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올해로 22살인 처자입니다. 2009년 설을 앞두고.. 2년넘게 암투병중이시던 엄마를 하느님 곁으로 보냈습니다. 제가 고3수능준비시절.. 엄마에게 불현듯 원인불명이라는 암이 찾아오면서 저의 엄마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제수능시험날이.. 엄마의 첫번째 수술날이였습니다.. 그날새벽 피를 한바가지 토하시면서도.. 딸년 수능 시험 잘보라고 ..비밀로 하시고 그렇게 서울삼성병원응급실로 몰래 가셨습니다. 전 그날 수능시험치고나서 전화를해보니 수술이 잘되었다는 말만 들었구요.. 일주일뒤... 엄마 생신이라 전 원서고뭐고 대충 정해놓기만하고 서울로 갔습니다. 그때..의사가 아빠와 저에게 했던말.... ..내년 봄을 볼수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아빠와 저 남동생은 부여잡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엄마에겐.. 차마 말을 못드리겟더군요 . 그렇게.. 희망없는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 힘든 항암치료를 이겨내시고 일년반을 더 살았습니다 아주 너무 건강하게.. 하지만 약6달 전부터 허리가 불편하다시는 엄마.. 갑자기 거동이 불편해 지셧고.. 혹시몰라 여의도 성모병원에 모셔봤더니.. ..온몸으로 전이 되셨답니다..이제.. 항암치료 조차 안되고 .. 집으로 .. 모셔가라고 하더군요 ...3개월 길어야 6개월이라고 했습니다. 집으로 모셔와 할수있는방법은 다찾아봤습니다. 병원에서 약도 받고 .. 한의학이 좋다고해서 여러군데 한의사 선생님 모시고와 침도 맞고 뜸도 뜨게 했습니다. 굿도 하고 점쟁이들이 하란대로 모두 했습니다. 그리고.. 좋아지고 계시는거라 믿었습니다.. 몸의 붓기가 빠지고 흉측한 종양들이 점점작아지는것을보면서 전 좋아지는거라 믿었습니다. ... 그렇게 반년을 지냇을까.. 1월 16일.. 그날 갑자기 호흡곤란이 온 엄마를 응급실로 모셨으나.. 차후 괜찮아지시어 17일 토요일에 .. 호스피스 병동으로 모셨습니다. 집에 있을때보다 한결 편안해 하시는 모습을 보고 .. 전 ..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8일 새벽5시 40분,, 빨리 오라는 전화였습니다 엄마 병실로 택시를 타고가는 도중...45분..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 그렇게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임종을 지켰던아빠와 동생은.. 그곳에서 울고있더군요 .. 아직따뜻한 엄마 볼, 손, 다리를 어루만지면서 그렇게 죄송하다고 외쳤습니다. 3일장을 치루면서 어떻게 지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친척들이 제가 울면 엄마가 제가 눈에 밟혀 가지 못하신다하여 .. 눈물 꾹참고있다가 ..입관식과 출관할때는 혼절할때까지 울어버렸습니다. 어떤분들은 말합니다 더 아프지 않고 좋은곳으로 갔으니까 편하게 갔으니까 좋은거라고.. 아니요 . 48의 젊은나이에 자식새끼들의 효도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 딸년 남자친구 한번 보지도 못하고 한창 편하게 노실때 그렇게 아프셔서 고생만하고 가셔서 전 너무 슬픕니다 . 너무 억울합니다 . 왜 저희 엄마가 그러셔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집안곳곳에 엄마 손때가.. 입김이 서려있는데.. 아직도 실감이 안나는데 어떻게 이겨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너무 힘들고 괴롭습니다만... .. 제가 인터넷상에서 이렇게 글을 쓴건.. 다름이 아니라 ,.,. 여러분들이 기도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같이 불효녀가 .. 기도 드리면 좋은곳으로 갈수있으련지..잘모르겠어서.. 기도 많이 드리면 더 좋은곳 더 행복한 곳으로 갈수있다고 해서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저의 엄마 세례명은 소화 데레사.. 본명은 서정숙입니다. 저희 엄마 이제 아프지 말고 ..항상 행복만 가득한 곳으로 가시라고 먼곳 조심해서 가시라고 같이 기도해주세요 . 정말 부탁드립니다. 두서없이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기도 많이 해주세요.. 종교에 상관없이 .. 저희 엄마 더이상 아프지 말라고 꼭 기도해주세요.. 엄마 .. 딸이 많이 사랑하구요 .. 이제는 아프지말고 꼭 행복하게 있어요 나도 나이먹어서 거기 가면 엄마랑 만날수있으니까 나걱정하지말고 편히 가요 사랑해요1
엄마를 하느님 곁으로 보내드렸습니다.
