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이의 딸[(10)끝]

오경일2004.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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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아이를 출산한 다음 날 아침 그녀가 사라졌다.아이를 출산한 몸으로
말 한마디 없이 편지 한 장만을 남긴 체 그녀는 사라졌다.

그녀는 나병에 감염되었던 것이었다.아니,어린시절 부모를 면회하면서
감염되었으리라 추정되는 나병균이 20여 년 오랜 세월 그녀의 몸 속에
잠복하고 있다가 산달을 한 달여 남겨둔 그녀의 몸에 증상이 나타난 것
이었다.그녀는 모든 걸 숨기고 할머니 댁으로 옮겨 아이를 낳고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나병균이 짧게는 수 개월에서 길게는 40년까지 몸 속
에서 잠복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었다.

나병은 치료할 수 있는 병이었지만 그녀는 죽음을 선택했다.비록 강제
격리되는 일은 없다 할지라도 또 다시 자신의 딸과 나를 비롯한 사람들
과 떨어져 살아야 하고,딸 아이에게 자신이 어린시절 겪었던 그 엄청난
고통을 겪게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눈 앞에서 문둥이 엄마를 보고 눈물흘리며 괴로워 할 딸을 보고싶지
않았고,또한 커가며 자신이 겪었던 문둥이 딸의 고통을 딸 아이에게
되물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딸아이를 문둥이의 딸로 만들고 싶지
않았고,문둥이엄마로서 딸앞에 서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내 가슴 속에서 바람소리만 쒜에...쒜에...요란할 뿐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어쩌면 자기 인생이 그렇게 끝날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쌓여 평생을
살았을지도 모른다.문둥이의 딸로 태어나 문둥이 엄마의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고,문둥이로서 자신이 낳은 딸아이의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평생을
문둥이의 딸로서 고통 속에서 살았고,문둥이가 되어서 외롭게 죽었다.

지금 딸 아이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자라고 있다.물론 아이는 건강하고,나병이
무슨 병인지 조차 모른 체 살고있다.자신의 엄마가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오늘은 그녀의 제삿날 온갖 것 차려 절 두 번에 음복 한 잔으로 사람들은 돌아갔지만
아직 제사는 끝나지 않았다.



지방붙여 귀신부르고
술치고 절 두 번,음복 한 잔에
사람들 다 돌아갔지만
제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
그 어디 쯤에서 나는 너를 기다린다.

지방따위 없어도
나보다 더 슬프게 앉아 있을 너를
분명,나는 느낄 수 있다.

네 한 잔,나 한 잔
술병은 점점 가벼워지는데
네 술잔의 술은 작은 떨림도 없고
침묵만이 우리를 이어주고 있다

고라니 눈망울처럼 까맣던 네 눈에
슬픔 가득하겠지만 떨리는 내 손은 허공을 지날 뿐
이제,더 이상 나는 네 눈물을 닦아줄 수 없다.

망각의 강을 수 없이 건너도 잊지 못할 아픈 기억을 안고
너는 떠나갔지만 나 또한 죽은 체 남겨졌다.
분명,나는 너에게 들어야 할 얘기가 있지만
새삼,그게 무슨 소용이더란 말이냐.

죽어서 영원히 평화를 찾았을 너를
해마다 불러내는 일은 어쩌면 잔인한 짓
이 한 잔으로 나는 나의 몫을 살아야 하고
저승사자처럼 다가온 여명과 함께 너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이제,제사는 마지막이다.
고통의 기억 속으로 더 이상
너를 불러내지 않겠다.

죽어 영원히
사랑을 차지한 이여
부디 편안하여라
제사는 서로에게 잔인한 짓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