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0년차, 9살된 아들을 둔 주부입니다. 지난 추석에 이어 이번 설날에도 시댁에 안갔습니다. 친정에선 모르구요.. 남편은 아까 아들 데리고 시댁에 내려갔습니다. 저는 남편이 너무나 저와 결혼하고 싶어해서 어떨결에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직장도 변변찮았고 대학에 다니는 동생들이 있었고 엄마까지 식당일 하시면서 동생들 학비를 대는 처지라서 도저히 결혼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보다 7살이 많은 제 남편은 저 아니면 절대로 안된다고 했고 결국 당시 나름 탄탄한 중견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대출을 내서 제 결혼 자금을 몰래 댔습니다.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나봅니다. 결혼하고 남편은 빚을 갚아야 한다면서 제게 50만원의 생활비를 달마다 주고 월급 내역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제게 미안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아무말 없이 그돈으로 살림을 살고 아이를 낳고 키웠습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지도 모르는 채로요.. 아이가 돌이 될 무렵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이직을 거듭했습니다. 소위 하는 일마다 꼬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3살된 아들을 놀이방, 어린이집, 친정 등으로 돌리면서 학원 강사일을 해서 빚을 갚아 보겠다고 발버둥을 쳤지요... 낮에는 임용고시 공부를 하고 밤에는 학원 강사일을 하고.. 불쌍한 우리 아들 엄마품에서 제대로 안겨서 못 자랐습니다. 남편은 마지막 직장을 3년 전에 퇴직하고 사업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함께 사업을 한다던 후배가 사기를 쳐서 형제들한테 빌린 돈마저 날렸습니다. 그런데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나 봅니다. 제가 임용고사에 합격해서 남들보다 10년 늦은 나이에 교사가 되었으니까요.. 합격하던 날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내 오랜 꿈을 이루어줘서 고맙다구요... 이제 당신 꿈을 이루어 주고 싶으니까 사업을 다시 시작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남편의 손에 쥐어줬습니다. 제 남편 오랜 시간 동안 제가 수차례 낙방하는 걸 말 없이 지켜보고 다독여준 사람입니다. 저는 아이와 둘이서 시골 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살고 남편은 대도시에서 사업을 하면서 주말 부부 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을 새로 시작한 남편은 거의 수입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동네 슈퍼에서 라면 사는 것도 다 제 신용카드로 해결을 하더라구요. 못살겠다고 울었습니다. 교사 월급 받아서 신용카드 값 갚느라고 미치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주유비라도 대달라며 웃더군요. 남편의 카드를 뺐었습니다. 한번만더 내 카드 쓰면 이제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은 보란듯이 야간 알바를 구하더군요 야간에 식당에 무슨 식재료 납품을 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이렇게 해서 남편은 밤에는 배달원으로 낮에는 사업가로 산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슈퍼맨이 아닌 이상 이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사업을 시작한다고 말한 이후로 집에 생활비라고는 준 적은 당연히 없고 알바로 받는 돈은 사업 자금이란 명목으로 한푼 주지 않더군요.. 저는 안정적인 직장이 있으니까 당분간 알아서 살라고 하더군요 남편이 저질러 놓은 카드값 갚으랴.. 남편 사업 자금 하라고 교원공제회에서 대출 받은 돈 이자 갚으랴... 제 월급으론 항상 생활이 쪼달려 교직 3년차이지만 전 제이름으로 된 적금하나 없습니다. 지난 여름 제가 그랬습니다. 이제 그만하자고... 더 기다려주고 싶지만 성과가 나지 않는 일을 기다려주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남편의 꿈을 이루어주기로 약속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꿈에 다가가고 사업에 조금씩이라도 성장이 있을 때 제가 남편을 기다려 줄 수 있는 것이지... 대체 뭔 일을 하는지... 얼마나 벌고 쓰는지 저한테는 도통 말도 안하고 무작정 지켜봐달라는 남편에게 완전히 지쳐버렸습니다. 남편은 갑자기 사업을 접더니 거제도에 조선소에 막노동을 하러 떠나버렸습니다. 그마나 주말부부로 살던 저희 부부는 한달에 한번 겨우 보는 처지가 되어버렸구요.. 