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글이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가져왔습니다. 그 전에 사회자본에 대한 개념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사회적 자본이란 조직 내에서 대인 관계를 통해 얻어진 누적된 신뢰와 평판 등입니다. 사회적 자본을 많이 축적한 사람들은 타인에게 동기 부여를 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한국의 ‘소셜캐피털’ 문제] 펌 /by 김동규 박사
‘소셜캐피털’(social capital)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해(프랑스어로는 capital social) 미국 하버드대의 로버트 퍼트남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된 표현인데, 보통 ‘사회자본’ ‘사회적 자본’이라고 번역한다.
사회가 ‘사람의 모임’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괜찮은 번역이다. 하지만 표현이 너무 굳어져서 ‘사회’ 대신 ‘사교’라고 번역하는게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을 묶어내는 한 사회의 습속, 스킬 같은 것이 바로 이 ‘사교자본’이다.
그런데, 질문! 과연 한국인은 사람을 묶어내는 사교력이 있는가?
동창들을 오랜만에 만나 그 몇 시간을 함께 있기 힘들어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른다. 큰 모임에 가면 새로운 사람들 사귀기가 어려워 원래 알고지내는 사람들과 무리 지어 있다.
미국, 일본, 영국의 스타벅스에서 자리가 없어서 어떤 여성에게 “자리가 없어서 그런데, 이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라고 물으면 이들 나라에선 언제나 “Sure(당연하죠, 앉으세요)”라거나 “스미마셍(자리 두 개 차지하고 있어서 미안합니다. 앉으세요)”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싫어하는 기색으로 겨우 양보하거나 아예 “왜요?”라고 묻는 사람이 꽤 있다. 혼자 4명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그제서야 ‘자리가 없어서요’라는 내 명분을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불쾌한 표정으로…
한국의 ‘사교자본’은 동아시아에서 몇 등 정도 될까? 친한 사람끼리만 어울리는건 사교가 아니다. 엄마 손만 꼭 잡고 낯선 이를 경계하는 걸 사교적이라 하지 않는다. 이런 낮은 사교자본을 가지고 과연 한국사회는 단합할 수 있을까?
인문교양의 최종 목표는 타인과 소통을 잘하는 ‘사교력’을 키우는 것이다. 인문서적 엄청 읽고 외워 대화를 지배하면서 사교모임을 망치는 사람은 사실 인문의 적이다.
우린 인문교양이 많이 부족한 나라다. 커피와 차만 마시면서 12시간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40대, 50대 사교인을 많이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사교력이 바닥에 떨어지면 위기 순간에 내전으로 비화한다.
<에피소드1>
제가 거리를 두게 된 친구가 있었는데 싸워서가 아니라 본인이 자랑스럽게 떠벌린 말때문입니다.
" 난 사람들과 만나면 무조건 녹음해. 그래야 다치치 않거든!"
친구는 깍쟁이 기질은 좀 있지만 나름 잔정이 있어서 남들이 수근거려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족들과의 대화마저 녹음한다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누군들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누려 들겠습니까? 본인은 다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그 친구가 남에게 상처를 주면 줬지 받을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 친구에게 도대체 녹음은 왜 하는 거냐고 물어봤습니다. 혹시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답니다. 다들 녹음하는 분위기라 자신도 하게 되었고 습관이 되었답니다. 그 '다들'이 누구냐? 친구는 답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한두 사람 그런 경우가 있었겠죠.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겁니다.
제가 화를 내니 "너도 녹음하면 될 거 아니냐 나쁜의도는 전혀 없고 그냥 하는 거다 "고 하길래 더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도 자본입니다.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자본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에는 축의금 액수때문에 수십년 우정이 깨지고, 결혼예물 때문에 사랑이 파탄나기도 합니다. 이 친구는 무차별로 녹음하다가 인적자본을 잃었습니다.이미 다 등을 돌렸고 이 친구를 만나준 마지막 친구가 저 였습니다.
