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랑 제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입니다. 저희요? 흔히 말하는 찌질 이었어요. 공부는 안하는데 말썽도 안 피우고 하는 게 없으니까... 소희 잘나가는 아이들이 찌질 이라 하더군요. 그래도 맞고 다니지 않았어요. 전 순한 편인데 친구는 알아주는 깡녀라 1진 아이들도 함부러 손 못데요.. 기분 흐린날은 아주 무서워요... 단발령인데도 머리 허리까지 기르고 기분 따라 웨이브 넣고 그래도 선생님들도 못 건들었어요. 전 머리 기를래요. 공부도 안하니까 예쁘기라도 해야죠. 모여서 삥뜯고 술먹고 담배피우고 피부가 싫어 한다고 피부 관리하겠데요 청결한 생활으로. 담배피우면 그 독이 10년 이상 이라는데 막 경고하면서 제 담배도 밞던친구... 1진 아이들이 지 밑으로 안 들어온다고 괴롭히면 참다 참다 손봐주고 학생부가서 울어주면 ... 그 큰 눈에 예쁜 아이가 울면 먹어 주었나봐요. 나올 땐 웃고 나와요. “나 연기학원도 다녔었다?” “엄마가 맞고 다니지 말라는데 학생부는 못온데서... 어쩔수 없어... ” 그래도 졸업 할때까진 전 편했으니까요. 착하고 맘 약하고 잘 울고 여린데 그 아이들 입에서 너네 엄마아빠 짱깨라며? 넌 짱깨 딸이네? 어, 맞아. 그래서 뭐? 먹고 싶으면 와 나 탕수육 짜장면 다 잘만들어... 다른 아이들은 나랑 친해지고 싶다던데? 공짜로 다 제공되는거 아니냐며... 참나. 천박하다고. 짱깨년아. 너도 그거 물려받음 딱이네..ㅅㅂ... 왕복 싸대기를 처음 구경하던 순간이었죠. 중3때 제 친구에게 담임이 찾아가서 부모님께 조금만 공부시켜 인문계 보내라고 사정 했답니다. 그런데 제 친구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데? 라며 말았죠. 나 실업계 갈 거야. 제 친구는 아버지 사업 실패로 예고진학도 미술도 다 손 놓아야 했습니다. 어린 생각에 집에 돈이 많으니까 적당히 물려받아 살려고 했데요. 부모님도 공부는 오빠가 하니까 깨끗하고 예쁘게만 크라고 하고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 방황하던 중 사업 실패에도 불구하도 바로 다음날 큰 사업 하시던 부모님께서 중국집 주방장 배달부장이 되셔서 열심히 사는 모습에 엇나 갈 수 없었답니다. 제 친구는 실업계에 갔습니다. 전 따라 갔고요. 친구는 쳐다보지도 콧방귀도 안 뀌었지만 제 친구 인기 많았는데 이때쯤 남자 아이들이 다 싫어하던데요. 이유는 실업계가면 다 걸래다... 공순이 되어서 공돌이 만나라던, 이 시끄러운 소리는 “내 손으로 뺨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안 닥칠래? 왕복 싸대기 날아가기 전에...” 과격한 이 소리에 찍 소리도 안 나왔습니다. 전 제가 좋아하던 남자아이가 그런 소리 하니까 죽고 싶었어요 친구는 속상해 펑펑 울던 제게 귀띔 했습니다. 너 우는 것도 사치야... 내가 왜 실업계 갈 생각인지 알아? 나 공부하기 싫어 인문계가서 대학 갈 자신없어...ㅠㅠ 학교 갔다와서 엄마 일 도와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고, 야자도 끔찍하고 난 피부를 위해서 푹 자주고 잘 먹어주고 인생 편하게 살어 뭘 그렇게 수명까지 줄이면서 살어? 왜 울어? 쟤별로야. 비쥬얼 안되는건 용서해도 비젼 없는건 용서 못해. 돈 많아야 된다는 것 아니지만 남자보는 눈 영 아니다. 제 눈엔 여전히 백마 탄 왕자님인데 말이죠. 인생 코앞만 보지 말고 3년 후를 약속해. 그때 가서 한소리 해 주자! 너 대학 어디 갔어? 넌 아직도 아기 같다... 여긴 대학도 더 쉽게 가고, 난 집안사정 더 안 좋으면 대기업 취직할거야. 그 나쁜 환경에 물들지 않을 너 색깔만 강하면 할 수 있어 개나 짖는 소리에 왜 울어? 그날 이후로 친구를 따라 갔습니다.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했고 엄마라고 물렀어요. 친구들 사이에서도 별명이 엄마... 잔소리하고 학교 안나오면 "학교와 심심해..." 이러면서 맞기전에 가야했어요... 진짜 엄마보다 더 무서웠거든요. 밥도 못싸오고 대충 점심은 빵으로 떼우던 제게 장학금 받는 이 친구는 식권도 끊어주고 중국집 요리도 만들어왔어요.