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色)

ㅇㅇ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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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처음부터 나라는 존재의 색깔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주 잠깐 존재하다가 사라져 버렸다거나,
무튼 내 명목으로서의 껍데기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가장 희미한 그 나날의 끝자락에서부터
처음엔 무작정 모든 것들을 모방했다
텅 비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타인의 그림자가 되어 말하고 행동하기를 선택했다
입력값에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즉각적인 출력값
그러나 무조건적인 모방은 쓸모없는 짓이라는 걸 나는 꽤나 오랜 시간 후에야 터득했다
수많은 타인의 그림에서 마음에 드는 색깔을 뽑아, 그것을 나에게 맞게 변형해서 내 종이에 칠해넣는 것
내가 터득한 두 번째 방법이다
일관성 없는 그저 모조품으로서의 삶에서, 어떻게든 내 그림을 만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타인에게서 가져온 색깔은 나에게 다소 어색한 감이 없지않아 있었다
이게 과연 내가 맞는걸까, 이 색깔은 과연 나의 색이 맞을까
이곳 저곳에서 조각조각 떼온 색깔들의 조합이 나라면 그건 그저 잡종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고민하기도 수 년, 이제 모인 색깔들은 그림의 형태를 창조해갔고 서서히 나라는 사람도 제 색을 찾았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백지에 손으로 그린 그림이란 어설플 수밖에 없었던지, 내 그림의 심미적 가치는 여전히 다소 떨어지는 듯 했다
잊혀진 본래의 그림을 다시 불러올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나는 오늘도 더 이질감 없는 나를 만들고자 이 그림을 덧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