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종이에 인쇄하지 말고 좀 그럴듯한 디자인 짜서 계단 유리벽면에 프린팅 해서 붙였으면 좀 더 고급스럽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런데 다들 이런식으로 만든 거 보면 홍대 카페 스탠다드인가 싶기도 하고.
포포민즈낫띵. 44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는데 그런 것 치고는 곳곳에 44라는 숫자가 눈에 띄어서 무슨 뜻일까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예쁘고 맛있는 디저트 메뉴들.
#25, #30, #63 이런 식으로 정식 명칭은 번호로만 붙어 있고 그 아래쪽에 "햇사과와 향신료", "딸기와 바질", "밤, 말차" 이런 식으로 핵심 재료들을 설명해놨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건 #25 "리치,장미,산딸기".
홍차는 랩상수숑이 있길래 함께 주문해서 먹어봅니다.
사브레 쿠키 위에 산딸기 쿨리와 리치 크림, 장미 시럽에 절인 리치 등으로 만든 디저트입니다.
일단 구성 요소 각각의 완성도도 뛰어나고, 이걸 한데 잘 엮어서 쌓아올린 센스도 좋습니다.
단순히 맛을 층층이 쌓아놓은 게 아니라 맛의 상호작용을 잘 생각해서 설계했다는 게 느껴집니다.
퀄리티로 봤을 때 연남동 디저트 중에서는 퀸넬브릴과 함께 탑급 아닐까 싶네요.
휴일에 아이들 데리고 방문한 카페, 클로이 인 패리스입니다.
패리스가 원어민 발음 맞기는 한데 이렇게 들으니 좀 낯설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가게에 들어서면 이렇게 디스플레이 테이블이 잘 꾸며져 있습니다.
화려함만 놓고 본다면 앤티크 카페나 마가렛처럼 베이커리 제품들을 꽉꽉 채워놓고 가져가는 식이 더 풍성해보이긴 합니다만,
위생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렇게 샘플만 올려놓는 편이 훨씬 더 좋습니다.
다만 아이스크림이나 무스처럼 시간이 지나면 모양이 흐트러지는 디저트들은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 모형을 만들어야 할텐데
커스텀 음식 모형은 제작비가 그야말로 후덜덜합니다. 오죽하면 저도 도서관에서 사용할 떡 모형 가격을 알아보다가 그냥 제가 클레이로 직접 만들었을 정도니까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양케이크(9700원)와 잠자는 초코곰이(9700원), 카리브 바다(7500원), 퍼플 레몬에이드(7000원)을 주문합니다.
양케이크는 희한하게도 옥수수 크림이 들어갔습니다. 잠자는 초코곰이는 당연히 초코무스.
초콜릿이 싫은 사람을 위한 '잠자는 치즈곰이'도 있긴 합니다.
뭐...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게 맛있지는 않습니다 -_-;
예쁘고 귀여운 맛에 애들 데리고 가서 먹기엔 좋은데, 맛만 놓고 보자면 그냥저냥 평타 수준의 디저트.
그런데 연남동이 워낙 카페 격전지다보니 아무래도 동네 평균에는 못미치는 맛입니다.
특히 양케이크에 옥수수 크림은 왜 넣었을까 싶을 정도로 잘 안어울린다는 느낌.
반면에 음료는 괜찮습니다. 특히 배 스무디인 카리브 바다는 물고기 꼬리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플라스틱 장식품이었으면 분노했을텐데 말이죠.
애들이 케이크와 달다구리 음료를 먹는 동안 얼그레이 한 잔 시켜서 '으~른의 맛'을 즐깁니다.
예쁘장한 디저트들이 많아서 인스타 사진 찍거나 아이들이 재미있게 먹을 수는 있는데 맛 자체는 너무 평범해서 좀 실망.
하다못해 재료를 좀 많이 고급 재료로 쓰면 좀 낫지 않겠나 싶은데... 그러면 가격이 올라가겠죠.
