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꽃다리 숨결이 꽃불처럼 도서관 앞길에서 로터리로 번지는 벤치에 앉아도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영문의 이니셜로 기록된 너가 누구인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갈피갈피 얼굴 없는 그림자가 누런 일기뭉치에서 걸어나와 내 손을 잡는다 지난 시간들이 신열을 앓으며 다리 위에서 출렁인다 너는 누구인가? 너무 싱그러워 때론 현기증도 나던 수수꽃다리 꽃 피어오른 오월의 어느 날, 떨리는 목소리로 불러보아도 몇 마디의 방백만 허공에 울릴 뿐 펄럭이는 너의 옷자락은 무심히 무대 뒤로 사라진다 길을 놓쳐버린 젊음만 무대 위에 쓸쓸하고 짧았던 축제도 막을 내렸다 불이 꺼지고 징소리는 느릿느릿 길을 떠난다 징의 긴 울림 속 너의 그림자를 따라 아직 끝나지 못한 일기를 쓰노라면 내 안의 모든 구석이 될 풍경 하나 설핏 새벽 잠든 머리맡에 뜨거운 한 발쯤 내디뎌 줄 것인가
수수꽃다리에 대한 기억
박수현
수수꽃다리 숨결이 꽃불처럼
도서관 앞길에서 로터리로 번지는 벤치에 앉아도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영문의 이니셜로 기록된 너가 누구인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갈피갈피 얼굴 없는 그림자가
누런 일기뭉치에서 걸어나와 내 손을 잡는다
지난 시간들이 신열을 앓으며 다리 위에서 출렁인다
너는 누구인가?
너무 싱그러워 때론 현기증도 나던
수수꽃다리 꽃 피어오른 오월의 어느 날,
떨리는 목소리로 불러보아도
몇 마디의 방백만 허공에 울릴 뿐
펄럭이는 너의 옷자락은
무심히 무대 뒤로 사라진다
길을 놓쳐버린 젊음만 무대 위에 쓸쓸하고
짧았던 축제도 막을 내렸다
불이 꺼지고 징소리는 느릿느릿 길을 떠난다
징의 긴 울림 속 너의 그림자를 따라
아직 끝나지 못한 일기를 쓰노라면
내 안의 모든 구석이 될 풍경 하나
설핏 새벽 잠든 머리맡에
뜨거운 한 발쯤 내디뎌 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