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한번쓰다가 긴 글이 사라져버렸네...ㅎ 다시한번 써볼게. 나는 어렸을때 왕따를 당했어.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았던건 당연한일이였고 폭행과 폭언은 늘 나를 따라다녔어. 처음의 시작은 아마 음악실이였을거야. 난 내가 무슨옷을 입었는지도 기억해. 내몸보다 조금 크던 베이지계열에 빨간 줄무늬가있던 후드집업, 청바지 머리는 길었고 너희는 나의 무릎을 꿇렸었어. 뺨이며, 머리끄댕이며, 여러명의 손길은 나를 때리기 바빴고 나는 무작정 맞기 바빴었어. 감기에 걸려 아프던 날이였는데 아픈척 하냐는 말에 "엄마한테 감기를 옮아서 그래.." 라는 그 아이에게 너희는 그렇게 말했어. "니 년 엄마만 아프냐" 그렇게 우리 부모님 욕을 해댔었지. 그렇게 얼굴이 붓도록 맞은나는 울면서 집에 돌아가야했어. 내가 그렇게 탱탱부어서 돌아가던 나이는 고작 초등학교 4학년이였어. 너희에게 맞은게 무서워서 혹시나 부모님이 볼까봐 부모님이 보고 학교에 전화해서 너희가 혼나면 또 나에게 그 화살이 돌아올까봐. 난 두려움에 떨어야했고 이불속에서 숨죽여 울기만 했어야 했어. 그래도 내가 조금 버텼던건 단 하나 집으로 돌아가는길에 한 남자애가 네게 말해 "왜 맞고만 있어? 너도 때리고 부모님한테 말도해" 라고 답답해 하며 날 위로했지. 두번째날 그 위로도 잠시였어. 아침일찍 화장실로 불려가야했어 이유는 하나. '너가 부모님한테 일러서 내가 혼났잖아' 라고 정말 부모님께 말씀이라도 드렸다면 내가 조금 덜 억울했을까? 아니. 그 아이들은 그저 날 괴롭힐 이유가 필요했었을뿐이였어. 사실이든 사실이아니든 그저 괴롭힐 이유를 찾는 너네였지. 너희는 그저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너희를 과시할 약한 존재가 필요했던거였어. 그날 내 실내화는 화장실변기물로 물들여졌었어. 그리고 날 또 음악실로 불러냈지. 기침하는 내게 또 손길질을하고 발길질을 하며 그렇게 부모님욕을 쏟아냈어. 날 위로했던 그남자애가 갑자기 의자를 던지며 나가더라. 그리고 다시 들어와서 내게 말했지 "x년아 너만 엄마있어? 왜자꾸 엄마얘기야" 라고 엄마께서 널 버리고 가신건 안타까운 일이였지만 내가 그때 너에게 잘못한게 뭐길래 등지고 욕을 한거니. 그저 너도 누군가를 괴롭히는게 재밌어보였던거였을까? 똑같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괴물이되더라. 그렇게 하루가 일년같은 시간이 반복되어갔어. 음악을 좋아했던 우리학교의 유일한 소프라노였던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장소가 음악실이 되었고 교실, 방송실, 음악실, 강당, 운동장 그 어디도 내가 마음 놓을곳은 없었어. 학교 등교를 하지않게되었어. 일하러 나가신 부모님의 빈자리에는 학교앞에 데려다준 그 딸아이가 다시 채워져 있었어. 혹여나 틀키진 않을까 창고에숨어서 점심을드시는 부모님이 다시 일하러나가시길 기다려 밥을 먹으면 티가나니까 나는 조용히 아래집 할머니네로 내려갔어. 왜 왔냐는 말에 '아파서 조퇴했는데 집에밥이없어요' 라며 말했어. 다행이도 따뜻한 밥에 조기찌개를 내어주시더라 매일 그렇게 내려가서 말동무해드리고, 학교를 가지않았어. 아마 아셨을꺼야 내가 거짓말을 하고 학교를 가지 않았다는걸 그저 말못할 사정이겠거니 하며 챙겨주신거같아. 내 생기부는 병가,무단결석으로 채워졌어 그래서 어린시절 흔히받던 개근상,전근상을 나는 받아본적이 없어. 그러다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연락이왔다더라 내가 학교에 오지않는다는 이야기였어. 그때도 두려움에 학교를 가지않은이유를 말하지 못하였어. ' 그저 가기싫었어요 ' 그 한마디였지 다시 그곳으로 가는건 너무 힘든일이였어 그래서 생각했던건 아주 무모하게도 '자살' 그 두글자였어 칼로 손목을 긋는다는건 상상도 못했어 그때 눈에띈건 뉴스였고, 그 뉴스안에서는 '크라맥손' 이라는 제초제이름이였어. 너무 독성이 강해 사람이 음독할경우 사망에 이른다해서 판매중지가 되었다는 내용이였고, 우리집에 그 제초제는 아주 찾기 쉬웠어. 농사를 짓는 집은 늘 미리사다두고 농작물에 뿌리거든. 난 그걸 작은병에 담아서 학교에 데려다주는 아빠를 뒤로하고 학교로 갔어 그날도 '너가 안나오는동안 심심했다.'는 이유로 한참을 맞아야했어. 그리고 결심했지 '어느곳도 내가 있을곳은 없다.' 나는 그 다음날 작은병이 든 가방을 메고 학교에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학교앞에서 멈춰서서 아빠가 가길 기다렸어. 그리고 아이들의 반대로 걷기 시작해 버스를 탔어. 버스터미널에 내려 골목길을 찾아내어 가방속 작은병을 꺼내 내입으로 넣었어. 너무 맛이없더라고. 당장에 나에게 느껴지는 고통도 없었어. 아무래도 원액이아니라 음료에 섞어서였나봐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어. 