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곳에 연애썰을 풀어보는게 처음이라 살짝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는데 그냥 써볼게요.어차피 자랑이라 약간 친구 같이 말 편하게 푸는거 이해해주심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난 지금 26살이야 우리집 형편도 사실 보통은 아니였던거 같아 엄마는 그래도 나름 유치원 교사였는데 아버지가 건달출신에 운동선수였거든 그러다 보니까 남자로써는 참 하면 안될짓을 다 했었지 술 도박 여자 거기에 빛더미까지 집에 들고 왔으니 말 다했지 진짜 떄리는거 빼고는 다했던거 같아 그러다보니 당연히 어머니랑 사이는 좋을수가 없었고 어머니가 그래도 나랑 누나 살리겠다고 악착같이 버티시면서 일을 하루 3개4개씩 잠도 안주무시고 했었어. 근데 어머니도 어린시절에 학대를 당하고 컷었다 보니까 제정신이 아니셨었지 우울증이 너무 심하게 와서 초딩떄부터 늘 맞으면서 자랐던거 같아 어느날은 칼 들고 진심으로 날 죽이려 했던적도 있으니까. 그래서 늘 엄마가 집으로 들어오는 그 발소리가 들리면 항상 긴장하면서 살았지 아버지는 뭐 맨날 새벽 늦게 들어오니 내가 알 턱이 없었고.. 쩃뜬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라다보니 내 가치관이라던지 이런게 좋게 자랄 수는 없었던거 같음 늘 복수심이 가득했고 자존감은 완전 바닥을 기었었지. 실제로 초딩떈 키도 작고 머리만 크고 체형도 왜소한데 머리도 맨날 안감고 댕기니까 애들이 왕따 엄청 시키고 괴롭혔었거든 생각해보면 초딩 도덕에 나오는 그런 말은 개소리란걸 3학년때 딱 깨달은거 같아. 그래도 운동에 재능이 있었어서 그쪽으로 계속 선수준비도 했고 중학교도 체육 특기생 추천받아서 들어갔는데 예체능은 알 애들은 알다시피 돈이 어느정도 없으면 엄두도 못내는게 에체능이거든 근데 위에서 봤다시피 집 꼬라지가 빛밖에 없는데 내가 어떻게 더 운동을 해 결국 돈 떄문에 관두게 되면서 내 안에 있는 그런 복수심 분도들이 다 터져서 그떄부턴 나도 인생을 좀 막 살기 시작했었어 내가 다니던 학교가 또 운동부 아니면 양아치로 동네에서 유명한 학교였거든 설상가상으로 내가 중2떄 6개월만에 149에서 179까지 크고 스타일도 확 바꾸면서 나름 인기도 많아지고 생긴것도 양아치 같단 소리도 많이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쪽 애들이랑 어울리고 놀면서 다녔어 그러다가 엄마가 종교를 신실하게 믿으면서 사람이 정말 저렇게 바뀌어도 되는건가 싶은 정도로 바뀌었고 나랑 누나한테 맨날 울며 미안하다고 그랬지만 내 마음은 이미 차갑게 돌아버린 상태였었지. 그 상태로 학교 생활 개망나니로 하다가 엄마가 교회에서 하는 해외 봉사활동이 있다고 나한테 꼭 해보면 안되냐길래 안한다 안한다 하다가 솔직히 해외여행 한번 가보고 싶어서 컴퓨터 새로 바꿔주는 조건으로 가주겠다 하고 거길 이제 갔는데 뭐 호주에 있는 한인교회랑 협업을 해서 뭐 같이 한다는거 그래서 그냥 아 그런가보다 하고 이제 호텔로비에 앉아있엇는데 그떄 지금 여자친구를 딱 만나게 됐어 그냥 좀 예쁘장하고 되게 그 연애혁명 왕자림이랑 느낌이 진짜 똑같았어서 그냥 잠깐 눈길이 갔었는데 그 아이는 날 의식도 안하고 있더라고ㅋㅋㅋㅋㅋ 그렇게 2주 정도 같이 있으면서 친해질 법도 한데 다른 애들이랑은 말도 하고 친해졌는데 그 아이랑은 말 한마디도 못 나눠보고 그렇게 일정이 끝이 나서 난 한국으로 그 아이는 호주로 다시 돌아갔었지 생각해보면 그떄 말 좀 더 나눠보고 친해져볼걸 아쉽긴 해... 