저는 올해로 22살인 처자입니다.
2009년 설을 앞두고..
2년넘게 암투병중이시던 엄마를 하느님 곁으로 보냈습니다.
제가 고3수능준비시절..
엄마에게 불현듯 원인불명이라는 암이 찾아오면서 저의 엄마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제수능시험날이.. 엄마의 첫번째 수술날이였습니다..
그날새벽 피를 한바가지 토하시면서도.. 딸년 수능 시험 잘보라고 ..비밀로 하시고 그렇게 서울삼성병원응급실로 몰래 가셨습니다. 전 그날 수능시험치고나서 전화를해보니 수술이 잘되었다는 말만 들었구요..
일주일뒤... 엄마 생신이라 전 원서고뭐고 대충 정해놓기만하고 서울로 갔습니다.
그때..의사가 아빠와 저에게 했던말.... ..내년 봄을 볼수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아빠와 저 남동생은 부여잡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엄마에겐.. 차마 말을 못드리겟더군요 .
그렇게.. 희망없는항암치료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 힘든 항암치료를 이겨내시고 일년반을 더 살았습니다 아주 너무 건강하게..
하지만 약6달 전부터 허리가 불편하다시는 엄마.. 갑자기 거동이 불편해 지셧고.. 혹시몰라 여의도 성모병원에 모셔봤더니.. ..온몸으로 전이 되셨답니다..이제.. 항암치료 조차 안되고 .. 집으로 .. 모셔가라고 하더군요 ...3개월 길어야 6개월이라고 했습니다.
집으로 모셔와 할수있는방법은 다찾아봤습니다. 병원에서 약도 받고 .. 한의학이 좋다고해서 여러군데 한의사 선생님 모시고와 침도 맞고 뜸도 뜨게 했습니다. 굿도 하고 점쟁이들이 하란대로 모두 했습니다.
그리고.. 좋아지고 계시는거라 믿었습니다.. 몸의 붓기가 빠지고 흉측한 종양들이 점점작아지는것을보면서 전 좋아지는거라 믿었습니다. ...
그렇게 반년을 지냇을까..
1월 16일.. 그날 갑자기 호흡곤란이 온 엄마를 응급실로 모셨으나.. 차후 괜찮아지시어
17일 토요일에 .. 호스피스 병동으로 모셨습니다.
집에 있을때보다 한결 편안해 하시는 모습을 보고 .. 전 ..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8일 새벽5시 40분,,
빨리 오라는 전화였습니다 엄마 병실로
택시를 타고가는 도중...45분..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 그렇게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임종을 지켰던아빠와 동생은.. 그곳에서 울고있더군요 ..
아직따뜻한 엄마 볼, 손, 다리를 어루만지면서 그렇게 죄송하다고 외쳤습니다.
3일장을 치루면서 어떻게 지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친척들이 제가 울면 엄마가 제가 눈에 밟혀 가지 못하신다하여 .. 눈물 꾹참고있다가 ..입관식과 출관할때는 혼절할때까지 울어버렸습니다.
어떤분들은 말합니다 더 아프지 않고 좋은곳으로 갔으니까 편하게 갔으니까 좋은거라고..
아니요 .
48의 젊은나이에 자식새끼들의 효도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
딸년 남자친구 한번 보지도 못하고 한창 편하게 노실때 그렇게 아프셔서 고생만하고 가셔서 전 너무 슬픕니다 . 너무 억울합니다 .
왜 저희 엄마가 그러셔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집안곳곳에 엄마 손때가.. 입김이 서려있는데.. 아직도 실감이 안나는데 어떻게 이겨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너무 힘들고 괴롭습니다만...
.. 제가 인터넷상에서 이렇게 글을 쓴건.. 다름이 아니라 ,.,.
여러분들이 기도를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저같이 불효녀가 .. 기도 드리면 좋은곳으로 갈수있으련지..잘모르겠어서..
기도 많이 드리면 더 좋은곳 더 행복한 곳으로 갈수있다고 해서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저의 엄마 세례명은 소화 데레사.. 본명은 서정숙입니다.
저희 엄마 이제 아프지 말고 ..항상 행복만 가득한 곳으로 가시라고
먼곳 조심해서 가시라고 같이 기도해주세요 .
정말 부탁드립니다.
두서없이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꼭 기도 많이 해주세요.. 종교에 상관없이 .. 저희 엄마 더이상 아프지 말라고 꼭 기도해주세요..
엄마 .. 딸이 많이 사랑하구요 ..
이제는 아프지말고 꼭 행복하게 있어요
나도 나이먹어서 거기 가면 엄마랑 만날수있으니까
나걱정하지말고 편히 가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