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든 결혼에 대한 생각..

ㅇㅇ20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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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때부터였던거 같아요
엄마아빠처럼 살고싶지 않다
부모님의 사이가 좋았던 기억은 없어요
그렇다고 나빴던 기억도 별로 없는게 일하느라 아빠는 며칠에 한번씩 집에오고 엄마도 타지에서 일하느라 며칠에 한번씩 집에오고 저도 졸업하자 마자 타지에서 일하느라 한두달에 한번 집에 내려가고
네식구 다 모이는건 제가 내려가는 주말이 전부라 부모님 사이가 어땠는지 기억이 안나요

제 성격이 애교있고 다정다감한 타입도 아니고 아빠도 무뚝뚝한 경상도남자 그 자체라 네 식구가 모여도 밥 한끼먹고 각자 방에 들어가서 할거 하고 모여앉아도 대화없이 티비보는게 전부고

몇번해보니 연애도 재미가 없어요 감정소모에 지치고
나름 완벽주의자라 내가 애를 낳아도 완벽하게 키울수 있을까 라는 상상만으로도 피곤하고
가깝던 친구가 힘들게 임신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장애가 있어서 고생하는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저렇게 살 자신은 없다고 느꼈고 내 인생에 애는 없다 라고 스스로 못 박았죠

연애는 재미없고 애 낳을 생각도 없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어느순간부터 비연애 비혼이었어요
못했다고 말해도 상관없어요
못한거든 안한거든 저한테는 별차이 없거든요
외로움도 잘 안타고 집순이라 혼자 먹고 사는것도 행복했고

근데.. 몇년전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사고였고 장례치르는 동안 물 한모금을 못 삼키고 울었어요
그때 문득 아빠한테 미안하더라구요
이 자리에 사위라고 누가 있었으면 아빠가 더 편하게 눈 감았을까 라는 생각
아빠가 그렇게 결혼해라 타령할때 한번쯤 아빠가 없는 이런 순간을 상상이나 해볼걸 하는 생각
순간순간 잠깐 들었던 생각이어서 울다가 까먹고 그랬어요

나이차 많이나는 사촌오빠 딸이 이번에 결혼을 해요
오빠가 그러더라구요 병원에서 갓 태어난 딸을 안아볼때부터 결혼식장에 손잡고 들어가는 순간을 상상했었는데 그런날이 진짜 왔다고
그 얘길 듣는데 또 아빠한테 미안하더라구요
아빠도 그랬을건데..
결혼식장에서 내 손잡고 같이 걷는것도 딸 가진 아빠의 상상중 하나였을텐데
그까짓게 뭐라고 못 이뤄드렸나.. 하는 생각

어느날 엄마 핸드폰을 보는데.. 어떤 사람과 신랑 이라면서 문자를 주고받더라구요
큰 정없이 살았다지만 그래도 40여년을 같이 산 남편 죽은지 얼마나 됐다고 딴놈이랑 신랑각시 하고 있나

그러다 어느순간 엄마도 가고나면 동생이랑 나랑 세상에 둘뿐인데.. 연락하고 만나지 않아도 엄마가 있고 동생이 있다는게 나한테 얼마나 든든한지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이렇게 혼자 늙어서 언젠가 엄마 나이가 됐을때의 내 자신이 갑자기 가엽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냥 늙어서 내옆을 지켜줄 남자 하나 만나서 대충 결혼이나 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지금 외롭지는 않아요
근데 순간순간 가슴에 얼음송곳이 찔리는것처럼 시리게 저릿할때가 있는데 이게 외로움인가.... 싶긴해요

크게 사랑이라는 감정없이 밤에 불꺼진 집에 혼자 집에 있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존재
무슨일이 생겼을때 눈치보지 않고 바로 전화할수 있는 존재가 있으면 나중이 조금은 덜 쓸쓸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전히 혼자인게 좋지만 가끔은 밤이 무섭고 문밖이 무섭고 지금은 아픈곳이 없으지만 혹시라도 아플지도 모를 날들이 무섭고

이런 마음과 감정으로 누군가랑 같이 살고싶다는 생각이 드는것도 아직 철이 안 든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