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나이 마흔이 넘도록
나는 왜 착한아이 증후군에서 못벗어났을까.
학대란게 그런거 였을까.
가스라이팅 이었을까 요즘 말로 또 뭐라고도 하던데.
이 모든 학대가 어렵게 낳아 기르는 내아이에게 이어질것을
알게된후.
나는 모두를 버렸다.
나쁜년은 어차피 그동안 다 포기해도 나쁜년이었는데.
알게뭐야.
어차피 난 어떻게 해도 나쁜년이다.
종가집딸, 종가집며느리,
당연한 희생,
언니들이 힘들어도, 부모님이 힘들어도,
오빠들이 힘들어도, 동생이 망나니 짓을해도,
나는 늘 당연히 가서 도와야하는
집에서부터 새는 바가지였다.
깨진 쪽박같은 내인생은 귀한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일까.
당연하게 구박이 익숙하고 슬프고 서러워도
내가 잘하면 된다기에
내몸이 부서지도록 정말 잘했다.
멍청하게
이제 겨우 40대인데
나는 만성질환자가 될만큼. 나는 망가진 몸이 되었다.
내 아이는 아직 말도 못하는데.
내가 최소한 25년은 얘 옆에서 사람으로 오롯이 서게 해줘야 할텐데.
나는 십년도 자신이 없음에도
오늘도 아이 밥을 짓는다.
언니의 만행이 날 망하게 했고 그여자를 도운 친정을 용서하지 못하겠다.
나하나.
망가지든 부서지든 당연히 받을거만 받았으면
난 죽는한이 있어도 착하려고 했을거다.
그럼 최소한 가정은 지켰을거니까.
남편과 내가 언니의 거짓눈물에 속아 사기당하고
급여한번을 아니, 기본적인 4대보험도 가입해준적이 없는 언니라는 인간.
나는 그인간을 벗어나기위해 오랜시간 발악에 가까울만큼 몸부림쳤지만
욕, 폭언, 폭행.
그게 내가 도망치는걸 포기하게 만든 가족이라는 사람들의 행동이었고.
그렇게 내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등신처럼 당하고 당하다
내아이까지 뽑아먹으려는 그 속셈을 알고 도망쳤다.
고맙게도 그 인간은 내게 손지검을했고
나는 폭행전과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신고한거 부터 협박하던 부모님까지 버렸다.
난 그토록 지키려했던 가정도 놔버렸다.
애아빠의 분노가 감당되지않았다.
아이가 충격을 받았던 친정의 만행에
아이도 나도 지쳐있었고
애아빠의 분노까지 받아줄 여력은 내게 없었다.
죽도록 일해서 니언니 좋은짓만 하는 등신인거
멍청하니까 니들가족 체면의 제물이 되었냐는거
니가 번건 니돈이 아니고 니 언니 뱃속채우는거라고,
넌 니껄 단 한개라도 가져는 봤냐는 공격들이
인정안할수 없는 사실이었고
그 사실들이 충분히 절망적이었음에도
애아빠는 더이상 참을 인내심이 없어진것 처럼
매일 공격들을 쏟아냈다.
그런 아빠를 보며 불안해 하는 아이..
너는 아이도 더는 보이지 않는구나...
애마저도 자긴 못키우지만 날 주긴 싫다고 시설로 보내겠다 했을때
애아빠의 인생에서 내가 꺼져주고 싶어진 이유가 되었다.
일년.
내가 가족을 안보고 산 시간이다.
시댁과의 모든 인연을 끊지는 않았지만.
먼저 연락하진 않는다.
이혼으로 나는 모든걸 내려놓고 아이만 보고 살지만.
아직도 갈길은 멀다.
파산을했다.
언니덕에 내인생은 빚만 남아있었다.
친구가 넌 니언니의 호구랬다.
그래. 그게 맞는거 같다.
명절에 양가 전부치다 지쳐서 몸살와서 병원에 가던 나는
이제 돈이 무섭고 벌이는 없다.
벌이를 하기엔 그냥 아프다.
친정을 가보고는 싶다.
그러나 무섭다.
친정식구들.
그립지않으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본다는 생각만으로 숨이 막힌다.
애아빠가 이혼후 애기 병원비를 조금 준게 화근이라며
모든 지원신청도 끊기고 한부모도 안된단다.
하.
매일 죽고싶은걸 아이의 웃는얼굴이 돌아오고
아이의 재롱이 느는걸 보며 견딘다.
사람은 착하면 호구고,
독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냥 넋두리다.
추석이 되가는데
외롭다.
거지같은 가족이 그립다는게 기가막힌다.
나만 참으면 된다는말..
착해야 한다는 말.
누가하면 엎어라. 나처럼 되기전에.
비도 오고 아프고 힘들어서 남기고 간다.
욕은 집어넣고 갈길가라.
사람이 너무힘든데 울고싶은데 뺨때리면
죽을수도 있는거다.
오늘도 열심히 견디고 살아가는게 내가 지금 할수있는 최선이다.
가족과연을끊었다
모두를 단절하고 나니 말할곳이 없어져서.
푸념이고 넋두리일수도.