안그래도 연남동쪽 가게세가 미친듯이 오른다던데, 참 여러모로 쉽지 않네요.
요즘 연남동 카페의 분위기는 '아무래도 오래 앉아있지는 못할 느낌'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도 많아서 바글거리고, 어떤 경우에는 줄서서 자리 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도 감수해야 하고, 심한 경우에는 '이용은 X시간 이내로 해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있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카페가 주는 여유로움보다는 얼른 사진 찍고 다음 코스로 넘어가게 만드는 "예쁜 음료와 디저트 파는 가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센트럴 사이트는 남의 눈치 안보고 시간을 죽일 수 있는, 홍대 주변에서 몇 남지 않은 카페입니다.
길쭉한 삼각형 모양의 건물에, 한쪽 꼭짓점에는 사자 모양 분수가 있는게 인상적이지요.
그리고 이곳은 커피에 진심입니다.
워낙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커피 퀄리티도 많이 높아졌고, 가게마다 로스터리 한 대씩 놓고 굴리는 게 크게 특별할 것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껏 고른 원두와, 전자저울 위에 정확한 양으로 올라가는 커피와 물은 '최소한 기본 이상은 하겠구나'라는 믿음을 줍니다.
그 뒤로는 취향의 문제지요.
오늘 주문한 원두는 파나마 게이샤. 게이샤는 에스메랄다만 먹어봤는데 핀카 레리다는 어떤 맛일까 싶어 주문했습니다.
일본의 게이샤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아프리카의 지명에서 따온 게이샤 커피.
원두 가격이 워낙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카페에서는 사실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조금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비싼 원두를 들여놓겠어!"라며 배짱 두둑한 카페에서나 구경이 가능하거든요.
에스메랄다가 애플망고 느낌이라면 핀카 레리다는 좀 더 다양한 꽃과 과일이 어우러진듯한 느낌.
여기에 카페 시그니처 트라이플을 곁들여 먹으니 맛있습니다.
트라이플은 그 악명높은 영국의 음식입니다만, 홍차에 진심인 영국사람들답게 티푸드는 맛있는 게 많습니다.
스펀지 케이크와 과일잼, 크림을 층층이 얹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지요.
센트럴 사이트의 트라이플은 맛있기는 한데... 커피 퀄리티가 워낙 좋다보니 아무래도 그 후광에 가리는 느낌은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맛있는 건 책 한 권 꺼내들고 읽으면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이지만요.
"그 조그맣고 사랑스러운 페이스트리를 앞에 놓고 찬장 바닥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와인과 함께 내 방에 틀어박혀
소설책 몇 장을 읽으며 조금씩 먹고 마실 때의 그 순간은 얼마나 즐거운지.
사람을 만날 일이 없을 때 뭔가를 먹으며 책을 읽는 것은 그야말로 사교활동의 대체수단이라 할 만 하다.
그리고 나는 내 책이 나와 함께 저녁 식사를 즐기는 손님인 것 마냥 음식 한 조각과 책 한 페이지를 번갈아 가며 음미했다."
- 장 자크 루소, 고백록(Confessions) 중에서
연남동 카페 누크녹.
그린란드 지명에서 따온 카페 이름이라던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린란드처럼 조용하고 편안한 컨셉인듯 합니다.
이 카페를 찾게 된 이유, '당근'.
원뿔형 페이스트리 안에 생크림이나 초콜릿을 채워넣은 건 많이 봤지만
이렇게 파슬리 꽂고 쿠키 크럼블에 세워서 '당근'이라는 이름을 붙이니 또 색다른 맛이 있네요.
안에 채워넣은 크림도 그냥 아무 크림이나 막 채워넣은 게 아니라 바질 크림치즈라서 꽤 맛있습니다.
디저트라기보다 간단한 식사 대용으로 먹어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무게감이 있습니다.
