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과의 절연

쓰니202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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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결혼해서 해외에서 살고있는 90년생 직장다니는 여자입니다.

저희 친정은 한국에서 살고있고 5살차이나는 여동생이 한명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동생과 연을 끊게 되어 어떻게 해야할지 조언을 얻고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본론 전에 상황 이해를 돕고자 제 어렸을때를 알려드리자면,

저는 갓난 아이때부터 많이 아파서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유년시절 병에걸려 한달넘게 입원한적도 있고 사고로 크게 다쳐 큰수술을 받은적도 있었다고 해요.

또 어린시절 갑상선쪽에 문제가 있다는것을 발견하고 어려서부터 약을 끊임없이 먹고 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척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항상 부모님이 제걱정으로 힘들어하셨었다고 해요.

근데 저는 마음 아픈 기억들이 더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원래 본능적으로 고통스러운 일들이 더 머리속에 오래있는건지..


어머니께서 저와 둘이 있을때와 다른사람이 같이 있을때의 행동이 많이 다른모습을 봐올때마다 무서움을 많이 느꼈던것같습니다. 저의 어릴시절당시 부모님 사이가 안좋아 잦은 다툼이 있었는데

그런 다음날은 어머니께서 절 옆에 놔두시고 우시면서 한참 안좋은 말들을 쏟아 냈던것이 기억이납니다.

둘이서 걸을때도 삼촌과 고모 할머니 등 시댁험담을 매번 늘어놓는 일이 잦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삼촌 빚을 갚아 주셔야만 하는 내용, 고모의 기찻표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일, 아빠의 카드빚, 신용불량, 무책임한 태도 등등 어머니께서 힘들었던 일들을 매번 저에게 하소연했었습니다. 

저는 아무말 못하고 가슴아파했던게 기억이 납니다.

가끔 침대위에 올라 엄마 손을 잡을려고 할때 저의 손을 밀쳐내시고 저에게 눈길한번 주지않아 슬퍼서 그방을 나왔던 기억도 나네요. 하루는 문구점에서 다람쥐가 당첨되어 신나서 집에 들어와 엄마에게 보여준적이 있었는데

징그러워하시며 저까지 밀쳐냈던 기억이나요. 다람쥐를 거실 탁자에 올려놓고 어머니 방문을 열고 다가갔지만 무시받고 다시 그방에서 나와 혼자있어야만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렸을때를 돌이켜보면 둘이 있을때마다 그저 맞거다 혼나거나 어머니의 힘들모습을 지켜보는 것 외엔 없었던것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나 할머니, 다른 사람들이 있을땐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어요.

큰이모가 곁에 있을때 어머니께서 제 귀뒤로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웃어줬던 그장면은 평생 잊지못할 한 장면으로 머리속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저는 학창시절 가족에게 많이 맞았던 기억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 기억에 크게 남는 몇가지만 써내려보려고합니다.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일땐 좋은 아버지시지만, 

또 자식을 혼내야할땐 엄하게 훈육을 시켜야한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젓가락질, 아버지의 다리를 넘고 지나가는 일 등과 같은 사소한일이 있었을때 화를 내고 큰소리로 꾸짖으시던 일들이 생각이 납니다.

초등학교부터는 매로 맞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렸을때 기억을 떠올려보면 잘 집중을 못하고 남들보다 이해력이 좀 부족한 아이였다고 생각이듭니다.

저는 알림장을 잘 안받아 적었다고 합니다. 숙제도 잘 안해가서 엄마는 저를 잘키우기위해 매질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무서운 기억이 생생합니다. 방문을 걸어잠그고 무릎꿇고 두손을 빌었던 저를 구둣주걱으로 온몸을 계속해서 때리셨고 저는 울면서 방안을 기어다니며

도망쳐도 어머니는 계속해서 어린저를 때렸던 기억이 납니다. 밖에선 할머니가 문을두드리며 “얘야 그만해라” 라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어요.

또 저희 집에 삼촌이 같이 살고 있었는데 어릴때 저를 심하게 때렸던 기억이 납니다. 

삼촌을 많이 좋아해서 삼촌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발벗고 뛰쳐나가 받기면서 술주정뱅이(?) 왔어? 뭐이런말로 웃으면서 한말이 생각납니다.

