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접수를 하고 대기하던 그 날이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충격에 온 몸은 부들부들 떨렸고, 미치도록 두려웠다.떨리는 손을 잡아줄 그 누구도 없었다.내가 너무 혐오스러웠으며 이 장면이 꿈이길, 잔혹하게 깨지 않는 꿈이길 빌고 빌었다.초음파 검사를 한 결과,임신이었다.병원에서는 출산 의사를 물어보았고 나는 의사없음을 밝혔다.그러자 수술 날짜를 잡아주었고, 반드시 보호자를 동반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 후 면회에서 만난 너에게 사실을 말했다.2주 후 토요일. 휴가를 나오라는 말과 함께.하지만 너는 마음대로 나올 수가 없다며 몇 주 더 미뤄야 할 것 같다고 했다.몇 주라는 시간은 나에게 너무 길었고, 병원에서도 그 때는 아이가 조금 더 커져있기 때문에 추가요금이 나온다는 말을 했다.하지만 너는 선택권이 없었다.너는 아직 군인이었고, 외출이나 휴가한번 마음대로 쓰지 못했으니까.하지만 그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었다. 일어나서는 안되지만 만약 또다시 우리에게 그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그때는 피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또다시 그런 이기심을 고집부리지 않겠노라고. 회피하지 않겠다고.하지만 막상 한번더 내게 닥치니, 비겁한 나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더군다나 너에겐 그 상황이 더 막막했겠지.지금의 나는 그때의 너가 그때의 나보다 더 답답했을 것이라 생각한다.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때의 너가 너무 미웠다.그 사건을 내가 혼자 감당하게 한 상황이 모두 너 탓이었고,간신히 알아본 병원에서 잡아 놓은 수술을 너의 그 빌어먹을 신분 때문에 미뤄야 하는 것도 거지같았다.이 두려움을 마음편히 말할 수도 없는 현실이, 대책을 여유롭게 생각해보지도 못하는 현실이 다 원망스러웠다. 면회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너가 가능한 날로 수술 날짜 미루기, 그리고 정적. 수술당일 휴가나오면 연락하기로 약속하고 그날의 면회는 끝이 났다. 그리고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었다.매일 밤 배를 만지며 울면서 미안하다고 속삭였다.20살의 그때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 힘들었다.잠들고 일어나는게 염치없었고, 밥을 먹는게 죄스러웠다.그런데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너와 내가 원인이었으니까.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하루에 한번 10~20분가량 할수 있는 너와의 전화도 나를 갉아먹는 속도를 늦춰주진 못했다.슬픔을 느끼는 내가 더 혐오스러웠으니까. 수술 날이 되었다.점호를 하고 나온다고 수술시간보다 10분정도 늦게 너는 도착했다.동의서에 싸인을 했다.내 이름, 내 서명. 그리고 너의 이름 너의 서명.이번에 너는 떨고 있는 나를 향해 웃으며 말을 해주지 않았다.아니 해주지 못했다.이번에는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숫자를 세어보라 하지 않았다.그냥 언제인지도 모르게 기절을 했고,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회복실이었다.링거를 맞고 있었고, 너는 내 옆에 있었지만 손잡아달라 말을 할 수 없었다. 감히. 몸을 따뜻하게 하고, 차가운 것을 먹지 말라는 당부를 듣고 병원을 나왔다.너에게 나는 빙수를 먹으러 가자했다.너는 놀라면서 안된다고 말렸지만, 나는 빙수가 너무 먹고 싶다고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렸다.30분 정도의 실랑이 끝에 너는 내 고집을 꺾을 수 없었고, 결국 빙수를 먹으러 갔다.아직도 너는 모르는 사실인데, 실은 그 때의 난 너무 추웠다.한기가 느껴지는 몸 상태였지만 빙수를 먹으러 가자고 억지부렸던거다.난 내 몸을, 어떤 방법이라도 해치고 싶었거든. 훗날 살아가면서 나 같은 사례를 보며 사람들이 댓글로 비난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어린 것들이 조심성 없이 그저 가볍게 몸을 굴렸다고.한번은 백번 양보해서 실수라고 쳐도 두 번은 옹호해줄수 없는 인간 말종이라고.무슨 자격으로 뻣뻣하게 고개들고 정상인인척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냐고.자신이 만나는 애인이 그런 소름끼치는 과거를 가졌으면 손절은 물론 소송할거라고.이해한다.또 동의한다.그 말들이 나를 향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모두 나를 향해도 무방하다.나 또한 내가 아직도, 여전히옹호해줄수 없고, 소름끼치도록 싫으니까.