한창 재롱부릴 나이의 아들은 항상 아빠를 보고싶어 합니다. 이까지도 저는 남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게 한마디 상의없이 사업을 시작하고 야간 알바를 구하고 사업을 접고 막노동을 하러 떠나버려도... 세상 하는 일이 어디 다 맘 같이 될 수는 없잖습니까? 그렇지만 정말 남편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모든 일을 시댁에 못 알리게 하는 것입니다. 저희 시댁에서는요.. 남편이 피씨방도 하나 가지고 있고 사업도 그럭저럭 잘 되고 있고 제가 안정적인 교사 월급 받아서 꼬박꼬박 저축하며 사는 줄 압니다. 남편은 첫직장에서 퇴직할 때부터 모든 일을 시댁에 비밀로 부칩니다. 시댁에 갈 때마다 시집 식구들의 의례적인 인사 한마디가 저를 못 견디게 합니다. "동서, 서방님 사업 잘 되가? 동서네는 이제 걱정 없겠네?" "야야(경상도에선 며느리를 이렇게 부릅니다.), 너그 떨어져 사는게 고생이지 인쟈 뭐가 고생이고? 인쟈 니도 시골 근무 기간 끝나면 살림합치고.. 나는 너그는 아무 걱정안한다" "올케~ 피씨방은 알바 쓰는거야?(시아버지 유산으로 피씨방 차린 줄로 압니다. 실은 다 사기 당했습니다.) 동생이 사업 때문에 바빠서 피씨방은 잘 돌보기 힘들겠어?" 이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저는 정말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지난 추석 전날 펑펑 울었습니다. 나 좀 그만 힘들게 하라고 남편을 남고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나 도저히 시댁에 못가겠다고.. 내가 가서 뭐라고 대답해야 하냐고.. 남편은 미안하다고 하며 저를 집에 남겨두고 아들을 데리고 시댁에 갔습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시댁에는 사실을 알리지 않더군요. 물론 연로하신 홀시어머니가 받으실 충격이 걱정될거라고는 저도 충분히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몇천이나 되는 빚더미에... 이자 빚 갚느라고 월급 다 써버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행복한 척 해야하는 저는 뭔가요... 그나마 남편은 조선 경기가 좋지 않다면서 두 번 정도 50만원 가량의 돈을 부치더니 그것마저도 보내지 않습니다. 저 혼자 시골 객지에서 아이랑 둘이 살면서 이 부담을 몽땅 지고 끙끙거린단 느낌을 지워 버릴 수가 없습니다. 남편은 자기 상황을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 결정을 저와 상의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울면서 말해도 미안하다고만 하고 입을 다뭅니다. 저는 남편이 조선소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사업을 하면서 얼마를 벌고 얼마를 빚졌는지도 모르고 현재 갚아야할 돈이 얼마인지도 모릅니다. 더 억울한 것은 시댁 식구들은 제가 지난 추석 때 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아무도 묻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남편의 형제들이 5남매인데 추석이 끝나고 몇 달 동안 전화 한통 해 준 사람이 없습니다. 연휴 며칠 전에 남편의 누나(시누님)한테서 전화가 와서 이번 설은 올꺼냐고 묻더군요. 자기는 미국 연수 간다고 이번 설에는 얼굴 못볼 것 같다고 하면서... 시누이는 중학교 영어교사입니다. 자비로 일년 휴직하고 어학연수를 간다고 하더군요 저도 왜 자기 계발 욕구가 없겠습니까? 학교에서 단기 일본 연수 추천을 해줘도 애봐줄 사람 없어서.. 배삯 40만원이 없어서 못가는 저한테 남편은 누나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길래 아주 돌아버렸습니다. 아무도 제가 지난 명절에 오지 않은 이유는 묻지 않더군요.. 시골 마을에서 "그집 며느리 안왔다" 소리 들으면 부끄럽기만 한지 어제 저희 형님(동서)한테서 문자 두통이 왔더군요 어머님이 기다린다고 오라고.... 유치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한번 쯤 시댁 식구들이 제게 물어봐 줄 줄 알았습니다. 저 이번 설날에 또 안갔습니다. 시댁에 가서 시댁 식구들의 싸늘한 눈초리를 견딜 자신이 없었습니다. 설 며칠 전부터 두통에 구토까지...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습니다. 남편은 어제 컴퓨터 하고 있는 제 등 뒤에서 소주를 들이키면서 티비를 틀어 놓고 큰 소리로 웃더군요. 니가 아무리 쇼를 해도 난 신경 안쓴다는 액션인지.. 미안해서 오바를 하는 건지.. 제게 한마디 말을 거는 법도 없이 그렇게 우린 각방에서 자고 낮 내내 저는 제방에 틀어박혀 있고 남편은 거실에 있다가 저녁 무렵 같이 가지 않겠냐는 말한마디 없이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떠났습니다. 그냥 버려진 느낌이네요.. 제가 가지 않겠다고 해서 안간거지만....
시댁 안가고 혼자 있는 며느리
결혼 10년차, 9살된 아들을 둔 주부입니다.