점점 이상했어. 난 왜 아무렇지 않지? 고민이 들때쯤 누군가 내머리를 때리더라. 일어나라고 하면서말야. 하루종일 창백해진얼굴, 파래진 입술, 나만 모르던 내상태. 앉아서 잠이들었나봐. 그래서 늘 방관만하던 남자애 하나가 나를 깨우려고 때린거였어. 놀랍게도 그 아이의 대답은 " 너지금 잠들면 죽을거같으니까 일어나" 였어. 날 보건실로 데려갔고, 보건선생님은 물어봤어 오늘 늦게왔다던데 어딜다녀왔는지. 그상황에서도 무서웠던나는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어요. 감기요." 라고 거짓말을했어. 그 이후 복통이 심했었어. 모든걸 다 토해내고도 화장실에 뛰쳐가야했어.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러면서 내속에 들어간것들이 빠져나온건지. 차차 괜찮아지더라고. 초등학생이 겪기엔 너무나큰 고통이였어.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덮어쓰며 할줄아는건 우는것. 더 할줄아는건 없었어. 그 이후에도 왕따는 계속됬고, 맞아야했고 성적도 떨어지고, 나의 삶의의욕은 없었어. 어느날 불꺼진 도서관 앞, 한 아이가 내게 손내밀어. 애석하게도 그건 나를 괴롭히던 그 아이였어. 가진 돈을 다 내놓으라는 얘기였지 주머니에 든건 꼴랑 몇백원이였지만 내겐 버스를타야할 소중한 돈이였어. 내가 돈을건내니 그러더라고 "거지새끼도 아니고 이딴거들고다니냐"라며 내 앞에서 오히려 기분나쁘다는듯이 동전을 바닥에 던져버렸어. 그리고 더럽다는 듯 쳐다보며 못만질걸 만진것마냥 표정을 구기면서 그 아이가 떠났지. 그리고 얼마되지않아 나를 불러낸 너희는 화장실 구정물을 마시게했어. 당연한거였을까. 위염이며 식중독이며 장염이며 걸릴수있는 모든게 다 내게왔어. 고열이나도, 배가아파도, 음식을 먹지못하고 누워만있어도 나는 좋았어. 적어도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됬었으니까. 추운겨울에도 물에 뒤집혀져야 했던나는 아프면 학교를 못가니 감기를 참게 되었고 결국 폐렴까지오게 되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어. 일주일이 지나도 폐렴은 낫지않았고 아파도 행복했던건, 오로지 가족과 함께보내는 즐거운 생일이되었었어. 병실 사람들도 무작정 헤맑은 나를 예뻐해주셔서 늘 따뜻한 손길로 나를 챙겨주셨었어. 그때가 내생에 가장많은 따스함을 느낀 순간이야. 중학교를 올라가기까지에 계속되었어 이런 나날들은 중학교에 가선 다른 장난감이 생긴듯 나를 때리는 횟수가 줄었어. 이유는 단하나. 내돈으로 빵셔틀을 하게하고 모든 말에 존댓말하며 말을 잘 들으니 착하게 잘 길들여졌다고 생각한거겠지. 이후에 몇몇 아이들은 사과하며, 미안했다 진심을담아 날 도와주더라. 날 때리던 손길이 따뜻한 손길이 되니 안심이라도 됬던걸까. 나의 어린아픔을 애써 감추고 지냈었어. 외면하고 또 외면하며 나를 지워냈지. 근데 그거아니? 난 아직도 싸움의 기술이라는 영화는 못봐. 학교에서 싸우는 장면이 있는 영화는 눈을감고 덜덜떨어. 자다가도 소리가 들리면 온몸이 떨리고 눈물이나. 더 글로리 참 재밌다고 유명하던데 난 아직도 단 한편을 못봤어. 그때의 너희가 떠오를까봐 너무 괴로워서 말야. 그런데 얼마전 너희들의 소식을 들었어. 누군가는 결혼을 해 아이를 가졌고, 누군가는 우리부모님을 뵙게되어 반가웠단 인사를 보냈지 물론, 난 답하지 않았지만 말야. 그런데, 나에게 끝끝내 사과한번 하지않던 너의 소식을 들었어. 아직도 누군가를 욕하며 이간질하고, 거짓말한다는 소식. 본성은 변하지 않았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는데말야. 지인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우연히 또 너의 이름을 듣게되었어. 술기운을 빌려, 어린시절 나의이야기를 해주니 다들 놀라는 눈치더라. 너에게 때마침 온 지인폰의 연락에 ' 나 ㅇㅇ이랑 같이있어. 같은학교던데 혹시알아? ' 라고 보내니 그다음날 답장받았다는 소식 들었어. '내가 괴롭히던앤데 걔, 미친x이야.' 라고 말한 너의 답변을 말이야. 차라리 나를 모른다고 하지 그랬니. 여전히 넌 그렇게 이기적이고 못되게 자랐구나. 결혼도 파혼당하고, 친구들에게 손절당했다는 소리도 들었어. X야. 내 인생에서 나는 너를 지울예정이니, 제발 가해자면서 더이상 당당하게 남을 괴롭히지 않길 바래. 남을 가르치겠다며 된 트레이너라는 직업. 너 또한 누굴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면 폭력이아니라 운동을 가르쳐야 하는거잖아. 내 이야기엔 허구란 없어. 내 인생은 너무 안정되었고, 좋은사람만나 결혼을 꿈꾸고 있고 내가 어떠한 사람이든 후회하지않고 사랑해주는사람만나 충분히 행복하게 지내. 그러니 니 인생에서도 나를 지워주길 바래. 1
나를 괴롭히던 가해자 X에게.