<에피소드2>
전 직장에 어떤 직원이 있었습니다. 소심한 편이었는데 마음씨가 착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왕따를 당했어요.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잘해주는 것을 본인도 깨달았는지 어느 날부터 이런 저런 자신의 얘길하길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놀라운 사실을 들었습니다.
이 친구는 주말이면 한강공원에 간답니다.주말에 한강공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불법주차 된 차량이 꽤 많죠. 그걸 몽땅 찍어서 구청에 신고한답니다. 그리고는 다음 행선지로 가서 또 찍고 또 신고한답니다. 그렇게 하루에 80대까지 신고한 적이 있다는 겁니다.
"불법주차 나쁜거야. 그런데 그걸 적발하고 스티커 발부하는 것은 구청의 몫이야."
"누군가는 오랫만에 가족들과 나들이 나왔을거다. 아픈 부모님께 바깥 공기 쐬어 드리고 싶어서 나온 가족도 있을 테고, 내일 군대가는 애인과 마지막 추억을 쌓으러 나온 연인이 있을지도 몰라 . 한강은 주말에 서민들이 가서 쉴수 있는 가장 저렴한 공간이야. 박봉에 쪼들리는 가장이 오랫만에 치킨 한마리 놓고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몰라"
"그들이 즐거운 하루를 마치고 차로 돌아왔을 때 표정 생각해봤어? 그들이 느끼는 당황스러움, 화남, 짜증이 다 네게로 향하는 화살이 될수 있다는 사실 생각해봤어? 넌 네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했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회사 여직원이 파리바케트에서 법인카드로 케잌을 사서 집에 가져갔다고 감사실에 고발한 사람도 그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법을 막기 위해 시민의식을 발휘했다는 직원과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필요하지도 않은 대화들을 녹음한 친구......사회 자본을 설명하려다 이런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는데요. 저는 지금도 이 사람들이 잘못한 것인지 아닌지 헷갈립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난 사람들과 만나면 무조건 녹음해. 그래야 다치치 않거든!"
사회적 자본이란 조직 내에서 대인 관계를 통해 얻어진 누적된 신뢰와 평판 등입니다. 사회적 자본을 많이 축적한 사람들은 타인에게 동기 부여를 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한국의 ‘소셜캐피털’ 문제] 펌 /by 김동규 박사
‘소셜캐피털’(social capital)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시작해(프랑스어로는 capital social) 미국 하버드대의 로버트 퍼트남을 통해 널리 퍼지게 된 표현인데, 보통 ‘사회자본’ ‘사회적 자본’이라고 번역한다.
사회가 ‘사람의 모임’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괜찮은 번역이다. 하지만 표현이 너무 굳어져서 ‘사회’ 대신 ‘사교’라고 번역하는게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을 묶어내는 한 사회의 습속, 스킬 같은 것이 바로 이 ‘사교자본’이다.
그런데, 질문! 과연 한국인은 사람을 묶어내는 사교력이 있는가?
동창들을 오랜만에 만나 그 몇 시간을 함께 있기 힘들어 술을 마시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른다. 큰 모임에 가면 새로운 사람들 사귀기가 어려워 원래 알고지내는 사람들과 무리 지어 있다.
미국, 일본, 영국의 스타벅스에서 자리가 없어서 어떤 여성에게 “자리가 없어서 그런데, 이 자리에 앉아도 될까요”라고 물으면 이들 나라에선 언제나 “Sure(당연하죠, 앉으세요)”라거나 “스미마셍(자리 두 개 차지하고 있어서 미안합니다. 앉으세요)”라고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싫어하는 기색으로 겨우 양보하거나 아예 “왜요?”라고 묻는 사람이 꽤 있다. 혼자 4명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그제서야 ‘자리가 없어서요’라는 내 명분을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불쾌한 표정으로…
한국의 ‘사교자본’은 동아시아에서 몇 등 정도 될까? 친한 사람끼리만 어울리는건 사교가 아니다. 엄마 손만 꼭 잡고 낯선 이를 경계하는 걸 사교적이라 하지 않는다. 이런 낮은 사교자본을 가지고 과연 한국사회는 단합할 수 있을까?
