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ㅡ 누가복음 14장27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ㅡ 마태복음 10장38절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아무 지식없이 신을 섬긴다고 한다고 생각한다 하여도, 신이라는 존재이시라면, 사람의 직위보다는 한마디로, 직위라는 겉보다 마음이라는 속을, 즉,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지 않으실까. 하고 짐작이 되지 않으십니까. 인간보다 못하실리야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더 안보이는 속을 보아야하시죠. 인간보다 나으신 존재가 신이라면 말입니다. 사람의 직위를 더 높이 보신다는 것은, 사람의 관점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신을 말입니다. 신께서 사람처럼 우리를 바라보실까요? 신이 사람의 마음보다 직위를 더 생각하신다면 신이란 인간이 만든 “인간의 연장선”의 생물이자 본질은 꿰뚥어보지 못하는 “다른 종류의 무엇인가의 인간”이 오히려 맞지 않겠습니까. 성경에서는 잔의 겉보다는 속을 더 중요시 하신다라고, 성경구절이 존재합니다. 마태복음 23장입니다. 24 이 눈먼 인도자들아,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대로 삼키는 것이 바로 너희들이다." 25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만은 깨끗이 닦아놓지만 그 속에는 착취와 탐욕이 가득 차 있다. 26 이 눈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먼저 잔 속을 깨끗이 닦아라. 그래야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27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겉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으로써, 사람의 겉만을 중시하는 모습을 언제나 그리고 얼마나 많이 범하는가. 그건 신이라는 존재를 섬기는 것이 아니다. 신이라는 존재가 아닐 경우에만 위력이 있는, 겉만 닦는 해당하는 행위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범하는가. 그러나, 신은 “신은 마음까지도 꿰뜷어보는 존재시다.” 이 신이라는 존재는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와는 다름을 항상 염두해두어야 한다. 오죽하면, 기도에 보이지 않는 인성이 작용할까. 신이란 존재가 인간이라면, 보이지 않는 인성이 과연 작용할까. 직위와 신분만 본다면, 신이 아닌 인간이다. 그런 신이라면, 인간이 만든 존재의 부산물이다. 그러한 신이 있는 세상은, 인간이 만든 인간세계다. 우리는 늘 간과한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자세를 항상 버리지 않아야 한다. 개신교에서도 기도는 사람의 품성과 관련이 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원래는 인성을 보는 것이지만, "인성의 구성요소중에 변하는 것은 품성뿐"이기에 개신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의문점을 품고 있다. 신은 인간이 아닌 존재이시다. 변할 수 있는 품성을 닦아야 한다. 성품도 변할 수 있기는 하지만, 하느님의 힘이 직접 개입되어야지만 변할 수 있는 변하기에는 너무 까다로운 것으로써, 인간이 직접 변화를 가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며, 인간이 변화를 가할수 있는 범위는 “품성에 한정된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ㅡ 마태복음 10장38절 위의 구절처럼,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려한다면, 겉보다는 속을 연마하는 편이 낫다. 인성이 속과 연관이 깊다. 쉽게 말하자면, 인성은 품성과 성품과 또 한가지를 더하면 완성되는 성품보다 더 큰 범위의 단어이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겉만 생각하는 인간이기에, 실속보다는 자기 자신의 체면, 위치, 신분 등을 항상 “가장 먼저” 고려한다. 하느님이 항상 위는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아닌, 신이라는 존재를 모시고 있다. 성경에서도 겉보다는 속을 깨끗이 하라고 늘 말씀하신다. 그런 말씀을 성경구절이 얼마나 많은가. 속을 더 중시하신다는 말씀을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망각하고, 겉만 열심히 닦는 인간이지 않을까. #인성이 기도에는 작용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인성 중에 변하는 것은 품성뿐이기에, 개신교에서는 변할 수 있는 품성을 닦으라고 강조하는게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져본다. 참고로 인성은 품성과 성품과 또 한가지를 더하면 완성되는 것이다. 1
겉보다 속을 보신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ㅡ 누가복음 14장27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ㅡ 마태복음 10장38절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아무 지식없이 신을 섬긴다고 한다고 생각한다 하여도,
신이라는 존재이시라면, 사람의 직위보다는
한마디로, 직위라는 겉보다 마음이라는 속을,
즉,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지 않으실까. 하고
짐작이 되지 않으십니까.