요즘 자주 먹는 토마토 바질 에이드를 여기에 곁들여 먹으니 뒷맛이 깔끔한게 좋네요.
아이디어 하나로 훌륭한 시그니처 메뉴를 만들었다 싶은 카페입니다.
연남동 골목의 2층에 조그맣게 자리잡은 카페 밀노.
안그래도 존재감이 그닥 크지 않은 카페인데 아래층의 성인용품 편의점의 포스가 왠지 강렬해서 더 묻히는 느낌입니다.
내부는 과하지 않게 깔끔한 분위기.
인테리어에 힘을 꽉 준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유로움을 강조하는 카페들처럼 확 편안한것도 아닌 그 중간 어드메쯤.
그렇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자주 찾을듯한 느낌입니다.
사실 처음 방문했을때는 이 카페를 목표로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랑 라멘집 오픈하는 걸 기다리는데 너무 추워서 주변에 좀 일찍 문을 여는 카페를 검색해서 들어간 케이스였죠.
그래서 음료가 죄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핫초코, 레몬차입니다.
잠시 후에 라멘을 먹을거라 이 가게 주력메뉴인 티라미수는 주문하지 않았는데,
레몬차에 레몬 한 개 분량 통으로 들어간 절인 레몬과 그 위에 동동 뜬 말린 레몬 조각을 보며 '나중에 한 번 와서 티라미수를 먹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날 와서 먹은 티라미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일단 단점부터 말하자면 메뉴에 에스프레소가 없습니다. 티라미수와 에스프레소 함께 먹는 걸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아쉬운 점.
두번째는 팬지꽃. 이게 식용꽃이긴 한데 그냥 먹어도 안죽는다는 거지 티라미수에 어울리는 맛은 아닙니다. 사진찍기 좋으라고 올리는 것 같긴한데 제 신조가 "먹지도 못할 걸 접시 위에 올리지 마라!"인지라 차라리 빼버렸더라면 이탈리아 오리지널 느낌이 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것만 제외하면 굉장히 기본에 충실하게 잘 만든 티라미수입니다. 소싯적에 제대로 된 티라미수 만들어 보겠다고 도깨비시장 다 뒤져가며 마스카포네 치즈를 구했던 입장에서는 그 옛날 발품 팔아가며 만들었던 추억이 떠오르는 맛.
과일 절임도 살짝 느끼할 수 있는 크림치즈 맛에 새콤달콤 포인트를 주며 잘 어울립니다.
요즘엔 프랜차이즈 카페나 동네 빵집에도 널린 게 티라미수인지라 굳이 여기까지 와서 사먹을 필요성은 떨어집니다만, 그래도 항상 먹던 것의 진짜 맛있는 버전을 먹었을 때의 만족감은 여전합니다.
"1990년대 초 처음 나타난 티라미수는 크림치즈로 속을 채운 직사각형 모양의 초콜릿입니다. 요즘 모습하고 많이 달랐죠. (중략) 디저트 메뉴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이름, 티라미수. 주문할 때만 해도 무엇이 나올지 예상도 못했습니다. 초콜릿 가루를 얹은 아이스크림 정도를 생각했죠. 조금 뒤 테이블 위에는 넓적한 유리잔에 반쯤 녹은 듯한 하얀 덩어리가 놓였습니다. 군데군데 갈색 스펀지케이크인지 과자인지 모를 알갱이가 박혀 있고, 맨 위에는 적갈색 가루가 듬뿍 뿌려져 있었죠. 처음으로 '진짜' 티라미수를 본 순간이었습니다." - 김성환 지음. "이상한 부엌의 마법사" 중에서
내돈내산 홍대카페 모음 #2
연남동 디저트 카페, 포포민즈낫띵.
2층인데다가 간판이 커다랗게 있는 것도 아니라 그냥 지나치기 쉬운 카페.
그나마 계단쪽에 걸려있는 디저트 사진들이 길안내를 해줍니다.