삼촌에게는 너무 예의 없는 표현이였는지 갑자기 머리부터 온몸을 긴시간 구타했습니다. 할머니는 놀래서 저를 붙잡고 작은방으로 데리고가 문을 잠그고

부등켜안으며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 순간에도 삼촌이 문을 세게 계속 두드리면서 저보고 나오라고 소리를 질렀던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이후로도 간간히 맞았던 기억이납니다. 책모서리로 제머리를 수없이 찍었던 것들 할아버지에게 칼을 휘둘렀던 것들 등등 폭력적인 모습의 기억이 많습니다.

또 아버지는 산이나 시골에서 나뭇가지를 모아와 매들을 만드셨고, 성적이 안좋을때마다 회초리를 드셨습니다.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 제일 숨막히고 무서웠던 날들인것같습니다. 공부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제 머리가 매우 좋았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그렇게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시고 두분이 지켜본 저의 모습이 그렇게 보인적들이 있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저는 집중력이 너무 좋지않아 수업의 절반이상을 멍때리거나 그림그리기 낙서의 일상이 대부분이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께도 많이 맞았어요.

어머니는 방과후에 멍든 제 모습을 보고 한참 마음앓이를 했다고 합니다.

중학교때 부터는 매의 강도가 많이 올라갔습니다. 가3대 양2대 미1대로 정해졌고 저는 성적표로 한참을 꾸지람을 듣고난후

엎드린채로 허벅지를 그 수 만큼 매질당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제모습을 보시곤 “도대처 너는..” 경멸스러운 눈빛과 한숨뿐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피터진 제허벅지에 약을 발라주시면서 우셨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갈때 치마사이로 혹시나 피멍이 보이게 될까봐 조마조마하면서 등교했던 기억이나네요. 

의자에 앉을수가없어서 겉옷을 깔고 앉았고, 그이후로는 항상 방석을 깔고 앉았던 기억이납니다.

과거의 아팠던 기억을 엄마와 동생에게 얘기했을때, 그렇게 맞기 싫고 힘들었으면서 왜 공부를 안해서 이 일들을 되풀이 되게하고 부모님을 힘들게 하냐고 저에게 물었지만

저는 솔직히 할말이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저를 공부 시키려고 어머니는 단어장을 주시며 일주일에 단어 10개를 외우게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안외웠을땐 어김없이 맞아서 그걸 피한다고 화장실에 들어가 문잠그고 숨어서

울었던일도 생각이 나네요. 돌이켜보면 왜 이렇게 공부를 안했을까 싶고 왜 부모님과 나 스스로를 이렇게 아프게 했나 싶습니다.

그래도 고등학생때부턴 맞을 일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을 가슴아프게 만든 큰사건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시험 시간에 컨닝을해서 징계를 받게 되었습니다. 

옆 친구가 이문제는 꼭나온다고 영어단어 두개를 책상위에 써놓으라고 했고 저포함 앞뒤에 있는 친구들이 그단어를 책상에 썼습니다. 이날을 참 후회합니다.

그것을 한친구가 시험이 끝난후 사진을 찍어 선생님에게 제출했고 저는 그과목을 0점처리 받고 교내봉사 일주일을 해야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이것이 저에겐 억울하게 느껴졌었나봅니다. 그래서 제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싶었던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모든상황을 설명하기도전에 컨닝이라는 한단어로 제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문을 세게 닫고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제 생각에 부모님은 이때부터 저를 놓으신것 같습니다. 더이상 맞는 일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공부는 못했지만 예체능에 재능이 있어서 미대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제게 기대치가 적었던 부모님은 명문대가 아니더라도 무척 기뻐하셨어요.


그런데 대학생이 되어서도 부모님 속을 썩이게 되었습니다. 

이 글부터는 제가 부모님께 드린 상처들입니다. 기숙사 퇴실, 학고, 사기당함, 대출. 이렇게 많은 일들이 제가 대학생때 저지른 일들입니다. 

그럼에도 매번 일이 생길때마다 변명이나 제 상황에 대해 말할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그저 제가 공부안하고 놀고 수업안가고 사기당하고 대출받으면서 인생을 막살고 있다고 여겨왔습니다. 아마 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하실지 모릅니다. 제 상황을 말씀드릴때마다 다 듣지않고 방에 들어가셨기 때문입니다. 


