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서 걱정이었다.”(돈쭐버스 1호차, 기행기)

전피디2025.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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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와서 걱정이었다.
혼자 가는 길이면 비가 외려 운치 있지만,
여럿이 가는 여행길에 비는 반갑지 않다.

성남 모란시장에 6시쯤 도착했다.
습기 먹은 공기는 차가웠다.
도로변에 빨간색 관광버스가 비상등을 켜고 서 있었다.
‘이 거구나’ 싶어, 돌아 버스 앞을 챙겨보니,
‘민주 성지 광주 응원’이라는 LED 사인이 켜있었다.

그렇다, 오늘은 ‘광주 가는 날’이다.
지난 2월 15일,
탄핵을 반대하는 극우 단체들이 광주에서 집회를 열었다.
그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광주에서 밥을 먹으며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민주화 민주화 하더니, 뭐 이리 못살아!”

이 말에,
광주를 들썩이게 하자는 취지로 시작한 게
‘민주성지 광주 응원 버스’, 일명 ‘돈쭐 버스’다.

광주는 우리 진보의 자존심 아닌가!

성남을 출발한 버스는, 양재와 신갈 정류장을 거쳤다.
어둠 사이로 사람들이 하나둘 등장했다.
‘두둥~’
동행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무척 궁금했다.
새벽 출타에 정리 덜된 모습이었지만,
인사를 건네는 모습들이 너무 수수하고 맑았다.
예감이 좋았다. 좋은 여행이 될 것 같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비가 왔다.
‘어쩌지…’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왠걸,
버스가 광주로 진입하자 비가 그쳤다.
너무 뻔한 레토릭이었지만,
‘광주의 영령들이 우릴 반기나보다’라는 말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첫 방문지는 전남대였다.
안내를 해주실 5.18 기념재단과, 광주시 관계자분들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전남대는 5.18의 중요한 발단지로서,
학생들의 저항과 계엄군의 폭력이 교차하는 중심지였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5.18 정신을 기르기 위한 길들이 만들어져있었는데,
우리는 그중에 ‘정의로’를 걸으며, 얘기를 들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은 군사 반란을 일으킨다.

1980년 초, 전국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난다.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광장에서 40여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모여
계엄 해제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다.
하지만 ‘쿠데타 빌미를 주지 말자’는 이유로 시위대는 학교로 돌아간다.
국민의힘 심재철 등이 주요 결정자들이다.

1980년 5월 16일,
전국 24개 대학 대표는 ‘당분간 가두시위를 중단하자’라고 결정한다.
하지만 광주와 전남대는 교수와 시민을 포함한 5만여 명이 횃불 시위를 연다.

1980년 5월 17일,
신군부는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정치인 및 학생운동가 등을 잡아들이고, 휴교령을 내린다.
김대중 대통령은 5월 18일 새벽에 동교동 자택에서 무장 연행된다.

1980년 5월 18알 새벽 2시,
공수부대가 전남대를 점령하고 검문·검속을 시작한다.
오전 7시, 휴교령이 발표된다.
오전 10시, 전남대 정문 앞에 학생 약 200명이
계엄 확대와 휴교령에 항의하며 시위를 시작한다.
계엄군은 곤봉과 군홧발로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한다.
일부 학생들이 금남로로 이동해 시위를 확산한다.

그리고 핏빛의 폭력이 5월 27일까지 계속된다.

울분 치솟는 얘기와 달리, 전남대의 교정은 따뜻했다.
봄의 기운이 넘쳤다. 온도도 20도에 가까웠다.
몇몇은 외투를 벗고, 반팔을 입은 채 설명을 들었다.

좀 이른 봄볕을 깨며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이제 점심 먹으러 가시죠!”

점심은 ‘미송식당’이란 곳이었다.
메뉴는 ‘한정식’이었다.
남도 특유의 깊은 맛과 깔끔한 상차림이 좋았다.
음식은 청국장(색이 맑다, 첨 봤다.), 뚝불고기, 낙지볶음,
관자와 조개 무침 등이 나왔다.
아침을 못 먹어서, 공기를 두 개나 비웠다.

밥을 먹고 걸어서 금남로로 이동했다.
5.18 기록관이 목적지였다. 10여 분 정도 거리였다.
중간에 금남로 공원도 잠깐 들렀다.
원래 이곳에는 ‘장재성 빵집’이 있었는데,
빵을 팔아 ‘학생독립운동’을 지원했다고 한다.
(광주는 곳곳이 독립, 민주화의 역사가 흐른다.)

5.18 기록관은 정리가 잘돼 있었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기록물들도 많았다.
1~3층이 주 전시실이다.
1층은 ‘항쟁’이 주제였다.
5·18 민주화 운동의 발발과 진행 과정이 시간대별로 재현돼 있었다.
2층은 ‘5월의 기록’으로 시민 공동체, 운동의 확산과 계승을 다루고 있고,
3층은 ‘인류의 유산’으로서 5·18 민주화 운동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과정을 소개하고 있었다.

기분 좋았던 게 있다.
방문객들 대부분이 가족, 학생, 연인들이었다는 것이다.
광주 시민인지, 여행객들인지 모르겠지만,
윤석열 계엄 이후, 광주에 대한 관심이 젊은 층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 같아,
졸였던 마음이 좀 풀렸다.