지난 추석에 이어 이번 설날에도 시댁에 안갔습니다.
친정에선 모르구요.. 남편은 아까 아들 데리고 시댁에 내려갔습니다.
저는 남편이 너무나 저와 결혼하고 싶어해서 어떨결에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직장도 변변찮았고 대학에 다니는 동생들이 있었고
엄마까지 식당일 하시면서 동생들 학비를 대는 처지라서
도저히 결혼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보다 7살이 많은 제 남편은 저 아니면 절대로 안된다고 했고
결국 당시 나름 탄탄한 중견기업에 다니던 남편이 대출을 내서 제
결혼 자금을 몰래 댔습니다.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나봅니다.
결혼하고 남편은 빚을 갚아야 한다면서 제게 50만원의 생활비를
달마다 주고 월급 내역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제게 미안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아무말 없이 그돈으로
살림을 살고 아이를 낳고 키웠습니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지도 모르는 채로요..
아이가 돌이 될 무렵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퇴직하고 이직을 거듭했습니다.
소위 하는 일마다 꼬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저는 3살된 아들을 놀이방, 어린이집, 친정 등으로 돌리면서
학원 강사일을 해서 빚을 갚아 보겠다고 발버둥을 쳤지요...
낮에는 임용고시 공부를 하고 밤에는 학원 강사일을 하고..
불쌍한 우리 아들 엄마품에서 제대로 안겨서 못 자랐습니다.
남편은 마지막 직장을 3년 전에 퇴직하고 사업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함께 사업을 한다던 후배가 사기를 쳐서 형제들한테 빌린 돈마저 날렸습니다.
그런데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나 봅니다.
제가 임용고사에 합격해서 남들보다 10년 늦은 나이에 교사가 되었으니까요..
합격하던 날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내 오랜 꿈을 이루어줘서 고맙다구요... 이제 당신 꿈을 이루어 주고 싶으니까
사업을 다시 시작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남편의 손에 쥐어줬습니다.
제 남편 오랜 시간 동안 제가 수차례 낙방하는 걸 말 없이 지켜보고 다독여준 사람입니다.
저는 아이와 둘이서 시골 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살고 남편은 대도시에서 사업을 하면서
주말 부부 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사업을 새로 시작한 남편은 거의 수입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동네 슈퍼에서 라면 사는 것도 다 제 신용카드로 해결을 하더라구요.
못살겠다고 울었습니다.
교사 월급 받아서 신용카드 값 갚느라고 미치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주유비라도 대달라며 웃더군요.
남편의 카드를 뺐었습니다. 한번만더 내 카드 쓰면 이제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남편은 보란듯이 야간 알바를 구하더군요
야간에 식당에 무슨 식재료 납품을 하는 것이라고 하던데
이렇게 해서 남편은 밤에는 배달원으로 낮에는 사업가로 산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슈퍼맨이 아닌 이상 이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사업을 시작한다고 말한 이후로 집에 생활비라고는 준 적은 당연히 없고
알바로 받는 돈은 사업 자금이란 명목으로 한푼 주지 않더군요..
저는 안정적인 직장이 있으니까 당분간 알아서 살라고 하더군요
남편이 저질러 놓은 카드값 갚으랴..
남편 사업 자금 하라고 교원공제회에서 대출 받은 돈 이자 갚으랴...
제 월급으론 항상 생활이 쪼달려 교직 3년차이지만
전 제이름으로 된 적금하나 없습니다.
지난 여름 제가 그랬습니다.
이제 그만하자고...
더 기다려주고 싶지만 성과가 나지 않는 일을 기다려주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남편의 꿈을 이루어주기로 약속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꿈에 다가가고 사업에 조금씩이라도 성장이 있을 때
제가 남편을 기다려 줄 수 있는 것이지...
대체 뭔 일을 하는지... 얼마나 벌고 쓰는지 저한테는 도통 말도 안하고
무작정 지켜봐달라는 남편에게 완전히 지쳐버렸습니다.
남편은 갑자기 사업을 접더니 거제도에 조선소에 막노동을 하러 떠나버렸습니다.
그마나 주말부부로 살던 저희 부부는 한달에 한번 겨우 보는 처지가 되어버렸구요..
한창 재롱부릴 나이의 아들은 항상 아빠를 보고싶어 합니다.
이까지도 저는 남편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게 한마디 상의없이 사업을 시작하고 야간 알바를 구하고 사업을 접고
막노동을 하러 떠나버려도...
세상 하는 일이 어디 다 맘 같이 될 수는 없잖습니까?