이왕이면 종이에 인쇄하지 말고 좀 그럴듯한 디자인 짜서 계단 유리벽면에 프린팅 해서 붙였으면 좀 더 고급스럽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런데 다들 이런식으로 만든 거 보면 홍대 카페 스탠다드인가 싶기도 하고.
포포민즈낫띵. 44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는데 그런 것 치고는 곳곳에 44라는 숫자가 눈에 띄어서 무슨 뜻일까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예쁘고 맛있는 디저트 메뉴들.
#25, #30, #63 이런 식으로 정식 명칭은 번호로만 붙어 있고 그 아래쪽에 "햇사과와 향신료", "딸기와 바질", "밤, 말차" 이런 식으로 핵심 재료들을 설명해놨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건 #25 "리치,장미,산딸기".
홍차는 랩상수숑이 있길래 함께 주문해서 먹어봅니다.
사브레 쿠키 위에 산딸기 쿨리와 리치 크림, 장미 시럽에 절인 리치 등으로 만든 디저트입니다.
일단 구성 요소 각각의 완성도도 뛰어나고, 이걸 한데 잘 엮어서 쌓아올린 센스도 좋습니다.
단순히 맛을 층층이 쌓아놓은 게 아니라 맛의 상호작용을 잘 생각해서 설계했다는 게 느껴집니다.
퀄리티로 봤을 때 연남동 디저트 중에서는 퀸넬브릴과 함께 탑급 아닐까 싶네요.
휴일에 아이들 데리고 방문한 카페, 클로이 인 패리스입니다.
패리스가 원어민 발음 맞기는 한데 이렇게 들으니 좀 낯설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가게에 들어서면 이렇게 디스플레이 테이블이 잘 꾸며져 있습니다.
화려함만 놓고 본다면 앤티크 카페나 마가렛처럼 베이커리 제품들을 꽉꽉 채워놓고 가져가는 식이 더 풍성해보이긴 합니다만,
위생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렇게 샘플만 올려놓는 편이 훨씬 더 좋습니다.
다만 아이스크림이나 무스처럼 시간이 지나면 모양이 흐트러지는 디저트들은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 모형을 만들어야 할텐데
커스텀 음식 모형은 제작비가 그야말로 후덜덜합니다. 오죽하면 저도 도서관에서 사용할 떡 모형 가격을 알아보다가 그냥 제가 클레이로 직접 만들었을 정도니까요.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양케이크(9700원)와 잠자는 초코곰이(9700원), 카리브 바다(7500원), 퍼플 레몬에이드(7000원)을 주문합니다.
양케이크는 희한하게도 옥수수 크림이 들어갔습니다. 잠자는 초코곰이는 당연히 초코무스.
초콜릿이 싫은 사람을 위한 '잠자는 치즈곰이'도 있긴 합니다.
뭐...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게 맛있지는 않습니다 -_-;
예쁘고 귀여운 맛에 애들 데리고 가서 먹기엔 좋은데, 맛만 놓고 보자면 그냥저냥 평타 수준의 디저트.
그런데 연남동이 워낙 카페 격전지다보니 아무래도 동네 평균에는 못미치는 맛입니다.
특히 양케이크에 옥수수 크림은 왜 넣었을까 싶을 정도로 잘 안어울린다는 느낌.
반면에 음료는 괜찮습니다. 특히 배 스무디인 카리브 바다는 물고기 꼬리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합니다. 플라스틱 장식품이었으면 분노했을텐데 말이죠.
애들이 케이크와 달다구리 음료를 먹는 동안 얼그레이 한 잔 시켜서 '으~른의 맛'을 즐깁니다.
예쁘장한 디저트들이 많아서 인스타 사진 찍거나 아이들이 재미있게 먹을 수는 있는데 맛 자체는 너무 평범해서 좀 실망.
하다못해 재료를 좀 많이 고급 재료로 쓰면 좀 낫지 않겠나 싶은데... 그러면 가격이 올라가겠죠.
