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행복을 가장 우선시 해야 하는 시대는 바로 지금이지 않을까. 왜냐하면, 상대적 박탈감도 오늘날 물론 매우 크거니와, 우리의 한계와 우리의 신체능력은 한계가 명확히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질적인 가치보다 행복을 가장 큰 우선순위에 둔다. 자신의 능력을 잘 알기에... 돈을 그정도 밖에 못 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말이다. 그렇다. 여기에다 악신이지만, 신이 있음이 너무나 분명하기에, 물질적인 것은 원하는만큼 가질수도 없으며, 우리의 능력에 있어서도 돈에 있어서만큼은 분명한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 철납으로 비석에 새길만큼 너무나 분명하다. 무엇보다 신을 가장 1위와 2위의 우선순위에서 낮추어 버릴 이상한 물질이나 정신은 없다는 것은 다 알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유독 다른 나라에비해 신을 믿는 기질이 너무나 확실하고 또 분명하다. 무엇보다 신이 밝혀졌다는 것은 너무큰 반전을 가능케하는 자신의 비참한 신세를 획기적으로 바꿀 치명적인 빠르기의 여포의 적토마에 비길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신이 밝혀졌다면, 가장 우선 순위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신이다. 그뿐이다. 그 이유로는 사후세계를 인간이 아닌 신이 장악하고 또한 주관한다로 꼭 집어 말할 수 있으니까. 신이 사후세계를 지배한다는 사실. 이 하나만으로 현재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뒤집어 버릴 파괴력이 있다. 신이 있다면,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행복을 예를 들면, 우리는 물질 즉,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초강대국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연봉 6000만원이상만 번다면, 그 이상의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는 돈이 더 이상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미국의 연구결과에 따른다. 연봉 6000만원이 한계점이다. 6000만원이나 6000만원이상 1억5천이나, 20억이나, 500억이나 나중에는 연봉 6000만원이라는 일정한 액수만 초과해버린다면 돈은 액수와 관계없이 행복의 정도는, 다 똑같아 진다는 얘기가 된다. 그 전까지는 바둥바둥 벌려고만 하는 이유로도, 매우 많은 사람들이 돈의 액수가 행복인 줄 알고 애를 쓰지만, 정작 실제로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의 연봉 6000만원이상이 자신의 연봉이 되면 생각과는 달리 더 이상 돈에 집착하지 않는다. 연봉 6000만원 이상에서는 돈이 더 이상 행복을 주는 물질이 아닌 존재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왜냐하면 연봉 6000만원이상을 가진 자가 소수이기 때문이다. 돈을 1년에 6천이상 벌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나 돈에 대해 환상을 가득 품게 만들기 마련이고, 자격지심과 기타 등등 모든 것과 행복을 돈에 초점을 맞추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과연 돈이 답인가. 그런데 돈많은 사람들은 왜 행복해 하지 않는가. 돈이 많은 사람들은 다 행복해야 하는데, 소수만 행복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행복의 두가지 조건이 최근에 명확히 밝혀졌는데, 첫 번째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느냐”는 것과 두 번째는 “자존감이 높으냐”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이 두가지 조건이 “진짜 참된 행복의 조건”이란 말이다. 좋은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과,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는다는 것이 행복의 가장 큰 두가지 조건이라고, 행복에 관한 책에서는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할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만을 안다면 행복해 질수가 절대 없다. 나만을 알지 않으려면 남을 도울줄 알고, 더불어 살아야 하며, 그러한 종교로는 하느님을 알아서,(부처님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종교가 참된 행복을 알려주는 종교가 되겠다. 남의 눈치를 안보려면은 자존감이 높아야 하는데, 눈치를 안보는 삶도 한국에서는 찾아 볼수가 없다. 그래서 행복해 질 수가 없는 행복은 거의 바닥의 하위권에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인 것이다. 외국에서는 가치관이 한국과는 상당히 달라서 행복한 사람이 더러 많이 존재하는 반면에, 한국에서는 남의 눈치를 살피느라, 행복한 사람을 더더욱 찾아볼수 없다. 자신도 불행에 지치고 힘들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느님을 믿는 삶, 하느님을 오로지 삶의 중심에 두어서 사는 삶은, 남을 도와서 좋은 사람이 될수 있으며,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들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이로서 첫 번째 조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충족되는 순간이다.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되었다. 두 번째 조건이 남의 눈치를 안보려면, 하느님을 오로지 삶의 가장 우선순위에 둔다면, 남의 눈치도 안보며 살아가는 삶이 저절로 완성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데, 누구의 눈치를 보는가. 이를 개신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그들의 행복함은 어느 사람보다도 월등히 높다. 한국에서도 말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연구결과가 맞아 들었다. 이것은 개신교인들의 진정으로 남을 도와서 그리고 하느님을 삶의 가장 위에 둠으로써, 행복해하는 웃음에서 찾아볼수 있지 않은가. 이렇게 자존감이 높아짐으로 두 번째 조건도 충족이 되었다. 행복의 두가지조건은, 정답은 하느님이었다. 1
(상)신이 정말 있다면, 돈보다는 행복이다.
우리가 행복을 가장 우선시 해야 하는 시대는
바로 지금이지 않을까.
