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썰) 살고싶지 않은 사람을 살려야 되는건가?

ㅇㅇ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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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판 10년차에 어찌저찌 약대를 나와서 작은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여자사람입니다. 
학창시절 반에서도 10등 정도로 엄청 공부를 잘 했던건 아닌거 같은데 수능에 대박 터지고 과분한 대학에 들어가서 훨씬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따라가려고 가랭이 찢어져라 공부하다 보니 어쩌다보니 실력보다 좀 좋게 평가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7년 정도 근무약사로 여기저기 경력 쌓다가 자기 약국을 작게 차린지 2년 정도 됩니다. 
혼잣말에 가까운 푸념이니까 음슴체로 하겠음.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어린 분들 중 한 명이라도 술을 지나치게 마시는 습관을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조금 있음... 
여기 약국은 오래된 동네와 시장통 근처이고 뒷쪽 골목에 여관방도 몇 개 있음. 그러다보니 기초수급자, 여관 아가씨들과 여관 주인들 같은 손님들이 많이 오심. 
물론 그 중에서도 열심히 살려는 사람도 있고 공공근로만 하더라도 남한테 피해 안 주려는 노인분 들도 많음. 
근데 '굳이 이 사람을 도와야 되나..?' 싶은 사람들도 많음그런 분이 한 번 오면 기운이 빠지고 약간 현타가 옴. 
특히 알콜중독에 걸린 사람들이 꽤 오는 편인데 주로 여관 아가씨들이나 나이 많은 할아버지 들임.
이분들 특징이, 실제 나이보다 20살은 더 늙어보임. 늙어 보인다는게 그냥 할머니처럼 보인다는게 아니라 실제로 본 사람만 알 수 있음. 사람이 무슨 고목 분재처럼 비비꼬이고 쥐어짜서 비틀린 것 처럼 늙어보임.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줌마가 손발 떨린다면서 매일 단골로 왔었는데 어느날 처방전을 받아보니 30대였음. 그 세월에 풍화된 것 같이 비틀어진 얼굴과 초점이 맞지 않아서 얼굴과는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는 눈동자는 일반 병자와도 다름.... 병자는 그냥 마르고 지치고 삭은 얼굴임.정신병동에서 일해봤거나 친인척 중 우울증 환자, 중독자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상상하기 힘듬. ... 정말 조금이라도 미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폭음은 절대 하지 말기를 바람.너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사람 외모가 맛이 가버림. 

그리고 얼굴색깔이 황달이 와서 누렇게 떠 있음. 탁한 귤 색깔.피부도 안 좋음. 그냥 여드름이 낫다 이 정도가 아님. 30대인데 할머니처럼 피부에 탄력이 없어서 축 늘어져 있고 (어느 정도냐면 늘어진 살이 눈 반쯤 덮은 사람도 봤음) 온 얼굴에 검버선이 나 있고 크레이터처럼 푹푹 패여있음. 알콜중독이 많이 진행된 사람의 경우, 귤 색깔 에일리언 같은 피부라고 생각하면 됨. 

가장 큰 특징은 손이나 몸이 벌벌 떨린다는 거임. 손이 벌벌 떨리는게 전혀 제어가 안 되서 물건을 집었다가 떨어뜨리고, 지갑에서 돈을 꺼내려다가 동전을 우르르 쏟기를 반복함. 혀도 벌벌 떨려서 "브..브브브...베베베ㅔ...마...므므므므ㅏ....마그스...마마마그스...세세세세세 브브...브브브병..." 이런 식으로 말함. 그런데 술을 마시면 몸이 떨리는게 멈춘다고 함. 

처음에는 대체 무슨 병인가 신경외과로 보내야 되나 싶었는데 여기서 몇 년 일하다 보니 알겠음. 알콜 중독자는 그냥 약국에 걸어 들어오는 관상만 봐도 알콜중독인지 보임. 


내가 아무리 병원에 가보셔라, 약국 약으로 치료가 안된다 해도 절대 병원에 안 감.마그네슘, 프로폴리스, 아연 등등 온갖 영양제를 사 가도 간 영양제는 또 안 사감. 왜냐하면 본인들도 뭐가 문제인지 알고 있고, 그걸 철저히 외면하는 거 같음.병원도 안 가는게 병원에 가면 술을 끊으라고 할 껀데 그 말이 듣기 싫은 거임. 

약국에 와서 소용 없는 건강상담(면역이 떨어져서 손이 떨리고 피곤한 거 같다 주고 이런 얘기 함)+자기푸념+왕년에 잘나갔던 얘기 이런 말만 반복함.약국에서도 약사가 '알콜 중독이시니 치료 받아라' 라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면 '아...' 이러고는 슬쩍 나가서 다시는 그 약국에 안 감. 그 사람들은 그냥 온 몸에 병이 걸리고 추한 몰골로 벌벌 떨면서 술 먹다 죽는게 소원인 걸까?