안그래도 연남동쪽 가게세가 미친듯이 오른다던데, 참 여러모로 쉽지 않네요.
요즘 연남동 카페의 분위기는 '아무래도 오래 앉아있지는 못할 느낌'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도 많아서 바글거리고, 어떤 경우에는 줄서서 자리 나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도 감수해야 하고, 심한 경우에는 '이용은 X시간 이내로 해주세요'라는 안내문이 붙어있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카페가 주는 여유로움보다는 얼른 사진 찍고 다음 코스로 넘어가게 만드는 "예쁜 음료와 디저트 파는 가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센트럴 사이트는 남의 눈치 안보고 시간을 죽일 수 있는, 홍대 주변에서 몇 남지 않은 카페입니다.
길쭉한 삼각형 모양의 건물에, 한쪽 꼭짓점에는 사자 모양 분수가 있는게 인상적이지요.
그리고 이곳은 커피에 진심입니다.
워낙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커피 퀄리티도 많이 높아졌고, 가게마다 로스터리 한 대씩 놓고 굴리는 게 크게 특별할 것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성껏 고른 원두와, 전자저울 위에 정확한 양으로 올라가는 커피와 물은 '최소한 기본 이상은 하겠구나'라는 믿음을 줍니다.
그 뒤로는 취향의 문제지요.
오늘 주문한 원두는 파나마 게이샤. 게이샤는 에스메랄다만 먹어봤는데 핀카 레리다는 어떤 맛일까 싶어 주문했습니다.
일본의 게이샤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아프리카의 지명에서 따온 게이샤 커피.
원두 가격이 워낙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카페에서는 사실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조금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비싼 원두를 들여놓겠어!"라며 배짱 두둑한 카페에서나 구경이 가능하거든요.
에스메랄다가 애플망고 느낌이라면 핀카 레리다는 좀 더 다양한 꽃과 과일이 어우러진듯한 느낌.
여기에 카페 시그니처 트라이플을 곁들여 먹으니 맛있습니다.
트라이플은 그 악명높은 영국의 음식입니다만, 홍차에 진심인 영국사람들답게 티푸드는 맛있는 게 많습니다.
스펀지 케이크와 과일잼, 크림을 층층이 얹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지요.
센트럴 사이트의 트라이플은 맛있기는 한데... 커피 퀄리티가 워낙 좋다보니 아무래도 그 후광에 가리는 느낌은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맛있는 건 책 한 권 꺼내들고 읽으면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여유로움이지만요.
"그 조그맣고 사랑스러운 페이스트리를 앞에 놓고 찬장 바닥에서 조심스럽게 꺼낸 와인과 함께 내 방에 틀어박혀
소설책 몇 장을 읽으며 조금씩 먹고 마실 때의 그 순간은 얼마나 즐거운지.
사람을 만날 일이 없을 때 뭔가를 먹으며 책을 읽는 것은 그야말로 사교활동의 대체수단이라 할 만 하다.
그리고 나는 내 책이 나와 함께 저녁 식사를 즐기는 손님인 것 마냥 음식 한 조각과 책 한 페이지를 번갈아 가며 음미했다."
- 장 자크 루소, 고백록(Confessions) 중에서
연남동 카페 누크녹.
그린란드 지명에서 따온 카페 이름이라던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그린란드처럼 조용하고 편안한 컨셉인듯 합니다.
이 카페를 찾게 된 이유, '당근'.
원뿔형 페이스트리 안에 생크림이나 초콜릿을 채워넣은 건 많이 봤지만
이렇게 파슬리 꽂고 쿠키 크럼블에 세워서 '당근'이라는 이름을 붙이니 또 색다른 맛이 있네요.
안에 채워넣은 크림도 그냥 아무 크림이나 막 채워넣은 게 아니라 바질 크림치즈라서 꽤 맛있습니다.
