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도한다

동동2024.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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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도한다..

 

01

“어서오세요”

오늘도 손님을 맞이하는 인사로 피곤한 하루가 시작된다.

19년째 하고 있는 일이지만 갈수록 더 피곤한건 나이탓일까?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나는 365일 매장을 지키고 있다.

간혹 손님들이 나에게 쉬지도 않고 어떻게 일을 하냐고

대단하다고 한다.

제발 단 하루라도 쉬고 싶다.

밑바닥에서부터 시작된 나의 고달픈 하루하루는

아마 나의 출생이 원인이지 싶다.

 

02

나는 8개월만에 태어난 조산아다.

일명 팔삭둥이

엄마 뱃속에서 10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미숙아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했고 약도 먹지 못했다.

엄마는 나를 낳고 외갓집에 맡겨서 키웠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는 어쩌다 생긴 아이였다.

 

03

외조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미숙아인 탓에 제대로 걷지도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을 배울수도 걸음 걷는 법을 배울수도 없었으니까...

엄마는 밖으로 돌고 아빠는 배를 타셨다..


04

돌잔치는 커녕 내 생일을 챙겨주는 것도 없었다.

외갓집에 버려진 채 엄마의 얼굴도 잊혀져 갔다.

그러다 5살때야 비로소 조금씩 걷게 되었다.

몸에 힘이 없으니 걸음도 삐뚤삐뚤

말도 발음이 꼬여서 정확하지 않았다.

힘든 삶의 시작이 되었다.

 

05

걷기 시작하고 말을 하게 되니 엄마가 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는 언니라고 하는 사람과 오빠라고 하는 사람들

아빠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들 처음보는 사람들이라 무서웠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나는 생활하게 되었다.

얼마후 언니라는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되어 집을 나가고

아빠는 배를 타러 가셨다.

 

06

시간이 흘러 8살이 되었고 초등학교 입학통지서가 나왔다.

그래도 내 출생신고는 했나보다.

엄마는 내 몸상태를 확인하고는 안되겠다 싶었는지

입학을 1년 미루고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입학했다.

이게 내 처음 단체생활이다.

어색했지만 열심히 배웠다.

교회도 같이 다녀서 신앙생활도 시작하게 되었다.

 

07

유치원에 다니면서 점점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해가던 중

다른 또래 아이들과 다른점이 하나씩 나타났다.

나이도 한 살 많고 키도 크고 부자연스러운 동작에

아이들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으면 나만 달랐다.

그래서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한다.

 

08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내 모든 것이 달라졌다.

놀림을 받기 시작하고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 제일 듣기 싫었던 별명은 장애인....

체육시간에도 나는 운동장 한켠에 앉아 구경만 했고

늘 혼자였다.

그렇게 3학년이 되었다.

학폭의 시작.....

 

09

초등학교 3학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었던 상처

여기서는 실명을 말한다.

남자반장이었던 박영석과 짝이 되었다.

박영석은 보이스카우트에 반장에 집도 잘 살았다.

나를 너무 싫어해서 책상도 떨어지게 앉았고

만약 내 물건이 잘못하다 자기쪽으로 넘어가면

그 물건을 나에게 던졌다.

나는 시도때도 없이 맞았다.

점심시간에는 박영석이 도시락을 다 먹고 밖으로 나갈때까지

내 도시락을 열지도 먹지도 못했다.

이유는 김치냄새 난다고

그래서 항상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혼자만 먹었기에

도시락을 버린적이 많았다.

울었던 기억도 많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화장실에 2시간을 갇혀버렸다.

밖에서 문을 잠궈버린 탓에 나는 수업을 빠졌다.

담임선생님이 없으니 찾으러 다니다 화장실에서 나를 발견하고 박영석을 혼내줬는데 그때는 촌지가 먹히던 시절이라

크게 혼을 내지는 않고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학교가 정말 다니기 싫었지만 그냥 나갔다.

갈 곳도 없고 부모님한테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암울한 학교생활을 이어나갔다.

 

10

시간이 흘러 어느덧 6학년이 되었다.

6학년때는 김원 김지영 주명은을 필두로

여자애들이 나를 괴롭혔다.

빵셔틀부터 연필이나 물감등을 빌려가서 안주고

심부름도 엄청 시켰다.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싸울수도 없고 이 애들은 잘사는집 애들이니

선생님들도 얘들 편이었다.