인간보다 못하실리야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더 안보이는 속을 보아야하시죠.
인간보다 나으신 존재가 신이라면 말입니다.
사람의 직위를 더 높이 보신다는 것은, 사람의 관점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신을 말입니다.
신께서 사람처럼 우리를 바라보실까요?
신이 사람의 마음보다 직위를 더 생각하신다면
신이란 인간이 만든 “인간의 연장선”의 생물이자
본질은 꿰뚥어보지 못하는
“다른 종류의 무엇인가의 인간”이 오히려 맞지 않겠습니까.
성경에서는 잔의 겉보다는 속을 더 중요시 하신다라고,
성경구절이 존재합니다.
마태복음 23장입니다.
24
이 눈먼 인도자들아,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그대로 삼키는 것이
바로 너희들이다."
25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잔과 접시의 겉만은 깨끗이 닦아놓지만
그 속에는 착취와 탐욕이 가득 차 있다.
26
이 눈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먼저 잔 속을 깨끗이 닦아라.
그래야 겉도 깨끗해질 것이다."
27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겉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썩은 것이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으로써,
사람의 겉만을 중시하는 모습을 언제나
그리고 얼마나 많이 범하는가.
그건 신이라는 존재를 섬기는 것이 아니다.
신이라는 존재가 아닐 경우에만 위력이 있는,
겉만 닦는 해당하는 행위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범하는가.
그러나, 신은
“신은 마음까지도 꿰뜷어보는 존재시다.”
이 신이라는 존재는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와는 다름을
항상 염두해두어야 한다.
오죽하면, 기도에 보이지 않는 인성이 작용할까.
신이란 존재가 인간이라면, 보이지 않는 인성이 과연 작용할까.
직위와 신분만 본다면, 신이 아닌 인간이다.
그런 신이라면, 인간이 만든 존재의 부산물이다.
그러한 신이 있는 세상은, 인간이 만든 인간세계다.
우리는 늘 간과한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자세를
항상 버리지 않아야 한다.
개신교에서도 기도는 사람의 품성과 관련이 깊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원래는 인성을 보는 것이지만, "인성의 구성요소중에 변하는 것은 품성뿐"이기에
개신교에서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의문점을 품고 있다.
신은 인간이 아닌 존재이시다.
변할 수 있는 품성을 닦아야 한다.
성품도 변할 수 있기는 하지만, 하느님의 힘이 직접 개입되어야지만
변할 수 있는 변하기에는 너무 까다로운 것으로써,
인간이 직접 변화를 가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며,
인간이 변화를 가할수 있는 범위는
“품성에 한정된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ㅡ 마태복음 10장38절
위의 구절처럼,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려한다면,
겉보다는 속을 연마하는 편이 낫다.
인성이 속과 연관이 깊다.
쉽게 말하자면,
인성은 품성과 성품과 또 한가지를 더하면 완성되는
성품보다 더 큰 범위의 단어이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겉만 생각하는 인간이기에,
실속보다는 자기 자신의 체면, 위치, 신분 등을 항상
“가장 먼저” 고려한다.
하느님이 항상 위는 아닌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아닌, 신이라는 존재를 모시고 있다.
성경에서도 겉보다는 속을 깨끗이 하라고 늘 말씀하신다.
그런 말씀을 성경구절이 얼마나 많은가.
속을 더 중시하신다는 말씀을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망각하고,
겉만 열심히 닦는 인간이지 않을까.
#인성이 기도에는 작용한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인성 중에 변하는 것은 품성뿐이기에,
개신교에서는 변할 수 있는 품성을 닦으라고 강조하는게 아닌가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가져본다.
참고로 인성은 품성과 성품과 또 한가지를 더하면 완성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