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순종하려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내 멋대로 해석해서 죄된 나의 상태 그 자체로 귀에 좋은 소리만 뽑아 들으려 하기 때문이다
삶의 사건들과 고통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의 죄악된 상태들을 알리시고 깨부수시고 주님 품으로 인도하려 하시는데
영혼의 목마름이 없어 내가 깨지고 고쳐져야할 부분은 보이지 않고, 나 정도면 괜찮은 존재지. 라는 생각으로 점철되어
마음의 왕좌에 주님이 앉아계시지 않고 여전히 내가 주인된 채 주님 위에,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한 채 살아가고 있는 모습
신앙도 내가 주목받고 싶고 열심있어보이고 싶어 이용하는가 정말 상한 심령으로 예수를 찾는 일이 있는가?
교리 중에서도 사랑,은혜만 뽑아 쓰고 하나님의 공의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나마의 사랑, 은혜라는 것도 날 사랑하면 내가 원하는대로 해줘야한다며 왜곡되게 해석한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신앙행태.
정말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기준되어 병든 영혼의 상태를 깨달아 주께 온전히 의탁하도록 인도해야 하는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관계보다는 내 입맛대로 구워삶고 싶고 나에게 무엇이 이득이지 재고 계산하면서도 계산 당하기는 싫고
그저 사람 눈치보며 영혼없이 목사 비위 맞추기, 사람 귀에 듣기 좋은 소리, 넌 잘하고 있어 넌 최고야 등의 값싼 위로가 전부가 된 작금의 신앙행태
사랑 안에서 바른 말을 하고 차라리 욕을 먹을지언정 진실을 보고 눈을 뜨게 해라.
나는 지금 어떤 존재의 눈치를 보며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눈치를 보며 하나님께 물으며 살고 있다면 이게 바로 코람데오의 삶이다.
신적 권능이 있으신 예수께서도 원컨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최종에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로 흘러갔다.
그리고 그런 진정한 나의 죽어짐이 없다면 부활이라는 사건도 있을 수 없다.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아이를 키울 때조차 잘못을 따끔하게 가르치지 않으면 금쪽이로 자라는 걸 알면서도
왜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대할 때는 인격적 관계가 아닌 내 도깨비방망이, 수행비서 쯤으로 생각하며 아버지의 뜻보단 내 마음대로 다 해달라는 무속신앙으로 변질시켜 버리는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말만 따라한다고 따르는게 아니다
아버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 어떤 관계도 아름답게 맺을 수 없다
그분의 회초리가 징벌이 아닌 사랑하는 자녀에 대한 훈계로, 죽음을 지나 부활의 기쁨 구원의 감격을 느끼게 하시는 통로로 여겨지고 감사하게 될 때 내 영혼의 진정한 자유함이 임하게 된다
인생의 어떤 고난도 이길 힘이 생기고 멀리 보는 안목이 생긴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확고한 정체성으로,
정말 신이 있다면 니 인생이 왜 이래? 라는 왜곡된 시선의 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꺼이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인도하심을 따라 그 분의 뜻을 구하게 되고 그 길을 진정 따르게 된다
소위 말하는 이거 없으면 안돼의 이거가 (돈 외모 조건 건강 환경 등) 인가 예수인가?
인생의 고통 앞에 나는 가망없는 나 자신을 붙들고 내 뜻대로 이뤄내라 떼쓰는 자인가 그 분을 찾고 그 분을 느끼고 그 분의 뜻을 구하며 그 분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그 분을 따라 살아내는 자인가
말씀앞에 자신을 비추고 처절하게 무너지는 자기 부인과 죽음의 단계가 없다면 부활도 없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신을 방패 삼아 내가 잘되고 내가 높아지고 내가 대접받는 것이 아니다
매일매일 나의 삶을 말씀 앞에 점검해보라
하루라도 주님 곁에서 떨어진 날은 그저 죄악된 나 자신 그 자체일 뿐이다
오직 주님만이 죄를 이길 힘이시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분을 붙잡는 것 외엔 없다
신앙에 힘이 없는 이유
주님의 말씀을 내 멋대로 해석해서 죄된 나의 상태 그 자체로 귀에 좋은 소리만 뽑아 들으려 하기 때문이다
삶의 사건들과 고통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나의 죄악된 상태들을 알리시고 깨부수시고 주님 품으로 인도하려 하시는데
영혼의 목마름이 없어 내가 깨지고 고쳐져야할 부분은 보이지 않고, 나 정도면 괜찮은 존재지. 라는 생각으로 점철되어
마음의 왕좌에 주님이 앉아계시지 않고 여전히 내가 주인된 채 주님 위에,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한 채 살아가고 있는 모습
신앙도 내가 주목받고 싶고 열심있어보이고 싶어 이용하는가 정말 상한 심령으로 예수를 찾는 일이 있는가?