매일매일 마그네슘을 현금으로 2만원씩 사 가는 여성분이 있음. 알콜성 수전증, 황달 등 대표적인 증상 다 와 있고딱 봐도 현실도피 중. 

솔직히 고민을 많이 했음. 이 분한테 마그네슘은 소용 없고 중독 치료를 받으라고 말씀드려야 되나?그런데 대체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또 안 들을껀데.그냥 두면 나야 좋지.. 죽기 직전까지 매일 2만원 씩 줄꺼 아냐? 연금복권이 따로 없지. 
점점 증상이 심해져서 다리까지 떨리고 걷지 못하게 된 어느날나는 더 참지 못하고 "마그네슘은 소용이 없으실 꺼다. 중독 관련된 치료와 약을 드려야 나을꺼다" 라고 말씀 드렸고,뻔하지 뭐. 그 분은 그날 이후로 약국에 오지 않았음. 
나중에 점심 먹으러 나가려다 보니까 다른 약국에 들어가고 있었음. 거기서 또 마그네슘이나 프로폴리스 같은거나 사고 현실도피용 푸념과 수다나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늘어놓고 있겠지. 대체 난 뭘 위해 조언을 해 준 걸까?

또 한번은 자꾸 구내염이 난다고 석달 내내 구내염 약을 사 가신 아줌마가 계셨음. 나는 그게 너무 이상해서 병원에 가보시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씹힘. 그러다 그 아줌마가 남편과 같이 약국에 방문하셨길래 내원해 보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남편이 밀어붙여서 피부과에 가 본 모양임. 
역시나 피부과에서는 뭔가 좀 이상하니까 상급병원에 가보라고 진료의뢰서를 써 줬다고 함. 

근데...역시나...이 아줌마는 "무서워~~" 라는 이유로 상급병원에 안 가고 버티고 계심. 
나는 정말 간절하게 설명을 다 드렸음. 구내염이 안 낫는건 설암일 가능성이 있다. 근데 설암은 치료 시기가 정말, 정말정말정말정말 중요하다..!!! 초기에 발견하면 외과 수술만으로 나을 수 있는데 시기를 놓치면 예후가 안 좋다..! 제발 빨리 가셔야 된다!!! 
근데 "진짜 암이면 오또케ㅠㅠ무서웡ㅠㅠㅠㅠ" 이러면서 아직도 상급병원에 가는걸 거부하는 중임.노인도 아님, 수급자도 아님, 50대이시고 심지어 아직 학생인 자녀도 있음. 남편도 애기 생각해서 빨리 치료 받으라고 종용하는데, 의사한테 가서 진료받는거 무.섭.다 라는 이유로 거부하는 중임. 혈압...
그러면서 마치 아무것도 못 들은것 처럼 약국에 와서 "구내염이 왜 낫지 않는지 모르겠어용ㅠㅠㅠ 오라*디 주세용" 하면서 매주 약을 사감.병원 얘기는 필사적으로 모른척 함.
대체 왜.......?
난 이제 이 아줌마 얼굴 보는 것이 괴로움.혀가 너무 아파서 넣지도 못하고 아인슈타인 증명사진처럼 혀를 내밀고 다님. 심각한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는데 환자는 그걸 외면하고 있음. 나도 이제 현실을 외면하고 오라*디나 팔고 있음. 

나도 물론 사람마다 정신력의 차이가 있고, 큰 일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는 걸 알고 있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병원 진료 받는 것이 죽는 것보다 두려운가? 심지어 아직 어린 아이를 두고 죽는 것보다 더?
무슨 방학숙제 미루고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초딩도 아니고 뚜벅뚜벅 다가오는 죽음을 필사적으로 외면만 하면 어떻게든 될 꺼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리고 버티고 버티다가 더이상 어떻게 할 수도 없을 막판에 구급차 타고 실려가서 자기 왜 안 살려주냐고 의사 멱살 잡고 그러겠지? 
 보건업과 의료인이란 뭘까.
나는 복잡한 정치적 사정은 잘 모름.
그런데 어쩌면 필수과 의사들은 나보다 이런 일에 더 자주 노출되었을 것이고 그들의 사명감과 직업의식이 나보다 더 빨리 마모되어서 '다 필요없고 돈이나 벌자' 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음.  약국은 생명에 지장이 있는 환자가 그렇게 자주 오는 공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솔직히 이런 일은 나에게도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고 그럴 때 마다 '굳이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인데 내가 조언하고 애쓰는게 의미가 있나?' '그냥 입다물고 돈이나 벌까?' 라는 생각이 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