너와 나의 사랑이야기-6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접수를 하고 대기하던 그 날이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충격에 온 몸은 부들부들 떨렸고, 미치도록 두려웠다.
떨리는 손을 잡아줄 그 누구도 없었다.
내가 너무 혐오스러웠으며 이 장면이 꿈이길, 잔혹하게 깨지 않는 꿈이길 빌고 빌었다.
초음파 검사를 한 결과,
임신이었다.
병원에서는 출산 의사를 물어보았고 나는 의사없음을 밝혔다.
그러자 수술 날짜를 잡아주었고, 반드시 보호자를 동반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 후 면회에서 만난 너에게 사실을 말했다.
2주 후 토요일. 휴가를 나오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너는 마음대로 나올 수가 없다며 몇 주 더 미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몇 주라는 시간은 나에게 너무 길었고, 병원에서도 그 때는 아이가 조금 더 커져있기 때문에 추가요금이 나온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너는 선택권이 없었다.
너는 아직 군인이었고, 외출이나 휴가한번 마음대로 쓰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니었다.
일어나서는 안되지만 만약 또다시 우리에게 그런 상황이 반복된다면, 그때는 피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또다시 그런 이기심을 고집부리지 않겠노라고. 회피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막상 한번더 내게 닥치니, 비겁한 나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너에겐 그 상황이 더 막막했겠지.
지금의 나는 그때의 너가 그때의 나보다 더 답답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때의 너가 너무 미웠다.
그 사건을 내가 혼자 감당하게 한 상황이 모두 너 탓이었고,
간신히 알아본 병원에서 잡아 놓은 수술을 너의 그 빌어먹을 신분 때문에 미뤄야 하는 것도 거지같았다.
이 두려움을 마음편히 말할 수도 없는 현실이, 대책을 여유롭게 생각해보지도 못하는 현실이 다 원망스러웠다.
면회장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너가 가능한 날로 수술 날짜 미루기, 그리고 정적.
수술당일 휴가나오면 연락하기로 약속하고 그날의 면회는 끝이 났다.
그리고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매일 밤 배를 만지며 울면서 미안하다고 속삭였다.
20살의 그때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 힘들었다.
잠들고 일어나는게 염치없었고, 밥을 먹는게 죄스러웠다.
그런데 누굴 탓할 수도 없었다. 너와 내가 원인이었으니까.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루에 한번 10~20분가량 할수 있는 너와의 전화도 나를 갉아먹는 속도를 늦춰주진 못했다.
슬픔을 느끼는 내가 더 혐오스러웠으니까.
수술 날이 되었다.
점호를 하고 나온다고 수술시간보다 10분정도 늦게 너는 도착했다.
동의서에 싸인을 했다.
내 이름, 내 서명. 그리고 너의 이름 너의 서명.
이번에 너는 떨고 있는 나를 향해 웃으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아니 해주지 못했다.
이번에는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숫자를 세어보라 하지 않았다.
그냥 언제인지도 모르게 기절을 했고,
의식이 돌아왔을 때는 이미 회복실이었다.
링거를 맞고 있었고, 너는 내 옆에 있었지만 손잡아달라 말을 할 수 없었다. 감히.
몸을 따뜻하게 하고, 차가운 것을 먹지 말라는 당부를 듣고 병원을 나왔다.
너에게 나는 빙수를 먹으러 가자했다.
너는 놀라면서 안된다고 말렸지만, 나는 빙수가 너무 먹고 싶다고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렸다.
30분 정도의 실랑이 끝에 너는 내 고집을 꺾을 수 없었고, 결국 빙수를 먹으러 갔다.
아직도 너는 모르는 사실인데, 실은 그 때의 난 너무 추웠다.
한기가 느껴지는 몸 상태였지만 빙수를 먹으러 가자고 억지부렸던거다.
난 내 몸을, 어떤 방법이라도 해치고 싶었거든.
훗날 살아가면서 나 같은 사례를 보며 사람들이 댓글로 비난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어린 것들이 조심성 없이 그저 가볍게 몸을 굴렸다고.
한번은 백번 양보해서 실수라고 쳐도 두 번은 옹호해줄수 없는 인간 말종이라고.
무슨 자격으로 뻣뻣하게 고개들고 정상인인척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아가냐고.
자신이 만나는 애인이 그런 소름끼치는 과거를 가졌으면 손절은 물론 소송할거라고.
이해한다.
또 동의한다.
그 말들이 나를 향한 목적은 아니었지만 모두 나를 향해도 무방하다.
나 또한 내가 아직도, 여전히
옹호해줄수 없고, 소름끼치도록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