근데 그러다가 우리 엄마가 외국으로 일 캐스팅이 들어왔고 아버지도 종교를 믿으면서 좀 바뀌어서 제대로 살아보자 하고 외국으로 어쩌다보니 고1때 외국으로 이민가게됐음 (굳이 밝히면 누가 알까봐 말 안했는데 동남아쪽으로 알고있으면 될거야) 뭐 한국에서도 그러고 살고잇었는데 뭐 거기라고 다를까 난 더 날뛰기 시작했지 약까지 손대면서 진짜 인생 막장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그 아이와 연락이 닿아서 그떄부터 되게 마음을 나누는 찐친으로 발전하게 됐어 연락한 게 남아 있지가 않아서 어떻게 친해지게 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음.. 그래서 그떈 진짜 죽고싶다는게 내 꿈이였고 바램이였는데 그 아이랑 얘기할땐 그래도 내 마음에 있는 뭔가 좀 편안해졌었음. 그러다 나도 그 아이도 뭐 너무 거리가 머니까 더 발전할 생각도 못하고 서로 연애하기 바쁘고 그런 와중에도 서로 의지하는 친구라는건 변함이 없었고 서로 짝이 있으니 연락은 안해도 그래도 마음 속에 그런 친구라고 생각하며 살았지 근데 이떄부턴 내 말아먹을 여자복이 그냥 개극혐 수준이였어 별에별 애들을 다 만나봣는데 애정결핍은 기본 사항이였고 내 친구랑 바람피다 텔에서 딱 걸린 애도 있었고 트위터로 조건만남 하는 애도 있었고(그걸 전역하기 전날 알게 됌 ㅅㅂ) 진짜 환승 잠수 바람을 다 당해봤거든 그러다 마지막에 만난애는 그래도 말이 잘 통하는 애라 생각하고 3년을 만나면서 나에 대해 진짜 잘 아는 애였고 내 모든 상처를 다 아는 그런 사람이였는데 그냥 환승 바로 때려버리더라 그때 내 안에 있는게 그냥 뚝 하고 끊어짐 집안이 이러다 보니 난 돈에 대해 엄청 한이 맺혀있었어 그래서 20살때 노숙하면서 돈도 벌어봤고 추워서 잘데가 없어서 경찰서에 사정 얘기하고 자고 그랬었는데 그런 모든 내 삶을 다 아는 애가 날 그렇게 통수를 까니까(심지어 헤어진것도 걔가 내 트라우마를 건드는 말을 해서 그렇게 됐음) 그냥 모든걸 다 내려놓게 되더라고 2주동안 10키로가 넘게 빠짐 탄수화물 먹으면 토하고 술만 먹고 그랬으니까 그냥 여자에 대해서 환멸이 났던거 같아 그런데 유일하게 이 아이만큼은 내가 내 친구라 생각해서 계속 연락하고 지냈거든 전화하면서 많이 울기도하고 멀리 떨어져있어도 내 옆에 항상 있어줬어 심지어 전에 사귀었던 그 년이 이 아이를 너무 싫어해서 차단까지 했었거든 그런데도 똑같이 항상 같은 자리에서 기다려줬었어 실습중에도 바쁜데 시간 쪼개서 내 얘기 들어주고 그랬던거 같다. 그러다가 한 두달정도 지났나 연락을 우리가 서로 자주자주 하는 편은 아니였는데 그냥 얘 연락을 내가 기다리고 있더라고 근데 눈치를 못챔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느낌이였는데 얘가 어느날 나 보고싶다고 그냥 티켓팅을 했더라고 그래서 그떄부턴 자연스레 서로 연락했엇음 쉬는날 전혀 없이 그런데 어느 날에 그냥 순간적으로 꺠달았는데 그떈 계속 부정했었어 그러고 받아드리고는 무조건 숨겨야겟다 생각밖에 안했지 이걸 드러내는 순간 10년의 세월은 싹 다 없어지는거니까 그냥 숨기고 또 숨겨야겠다 더 상처 받기도 싫어서 더 그냥 계속 티도 안내고 있었지 근데 그러다 사건이 생겼어 그 아이를 좋아한다는 남자애들이 있었는데 그때 술을 먹는다는데 그냥 뭔가 쎼한거야 그래서 연락하니까 고백을 받았다더라고 그때 딱 느꼇던게 아 이젠 이 아이랑 진짜 친구는 할 수 없겠구나 