학교보다 교회 가는게 더 좋았다.

적어도 교회에서는 다 나를 좋아해주니까.....

그냥 똑같은 사람으로 대해줘서 좋았다.

 

11

중학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또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착한 친구들이 있어서 나를 많이 도와줬다.

그 친구들은 잊을수가 없다.

이영은 이봉희 고마워^^

사랑이 꽃피는 교회

좋아하는 오빠가 생겼다.

오빠 보려고 교회 출석하고 끝날때까지 기다리고

몰래 집앞에 서성거리고 전화해서 오빠 목소리 들으며

말도 못하고 끊어버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은 목사님이 되어 잘 살고 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첫사랑이 짝사랑으로 끝나버렸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했으니....

 

12

중학교 2학년이 되어 같은 학원에 다니던 남학생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며 고백을 했다.

꿈을 꾸는거 같았다. 나에게 이런일이 ....

거절했다.

이유는 남자가 무서웠다.

초등학교때 이복오빠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이종사촌 오빠에게도 똑같은 짓을 당했기에..... 무서웠다.

 

13

아빠의 환갑잔치가 열렸다.

나는 늦둥이에 팔삭둥이에 존재감이 없는 딸이라

그냥 친척들이 모여서 밥 먹는 곳에 따라가서 먹고

이모가 데려다준다고 차를 탔고

이모들의 대화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어버렸다.

내 엄마랑 언니 오빠들의 엄마가 다르다는 사실

아빠의 첫 번째 부인이 따로 있고

내 엄마는 두 번째 부인이라는 것......

사춘기였던 나는 정말 충격에 또 충격이었다

누군가 진실을 말해주길 바랐다.

단 한사람도 얘기해주지 않았다. 엄마도 아빠도....

 

14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중3 담임선생님과 사이도 좋지 않았기에

옳은길로 이끌어주는 사람도 없고 난 또 혼자가 되었다.

졸업여행을 가는 도중 버스안에서 지갑에 있던

용돈을 도둑맞았다. 내 옆에 있던 애가 제일 유력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었기에

최악의 졸업여행이 되어버렸다.

그 일로 나는 충격이 더 커져서 힘들었다.

그때마다 내 유일한 안식처는 노래....

노래를 들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15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다.

좋은 친구들도 생겼고 성격이 조금은 밝아졌다.

물론 나를 좋게 보지 않는 애들이 많아서 짜증이 났지만

무시하고 나의 길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었다.

 

16

아빠는 주로 해외 기름배를 타셨는데

월급이 그 당시 공무원들 월급보다 10배가 많았다고 한다

그 많은 돈을 첫 번째 부인이 다 해먹고 튀었단다.

그 여자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렇게 고생하며 살지는 않을텐데....

아빠가 한국으로 정착하고 나서 우리집 경제사정은 그야말로 망했다.

전셋집으로 이사를 가고 구멍가게에 딸린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방 한칸에서 살았다.

경비원과 미화원으로 아빠의 직업은 바뀌었고

엄마는 구멍가게를 운영했다.

나는 내 방도 없이 그 어두운 방에서 공부를 한다고

책을 펴면 엄마는 또 밖으로 놀러가버렸다.

그럼 가게는 내 차지.....

시험공부를 하려고 해도 수능공부를 하려고 해도 집중해서 할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 부모님은 나의 외출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와 집

그래도 일요일은 유일하게 교회를 가기 위해

외출을 할 수 있었다.

내 치아상태도 좋지 않아 고3 여름방학

치아교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부잣집 딸인줄 알았나보다. 절대 아닌데.....

이 세상은 남을 얘기하는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렇다더라 저렇다더라

그리 살지 말자

17

수능점수가 안나와서 전문대를 가게 되었다.

취업이라도 잘하면 돈은 벌수 있으니....

나는 어릴때부터 밝은 내 방을 가져보는게 소원이었다.

전문대였지만 나는 과대도 하고 학회장도 하면서

열심히 대학생활을 했다.

2년 후

취업의 문턱에서 동기들과 후배들과 차이가 벌어졌다.

정말이지 나 빼고는 다 취업을 했다.

나 혼자 면접 보러 간 회사만 100군데가 넘을 것이다.

아무도 안뽑아주더라?

남들 다하는 취업.... 남들 다 받는 월급....

날 뽑지 않은 이유는 바로 남들과 달라 보여서였단다.

나에게 취업은 사치인가? 꿈으로만 간직해야하나?

