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과연 자신은 올바르게 살았으니, 죽어도 나의 사후세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자, 진짜 있다는 말인가. 객관적인 성경에서의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묘사하는지사람의 마음이 신이 보시기에 어떠한지를 성경이라는 객관적으로 알려주는 지표로 신이 보는 사람을 제시해 주겠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세상은 요지경인지” 성경말씀에도 적혀있다. 자, 똑바로 바라보라.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천지인데, 자신이 올바르게 살았다고, 언제든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자신이 정말 자기 마음대로 죽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불교의 전생을 믿기 때문에, 어서 죽으려고 작정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한들 100%안전한게 아닌, ㅈㅅ을 선택한다면, “불자를 실제로라는 증거로는 도와준 적이 없는” 불교의 신들이나 부처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일이가를 하루바삐 깨닫기를 빈다. 불교는 실제를 가지고 얘기한 적이 한번도 없으므로, 귀한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럼 묻겠다. 부처가 실제를 가지고 얘기한 적이 있는가.부처가 하느님처럼 실제로 암을 낫게 해준적이 있는가.부처가 하느님처럼 실제로 불구를 한순간에 정상으로 만든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부처를 믿어도 좋다. 그러나 부처는 그런 적이 한번도 없다. 실제로라는 믿음을 주는 신이 하느님뿐이라는 사실인데도, 부처를 믿는다는 것은부처가 주장하는, 사람의 생이라는 전생과 후생을 직접 겪어서 아는 “확실한 사실인가”부터 첫걸음으로, 판단해보아야 한다. 정확하지는 않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그 얘기는 "허상을 믿고 있을 확률이 매우 크다"는 이야기가 되며, "부처가 불자를 실제라는 현실상황에서도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라는 실제상황으로 인해서, 부처란 과연 어떠한 존재인지도 모르는데, 자신만 불교교리를 따라 “생은 여러 개다”혹은 “생은 또 있다”라는 망상의 길을 꾸준히 또한 열심히 걷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내 주장이 잘못되었다면, 어디가 잘못되었는가.당신의 주장이 오히려 잘못된 것이 아닌가. "당신이 허상이 아닌가? 내가 허상인가?"나는 내 주장의 결함을 모르겠다. 생이란게 확실하다고? 그런 이야기인가?그것도 그걸 인간인 당신이 알수있다고? 잘못된 정보와 거짓된 환상일 확률이 100%에 가까운데도, “모른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지는 멍청함의 끝”을 가지고서는, 불교에 빠져 “생은 여러개니 하나만 낭비하자”는 식으로그러나 반대편에 서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목숨은 모두 하나밖에 없고 다 처음이다”라고 하시는 귀중한 목숨을, 불교교리에 휘둘려, 불나방이 “생이 여러개로 보이게하는 불교란 불”에 뛰어들어, 하나밖에 없는 귀한 생을 마감하는 인생이 어디 한둘인가. 하느님이시라는 우리나라의 가장 센 신이 있는데도, 부처를 말하는가.실제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하느님이라는 신이 있는데도, 아직도 절대자의 뜻을 모르는가. 우리나라 악신을 이긴 가장 센 신이 모든 신들과 똑같이 자신만의 사후세계를 주장하는데, 어느 신의 사후세계가 우리의 사후세계가 되겠는가. 전세계 1/2이신 하느님이 아니냐?지금이라도 생각해보라.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정확히 하라. 아는가? 모르는가? “맨땅에 해당하기”와 같이, 실제를 보여주시는 하느님과 대립하는 신을 믿는 격인데, 우리나라의 악신을 이겼다라면 절대자로써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격이겠지만,불교의 신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도와준 적은 한번도 없다. 하느님처럼 실제로 도운 적이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실제라는 현재상황에서도 도와주러 나타나지 않는, 미지의 존재에 불과한 부처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거나, 허황되게 “증거도 전혀 없어도 의지한다”는 식으로 대하여, 실제로라는 확실한 증거로 이야기하시는 하느님과 대립하는 것은 실제로라는 확실한 증거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센 신이시라는 “신중의 신”이라는 호칭을가지신 하느님과의 대립하는 구도는, 극도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믿음”이라는 것은그것도 “실제라는 증거로 생긴 것이다.”라는 말이다. 실제vs허상이것이 하느님과 불교의 핵심만 짚어본 것이다. 1
(중)자살률 때문에 말해야 하는 신이 있다.
