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까니20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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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ㅡ로마서 5장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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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일러둡니다.
하느님의 영에 힘입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예수는 저주를 받아라.” 할 수 없고,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ㅡ고린토전서 12장 3절




ㅡ로마서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ㅡ고린토전서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계속 반복하면서
나오고 있습니다.

성령회관이 중요하다고
계속 반복하면서 나오고 있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라는 성경구절과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라는

성경구절을 봅시다.






오늘날은 "성령의 시대"입니다.
이 위의 성경구절이 성령의 역활과 활동인 것입니다.

또, 성령회관이 중요한 이유가 되겠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고,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이게 오늘날 성령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성령회관에는 오지 않고 있는 것이냐고

하느님의 성령께서는 묻고 계신게 아닐까요.





이게 대충 요약한 내용이자 이 문장이
되지 않겠습니까.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어떤 그 누구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다니까요.

이는 곧 천주교신자는
모두 성령회관에 나오시란 말입니다.


성령을 한번도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진심으로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라고
하실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쓰여있었습니다.


성령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던 제 생각과
어떤 신부님의 생각과도 완전히 일치되어 있었습니다.



저와 신부님은 성령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점이
일치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경구절이 이야기 하는것은,
곧 모든 천주교신자는 성령회관에 꼭 한번이라도

가 보아야만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유는,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지금도 주님을,
예수님이시다 할수 있다고 하시겠지요.




그러나 저는 그런 일반적인 책으로 얻게 되는 믿음 말고,
진짜로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를 할 수있는,

진짜로 믿는 믿음을 이야기 합니다.




저도 성령을 보고서는 더 놀라운 믿음이 생겼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을 알려면 반드시 성령회관에 가야만 알수 있습니다.

성당 그 어디에도 없는, 성령의 활동이 가톨릭의 보물처럼, 숨겨져 있습니다.



성령회관에 숨겨져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를 지금까지
입으로만 무의식중에 반사적으로 소리내셨습니까.



왜 성당 활동만을 하셨습니까.
이젠 성령 활동을 하십시오.


성경에서도 성령활동을 하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성당과는 전혀 다른 활동을 하시는 하느님께서,
성령으로 당신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제서야 우리 천주교신자는,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를 겉으로 내뱉는 단어들의 조합이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를 할 수 있으며,

개신교는 왜 1000만을 쉽게 찍었는지도
쉽게 알수 있습니다.



성당만 다니면, 진심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를 분명하게는 할수 없다고

성경은 얘기하고 계시며
또 저는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아니라 성경에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겁니다.

다시 봅시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ㅡ고린토전서 12장 3절


성령은 "예수님은 주님이시다"가 체험으로써
나오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