이런일이 있을때마다 어머니는 외가 친척들에게 힘든 고민들을 상담해왔고 저와는 계속해서 멀어졌습니다. 

외갓집을 갈때마다 어른들은 조용히 저를 불러 타이르셨고, 친척분들은 제가 어머니를 그만 힘들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들이 컸던것 같습니다.

제 마음속엔 저와 대화를 나누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제 얘기를 하는게 어린 마음에 상처가 되었던거같습니다. 부모님 외에 친척들로부터 혼이 났던게 많이 싫었구나 라고 생각도 듭니다.

제가 처음부터 부모님께 좋은 딸이였다면 이런일 자체도 없었을텐데 저에 대한 원망도 매우 큽니다. 


아래 내용은 제가 가족들에게 말하지못했던 그때 당시의 제가 하고싶었던 변명들입니다. 


첫번째로 저는 일학기때 기숙사에서 퇴실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유는 기숙사내에 술 반입이 금지였는데 주말에 친구와 둘이서 기숙사에서 맥주를 마신 다음 남은 맥주를 캐비닛에 넣어두었습니다. 이것을 걸리게 되었고 저와 친구는 어떠한 경고 없이 바로 그 다음날 바로 짐을싸서 나와야했습니다. 부모님께 알려야만하는 상황이었고 어머님이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두번째는 부모님께 상의없이 전과했었고 다음학기에 전과가 정해진 저는 학점을 F를 받아야 성적에 남기지 않고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에 낮은 학점보다 F 가 낫다라는 말을 듣고 저는 전공수업 시험날 출석하지않았습니다. 

선배들 말을 듣고 전과할 수업에 필요한 프로그램 공부를 했고 결국 그 학기는 학고를 받았습니다.

전과 후 학과가 저에게 잘맞았고 지금도 그 전공을 살려 일을 하고 있어, 전과에 대해 후회한적은 없지만 그때 부모님 마음에 상처를 드린건 항상 후회됩니다.


세번째는 사기를 당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기차역에서 한 아주머니께서 무거운짐 옮기는것을 도와달라고 하셔서 짐 옮기는 것을 좀 도와드렸고 잠깐 쉬면서 서로 얘기를 나눴는데 다이어트약 소개였습니다. 알로에 제품으로 기억을 합니다. 일을 도와준 고마움의 표시로 그냥 이제품들을 주고 싶은데 자신도 이것을 팔아야만 한다고하시면서 한박스만 사고 나머지 몇박스는 고마워서 그냥 서비스로 주겠다라고 하시며 구매를 요구하였습니다. 크게 비싸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가격이 거의 몇십만원정도 되었던것 같습니다. 현금이 없다고 한 저에게 아주머니는 요즘은 핸드폰으로도 결제가 된다고 하시고 제 사인을 받고 바로 결제를 진행하셨습니다. 마침 다이어트도 필요했고 잘된일이라고 생각했던것같습니다.

집에들어온 저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이 들었고 어머니께 약의 정체를 들킨후 또 실망 시키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모님 인생에서 가장큰 상처를 남긴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저는 전과를 하면서 DSLR 카메라가 필요했습니다. 앞에서의 일들로 저는 부모님께 뭘 사야한다고 쉽게 말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여쭤봤지만 비싼가격을 알고 한숨만 내쉬셨습니다. 카메라를 굳이 사지않고 선배들에게 빌려도 되고 중고로 물품을 구했어도 되는데 반 친구들이 새 카메라를 모두 가져오는 모습을 보고 학자금 대출중에서 생활비 대출을 받았습니다. 철없이 그당시 가장 비싼 카메라를 구매했던 기억이납니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으로 저는 학자금대출을 받아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부모님께서는 대출금을 매달 갚아 나가셨습니다. 취직후에 갚아도 된다는 조항에 쉽게 생각하고 생에 첫 대출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대출금이 얼마 남았는지 확인해보는 과정에서 이 사실을 알게되었고 이사건은 부모님에 대한 무서움과 저 스스로의 죄책감으로 극단적인 생각까지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저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아버지도 저를 다그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죽다 살아난 느낌이었고 이 이후로의 인생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무슨일이든 최선을 다했고 지난날의 후회를 앞으로 갚아나가겠다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학점도 최우수로 받았고 아르바이트며 과외며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조교일과 과외, 디자인업무 등 내인생에서 다시 없을 바쁜인생을 살았던것 같습니다.