디저트라기보다 간단한 식사 대용으로 먹어도 좋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무게감이 있습니다.
요즘 자주 먹는 토마토 바질 에이드를 여기에 곁들여 먹으니 뒷맛이 깔끔한게 좋네요.
아이디어 하나로 훌륭한 시그니처 메뉴를 만들었다 싶은 카페입니다.
연남동 골목의 2층에 조그맣게 자리잡은 카페 밀노.
안그래도 존재감이 그닥 크지 않은 카페인데 아래층의 성인용품 편의점의 포스가 왠지 강렬해서 더 묻히는 느낌입니다.
내부는 과하지 않게 깔끔한 분위기.
인테리어에 힘을 꽉 준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유로움을 강조하는 카페들처럼 확 편안한것도 아닌 그 중간 어드메쯤.
그렇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코드가 맞는 사람들이 자주 찾을듯한 느낌입니다.
사실 처음 방문했을때는 이 카페를 목표로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랑 라멘집 오픈하는 걸 기다리는데 너무 추워서 주변에 좀 일찍 문을 여는 카페를 검색해서 들어간 케이스였죠.
그래서 음료가 죄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핫초코, 레몬차입니다.
잠시 후에 라멘을 먹을거라 이 가게 주력메뉴인 티라미수는 주문하지 않았는데,
레몬차에 레몬 한 개 분량 통으로 들어간 절인 레몬과 그 위에 동동 뜬 말린 레몬 조각을 보며 '나중에 한 번 와서 티라미수를 먹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날 와서 먹은 티라미수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일단 단점부터 말하자면 메뉴에 에스프레소가 없습니다. 티라미수와 에스프레소 함께 먹는 걸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아쉬운 점.
두번째는 팬지꽃. 이게 식용꽃이긴 한데 그냥 먹어도 안죽는다는 거지 티라미수에 어울리는 맛은 아닙니다. 사진찍기 좋으라고 올리는 것 같긴한데 제 신조가 "먹지도 못할 걸 접시 위에 올리지 마라!"인지라 차라리 빼버렸더라면 이탈리아 오리지널 느낌이 나지 않았을까 싶은데...
뭐, 주변 카페들이 죄다 인스타 사진용 예쁘장한 메뉴를 시그니처로 내밀고 있으니 이해가 갑니다.
그것만 제외하면 굉장히 기본에 충실하게 잘 만든 티라미수입니다. 소싯적에 제대로 된 티라미수 만들어 보겠다고 도깨비시장 다 뒤져가며 마스카포네 치즈를 구했던 입장에서는 그 옛날 발품 팔아가며 만들었던 추억이 떠오르는 맛.
과일 절임도 살짝 느끼할 수 있는 크림치즈 맛에 새콤달콤 포인트를 주며 잘 어울립니다.
요즘엔 프랜차이즈 카페나 동네 빵집에도 널린 게 티라미수인지라 굳이 여기까지 와서 사먹을 필요성은 떨어집니다만, 그래도 항상 먹던 것의 진짜 맛있는 버전을 먹었을 때의 만족감은 여전합니다.
"1990년대 초 처음 나타난 티라미수는 크림치즈로 속을 채운 직사각형 모양의 초콜릿입니다. 요즘 모습하고 많이 달랐죠. (중략) 디저트 메뉴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이름, 티라미수. 주문할 때만 해도 무엇이 나올지 예상도 못했습니다. 초콜릿 가루를 얹은 아이스크림 정도를 생각했죠. 조금 뒤 테이블 위에는 넓적한 유리잔에 반쯤 녹은 듯한 하얀 덩어리가 놓였습니다. 군데군데 갈색 스펀지케이크인지 과자인지 모를 알갱이가 박혀 있고, 맨 위에는 적갈색 가루가 듬뿍 뿌려져 있었죠. 처음으로 '진짜' 티라미수를 본 순간이었습니다." - 김성환 지음. "이상한 부엌의 마법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