시련은 계속 되었다.

뽑아주면 나도 잘할 수 있는데 ... 하고 매일을 울었다.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 이 고통의 나날을......

 

18

취업을 포기하고 집에만 박혀 지내던 어느날

몸의 이상을 느꼈다.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감이 몰려온 것이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운동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운동을 하며 땀을 흘리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점점 운동에 흥미를 느끼며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웃음을 조금씩 되찾아 가기 시작했다.

자포자기하며 지냈던 시간이 서서히 잊혀져갔다.

19

체육관에서 운동이 끝나면 1층에 있는 편의점을 매일 들렀다.

배가 고파서 우유를 사먹으러...

매일 들리니 편의점 직원이 나에게 아르바이트 제안을 했다.

부모님 눈치 보이니 용돈이라도 벌어서 쓰자 해서

그렇게 시작한 편의점 일.....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시작하게 된 혼자만의 아르바이트

 

20

드디어 나도 돈을 벌게 되었다.

비록 아르바이트이지만 너무 좋아서 매일이 행복했다.

이렇게 일을 하고 싶어했는데 그동안 못했으니

얼마나 한이 맺혔겠는가.....

서툴지만 열심히 했다.

한달이 지나 받은 첫 월급 44만원

그땐 최저시급이 얼마인지도 몰랐던 때라 마냥 좋았다.

 

21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근무시간이 늘어나

월급이 많아졌다.

사장님이 악덕만 아니었으면 좋았을걸,,,,

일은 많이 부려먹고 돈은 조금 주는 악덕사장

그래도 나를 일하게 해줘서 고마운 마음에 정말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하니 아르바이트생에서 매니저

매니저에서 점장으로 직급이 올라갔다.

결국 운영매장 3곳 중 메인매장의 점장이 되었다.

내 나이 25살이었다.


22

점장이 된 나는 더욱더 열심히 일했다.

업무도 많고 피곤했지만 죽기 살기로 했다.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

나에게 처음으로 남자친구가 생겼다.

5살 연하였는데 정말 착한 남자친구였다.

아침마다 모닝콜로 나의 기상을 책임지고

진심으로 나를 챙겨줬던 따뜻하고 다정했던 남자친구...

3개월만에 헤어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아있다.

즐겨들었던 노래가 있는데

신혜성의 첫사람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생각난다.

 

23

업무의 양이 이미 점장을 넘어서 사장이었다.

피곤하고 지쳐있을 때 내가 야간 근무자와 이야기를 하다

시급이 나와 같다는걸 알게 되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바보같이 일만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악덕사장의 속내를 몰랐던 내가 한심했다.

더 이상의 근무가 불편했던 나는 사장에게 그만두겠다고

얘기를 했더니 근무자를 구해줄테니 근무시간을 줄이라는 것

그때즈음 나에게 본사직원이 스카우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24

악덕사장의 횡포는 그칠줄 몰랐다.

나를 빼내간다고 편의점 본사에 항의전화를 하고

본사직원들과 싸우고 하던중에

내가 손님에게 얼굴을 맞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뒤로 나에게 월급을 올려주겠다고 다짐하면서 미안하다고 했지만 결국 나는 그곳을 그만두게 되었다.

 

25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곳으로 출근했다.

출퇴근 시간만 2시간 30분

거리도 멀고 갑질사장의 횡포를 견디지 못하고

7개월만에 그만두게 되었다.

그 뒤로도 가는곳마다 사장님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26

마지막으로 간곳은 전혀 관리가 엉망인 매장

그 매장 사장님도 기본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매장 담당하는 본사직원은 내가 출근한다고 하니 좋아했다.

내가 근무한지 한달만에 그 매장은 탈바꿈을 했다.

그것을 눈여겨본 본사 팀장님이

나에게 매장 오픈을 제안했다. 나는 거절했다.

3개월이 지나고 본사직원이랑 가까워졌다.

썸을 타게 된 것이다.

내 퇴근시간에 맞춰 일부러 얘기하러 오고

스케줄이 많아 힘들텐데 내가 만든 어묵을 먹으러 오고

차로 데려다 주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다.


27

내 나이 서른에 썸이라.....

오히려 좋았다. 편하게 지낼수 있었으니까....

서로 챙겨줄수 있고 맘편히 얘기도 나눌수 있고

그러다 그 매장의 계약이 끝나게 되어 그만둬야했다.

