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의 은총 평소에는 굉장히 순종적이고, 예의 차리며,티없는 사람인 것 같아도, 그런 강직한 사람이 확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곧, 시련이 닥쳤을때의 모습말이다. 시련이 닥치면, 강직하고 신심이 깊었던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본래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모든 사람들이 아는 상식 중에 하나의 지식이다. 그래서 인지, 시련의 은총이란 것도 있다. 욥은 시련에 시련을 당하여도, 온갖 풍비박산이 났어도,하느님은 버리지 않았다. 그 결과 훨씬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는가. 시련은 사람의 본 모습이 여과없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하기에, 그런 은총도 더불어 주시는 것 같다. 하느님께서는 속을 보신다. 아니 마음을 보신다. 이렇듯,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걷모습만이 아닌, 속도 보시는 심지어 아주 깊은 심연속의 마음까지 보시는 분이 아니신가. 시련의 때에는 격식이나 차릴 사람은 없다. 본모습이 드러난다. 이것은 상식이자, 유명한 말이다.그래서 나는 악에 대항하지도 못하고 어찌 할 수가 없다. 성경에 분명히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배교죄까지 감수하면서 살려고만 하니,결과는 성경말씀대로 되는 것이다. 위에서 막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것은 지혜라는 명분이지만, 실체는 살려고 하는 행위라서 성경말씀대로 되는 것이다. 배교죄까지 감수하는 데, 어찌하겠는가. 죽으면 엄청난 후회를 할 것이다.이승에 집착한 결과가 이러함에 미치고 환장할 것이다. 결말은 성경말씀대로 될 것이다.하느님의 말씀대로 될 것이다. 전쟁터에서 죽은 수많은 이름없는 군인 중에 하나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인가. 1
시련의 은총. 우리는 사람이 아닌 신을 섬기는 것이다.
시련의 은총
평소에는 굉장히 순종적이고, 예의 차리며,
티없는 사람인 것 같아도, 그런 강직한 사람이
확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곧, 시련이 닥쳤을때의 모습말이다.
시련이 닥치면, 강직하고 신심이 깊었던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본래의 모습이 드러난다고
모든 사람들이 아는 상식 중에 하나의 지식이다.
그래서 인지, 시련의 은총이란 것도 있다.
욥은 시련에 시련을 당하여도, 온갖 풍비박산이 났어도,
하느님은 버리지 않았다.
그 결과 훨씬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는가.
시련은 사람의 본 모습이 여과없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하기에, 그런 은총도 더불어 주시는 것 같다.
하느님께서는 속을 보신다. 아니 마음을 보신다.
이렇듯,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걷모습만이 아닌, 속도 보시는 심지어 아주 깊은 심연속의 마음까지 보시는 분이 아니신가.
시련의 때에는 격식이나 차릴 사람은 없다.
본모습이 드러난다. 이것은 상식이자, 유명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악에 대항하지도 못하고 어찌 할 수가 없다.
성경에 분명히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도 배교죄까지 감수하면서 살려고만 하니,
결과는 성경말씀대로 되는 것이다.
위에서 막으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것은 지혜라는 명분이지만, 실체는 살려고 하는 행위라서
성경말씀대로 되는 것이다.
배교죄까지 감수하는 데, 어찌하겠는가.
죽으면 엄청난 후회를 할 것이다.
이승에 집착한 결과가 이러함에
미치고 환장할 것이다.
결말은 성경말씀대로 될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대로 될 것이다.
전쟁터에서 죽은 수많은 이름없는 군인 중에 하나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