ㅡ귀찮으면 뒤로가시라는 권고이기도함.
내나이 마흔이 넘도록
나는 왜 착한아이 증후군에서 못벗어났을까.
학대란게 그런거 였을까.
가스라이팅 이었을까 요즘 말로 또 뭐라고도 하던데.
이 모든 학대가 어렵게 낳아 기르는 내아이에게 이어질것을
알게된후.
나는 모두를 버렸다.
나쁜년은 어차피 그동안 다 포기해도 나쁜년이었는데.
알게뭐야.
어차피 난 어떻게 해도 나쁜년이다.
종가집딸, 종가집며느리,
당연한 희생,
언니들이 힘들어도, 부모님이 힘들어도,
오빠들이 힘들어도, 동생이 망나니 짓을해도,
나는 늘 당연히 가서 도와야하는
집에서부터 새는 바가지였다.
깨진 쪽박같은 내인생은 귀한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일까.
당연하게 구박이 익숙하고 슬프고 서러워도
내가 잘하면 된다기에
내몸이 부서지도록 정말 잘했다.
멍청하게
이제 겨우 40대인데
나는 만성질환자가 될만큼. 나는 망가진 몸이 되었다.
내 아이는 아직 말도 못하는데.
내가 최소한 25년은 얘 옆에서 사람으로 오롯이 서게 해줘야 할텐데.
나는 십년도 자신이 없음에도
오늘도 아이 밥을 짓는다.
언니의 만행이 날 망하게 했고 그여자를 도운 친정을 용서하지 못하겠다.
나하나.
망가지든 부서지든 당연히 받을거만 받았으면
난 죽는한이 있어도 착하려고 했을거다.
그럼 최소한 가정은 지켰을거니까.
남편과 내가 언니의 거짓눈물에 속아 사기당하고
급여한번을 아니, 기본적인 4대보험도 가입해준적이 없는 언니라는 인간.
나는 그인간을 벗어나기위해 오랜시간 발악에 가까울만큼 몸부림쳤지만
욕, 폭언, 폭행.
그게 내가 도망치는걸 포기하게 만든 가족이라는 사람들의 행동이었고.
그렇게 내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등신처럼 당하고 당하다
내아이까지 뽑아먹으려는 그 속셈을 알고 도망쳤다.
고맙게도 그 인간은 내게 손지검을했고
나는 폭행전과를 만들어줬다.
그리고 신고한거 부터 협박하던 부모님까지 버렸다.
난 그토록 지키려했던 가정도 놔버렸다.
애아빠의 분노가 감당되지않았다.
아이가 충격을 받았던 친정의 만행에
아이도 나도 지쳐있었고
애아빠의 분노까지 받아줄 여력은 내게 없었다.
죽도록 일해서 니언니 좋은짓만 하는 등신인거
멍청하니까 니들가족 체면의 제물이 되었냐는거
니가 번건 니돈이 아니고 니 언니 뱃속채우는거라고,
넌 니껄 단 한개라도 가져는 봤냐는 공격들이
인정안할수 없는 사실이었고
그 사실들이 충분히 절망적이었음에도
애아빠는 더이상 참을 인내심이 없어진것 처럼
매일 공격들을 쏟아냈다.
그런 아빠를 보며 불안해 하는 아이..
너는 아이도 더는 보이지 않는구나...
애마저도 자긴 못키우지만 날 주긴 싫다고 시설로 보내겠다 했을때
애아빠의 인생에서 내가 꺼져주고 싶어진 이유가 되었다.
일년.
내가 가족을 안보고 산 시간이다.
시댁과의 모든 인연을 끊지는 않았지만.
먼저 연락하진 않는다.
이혼으로 나는 모든걸 내려놓고 아이만 보고 살지만.
아직도 갈길은 멀다.
파산을했다.
언니덕에 내인생은 빚만 남아있었다.
친구가 넌 니언니의 호구랬다.
그래. 그게 맞는거 같다.
명절에 양가 전부치다 지쳐서 몸살와서 병원에 가던 나는
이제 돈이 무섭고 벌이는 없다.
벌이를 하기엔 그냥 아프다.
친정을 가보고는 싶다.
그러나 무섭다.
친정식구들.
그립지않으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본다는 생각만으로 숨이 막힌다.
애아빠가 이혼후 애기 병원비를 조금 준게 화근이라며
모든 지원신청도 끊기고 한부모도 안된단다.
하.
매일 죽고싶은걸 아이의 웃는얼굴이 돌아오고
아이의 재롱이 느는걸 보며 견딘다.
사람은 착하면 호구고,
독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냥 넋두리다.
추석이 되가는데
외롭다.
거지같은 가족이 그립다는게 기가막힌다.
나만 참으면 된다는말..
착해야 한다는 말.
누가하면 엎어라. 나처럼 되기전에.
비도 오고 아프고 힘들어서 남기고 간다.
욕은 집어넣고 갈길가라.
사람이 너무힘든데 울고싶은데 뺨때리면
죽을수도 있는거다.
오늘도 열심히 견디고 살아가는게 내가 지금 할수있는 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