교리 중에서도 사랑,은혜만 뽑아 쓰고 하나님의 공의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나마의 사랑, 은혜라는 것도 날 사랑하면 내가 원하는대로 해줘야한다며 왜곡되게 해석한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신앙행태.
정말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기준되어 병든 영혼의 상태를 깨달아 주께 온전히 의탁하도록 인도해야 하는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관계보다는 내 입맛대로 구워삶고 싶고 나에게 무엇이 이득이지 재고 계산하면서도 계산 당하기는 싫고
그저 사람 눈치보며 영혼없이 목사 비위 맞추기, 사람 귀에 듣기 좋은 소리, 넌 잘하고 있어 넌 최고야 등의 값싼 위로가 전부가 된 작금의 신앙행태
사랑 안에서 바른 말을 하고 차라리 욕을 먹을지언정 진실을 보고 눈을 뜨게 해라.
나는 지금 어떤 존재의 눈치를 보며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눈치를 보며 하나님께 물으며 살고 있다면 이게 바로 코람데오의 삶이다.
신적 권능이 있으신 예수께서도 원컨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최종에는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로,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로 흘러갔다.
그리고 그런 진정한 나의 죽어짐이 없다면 부활이라는 사건도 있을 수 없다.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아이를 키울 때조차 잘못을 따끔하게 가르치지 않으면 금쪽이로 자라는 걸 알면서도
왜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대할 때는 인격적 관계가 아닌 내 도깨비방망이, 수행비서 쯤으로 생각하며 아버지의 뜻보단 내 마음대로 다 해달라는 무속신앙으로 변질시켜 버리는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말만 따라한다고 따르는게 아니다
아버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그 어떤 관계도 아름답게 맺을 수 없다
그분의 회초리가 징벌이 아닌 사랑하는 자녀에 대한 훈계로, 죽음을 지나 부활의 기쁨 구원의 감격을 느끼게 하시는 통로로 여겨지고 감사하게 될 때 내 영혼의 진정한 자유함이 임하게 된다
인생의 어떤 고난도 이길 힘이 생기고 멀리 보는 안목이 생긴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확고한 정체성으로,
정말 신이 있다면 니 인생이 왜 이래? 라는 왜곡된 시선의 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꺼이 좁은 문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인도하심을 따라 그 분의 뜻을 구하게 되고 그 길을 진정 따르게 된다
소위 말하는 이거 없으면 안돼의 이거가 (돈 외모 조건 건강 환경 등) 인가 예수인가?
인생의 고통 앞에 나는 가망없는 나 자신을 붙들고 내 뜻대로 이뤄내라 떼쓰는 자인가 그 분을 찾고 그 분을 느끼고 그 분의 뜻을 구하며 그 분 한분만으로 만족하며 환경에 지배당하지 않고 그 분을 따라 살아내는 자인가
말씀앞에 자신을 비추고 처절하게 무너지는 자기 부인과 죽음의 단계가 없다면 부활도 없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신을 방패 삼아 내가 잘되고 내가 높아지고 내가 대접받는 것이 아니다
매일매일 나의 삶을 말씀 앞에 점검해보라
하루라도 주님 곁에서 떨어진 날은 그저 죄악된 나 자신 그 자체일 뿐이다
오직 주님만이 죄를 이길 힘이시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분을 붙잡는 것 외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