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를 가지고 이야기 할뿐이다.

까니2024.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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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될 확률이 아주 희박하다고 다른 것도 아니고,


불교교리를 가지고 분명히 알아두라고 말했음에도,

지구가 너무나 신비로운 나머지, 그 불확실한 확률만을 가지고도

 

도박을 걸고 불교를 믿는 사람이 아직도 많을 것이다.

나는 불교교리를 가지고 이야기 할뿐 내 생각을 적는게 아니다.

 

 

그렇게나 고집이 세고 우매한가. 당장에 닭장의 닭을 바라보아ᄅᆞ.

 

 

미국은 그런 판단은 하지 않을뿐더러,

유독 한국에서만 그런 황당하게도 희박한 확률만을 가지고도 뛰어드는 자들이 많다.

종교가 게임인줄 아는 것이다.

 

실제로 악신이 우리나라 사회 전체에 무시못할 영향을 주었는데도 말이다.

 

 

“지구는 신비롭다”만을 주장하며, 또는 “다음 생은 누가 알랴. 이렇게 신비로운데”를 

시전하며 고집을 부리는 경우가 상당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황당할 정도의 희박할 확률을 가지고 

인간이 될 수나 있을 것이며, 또 만약에 동물로 환생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동물이 된다면, 적은 확률이라도 무시못하게 된다. 

동물의 생명은 지금도 하찮게 여겨지고 있다.



내가 개집의 개가 된다면 어떠할 것인가.

 

 

 

명확하게 하면 쉽다. 

인간이 될 확률이 매우 희박하다는 말은 


곧, 인간으로는 환생이 안된다로 바꾸어

극한의 확률을 아예 처음부터 삭제하면 된다.

 

 

 

그 극한의 확률은

아예 없는 것으로 치는 것이다.

 

 

즉 불교의 다음 생은 인간으로의 삶이 아닌 

동물로서의 삶이고 그렇게 동물로 태어난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말이다.

 

 

 

 

“나는 불교를 믿고 동물로 다시 다음생에 태어난다. ” 

이렇게 바꾸면 쉽다는 것이다.

 

 

 

지구가 너무 신비로운 나머지 희박한 확률에도

묵숨을 거는 고집불통인 자들이 있는데,

 

그것은 욕심이 너무 지나쳐서 생긴,

자기의 생각에 대한 확고한 교만일뿐이다.

 

불교교리에 이렇게 버젓이 “인간으로의 환생은 극한의 확률로써 매우 어렵다”라고

떡하니 써있으니까 말이다.

 

 

교만,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란 말이다.

 

 

 

 

 

“나는 다시 태어나 동물로 산다”이런 말이나

불교의 “전생”이란 말이나 별반 다를게 없다는 말이다.

 

 

 

 

 

 

지구가 너무 신비롭고, 인생그까짓꺼 뭐있냐 하며

도박에 묵숨을 걸어서 아직도 “환생”을 선택을 한다면, 구제할 수 없다.

 

단지 불교교리 중 가장 중요한 하나를 확실히 알고 짚고 가라고 

알려드릴뿐이다.

 

 

 

 

그것은 불교의 교리중에 하나를 가지고 이야기 함에도

믿지 못하는 아이러니와

 

될데로 되라는 것만 남는 일일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된다.

 

 

 

 

오류 투성이란 말이다.

미국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선택은

 

그런 선택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고 나는 매우 강조 했었다.

 

 

 

자신의 고집불통으로써

동물이 되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불교교리를 알면서도 그렇다면은

불을 보고도 뛰어드는 불나방과 다름이 없다는 말이다.

 

 

 

 

 

자신의 생각을 고이 접어두고,

 

오직 한가지,

객관적인 시선으로만 이 문제로 똑바로 보았으면 한다.

 

 

 

 

 

 

객관적인 것은 중요하다.

시험문제의 답은 언제나 객관적이다.

 

또 한가지.

공부못하는 사람은 수학 시험문제 풀때도 공식을

주관적으로 즉시 만들어내서 푼다.

 

 

“공식의 창조자”

 

이게 주관적인 것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