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은 가게 데려가서 꼭 외식 시켜줬죠. 솔직히 어머니가 만든게 더 맛있는데 친구는 꼭 자기가 만들어 주겠다면서 손수 만들어 주었어요. 이 친구 실업계 가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어요. 제게도 늘 노트정리 복사 다 해주고... 학교 다닐 땐 뭐하고 싶은지 많이 의논 했습니다. 전 간호과에가 여기 시골에 남았고 제 친구는 서울로 치위생과에 갔습니다. 의료직을 택한건... 전... 친구따라서 좋을거 같으니까. 친구는 수능을 너무 보고 싶어 했는데 수능준비는 말도 못 꺼냈더군요. 쟤네 왜 이렇게 목아지가 뻣뻣해? 인문계 어중간이보다 실업계 1등이 현명하다고 생각해 후회안해. 적어도 내 주제는 아니까...나 날라리 아닌데...날라리 정의가 뭐야? 였어요. 상고날라리네? 이랬었거든요 인문계 아그들이...엄마들 욕심 자식들 인문계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 놓으면 자기 자식도 그런마냥 흐뭇해 하시는데 3년후엔 울게되죠... 저희 무시하던 어중간한 시골인문계생들은 저희보다 좋은대학 거의 못갔고요. 제 친구는 젤 얄미운 대학 다 떨어진 아이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대학 어디갔어? 맘 속으로요... 자기가 그런말로 상처 받아서 못하겠데요. 제 친구 아버지는 큰 사업 10년만에 재기 하셨고 친구는 교수하고 싶어서 공부해요. 전 새내기 간호사입니다. 실업계에 대한 편견 어떠세요? 우린 정말 열심히 했다구요! 물론 별꼴 다 봤습니다. 동창들 20살 또래만나 애엄마 된 아이도 많고, 교복입은 친구들이 남자 친구랑 손잡고 다님 너무 예뻤는데 그걸 못했네요. 친구랑 누가 우리한테 말걸면 대 환영해주자.! 이성친구는 못되어도 동성 친구처럼 이라도 잘 지내고 싶어 ㅠ-ㅠ 엄마 고마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열악하고 흔들리는 환경에서도 잘 자라준 너가 대견하다. 엄마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은인 똑똑한 울 엄마 !앞으로도 다 잘되길 바래! 요즘은 뭐하고 사는지 연락이 안돼요! 전국수석하고 싶어했는데 제가 알아보니까 못해서 많이 속상한가봐요.우울해서 점적한 친구에게 큰 용기를 주세요!! 그래도 항상 노력 만큼은 넌 전국 수석이었다!
아버지사업실패에도꿋꿋하게이겨낸내친구
저랑 제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입니다.
저희요? 흔히 말하는 찌질 이었어요.
공부는 안하는데 말썽도 안 피우고 하는 게 없으니까...
소희 잘나가는 아이들이 찌질 이라 하더군요.
그래도 맞고 다니지 않았어요.
전 순한 편인데 친구는 알아주는 깡녀라
1진 아이들도 함부러 손 못데요..
기분 흐린날은 아주 무서워요...
단발령인데도 머리 허리까지 기르고
기분 따라 웨이브 넣고 그래도 선생님들도 못 건들었어요.
전 머리 기를래요. 공부도 안하니까 예쁘기라도 해야죠.
모여서 삥뜯고 술먹고 담배피우고 피부가 싫어 한다고
피부 관리하겠데요 청결한 생활으로.
담배피우면 그 독이 10년 이상 이라는데 막 경고하면서 제 담배도 밞던친구...
1진 아이들이 지 밑으로 안 들어온다고 괴롭히면
참다 참다 손봐주고 학생부가서 울어주면 ...
그 큰 눈에 예쁜 아이가 울면 먹어 주었나봐요.
나올 땐 웃고 나와요. “나 연기학원도 다녔었다?”
“엄마가 맞고 다니지 말라는데 학생부는 못온데서... 어쩔수 없어... ”
그래도 졸업 할때까진 전 편했으니까요.
착하고 맘 약하고 잘 울고 여린데 그 아이들 입에서
너네 엄마아빠 짱깨라며? 넌 짱깨 딸이네?
어, 맞아. 그래서 뭐? 먹고 싶으면 와 나 탕수육 짜장면 다 잘만들어... 다른 아이들은 나랑 친해지고 싶다던데? 공짜로 다 제공되는거 아니냐며...
참나. 천박하다고. 짱깨년아. 너도 그거 물려받음 딱이네..ㅅㅂ...
왕복 싸대기를 처음 구경하던 순간이었죠.
중3때 제 친구에게 담임이 찾아가서 부모님께
조금만 공부시켜 인문계 보내라고 사정 했답니다.
그런데 제 친구는 공부를 왜 해야 하는데?
라며 말았죠. 나 실업계 갈 거야.
제 친구는 아버지 사업 실패로 예고진학도 미술도
다 손 놓아야 했습니다.
어린 생각에 집에 돈이 많으니까 적당히 물려받아 살려고 했데요.