이런 모습과 장학금, 높은 학점들을 보고 부모님께서 기뻐하셨던게 너무 행복했습니다.

외가친척들이 저에게 고마워하고 좋아해주는 모습이 너무 기뻤습니다. 

하지만 제동생은 달랐나봅니다. 



이 이후의 글은 동생과의 불화를 다룬 이야기입니다.

동생말을 빌리자면 저는 평생 부모님 속만 썩이다가 정상적으로 살아간다고 과한 칭찬과 관심이 저에게 가는것이 싫었다고 합니다. 저 때문에 가정이 항상 불행했고 부모님을 너무 힘들게 하는 존재라고 여기는것 같습니다. 동생과 나이 차이가 많이나 저의 상황은 겉으로 봐왔지만 자세하게는 알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이런 상처들을 동생에게 말한적도 없었습니다. 동생이 저와 다르게 매우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거같아요. 다행히 동생은 공부를 곧잘하고 문제를 일으킨적이 없어 맞은 적은 없었습니다.


동생은 제가 부모님께 사랑을 많이 받아 학원도 많이 다니고 저에 대한 지원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의 지원에 대한 성과가 나오지 않아 동생이 학원을 못다닌게 아닐까싶습니다. 이 점은 마음이 아픕니다. 동생이 학원을 그렇게 가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 생각해서 조르지 못했고, 그당시 고3이었던 저는 학원보다 인터넷 강의의 여러 유명한 강사님들을 추천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에게 학원보다 저 인강들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을 하면 저로 인해 학원을 당시 다니지 못했던 동생에 대해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저는 사실 살아오면서 저를 아프지 않게 한사람이 가족중에 딱 둘 동생과 할머니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제 목숨만큼 소중한 존재입니다. 평생 동생과 같이 살고싶어 결혼해서도 동생에게 같이 살기를 계속해서 설득해왔을만큼 저는 동생과 있으면 너무 행복했습니다. 살면서 서로 많이 싸운긴했어도 금방 서로를 이해하고 잘풀면서 서로 더 돈독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족들을 떠나 지금 해외에 살고 있는 제가 더 미울 수 밖에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가족들 힘들때 곁에서 같이 돕지 못하고 혼자 잘먹고 잘살겠다고 이민생활하고 있는 제가 너무 미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동생에겐 저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너무 크고 제가 부모님에 대한 과거의 안좋은 얘기를 하는 것에 있어 자격이 없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건의 발단은 저의 아픈 과거이야기를 어머니께 꺼낸 이후부터 입니다.


고민의 사건은 며칠전 일어난 일입니다. 

사실 근 10년간 방송에서 가정폭력 아동학대관련된 매체들이 많이 방송되었습니다. 

그전엔 다 제 잘못으로 여기고 있었던 상황들이 돌이켜보면 부모님이 나한테 상처를 준거구나 라는 생각으로 많이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은영 박사님께서 어떤상황에서도 훈육을 위한 폭력은 정당하지않다? 이런말도 굉장히 가슴에 꽂혔던거 같아요. 하지만 용기내어 부모님께 어렸을때 사건들을 꺼내서 얘기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저는 방송에서 가정폭력 관련된 사연만 나오면 과거의 아픔이 떠올라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친구들과 혹은 남편에게 나의 과거얘기를 꺼낼때마다 감정이 심하게 폭팔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또 그날이 지나면 괜찮아져서 일상생활하는 건 문제가 되지않았어요. 


그런데 어느날 또 저와 비슷한 상황의 방송을 우연히 보게되었고, 그날은 도저히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인터넷으로 해결방법을 검색해보았고 힘들더라도 부모님께 과거의 상황과 저의 마음을 잘 말씀드리고 서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에 용기를 얻어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말씀드렸습니다. 

이상하게 한번시작한 과거 생각들은 멈추지 않고 더 커져만 갔습니다. 동시에 미움도 더 커져갔습니다. 동생에게 과거에 너무 힘들어서 지금 부모님과 연락하고 싶지 않다는 말까지 해버리게 되었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제 잘못과 부모님의 사랑을 생각한후 다시 동생에게 내가 너무 감정이 격해져서 잘못말했다 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저는 동생에게 무슨일이야? 괜찮아? 이런말을 듣고 싶었던것같습니다.