친구를 할거면 결혼을 하는걸 보고 진심으로 축하해줘야 하는데 난 이젠 진심으로 그걸 못해주겠더라고 그래서 그떄 나도 술도 좀 했겠다 취중진담으로 나 너랑 이제 친구 못한다고 너 연애를 또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자신도 없고 보기도 싫다고 넌 나 어떻게 생각하냐고 만약에 너도 날 좋아하면 그냥 우리 그만 돌고 나랑 잘해볼 자신 없냐고 그랬지 그러니까 그 아이가 그럼 우리 실제로 만나서 얘기 나누고 그때 더 잘해보자고 자기도 호감있다고 그러더라 심장이 ㄹㅇ미친놈마냥 뛰었는데 이후에 기다림 끝에 그 친구를 만나서 첫날 얘기도 하고 그러다가 서로 이끌려서 그렇게 좋은 시간 보내면서 있다가 사귀게되고 서로 많은 얘기를 했는데 우리가 서로 너무나 잘 알다보니까 서로의 상처를 너무 잘 알아서 서로 위로해주면서 울기도 또 울고 그 동안 서로 돌았던 시간동안 더 뜨거웠지. 그리고 호주로 다시 돌아가고 장거리가 시작됐지...그래서 나랑 내 여자친구는 서울 부산따위 장거리가 아니라 생각해 어딜 같은 나라에서 장거리 타령,,,우린 비행기 타고 10시간이야 쩄뜬 사귀고나서 갑작스럽게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었어 그래서 급하게 한국 들어가고 되게 정신이 없었는데 그 와중에도 한결같이 날 봐주는 내 여자친구가 있단 생각에 마음은 든든했던거 같아 떨어져있어도 서로 신뢰가 느껴졌거든. 엄마도 이젠 좀 괜찮아지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돌아봣을때 내 모든 아픔 상처들 또 이런 가정사까지 모든걸 정말 다 품어주고 사랑해준다는게 나이 먹고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알거야 절대 쉽지 않다는거 그걸 너무나 당연하게 해주며 사랑해주고 날 너무 예뻐해주니까 이 아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자랐는지 얼마나 행복한 가정인지 그 아이를 보기만 해도 알겠더라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더라고 악몽같던 내 삶이 이 아이 하나로 인해 행복한 삶을 꿈꿔도 되겠다는 희망으로 바뀌면서 제대로 이 사람에게 어울릴 사람이 되야겠다 생각해서 미친듯이 열심히 살며 결혼준비 하고 있다. 남자들 당장에 좋다고 하는 사람도 알아서 할 일이지만 너 자신을 바꿔줄만큼 내가 감당하고 있는 이 책임감 조차도 이사람 생각하면 행복하게 감당할 수 있는 여자를 만나라 진짜 삶의 질이 달라진다. 좀 두서없이 썻는데 나중에 또 기회되면 그 사이에 있던 일들도 자세하게 말해볼게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
10년 지기 친구랑 연애
우선, 난 지금 26살이야 우리집 형편도 사실 보통은 아니였던거 같아 엄마는 그래도 나름 유치원 교사였는데 아버지가 건달출신에 운동선수였거든 그러다 보니까 남자로써는 참 하면 안될짓을 다 했었지 술 도박 여자 거기에 빛더미까지 집에 들고 왔으니 말 다했지 진짜 떄리는거 빼고는 다했던거 같아 그러다보니 당연히 어머니랑 사이는 좋을수가 없었고 어머니가 그래도 나랑 누나 살리겠다고 악착같이 버티시면서 일을 하루 3개4개씩 잠도 안주무시고 했었어. 근데 어머니도 어린시절에 학대를 당하고 컷었다 보니까 제정신이 아니셨었지 우울증이 너무 심하게 와서 초딩떄부터 늘 맞으면서 자랐던거 같아 어느날은 칼 들고 진심으로 날 죽이려 했던적도 있으니까.