부모님도 공부는 오빠가 하니까 깨끗하고 예쁘게만 크라고 하고요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 방황하던 중
사업 실패에도 불구하도 바로 다음날 큰 사업
하시던 부모님께서 중국집 주방장 배달부장이 되셔서
열심히 사는 모습에 엇나 갈 수 없었답니다.
제 친구는 실업계에 갔습니다.
전 따라 갔고요. 친구는 쳐다보지도 콧방귀도 안 뀌었지만
제 친구 인기 많았는데 이때쯤 남자 아이들이 다 싫어하던데요.
이유는 실업계가면 다 걸래다...
공순이 되어서 공돌이 만나라던, 이 시끄러운 소리는
“내 손으로 뺨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안 닥칠래?
왕복 싸대기 날아가기 전에...” 과격한 이 소리에 찍 소리도 안 나왔습니다.
전 제가 좋아하던 남자아이가 그런 소리 하니까 죽고 싶었어요
친구는 속상해 펑펑 울던 제게 귀띔 했습니다.
너 우는 것도 사치야...
내가 왜 실업계 갈 생각인지 알아?
나 공부하기 싫어 인문계가서 대학 갈 자신없어...ㅠㅠ
학교 갔다와서 엄마 일 도와서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고,
야자도 끔찍하고 난 피부를 위해서 푹 자주고 잘 먹어주고
인생 편하게 살어 뭘 그렇게 수명까지 줄이면서 살어?
왜 울어? 쟤별로야.
비쥬얼 안되는건 용서해도 비젼 없는건 용서 못해.
돈 많아야 된다는 것 아니지만 남자보는 눈 영 아니다.
제 눈엔 여전히 백마 탄 왕자님인데 말이죠.
인생 코앞만 보지 말고 3년 후를 약속해.
그때 가서 한소리 해 주자! 너 대학 어디 갔어?
넌 아직도 아기 같다...
여긴 대학도 더 쉽게 가고, 난 집안사정 더 안 좋으면 대기업 취직할거야.
그 나쁜 환경에 물들지 않을 너 색깔만 강하면 할 수 있어
개나 짖는 소리에 왜 울어?
그날 이후로 친구를 따라 갔습니다.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했고 엄마라고 물렀어요.
친구들 사이에서도 별명이 엄마...
잔소리하고 학교 안나오면 "학교와 심심해..."
이러면서 맞기전에 가야했어요... 진짜 엄마보다 더 무서웠거든요.
밥도 못싸오고 대충 점심은 빵으로 떼우던 제게
장학금 받는 이 친구는 식권도 끊어주고
중국집 요리도 만들어왔어요.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은 가게 데려가서
꼭 외식 시켜줬죠. 솔직히 어머니가 만든게 더 맛있는데 친구는 꼭
자기가 만들어 주겠다면서 손수 만들어 주었어요.
이 친구 실업계 가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어요.
제게도 늘 노트정리 복사 다 해주고...
학교 다닐 땐 뭐하고 싶은지 많이 의논 했습니다.
전 간호과에가 여기 시골에 남았고 제 친구는 서울로 치위생과에 갔습니다.
의료직을 택한건... 전... 친구따라서 좋을거 같으니까.
친구는 수능을 너무 보고 싶어 했는데 수능준비는 말도 못 꺼냈더군요.
쟤네 왜 이렇게 목아지가 뻣뻣해? 인문계 어중간이보다 실업계 1등이 현명하다고 생각해 후회안해. 적어도 내 주제는 아니까...나 날라리 아닌데...날라리 정의가 뭐야? 였어요. 상고날라리네? 이랬었거든요 인문계 아그들이...엄마들 욕심 자식들 인문계에 공부 잘하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 놓으면 자기 자식도 그런마냥 흐뭇해 하시는데 3년후엔 울게되죠...
저희 무시하던 어중간한 시골인문계생들은 저희보다 좋은대학 거의 못갔고요.
제 친구는 젤 얄미운 대학 다 떨어진 아이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대학 어디갔어?
맘 속으로요... 자기가 그런말로 상처 받아서 못하겠데요.
제 친구 아버지는 큰 사업 10년만에 재기 하셨고 친구는 교수하고 싶어서 공부해요.
전 새내기 간호사입니다.
실업계에 대한 편견 어떠세요? 우린 정말 열심히 했다구요!
물론 별꼴 다 봤습니다. 동창들 20살 또래만나 애엄마 된 아이도 많고,
교복입은 친구들이 남자 친구랑 손잡고 다님 너무 예뻤는데 그걸 못했네요.
친구랑 누가 우리한테 말걸면 대 환영해주자.!
이성친구는 못되어도 동성 친구처럼 이라도 잘 지내고 싶어 ㅠ-ㅠ
엄마 고마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열악하고 흔들리는 환경에서도 잘 자라준 너가 대견하다.
엄마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은인 똑똑한 울 엄마 !앞으로도 다 잘되길 바래!
요즘은 뭐하고 사는지 연락이 안돼요!
전국수석하고 싶어했는데 제가 알아보니까 못해서 많이 속상한가봐요.
우울해서 점적한 친구에게 큰 용기를 주세요!!
그래도 항상 노력 만큼은 넌 전국 수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