그렇지만 정말 남편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 모든 일을 시댁에 못 알리게 하는 것입니다.
저희 시댁에서는요..
남편이 피씨방도 하나 가지고 있고
사업도 그럭저럭 잘 되고 있고
제가 안정적인 교사 월급 받아서
꼬박꼬박 저축하며 사는 줄 압니다.
남편은 첫직장에서 퇴직할 때부터 모든 일을
시댁에 비밀로 부칩니다.
시댁에 갈 때마다 시집 식구들의 의례적인 인사 한마디가 저를 못 견디게 합니다.
"동서, 서방님 사업 잘 되가? 동서네는 이제 걱정 없겠네?"
"야야(경상도에선 며느리를 이렇게 부릅니다.), 너그 떨어져 사는게 고생이지 인쟈 뭐가 고생이고? 인쟈 니도 시골 근무 기간 끝나면 살림합치고.. 나는 너그는 아무 걱정안한다"
"올케~ 피씨방은 알바 쓰는거야?(시아버지 유산으로 피씨방 차린 줄로 압니다. 실은 다 사기 당했습니다.) 동생이 사업 때문에 바빠서 피씨방은 잘 돌보기 힘들겠어?"
이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저는 정말 돌아버릴 것 같습니다.
지난 추석 전날 펑펑 울었습니다.
나 좀 그만 힘들게 하라고 남편을 남고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나 도저히 시댁에 못가겠다고..
내가 가서 뭐라고 대답해야 하냐고..
남편은 미안하다고 하며 저를 집에 남겨두고 아들을 데리고 시댁에 갔습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시댁에는 사실을 알리지 않더군요.
물론 연로하신 홀시어머니가 받으실 충격이 걱정될거라고는 저도 충분히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몇천이나 되는 빚더미에...
이자 빚 갚느라고 월급 다 써버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행복한 척 해야하는 저는 뭔가요...
그나마 남편은 조선 경기가 좋지 않다면서 두 번 정도 50만원 가량의 돈을 부치더니
그것마저도 보내지 않습니다.
저 혼자 시골 객지에서 아이랑 둘이 살면서 이 부담을 몽땅 지고 끙끙거린단 느낌을
지워 버릴 수가 없습니다.
남편은 자기 상황을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 결정을 저와 상의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울면서 말해도 미안하다고만 하고 입을 다뭅니다.
저는 남편이 조선소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사업을 하면서 얼마를 벌고 얼마를 빚졌는지도 모르고
현재 갚아야할 돈이 얼마인지도 모릅니다.
더 억울한 것은 시댁 식구들은 제가 지난 추석 때 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아무도 묻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남편의 형제들이 5남매인데 추석이 끝나고 몇 달 동안 전화 한통 해 준 사람이 없습니다.
연휴 며칠 전에 남편의 누나(시누님)한테서 전화가 와서 이번 설은 올꺼냐고 묻더군요.
자기는 미국 연수 간다고 이번 설에는 얼굴 못볼 것 같다고 하면서...
시누이는 중학교 영어교사입니다. 자비로 일년 휴직하고 어학연수를 간다고 하더군요
저도 왜 자기 계발 욕구가 없겠습니까?
학교에서 단기 일본 연수 추천을 해줘도 애봐줄 사람 없어서..
배삯 40만원이 없어서 못가는 저한테 남편은 누나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길래 아주 돌아버렸습니다.
아무도 제가 지난 명절에 오지 않은 이유는 묻지 않더군요..
시골 마을에서 "그집 며느리 안왔다" 소리 들으면 부끄럽기만 한지
어제 저희 형님(동서)한테서 문자 두통이 왔더군요
어머님이 기다린다고 오라고....
유치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한번 쯤 시댁 식구들이 제게 물어봐 줄 줄 알았습니다.
저 이번 설날에 또 안갔습니다.
시댁에 가서 시댁 식구들의 싸늘한 눈초리를 견딜 자신이 없었습니다.
설 며칠 전부터 두통에 구토까지...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습니다.
남편은 어제 컴퓨터 하고 있는 제 등 뒤에서 소주를 들이키면서
티비를 틀어 놓고 큰 소리로 웃더군요.
니가 아무리 쇼를 해도 난 신경 안쓴다는 액션인지..
미안해서 오바를 하는 건지..
제게 한마디 말을 거는 법도 없이 그렇게 우린 각방에서 자고
낮 내내 저는 제방에 틀어박혀 있고 남편은 거실에 있다가
저녁 무렵 같이 가지 않겠냐는 말한마디 없이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떠났습니다.
그냥 버려진 느낌이네요..
제가 가지 않겠다고 해서 안간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