그래서 늘 엄마가 집으로 들어오는 그 발소리가 들리면 항상 긴장하면서 살았지 아버지는 뭐 맨날 새벽 늦게 들어오니 내가 알 턱이 없었고.. 쩃뜬 그런 가정환경에서 자라다보니 내 가치관이라던지 이런게 좋게 자랄 수는 없었던거 같음 늘 복수심이 가득했고 자존감은 완전 바닥을 기었었지. 실제로 초딩떈 키도 작고 머리만 크고 체형도 왜소한데 머리도 맨날 안감고 댕기니까 애들이 왕따 엄청 시키고 괴롭혔었거든 생각해보면 초딩 도덕에 나오는 그런 말은 개소리란걸 3학년때 딱 깨달은거 같아. 그래도 운동에 재능이 있었어서 그쪽으로 계속 선수준비도 했고 중학교도 체육 특기생 추천받아서 들어갔는데 예체능은 알 애들은 알다시피 돈이 어느정도 없으면 엄두도 못내는게 에체능이거든 근데 위에서 봤다시피 집 꼬라지가 빛밖에 없는데 내가 어떻게 더 운동을 해 결국 돈 떄문에 관두게 되면서 내 안에 있는 그런 복수심 분도들이 다 터져서 그떄부턴 나도 인생을 좀 막 살기 시작했었어 내가 다니던 학교가 또 운동부 아니면 양아치로 동네에서 유명한 학교였거든 설상가상으로 내가 중2떄 6개월만에 149에서 179까지 크고 스타일도 확 바꾸면서 나름 인기도 많아지고 생긴것도 양아치 같단 소리도 많이 듣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쪽 애들이랑 어울리고 놀면서 다녔어 그러다가 엄마가 종교를 신실하게 믿으면서 사람이 정말 저렇게 바뀌어도 되는건가 싶은 정도로 바뀌었고 나랑 누나한테 맨날 울며 미안하다고 그랬지만 내 마음은 이미 차갑게 돌아버린 상태였었지.
그 상태로 학교 생활 개망나니로 하다가 엄마가 교회에서 하는 해외 봉사활동이 있다고 나한테 꼭 해보면 안되냐길래 안한다 안한다 하다가 솔직히 해외여행 한번 가보고 싶어서 컴퓨터 새로 바꿔주는 조건으로 가주겠다 하고 거길 이제 갔는데 뭐 호주에 있는 한인교회랑 협업을 해서 뭐 같이 한다는거 그래서 그냥 아 그런가보다 하고 이제 호텔로비에 앉아있엇는데 그떄 지금 여자친구를 딱 만나게 됐어 그냥 좀 예쁘장하고 되게 그 연애혁명 왕자림이랑 느낌이 진짜 똑같았어서 그냥 잠깐 눈길이 갔었는데 그 아이는 날 의식도 안하고 있더라고ㅋㅋㅋㅋㅋ 그렇게 2주 정도 같이 있으면서 친해질 법도 한데 다른 애들이랑은 말도 하고 친해졌는데 그 아이랑은 말 한마디도 못 나눠보고 그렇게 일정이 끝이 나서 난 한국으로 그 아이는 호주로 다시 돌아갔었지 생각해보면 그떄 말 좀 더 나눠보고 친해져볼걸 아쉽긴 해...