다음은 구 전남도청 방향으로 50여 미터 떨어진 ‘전일빌딩’이었다
전시관 이름은 ‘전일빌딩245’였다.
‘245’는 빌딩 내부에서 발견된 245개의 탄흔에서 따온 것이다.
5.18 당시, 헬기에서 기관총으로 쏜 ‘탄흔’이라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가 끝났다고 한다.
하지만 전두환은 죽을 때까지 이 사실을 부정했다.

전시관은 매우 입체적으로 구성돼 있다.
시청각 자료가 많았다.
당시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하고 있었다.
교육적 가치뿐만 아니라, 학생들과 아이들을 위해 신경 쓴 부분이 많았다.
민주화 과정에 있는 다른 나라에도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전시관이었다.
(윤석열 이후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무너지고 있지만…)

건물 옥상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구 전남도청, 금남로 등
광주시 본도심 지역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전망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습기 낀 봄바람도 기분을 경쾌하게 해줬다.
5.18 당시 전일빌딩은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헬기 이외에는,
빌딩에 남은 하향 탄흔을 만들 수 없다고 한다.

전시관을 나와, 바로 옆 구 전남도청 광장에 갔다.
도청은 전체가 수리 중이었다.
5.18 당시 모습으로 복원해,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계승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예산 중 콘텐츠 부분만 110억가량이라고 하는 걸 보아,
꽤 내실 있는 역사적 공간으로 재탄생할 것 같다.
현재 약 34% 공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시간은 좀 걸릴 것 같다.

도청 앞 광장 대부분을 젊은 친구들이 채우고 있었다.
스케이드보드를 타는 친구들, 삼삼오오 얘기를 나누는 학생들,
연인끼리 데이트하는 모습들…
적어도 광주에서는, 5.18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광장을 떠나, 마지막 코스인 망월동으로 향했다.
우리가 가는 곳은 ‘구 묘역’이었다.
망월동 묘지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들을 안장한 역사적 장소로,
크게 ‘구 묘역’과 ‘신 묘역’으로 나뉜다.

‘구 묘역’은 희생자 가족이 계엄군의 감시 속에서,
시신을 손수레와 쓰레기차로 운반해 만들어진 곳이다.
1980년 5월 29일 당시, 시신 126구가 합동으로 안장됐다.
당연히 전두환의 신군부는 묘역을 없애려 했다.
돈과 폭력을 썼고, 일부는 타 지역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족은 저항했고,
이런 과정에 ‘구 묘역’은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장소가 됐다.

‘신 묘역’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3년에 대통령 담화를 통해,
5.18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과 묘역 성역화가 발표된 후,
1994년 공사가 시작돼, 1997년 5월 18일,
제17주년 기념식에서 공식 개원됐다고 한다.

현재는 희생자들 유해 대부분이 ‘신 묘역’으로 이장 됐으나,
상징성을 기억하기 위해 142기의 가묘가 복원돼 있다.

신기한 것은, 거짓말처럼,
버스가 ‘망월동 묘지’를 몇 분 안 남겨두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반팔로 구 도청광장을 거닐던 사람들은
급하게 외투를 다시 입었다.

광주에 도착할 때는 비가 갰고,
‘망월동 묘지’에 오자 비가 다시 퍼붓는 것에,
모두 하늘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설마, 위에서 저흴 보고 있는 건 아니죠…’

모두 우산을 들고, 묘역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절절하고 또 절절했다.

5.18 당시 계엄군 폭력에 항의하며 분신한 스무 살의 여학생, 박승희 열사,
한강 작가에게 문학적 모티브를 제공한 ‘막내 시민군’ 문재학 열사,
87항쟁의 도화선이 된 이한열 열사,
광주항쟁의 책임을 요구하며 분신한 표정두 열사,
박근혜의 국가 폭력에 물대포를 맞아 돌아가신 백남기 농민…

우린 모두, 묘역 앞 입구에 박힌,
전두환 이름이 쓰여진 표지석을 '꾸욱' 밟고 들어섰다.

빗줄기는 더 더 거세졌다.
그렇게 공식 일정이 끝났다.

심각한 기분을 털며 저녁 만찬을 먹으러 갔다.
육회와 불고기전골, 그리고 육회를 못 먹는 분들을 위한
소고기가 준비돼 있었다.
정말 맛이 “끝내줬다!”

적당한 간과, 뒤에 바쳐주는 달큰한 맛이 일품인 육회,
다양한 버섯과 깔끔한 육수 맛이 일품인 전골,
선도 좋고, 마블링도 좋은소고기…

모두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광주의 얘기에 벅찬 감정을 추스르느라,
내란 옹호 세력과의 향후 싸움에 대한 마음을 정리하느라
죄였던 맘을, 맛난 음식을 먹으며,
동지들과 얘기하며 풀어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두 가지 생각이 났다.
하나는, 광주의 ‘민주 콘텐츠’를 더 계승하고 발전시키면,
세계 곳곳에서 광주를 찾겠다는 것과

이번 ‘광주를 즐겁게 하는 버스, 일명 돈쭐 버스’가
계속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비는 성남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됐다.
자정이 다 돼갔다.

같이 한 동지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 반겨준 광주에게도 더 감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돈쭐버스 2호차’의 출발을 졸라게 촉구한다. ㅋ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