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액션의 시작 "김두영"

연예부기자단2024.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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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영 | 金斗永 | Kim Doo-Young


출생 1974년 8월 20일 (49세)

20대부터 광고 감독을 하였다

국적 대한민국

학력 명지대학교

1996년 영화 카리스마, 1985년 광고 감독으로 데뷔 했다

전설의 빨리 찍기 남기남 감독 밑에서 연출부로 충무로에 입성했다 남기남 감독 당시 어린이들에게 최고의 우상이였던 개그맨 심형래 영구와 땡칠이" 관객 250만명 동원 당시에는 극장이 아닌 시민회관등에서 개봉하여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이다.이후 심형래 임하룡주연 "작년에왔던갈설이" 품바타령 그후 개그맨으로 최고의 인기를 얻고 사랑받은 김병조 주연의 "난이렇게 산다우" 등 여러편의 작품들을 조감독으로 활동을 했다 여려서 부터 운동을 하여 현장에서 스턴트맨이 없을 때는 스턴트 역활까지 하게된다 당시에는 배우들이 펑크를내면 그 빈자리는 스텝들이 대신 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을 대변해준 듯 하다 2층 높이 6미터 높이에서 액션을 하다 떨어지는 역활까지 소품까지 챙기는 시대 였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는 충무로에서 감독으로 일찍 데뷔를 하고 광고 촬영을 을 병행하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어 이상아 민규 추민 주연의 성인신고식 제작 감독했다 당시만해도 신인감독이 만든 영화들이 좋서울에 대형개봉관에서 상영하기는 힘든 시절이였지만 운좋게도 서울극장에서 당당히 상영을 했다 당시 사랑과 영혼이란 전세계 최고의 흥행작을 만났지만 그런대로 선전을 하였다 당시 비디오 가게 에서 인기가 있어서 본전은 건졌다
그후 광고활동을 하다 틈만나면 제작 감독을 한 영화가 이동준 한국일 이승신 이하얀등 개성있는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한국판 액션 르와르의 새로운 변신을 주기도 했던 작품이 바로 커리스마다. 카리스마에 출연한 이동준은 태권도 세계챔피언 3연패를 한 세계적인 선수생활을 마치고 영화배우로 데뷔 하고 이어 매매꾼등 몇작품을 하다 김두영 감독을 만나 화려한 액션 발차기를 선보이게 된다. 하지만 종합무술 52단 세계공중7단차기 최초 보유자인 한국일의 발차기에 관객들은 매료를 느낀다. 김두영 감독은 버스장면 공중차기등의 한국일 배우의 액션을 리얼하게 연출 하며 새로운 한국 영화 액션 르와르의 새로운 도전장을 내민 파워플하고 스팩타클한 액션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이영화 역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대한극장에서 상영을 하고 비디오 대여점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엇다 와이어 즉 피아노줄 컴퓨터 그레픽은 일절쓰지 않고 리얼리티로 촬영을 했다. 당시화재를 모은것은 실질적으로 건달들을 상대조직으로 출연시켜 화재를 모우기도 했다.
80년대 90년대 초까지는 한국영화가 소재가 재한되어 있고 에로영화나 액션들에 치우치기도 했던 시기이다 그래서 소재의 빈약함과 연출의 한계점들이 들어나는 시기 이다.
80년 90년초까지만 해도 현장에서 연출을 어께 넘어로 배우던 시절이여서 충무로에서 연출부로 조감독으로 10년 혹은 15년 정도되야 감독데뷔를 했던 감독들도 허다하다 당시에는 그만큼 감독 데뷔 하기가 힘든 시절이였다
1974년 8월 20일생으로 명지대학교를 졸업했다.
어린나이부터 꾸준하게 광고와 영화를 변형하며 달려온 김두영 감독의 새로운 작품들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80~90년대 구시대적인 연출 이나 촬영 방식에서 몇 몇 감독들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감독들은 탈 장르를 벗어나지 못하고 고만 고만한 영화들이 제작 연출되곤 했었다.
당시에는 극장에서 흥행이 안되면 비디오에서 본전을 건져야 하기에 야한 에로장면을 작품과 상관없이 넣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게 한국영화가 만들어지고 사라지고 반복적으로 시간은 흘러갔다. 영화에서 수백명의 감독들 중에 그래도 어린 감독이 제작 감독을 5편 이상 연출 해온것에 충무로 선후배 동료 영화감독들도 감탄해 했다.
200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움이 시작되고......
그의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김두영 감독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성인신고식, 카리스마, 죽을래 살래, 클레멘타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