근데 그러다가 우리 엄마가 외국으로 일 캐스팅이 들어왔고 아버지도 종교를 믿으면서 좀 바뀌어서 제대로 살아보자 하고 외국으로 어쩌다보니 고1때 외국으로 이민가게됐음 (굳이 밝히면 누가 알까봐 말 안했는데 동남아쪽으로 알고있으면 될거야) 뭐 한국에서도 그러고 살고잇었는데 뭐 거기라고 다를까 난 더 날뛰기 시작했지 약까지 손대면서 진짜 인생 막장을 향해 가고 있었는데 어쩌다보니 그 아이와 연락이 닿아서 그떄부터 되게 마음을 나누는 찐친으로 발전하게 됐어 연락한 게 남아 있지가 않아서 어떻게 친해지게 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음.. 그래서 그떈 진짜 죽고싶다는게 내 꿈이였고 바램이였는데 그 아이랑 얘기할땐 그래도 내 마음에 있는 뭔가 좀 편안해졌었음. 그러다 나도 그 아이도 뭐 너무 거리가 머니까 더 발전할 생각도 못하고 서로 연애하기 바쁘고 그런 와중에도 서로 의지하는 친구라는건 변함이 없었고 서로 짝이 있으니 연락은 안해도 그래도 마음 속에 그런 친구라고 생각하며 살았지
근데 이떄부턴 내 말아먹을 여자복이 그냥 개극혐 수준이였어 별에별 애들을 다 만나봣는데 애정결핍은 기본 사항이였고 내 친구랑 바람피다 텔에서 딱 걸린 애도 있었고 트위터로 조건만남 하는 애도 있었고(그걸 전역하기 전날 알게 됌 ㅅㅂ) 진짜 환승 잠수 바람을 다 당해봤거든 그러다 마지막에 만난애는 그래도 말이 잘 통하는 애라 생각하고 3년을 만나면서 나에 대해 진짜 잘 아는 애였고 내 모든 상처를 다 아는 그런 사람이였는데 그냥 환승 바로 때려버리더라 그때 내 안에 있는게 그냥 뚝 하고 끊어짐 집안이 이러다 보니 난 돈에 대해 엄청 한이 맺혀있었어 그래서 20살때 노숙하면서 돈도 벌어봤고 추워서 잘데가 없어서 경찰서에 사정 얘기하고 자고 그랬었는데
그런 모든 내 삶을 다 아는 애가 날 그렇게 통수를 까니까(심지어 헤어진것도 걔가 내 트라우마를 건드는 말을 해서 그렇게 됐음) 그냥 모든걸 다 내려놓게 되더라고 2주동안 10키로가 넘게 빠짐 탄수화물 먹으면 토하고 술만 먹고 그랬으니까 그냥 여자에 대해서 환멸이 났던거 같아 그런데 유일하게 이 아이만큼은 내가 내 친구라 생각해서 계속 연락하고 지냈거든 전화하면서 많이 울기도하고 멀리 떨어져있어도 내 옆에 항상 있어줬어
심지어 전에 사귀었던 그 년이 이 아이를 너무 싫어해서 차단까지 했었거든 그런데도 똑같이 항상 같은 자리에서 기다려줬었어 실습중에도 바쁜데 시간 쪼개서 내 얘기 들어주고 그랬던거 같다. 그러다가 한 두달정도 지났나 연락을 우리가 서로 자주자주 하는 편은 아니였는데 그냥 얘 연락을 내가 기다리고 있더라고 근데 눈치를 못챔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느낌이였는데 얘가 어느날 나 보고싶다고 그냥 티켓팅을 했더라고 그래서 그떄부턴 자연스레 서로 연락했엇음 쉬는날 전혀 없이 그런데 어느 날에 그냥 순간적으로 꺠달았는데 그떈 계속 부정했었어 그러고 받아드리고는 무조건 숨겨야겟다 생각밖에 안했지
