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그러니까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난 사람이 참 좋았다. 핸드폰을 보는 시간 또한 지금보다 적었던 것 같다.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이 그때는 무척이나 소중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행복의 기준이 달라진 것 같다. 2년간 사람들의 교류가 거의 끊기면서 내 웃음의 원인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고,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집에서 머리를 올려묶고 핸드폰을 보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주위 사람들을 보면 나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전보다 웃음을 잃었고, 웃음을 잃은 사람들은 누군가를 비난함으로써 즐거움을 얻는다. 자기 자신도 그 ‘누군가‘ 에서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비난이라는 중독에 걸려버렸고, 결국 남과 자신을 헐뜯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실패한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나를 우월하다 여겼고, SNS에 떠도는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내가 초라하다 믿었다.
사랑이 오글거림이 되어버린 지금, 나는 나라도 사랑을 베풀며 살자고 다짐했다. 부모가 아기들에게 사랑을 주듯, 마른 식물에 물을 주듯 사랑을 계속 전해주다 보면 언젠가 사람들도 다시 웃지 않을까. 누군가를 향한 아픈 비난이 아닌 사랑에서 웃음을 찾지 않을까. 이웃과의 활발한 교류까진 아니더라도 서로 보면 반갑게 인사하고, 가끔은 엘리베이터 버튼도 대신 눌러주면서, 편안함이 가득한 삶을 거닐게 되지 않을까.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을 베푼다고 다른 사람도 베풀게 될지도 미지수이다. 하지만 내가 다가감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지기를, 마음이 한 켠이 아주 살짝 움직였기를 바랄 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5년 전, 그러니까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난 사람이 참 좋았다. 핸드폰을 보는 시간 또한 지금보다 적었던 것 같다.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이 그때는 무척이나 소중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지금은 행복의 기준이 달라진 것 같다. 2년간 사람들의 교류가 거의 끊기면서 내 웃음의 원인은 완전히 달라져 버렸고, 사람들과 함께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집에서 머리를 올려묶고 핸드폰을 보는 게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주위 사람들을 보면 나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전보다 웃음을 잃었고, 웃음을 잃은 사람들은 누군가를 비난함으로써 즐거움을 얻는다. 자기 자신도 그 ‘누군가‘ 에서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는 비난이라는 중독에 걸려버렸고, 결국 남과 자신을 헐뜯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실패한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나를 우월하다 여겼고, SNS에 떠도는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내가 초라하다 믿었다.
사랑이 오글거림이 되어버린 지금, 나는 나라도 사랑을 베풀며 살자고 다짐했다. 부모가 아기들에게 사랑을 주듯, 마른 식물에 물을 주듯 사랑을 계속 전해주다 보면 언젠가 사람들도 다시 웃지 않을까. 누군가를 향한 아픈 비난이 아닌 사랑에서 웃음을 찾지 않을까. 이웃과의 활발한 교류까진 아니더라도 서로 보면 반갑게 인사하고, 가끔은 엘리베이터 버튼도 대신 눌러주면서, 편안함이 가득한 삶을 거닐게 되지 않을까.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을 베푼다고 다른 사람도 베풀게 될지도 미지수이다. 하지만 내가 다가감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따뜻해지기를, 마음이 한 켠이 아주 살짝 움직였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