시게 됐습니다..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신 동안 어머니도 동생도 꾸준히 와주었고 저는 그것만으로도 그동안의 응어리들이 조금은 풀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보호자대기실에서 조차 언쟁을 벌였고 전 그들을 달래야만 했습니다..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중환자실 의사들은 아버지의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시간을 대강 예상하여 알려주었고..5년동안 아버지와 밥한번 먹지않았던 그여자가 왔습니다. 근데 굳이..아버지가 돌아가신 모습을..보여주고 보려고 하더군요. 미친새끼들인줄 알았습니다. 눈이 돌았습니다. 제정신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빈소를 차렸습니다. 그 여자가 굳이 상복을 입도록 사이즈를 체크하더군요.. 고모들을 말리고 작은아빠들을 말렸지만 굳이 상복을 입히고 이틀을 왔다가더군요.
다 죽여버리고 싶었습니다. 지들이 뭘 안다고..아빠랑 나랑 그들을 원망했던 기간이 얼만데 뭘안다고 입히네마네..
상복에 귀걸이피어싱잔뜩, 파츠잔뜩네일.. 동생 통해 한마디 했습니다. 적어도 장례식장에서 상복을 입고있으면 정도는 해야되겠죠..그런데..돌아온 대답이 정말 돌머리같은 대답이더군요..'언니친구들은 악세사리 다하고 왔는데도 뭐라 안하면서 자기한테만 그런다고'
......그런 마인드면 상복을 쳐 입질 말아야겠죠.
뻔히 동생이 며칠 중환자실에 왔다갔다한걸 알면서..
충분히 단도리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치렁치렁..
아버지 빈소를 찾아준 고마운 제친구들을 본인이랑 비교하면서 말하는 꼬락서니가 가관이더군요. 하지만 장례식 중 이틀째 되던 날 그여자 가는길에 수고했다, 고생했다 해줬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아버지 장례식에 상주로 3일, 아버지 중환자실에 몇번 찾아왔던 3일, 고마워서 동생에게 700만원 정도를 건네고 700만원을 그 여자에게 다 줬다하길래 그래도 남자한텐 돈이 있어야 한다고 다시 건네준 100만원, 그리고 그 아들한테 용돈으로 준 10만원 등 다시 돌려받고 싶네요.
돈을 줄때 꼭 얘기했습니다. 우리 지난시간들은 다 잊고 잘 지내보자, 엄마까지 돌아가시면 세상에 가족은 우리 둘뿐이다 상주로 고생많았다.. 잘 지내자 했고 동생도 동의했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첫 제사때 한번 왔습니다..
아버지의 제사는 제가 지냅니다. 남의손에 못맡기죠.
집에도 친가에도 신경쓰기 힘들다길래 2년의 유예기간을 달라기에 줬고 2년이 지나고도 연락한번을 안하고 있네요.
명절에도 기제사때도 카톡한번을 안보내고..아버지의 납골당은 10번도 안가고..솔직히 모르겠습니다. 5번도 안간듯 싶네요, 전 매달가서 아버지 납골당 사진을 찍어오기에..확실할것 같구요..어차피 가지도 않은 동생이니 납골당 계약자 상주명을 바꾸자 했는데 그게 누나와 나의 유일한 끈이라 생각한다며 거부하더니 아버지는 나몰라라 그 여자 조상한테 찾아가고 있네요..
알고보니 어머니한테도 몇백을 받아갔던데..상주알바 3일하고 천만원 이상을 꿀꺽했네요..
그사이 둘은 혼인신고를 했고 또 최근엔 아들 성씨도 바꿨던데 기분이 정말..엿같네요. 동생 성씨는 저와 같기에 또 찾아뵙지도 않는 제 아버지의 성씨이기에 분통이 터질 따름입니다. 돈을줄때 잘지내잔 전제조건을 걸었으나 실행된 바 하나없고 연락도 안하고 아버지 납골당도 찾질않으니 돈받아쳐먹을 자격이 없지 않습니까.
이젠 니들끼리 살던 뒤지던 알빠아니고..돈이라도 주길 바란다..
그 아들은 이번에 중학생이 되었더군요..
그 여자는 필라테스를 운영중이구요..대표는 친언니이고 본인은 원장이네요..제 동생은 그 상호를 아무도 쓰지 못하도록 어디에 등록을 했던데 그런 구린 상호는 아마 아무도 안쓸듯하고..ㅇㅂ
이 이야기는 본인아니면 아무도 모를 내용입니다..
본인엔 저 남동생 그리고 그여자가 해당되겠습니다..
이 글이 이대로 묻힐수도 있겠구요. 하지만 저는 정말 마지막으로 믿었던 내 가족에게 너무 크나큰 실망을 했고 마음이 아프다못해 찢어질것 같습니다..
그냥 한마디만 하자면 돈 내놔 우리아빠가 모아둔 돈, 멍청하게 끝까지 가족이라고 널 믿고 준 돈, 내놓고 니가 원하는대로 지금 살고있는대로 연끊자.
개키우면서 개 새끼만도 못하게 개 같이 사는 개 인간같지도 않은 인간들..그 내동생 여자ㄴ은 아침에 날 보고서도 모른척하던데..덜 떨어진 ㄴ..그냥 뒤졌으면 좋겠다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