그렇게 다시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미안하고 말해줘서 고맙다는 말씀에 큰위로를 받고 앞으로의 어머니와 나의 관계가 더 좋아질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었지만 말하길 그래도 잘했구나 하고 잘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어머니와 동생의 통화후 동생은 저에 대한 원망이 더커진것 같습니다. 

동생이 제 연락을 피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저의 서운함을 카톡으로 막 저지른 후에야 연락이 닿았습니다. 저의 이런식의 문자가 동생에겐 매우 싫었던것 같습니다.

동생은 앞으로 저와 다시는 연락하고 지내고 싶지않는다는 것이였습니다. 이유는 앞에 적어놓은 것처럼 저로인해 부모님은 너무 힘들게 살아왔고,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은 오직 저에게만 있었으며 저는 부모님을 떠나 해외에서 살고있으면서 전화로 지난 과거일을 꺼내어 부모님 마음을 또 아프게 하는것이 너무 이기적이고 그것을 또 자신에게 얘기를 하는것도 본인만 생각하고 저지른 일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말을 듣고 마음은 아팠지만 모두 다 맞는 말이기에 제 자신에 대해 또 한번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언니에게 그런일들이 있었구나. 마음이 아프네. 이젠 괜찮아 지면 좋겠다.” 뭐 이런 말들을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마치 답정너 처럼요. 


저는 동생이 대학, 대학원, 취업준비, 부모님과의 관계등 힘들때마다 항상 바로바로 전화받아 고민들어주고 해결해주고 싶어서 매일 동생만 생각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더욱 서운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동생이 제 고민을 들어주고 같이 아파해줄거라고 생각했었나봅니다. 

동생 말대로 제가 동생과 부모님 입장을 좀더 생각하고 배려했다면 이렇게 과거 얘기를 꺼내 가족들을 아프게 만들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남편도 자신이 비슷한상황이라면 그 일을 다시 꺼내어 부모님에 말씀하지 않을것같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많이 자책하게 되네요. 그저 제 상처를 조금 정면으로 바라보고 같이 치유되기를 바랐는데 항상 상황은 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되지 않는것 같습니다.


변명을 하는 습관이 많이 생겨버린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쓸때에도 물어보고 싶은 말만 명료하게 물어보려고 시작하였지만, 제 인생에서 저 혼자 말못해 억울했던 부분들이 많았나봅니다. 

그저 단어들로 제가 항상 평가 되어 살아와서 그런것 같습니다. 징계 학고 사기 대출 등 이런 단어들로 저는 어른들과 가족들에게 평가되어 제 변명을 할수 없이 그저 망나니 인간같은 프레임이 씌어져 살아온것이 마음이 아픕니다. 제 잘못을 부정하는건 아닙니다. 다만 제 상황을 조금만이라도 들어주는 가족이 있었더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은 듭니다. 또 가끔은 어렸을때 저런 폭력들이 나를 남들보다 판단력이 흐린 사람으로 만들어지게 했나라는? 남탓? 으로 생각이 스칠때도 있습니다. 생각이 자라면서 이미 부모님에 대한 원망 또한 자랐을까요.

그래서 그런지 어느 순간부턴 집에 가기 싫어 졌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명절에도 집에 내려가지 않은 적이 많았네요. 친척들과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었겠죠. 또 그 시간을 피하고 싶기도 했던것 같습니다.


제가 동생을 감정적으로 너무 의지하고 사랑해서 그런지 이 아픔이 극복이 안되네요. 이렇게 저희는 절연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저로 인해 마음 아파하는것도, 이제 그만 제 동생도 가족의 아픔에서 하루 빨리 헤어나오면 좋겠습니다.


저와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분들이 계실까요?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할지 어렵습니다. 가족들을 모두 한국에 두고 해외로 떠나와서 상처만 남기고 이렇게 동생과 절연되어버린 상황에서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감정이 올라와서 두서없이 횡설수설 글을 쓰게 되었네요. 몇분이 이글을 보시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부족한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모든 가족들이 후회없이 사랑나누고 행복하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