타 브랜드의 편의점 개발팀에서 연락을 받고

오픈에 대해 고민하던 중 썸남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결국 타 브랜드의 편의점을 하기로 하고

그 해 연말에 오픈을 하게 되었다.

 

28

내가 사장이라니.....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처음엔 매장 오픈을 부모님이 많이 반대했다.

니가 어떻게 편의점을 운영하냐고

날 믿어주지 않았지만 결국 허락해주셨다.

정말 열심히 했다.

코피가 터지고 아프고 다치고 쓰러져도 일어섰다.

어느날 나는 어떤 여자 손님 때문에

잊고 지냈던 내 상태를 상기시키게 되었다.

매장에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몇급이냐고 하는 질문

어른이 되어서도 나는 이런 상처를 받아야하나 싶었다.

그 와중에 첫 정산금이 들어왔다. 66만원

 

29

열심히 노력한 결과일까?

매출도 오르기 시작하고 정산금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30

아는 사람일수록 조심하고

친한 사람일수록 절대 믿지 마라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친했던 사람한테 물건대금 350만원을 사기 당하고

그 뒤로는 절대 사람을 믿지 않는다.

물론 돈 거래도 하지 않는다.

 

31

난생 처음으로 해외를 나가게 되었다.

내가 서비스 최우수 경영주로 선정이 되어

일본으로 3박 4일 해외연수

여권도 만들고 처음으로 비행기도 타보고 너무 좋았다.

그 후로도 4번이나 최우수 경영주로 선정이 되어

홍콩과 마카오도 다녀왔다.

 

32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최우수 경영주라는 명분이 생겼다.

기존 매장에서 소위 대박 매장으로 옮기게 되었다.

본사에서 직접 옮겨주었다.

전국 최하위 서비스 매장을 1등 서비스 매장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처음에는 텃세가 심해서 힘들었지만

열심히 하다보니 손님들도 좋아하게 되었다.

결국 서비스 최우수 매장으로 선정되었다.

 

33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내 나이 40이 되었다.

20대

30대

40대

인생의 절반을 편의점과 보낸 것 같다.

자영업은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나 편의점은 더 심하다.

어느 한곳이 장사가 잘되면

그 주위에는 경쟁점이 계속 생긴다.

같은 브랜드도 예외는 없다.

 

34

열심히 운영 잘하고 있던 차에 나와 같은 브랜드의 매장이

주고객인 호텔 1층에 오픈을 했다.

그 여파로 인해 매출은 바닥을 치게 되었다.

정말 고생해서 올려놓은 매출인데 멘붕이 심하게 왔다.

인대 파열로 인해서 병원 신세도 지고

쓰러져서 구급차에 실려가고

적자가 심하게 시작되었다.

1년을 넘게 버티다가 결국 계약만료로 인한 매장 운영 종료

 

35

솔직히 내가 열심히 해서 일궈놓은 매장을

남에게 넘기기란 쉽지가 않다.

애정이 남다르니까 ...

하지만 현실은 어쩔수가 없다. 돈이 안되니까.......

36

이번 7월 2일로 매장을 넘기게 되었다.

나에게 남은건 아무것도 없다.

내 나이 40이지만 나만의 공간이 없다.

번듯한 집도 없다.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내 방이 창고로 변한지 오래다.

거실에서 자는데 잘때마다 기도한다.

내가 빨리 죽게 해달라고

 

37

내 몸이 약하게 태어나서

남들보다 힘도 덜하고 생긴것도 별로다.

아프기 시작한다.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쳐서 번아웃 상태이다.

쉬어야 하지만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우리집 수입이 없다.

아파도 힘들어도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38

그냥 시도때도 없이 눈물이 난다.

연애도 결혼도 다 포기하고 열심히 일했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어버리니 한숨만 나온다.

남들은 좋은집에서 살고 결혼도 하고 연애도 잘만 하는데

나는 도대체 왜 아등바등하며 사는건지.....

나만 왜 이모양 이꼴로 사는건지.....

 

39

나도 따스한 햇빛이 드는 내 방이 있으면 좋겠다.

기분좋은 아침을 맞이하는 내 방....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걱정없는 튼튼한 그런 집도....

열심히 살아왔는데 좋지않는 결말로 끝난 내 처지가 싫다.

나한테 다시 좋은날이 올까?

 

나는 기도한다.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힘든날이 계속되면

그냥 죽여달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