인문교양의 최종 목표는 타인과 소통을 잘하는 ‘사교력’을 키우는 것이다. 인문서적 엄청 읽고 외워 대화를 지배하면서 사교모임을 망치는 사람은 사실 인문의 적이다.
우린 인문교양이 많이 부족한 나라다. 커피와 차만 마시면서 12시간 즐겁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40대, 50대 사교인을 많이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사교력이 바닥에 떨어지면 위기 순간에 내전으로 비화한다.
<에피소드1>
제가 거리를 두게 된 친구가 있었는데 싸워서가 아니라 본인이 자랑스럽게 떠벌린 말때문입니다.
" 난 사람들과 만나면 무조건 녹음해. 그래야 다치치 않거든!"
친구는 깍쟁이 기질은 좀 있지만 나름 잔정이 있어서 남들이 수근거려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족들과의 대화마저 녹음한다는 말을 듣고 아연실색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누군들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누려 들겠습니까? 본인은 다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그 친구가 남에게 상처를 주면 줬지 받을 사람은 아니거든요.
그 친구에게 도대체 녹음은 왜 하는 거냐고 물어봤습니다. 혹시 내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은 없었답니다. 다들 녹음하는 분위기라 자신도 하게 되었고 습관이 되었답니다. 그 '다들'이 누구냐? 친구는 답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한두 사람 그런 경우가 있었겠죠. 일반화의 오류에 빠진 겁니다.
제가 화를 내니 "너도 녹음하면 될 거 아니냐 나쁜의도는 전혀 없고 그냥 하는 거다 "고 하길래 더이상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도 자본입니다.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자본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요즘에는 축의금 액수때문에 수십년 우정이 깨지고, 결혼예물 때문에 사랑이 파탄나기도 합니다. 이 친구는 무차별로 녹음하다가 인적자본을 잃었습니다.이미 다 등을 돌렸고 이 친구를 만나준 마지막 친구가 저 였습니다.
<에피소드2>
전 직장에 어떤 직원이 있었습니다. 소심한 편이었는데 마음씨가 착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왕따를 당했어요. 안타까웠습니다. 제가 잘해주는 것을 본인도 깨달았는지 어느 날부터 이런 저런 자신의 얘길하길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놀라운 사실을 들었습니다.
이 친구는 주말이면 한강공원에 간답니다.주말에 한강공원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불법주차 된 차량이 꽤 많죠. 그걸 몽땅 찍어서 구청에 신고한답니다. 그리고는 다음 행선지로 가서 또 찍고 또 신고한답니다. 그렇게 하루에 80대까지 신고한 적이 있다는 겁니다.
"불법주차 나쁜거야. 그런데 그걸 적발하고 스티커 발부하는 것은 구청의 몫이야."
"누군가는 오랫만에 가족들과 나들이 나왔을거다. 아픈 부모님께 바깥 공기 쐬어 드리고 싶어서 나온 가족도 있을 테고, 내일 군대가는 애인과 마지막 추억을 쌓으러 나온 연인이 있을지도 몰라 . 한강은 주말에 서민들이 가서 쉴수 있는 가장 저렴한 공간이야. 박봉에 쪼들리는 가장이 오랫만에 치킨 한마리 놓고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몰라"
"그들이 즐거운 하루를 마치고 차로 돌아왔을 때 표정 생각해봤어? 그들이 느끼는 당황스러움, 화남, 짜증이 다 네게로 향하는 화살이 될수 있다는 사실 생각해봤어? 넌 네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했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회사 여직원이 파리바케트에서 법인카드로 케잌을 사서 집에 가져갔다고 감사실에 고발한 사람도 그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불법을 막기 위해 시민의식을 발휘했다는 직원과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필요하지도 않은 대화들을 녹음한 친구......사회 자본을 설명하려다 이런 얘기까지 나오게 되었는데요. 저는 지금도 이 사람들이 잘못한 것인지 아닌지 헷갈립니다. 여러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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