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리는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품성"을 갖추어야 한다.

까니202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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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눈으로만 응시하여 

오웅진 신부님께서는 다른 일반ㅁㅅ들과는 다르게 

안수를 줄수 있으며,

 

성령을 받은 그 사람은

 

그 오웅진 신부님의 ”하느님의 성령의 힘“에 눌려 

힘없이 쓰러지며, 눈으로만 응시하여 성령을 줄 수있는 차원이 


어떠한 것인지를 실제로 성령을 받은 그 사람은 

피부로 느끼게 된다.

 



 

오웅진 신부님은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 오웅진 신부님의 응시만으로 

힘없이 쓰러지는 차원을 내가 강조하는 이유다.

 

 

품성훈련과 더불어, 

매일 미사보는 것이 왜 중요하느냐고 반문하겠지만, 


”미사 전 후 기도문“의 영옥영혼을 구하는 수가 

무시못할 1000명에 달하기 때문이다.

 

 

 

 

”한번 <미사 전 후 기도문>에 의해 연옥영혼 1000명이 구원“

 

 


 

 

이 공로를 그냥 무시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이 구해준 영혼들이 외면한채,

천국에서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데 기도로써 도와주는 등..

 

구해준 보답이 생각보다 1000명이라는 수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기에

 

우리는 그들이, 우리를 위하여 기도로써 돌려준다는 사실은

피부로 느낀 사람들에게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반가운 일이지 않은가.

 

 

 

 

그래서 이 두가지가 


성령의 세기를 증가시켜 주는, 주요 요인이 아닌가하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마지막 시대에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좋은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기 자신만의 구원을 위한다면

그보다 치졸할 수 없겠지만,

 

알다시피 우리는 하느님께서는

”절대자의 위치“에 서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정보는 최근에 성모님의 발현과 발언을 통하여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이다.

 

 

 

그런데도 나몰라라 하며,

전세계 사람들의 구원은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지극히 치졸한 이기주의이자,

남의 배려는 1도 없기에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상의 평신도의 지식“이지만 글이라도 써서,

 

도움을 줄려고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품성의 사람이라는 반증이 아닌가.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다보면,

그 글들이 우연히 인기가 많아질 수도 있으며,

 

꾸준히 써 나가기만 목석처럼 꿋꿋히 지속하는 것이다.

인기가 있든 없든 사랑이라는 이름 하나만으로 말이다.

 

 


 

글 쓰는 실력도 좋아질 것이며,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도 되니까

 

하느님께서 절대자임이 드러난 이상

극한 이기주의 성향이 아닌 사람이 되고자,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는 것도 잘 쓴다고 알려진다면야

사람들의 구원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다만 꾸준히 인기가 없더라도,

앞으로만 나아가는 인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