왜냐하면, 상대적 박탈감도 오늘날 물론 매우 크거니와,
우리의 한계와 우리의 신체능력은 한계가
명확히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질적인 가치보다
행복을 가장 큰 우선순위에 둔다.
자신의 능력을 잘 알기에...
돈을 그정도 밖에 못 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말이다.
그렇다. 여기에다 악신이지만, 신이 있음이 너무나 분명하기에,
물질적인 것은 원하는만큼 가질수도 없으며,
우리의 능력에 있어서도 돈에 있어서만큼은
분명한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
철납으로 비석에 새길만큼
너무나 분명하다.
무엇보다 신을 가장 1위와 2위의 우선순위에서 낮추어 버릴
이상한 물질이나 정신은 없다는 것은 다 알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유독 다른 나라에비해
신을 믿는 기질이 너무나 확실하고 또 분명하다.
무엇보다 신이 밝혀졌다는 것은 너무큰 반전을 가능케하는
자신의 비참한 신세를 획기적으로 바꿀 치명적인 빠르기의
여포의 적토마에 비길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신이 밝혀졌다면,
가장 우선 순위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신이다. 그뿐이다.
그 이유로는 사후세계를 인간이 아닌 신이 장악하고 또한 주관한다로
꼭 집어 말할 수 있으니까.
신이 사후세계를 지배한다는 사실.
이 하나만으로 현재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뒤집어 버릴 파괴력이 있다.
신이 있다면,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행복을 예를 들면, 우리는 물질 즉,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초강대국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연봉 6000만원이상만 번다면, 그 이상의 돈을 버는 사람들에게는
돈이 더 이상 행복을 주지 않는다는 미국의 연구결과에 따른다.
연봉 6000만원이 한계점이다.
6000만원이나 6000만원이상 1억5천이나, 20억이나, 500억이나
나중에는 연봉 6000만원이라는 일정한 액수만 초과해버린다면
돈은 액수와 관계없이 행복의 정도는,
다 똑같아 진다는 얘기가 된다.
그 전까지는 바둥바둥 벌려고만 하는 이유로도,
매우 많은 사람들이 돈의 액수가 행복인 줄 알고 애를 쓰지만,
정작 실제로 돈을 많이 가진 사람들의 연봉 6000만원이상이
자신의 연봉이 되면 생각과는 달리
더 이상 돈에 집착하지 않는다.
연봉 6000만원 이상에서는
돈이 더 이상 행복을 주는 물질이 아닌 존재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왜냐하면 연봉 6000만원이상을 가진 자가
소수이기 때문이다.
돈을 1년에 6천이상 벌어본적이 없는 사람들이나
돈에 대해 환상을 가득 품게 만들기 마련이고,
자격지심과 기타 등등 모든 것과 행복을
돈에 초점을 맞추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과연 돈이 답인가. 그런데 돈많은 사람들은 왜 행복해 하지 않는가.
돈이 많은 사람들은 다 행복해야 하는데,
소수만 행복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행복의 두가지 조건이 최근에 명확히 밝혀졌는데,
첫 번째는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느냐”는 것과
두 번째는 “자존감이 높으냐”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이 두가지 조건이
“진짜 참된 행복의 조건”이란 말이다.
좋은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과,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는다는 것이
행복의 가장 큰 두가지 조건이라고,
행복에 관한 책에서는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좋은 사람과 함께 할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만을 안다면 행복해 질수가 절대 없다.
나만을 알지 않으려면 남을 도울줄 알고, 더불어 살아야 하며,
그러한 종교로는
하느님을 알아서,(부처님이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종교가
참된 행복을 알려주는 종교가 되겠다.
남의 눈치를 안보려면은 자존감이 높아야 하는데,
눈치를 안보는 삶도 한국에서는 찾아 볼수가 없다.
그래서 행복해 질 수가 없는 행복은
거의 바닥의 하위권에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인 것이다.
외국에서는 가치관이 한국과는 상당히 달라서
행복한 사람이 더러 많이 존재하는 반면에,
한국에서는 남의 눈치를 살피느라,
행복한 사람을 더더욱 찾아볼수 없다.
자신도 불행에 지치고 힘들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느님을 믿는 삶, 하느님을 오로지 삶의 중심에 두어서 사는 삶은,
남을 도와서 좋은 사람이 될수 있으며,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들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이로서 첫 번째 조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충족되는 순간이다.
첫 번째 조건이 충족되었다.
두 번째 조건이 남의 눈치를 안보려면,
하느님을 오로지 삶의 가장 우선순위에 둔다면, 남의 눈치도 안보며 살아가는 삶이
저절로 완성되는 것이다.
하느님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는데, 누구의 눈치를 보는가.
이를 개신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그들의 행복함은
어느 사람보다도 월등히 높다.
한국에서도 말이다.
초강대국 미국의 연구결과가 맞아 들었다.
이것은 개신교인들의 진정으로 남을 도와서
그리고 하느님을 삶의 가장 위에 둠으로써,
행복해하는 웃음에서 찾아볼수 있지 않은가.
이렇게 자존감이 높아짐으로
두 번째 조건도 충족이 되었다.
행복의 두가지조건은,
정답은 하느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