이걸 드러내는 순간 10년의 세월은 싹 다 없어지는거니까 그냥 숨기고 또 숨겨야겠다 더 상처 받기도 싫어서 더 그냥 계속 티도 안내고 있었지 근데 그러다 사건이 생겼어 그 아이를 좋아한다는 남자애들이 있었는데 그때 술을 먹는다는데 그냥 뭔가 쎼한거야 그래서 연락하니까 고백을 받았다더라고 그때 딱 느꼇던게 아 이젠 이 아이랑 진짜 친구는 할 수 없겠구나 친구를 할거면 결혼을 하는걸 보고 진심으로 축하해줘야 하는데 난 이젠 진심으로 그걸 못해주겠더라고 그래서 그떄 나도 술도 좀 했겠다 취중진담으로 나 너랑 이제 친구 못한다고 너 연애를 또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자신도 없고 보기도 싫다고 넌 나 어떻게 생각하냐고 만약에 너도 날 좋아하면 그냥 우리 그만 돌고 나랑 잘해볼 자신 없냐고 그랬지 그러니까 그 아이가 그럼 우리 실제로 만나서 얘기 나누고 그때 더 잘해보자고 자기도 호감있다고 그러더라
심장이 ㄹㅇ미친놈마냥 뛰었는데 이후에 기다림 끝에 그 친구를 만나서 첫날 얘기도 하고 그러다가 서로 이끌려서 그렇게 좋은 시간 보내면서 있다가 사귀게되고 서로 많은 얘기를 했는데 우리가 서로 너무나 잘 알다보니까 서로의 상처를 너무 잘 알아서 서로 위로해주면서 울기도 또 울고 그 동안 서로 돌았던 시간동안 더 뜨거웠지.
그리고 호주로 다시 돌아가고 장거리가 시작됐지...그래서 나랑 내 여자친구는 서울 부산따위 장거리가 아니라 생각해 어딜 같은 나라에서 장거리 타령,,,우린 비행기 타고 10시간이야 쩄뜬 사귀고나서 갑작스럽게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었어 그래서 급하게 한국 들어가고 되게 정신이 없었는데 그 와중에도 한결같이 날 봐주는 내 여자친구가 있단 생각에 마음은 든든했던거 같아 떨어져있어도 서로 신뢰가 느껴졌거든.
엄마도 이젠 좀 괜찮아지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돌아봣을때 내 모든 아픔 상처들 또 이런 가정사까지 모든걸 정말 다 품어주고 사랑해준다는게 나이 먹고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알거야 절대 쉽지 않다는거 그걸 너무나 당연하게 해주며 사랑해주고 날 너무 예뻐해주니까 이 아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자랐는지 얼마나 행복한 가정인지 그 아이를 보기만 해도 알겠더라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더라고 악몽같던 내 삶이 이 아이 하나로 인해 행복한 삶을 꿈꿔도 되겠다는 희망으로 바뀌면서 제대로 이 사람에게 어울릴 사람이 되야겠다 생각해서 미친듯이 열심히 살며 결혼준비 하고 있다.
남자들 당장에 좋다고 하는 사람도 알아서 할 일이지만 너 자신을 바꿔줄만큼 내가 감당하고 있는 이 책임감 조차도 이사람 생각하면 행복하게 감당할 수 있는 여자를 만나라 진짜 삶의 질이 달라진다. 좀 두서없이 썻는데 나중에 또 기회되면 그 사이에 있던 일들도 자세하게 말해볼게 긴 글 읽어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