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으로 인해 타지로 온 첫 날.
그저 원하던 일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미래를 다짐했다.
그러다 넉넉하지 못했던 상황으로 시작한
아르바이트. 그러다 그녀를 만났다.
새침하면서도 선한 인상에 웃는 얼굴이
해맑고 귀여웠던 그녀.
그저 TV속에 나오는 연예인 같았다.
내 마음을 억누르고 지내오다 업무상 대화하며 경험이 부족했던 그녀에게 자신감을 주고 싶었나보다.
한 마디가 두 마디가 되고 두 마디가 대화로 발전하며
결국 가까워지고 있었던 그녀와 나.
아르바이트를 앞둔 마지막 수업시간엔 가슴이 뛰었고
순간 순간마다 그녀가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나 혼자만의 마음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던 찰라.
그녀가 내 퇴근시간에 맞춰 매장 앞에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그리고 또 다음 날.
우연히 그녀가 내 앞에 있었다고 느꼈던 것이 아니라
그녀와 내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우리는 나이차가 많이 났다.
나는 남들 눈치보며 소극적이였지만 그녀는
항상 날 지지하고 북돋아주면서 줄일 수 없었던 차이를
느끼지 못하도록 감싸주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 여운은
얼마 전까지 지속될 정도로 강렬했다.
생애 첫 교복 데이트, 놀이공원에서 사랑한다고 외치기,
전망대 열쇠걸기, 크리스마스에 함께 걷기,
하루 하루의 일기장으로 선물하기, 커플링 맞추기까지.
남들에겐 당연하고 소소하다고 생각할수도 있지만
여유없이 하루 하루를 바쁘게 살아왔던 나에겐
소중한 순간들의 연속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취업에 대한 압박감과 더불어 금전적인 불안감,
그리고 집안 일까지 감당하기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하나씩 떼어내야 했다.
그 시작은 그녀였다.
그녀가 친구와 여행을 간 사이 연락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않았을거다. 그리고 그녀에게도
메시지나 전화가 없었다.
그때였다. 우린 연인이 된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처음으로 싸웠다.
그 처음이 마지막이 되었다.
그녀가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터미널에서 만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도 그녀는 나에게 잘 보이고 싶었나보다.
"나 오늘 화장도 안하고 옷이 너무 편해보여"
"몰랐어? 너 예뻐"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에 화장끼 없는
그녀의 얼굴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그러나 난 그녀에게 마음이 떠났나고 물었고
그녀에게 '잘 모르겠어'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내심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나보다
그녀의 대답에 가슴이 내려 앉았으니깐.
아니라고 해주지.
왜 그런 말을 하냐고 해주지.
그만하자는 말이 입안에서 수십 번 맴돌던 순간에
말해야 알 것 같았다. 그래야 했다.
그리고 난 그녀의 눈물을 보았다.
매번 날 만나러 올 때마다 먼 발치서 뛰어와 귀엽게 안겼던
그녀. 날 보고 언제나 해맑게 웃어줬던 그녀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걸보고 정말 끝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서 밖으로 나와 함께 걷다가 버스정류장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서로 악수를 하며 잘 지내라는 말을 하며 난 한 마디를 했다.
"난 아마 후회할거야"
그리고 손을 빼려는 순간 그녀가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때가 지금 생각해보면 마지막 기회였나보다.
하지만 난 손을 뿌리치고 뒤돌아 갔다.
그리고 자취방에 가는 길에 한참을 울었고
도착해서 밤새 울었다.
그리고 난 3주 후 그녀를 다시 붙잡고
싶어 메시지를 보냈다.
"난 그 이후 지금까지 오빠가 생각나지 않았어"
가슴 속에 무언가가 후벼파는 느낌이였다.
그리고 난 너무 처량했고 그래도 기다리고 싶었다.
언젠간 한 번이라도 연락이 오면 무조건 잡아야지.
몇 달 간 멍하니 지내다 모든 걸 그만두고
공부에 매진했다.
어느 정도 결과가 있었지만 코로나라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고향으로 돌아갔고
몇 년 후 결국 원하는 일을 하며 개인 사무실도 만들었다.
사무실 한 켠엔 전신 거울과 그 위엔
한 문장의 레터링이 자리 잡고 있다.
"몰랐어? 너 예뻐"
몇 년 간 그녀에게 연락하고 싶었고
연락한 적도 있었지만 내 전화번호를
차단할 정도로 그녀와 연락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아쉬웠고 섣불렀던 순간의 아쉬움은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마음을 정말 끝내야 하는 순간이
왔다는 걸 깨달았다.
과거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에서 그녀와
함께 일했던 지인을 만나 일상 이야기를 하던 중
갑자기 그녀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지인의 연락처엔 그녀가 있었고
그녀의 카카오톡 프로필을 보게 되었다.
7년이 지났지만 예전 그대로인 모습.
내가 간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해맑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미소.
그런데 그 미소는 결혼을 앞둔 신랑 옆에서
피어나오는 행복한 신부의 모습으로
눈 앞에 다가왔다.
가슴이 내려 앉았다.
그리고 난 너무 미련했다.
지인과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은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요했다.
그리고 인생의 한 페이지가 마무리 되는 것 같았고
새로운 한 페이지를 펴야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난 후 7년의 시간 동안
어느 누구도 만나지 않았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왜 연애를 하지 않냐느니,
소개팅 받아보지 않을래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바쁘다는 이유로, 관심없다는 핑계로 지나왔던 것 같다.
결국 난 미련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녀를 그리워했고 그녀에게 혹시나 모를
한 마디를 기다렸었던 것이다.
우연한 상황에서 두 눈으로 확인했던
그녀의 결혼.
이제는 내 마음 속에서 정말 그녀를 지워야 할 때가
되었고 그래야만 한다.
항상 생각했다.
우연이라도 그녀를 만나 다시 시작하지 못할지라도
꼭 이 말만은 하고 싶었다.
"비겁해서 정말 미안했고 행복해"
이젠 7년 동안의 그리움과 설렘의 마침표를 찍는다.
누군가에겐 미련하고 궁상 맞았던 시간이였을지
몰라도 나에겐 그 시간을 보내며 그녀보다 아름답고
천사같은 사람은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인연을
만들지 않았던 것.
인연이란 모래시계와 같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사람과 나만의 모래시계를 돌려놓고
그 모래가 밑으로 다 쌓여져 갈 때 즈음
새로운 추억으로 모래시계를 다시 돌려놓는 것.
그녀와 나의 모래시계는 더이상 돌려놓을 수
없지만 먼 훗날 내 마음 속 저편에서 덩그러니
놓여있는 그 모래시계가 내 인생의 뜻깊었던
이정표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