사람이 과연 자신은 올바르게 살았으니,
죽어도 나의 사후세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자,
진짜 있다는 말인가.
객관적인 성경에서의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사람의 마음이 신이 보시기에 어떠한지를
성경이라는 객관적으로 알려주는 지표로
신이 보는 사람을 제시해 주겠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세상은 요지경인지”
성경말씀에도 적혀있다. 자, 똑바로 바라보라.
9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 천지인데, 자신이 올바르게 살았다고,
언제든 죽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자신이 정말 자기 마음대로 죽기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불교의 전생을 믿기 때문에,
어서 죽으려고 작정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한들 100%안전한게 아닌, ㅈㅅ을 선택한다면,
“불자를 실제로라는 증거로는 도와준 적이 없는” 불교의 신들이나 부처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일이가를
하루바삐 깨닫기를 빈다.
불교는 실제를 가지고 얘기한 적이 한번도 없으므로,
귀한 목숨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것이다.
그럼 묻겠다.
부처가 실제를 가지고 얘기한 적이 있는가.
부처가 하느님처럼 실제로 암을 낫게 해준적이 있는가.
부처가 하느님처럼 실제로 불구를 한순간에 정상으로 만든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부처를 믿어도 좋다. 그러나 부처는 그런 적이 한번도 없다.
실제로라는 믿음을 주는 신이 하느님뿐이라는 사실인데도,
부처를 믿는다는 것은
부처가 주장하는, 사람의 생이라는 전생과 후생을
직접 겪어서 아는
“확실한 사실인가”부터 첫걸음으로,
판단해보아야 한다.
정확하지는 않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그 얘기는 "허상을 믿고 있을 확률이 매우 크다"는 이야기가 되며,
"부처가 불자를 실제라는 현실상황에서도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라는
실제상황으로 인해서, 부처란 과연 어떠한 존재인지도 모르는데,
자신만 불교교리를 따라 “생은 여러 개다”
혹은 “생은 또 있다”라는 망상의 길을
꾸준히 또한 열심히 걷고 있는 것일 뿐이다.
내 주장이 잘못되었다면, 어디가 잘못되었는가.
당신의 주장이 오히려 잘못된 것이 아닌가.
"당신이 허상이 아닌가? 내가 허상인가?"
나는 내 주장의 결함을 모르겠다.
생이란게 확실하다고? 그런 이야기인가?
그것도 그걸 인간인 당신이 알수있다고?
잘못된 정보와 거짓된 환상일 확률이
100%에 가까운데도,
“모른다는 사실에 확신을 가지는 멍청함의 끝”을
가지고서는, 불교에 빠져 “생은 여러개니 하나만 낭비하자”는 식으로
그러나 반대편에 서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목숨은 모두 하나밖에 없고 다 처음이다”
라고 하시는 귀중한 목숨을,
불교교리에 휘둘려, 불나방이 “생이 여러개로 보이게하는 불교란 불”에
뛰어들어, 하나밖에 없는 귀한 생을 마감하는 인생이 어디 한둘인가.
하느님이시라는 우리나라의 가장 센 신이 있는데도, 부처를 말하는가.
실제만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하느님이라는 신이 있는데도,
아직도 절대자의 뜻을 모르는가.
우리나라 악신을 이긴 가장 센 신이 모든 신들과 똑같이
자신만의 사후세계를 주장하는데,
어느 신의 사후세계가 우리의 사후세계가 되겠는가.
전세계 1/2이신 하느님이 아니냐?
지금이라도 생각해보라.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정확히 하라. 아는가? 모르는가?
“맨땅에 해당하기”와 같이,
실제를 보여주시는 하느님과 대립하는 신을 믿는 격인데,
우리나라의 악신을 이겼다라면 절대자로써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격이겠지만,
불교의 신은 그렇지 않다.
게다가 도와준 적은 한번도 없다.
하느님처럼 실제로 도운 적이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실제라는 현재상황에서도 도와주러 나타나지 않는,
미지의 존재에 불과한 부처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거나,
허황되게 “증거도 전혀 없어도 의지한다”는 식으로 대하여,
실제로라는 확실한 증거로 이야기하시는 하느님과 대립하는 것은
실제로라는 확실한 증거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센 신이시라는 “신중의 신”이라는 호칭을
가지신 하느님과의 대립하는 구도는, 극도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믿음”이라는 것은
그것도 “실제라는 증거로 생긴 것이다.”라는 말이다.
실제vs허상
이것이 하느님과 불교의 핵심만 짚어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