안녕:)
한번쓰다가 긴 글이 사라져버렸네...ㅎ
다시한번 써볼게.
나는 어렸을때 왕따를 당했어.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았던건 당연한일이였고
폭행과 폭언은 늘 나를 따라다녔어.
처음의 시작은 아마 음악실이였을거야.
난 내가 무슨옷을 입었는지도 기억해.
내몸보다 조금 크던 베이지계열에 빨간 줄무늬가있던
후드집업, 청바지 머리는 길었고
너희는 나의 무릎을 꿇렸었어.
뺨이며, 머리끄댕이며, 여러명의 손길은
나를 때리기 바빴고 나는 무작정 맞기 바빴었어.
감기에 걸려 아프던 날이였는데
아픈척 하냐는 말에
"엄마한테 감기를 옮아서 그래.." 라는 그 아이에게
너희는 그렇게 말했어.
"니 년 엄마만 아프냐" 그렇게 우리 부모님 욕을 해댔었지.
그렇게 얼굴이 붓도록 맞은나는 울면서
집에 돌아가야했어.
내가 그렇게 탱탱부어서 돌아가던 나이는 고작
초등학교 4학년이였어.
너희에게 맞은게 무서워서 혹시나 부모님이 볼까봐
부모님이 보고 학교에 전화해서 너희가 혼나면
또 나에게 그 화살이 돌아올까봐.
난 두려움에 떨어야했고
이불속에서 숨죽여 울기만 했어야 했어.
그래도 내가 조금 버텼던건 단 하나
집으로 돌아가는길에
한 남자애가 네게 말해
"왜 맞고만 있어? 너도 때리고 부모님한테 말도해"
라고 답답해 하며 날 위로했지.
두번째날
그 위로도 잠시였어.
아침일찍 화장실로 불려가야했어
이유는 하나.
'너가 부모님한테 일러서 내가 혼났잖아' 라고
정말 부모님께 말씀이라도 드렸다면 내가 조금
덜 억울했을까? 아니.
그 아이들은 그저 날 괴롭힐 이유가
필요했었을뿐이였어.
사실이든 사실이아니든 그저 괴롭힐 이유를 찾는 너네였지.
너희는 그저 내가 싫어서가 아니라 너희를 과시할
약한 존재가 필요했던거였어.
그날 내 실내화는 화장실변기물로 물들여졌었어.
그리고 날 또 음악실로 불러냈지.
기침하는 내게 또 손길질을하고 발길질을 하며
그렇게 부모님욕을 쏟아냈어.
날 위로했던 그남자애가 갑자기 의자를 던지며 나가더라.
그리고 다시 들어와서 내게 말했지
"x년아 너만 엄마있어? 왜자꾸 엄마얘기야" 라고
엄마께서 널 버리고 가신건 안타까운 일이였지만
내가 그때 너에게 잘못한게 뭐길래
등지고 욕을 한거니. 그저 너도
누군가를 괴롭히는게 재밌어보였던거였을까?
똑같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괴물이되더라.
그렇게 하루가 일년같은 시간이 반복되어갔어.
음악을 좋아했던 우리학교의 유일한 소프라노였던 내가
제일 싫어하는 장소가 음악실이 되었고
교실, 방송실, 음악실, 강당, 운동장 그 어디도
내가 마음 놓을곳은 없었어.
학교 등교를 하지않게되었어.
일하러 나가신 부모님의 빈자리에는
학교앞에 데려다준 그 딸아이가
다시 채워져 있었어.
혹여나 틀키진 않을까 창고에숨어서
점심을드시는 부모님이 다시 일하러나가시길 기다려
밥을 먹으면 티가나니까 나는 조용히 아래집
할머니네로 내려갔어.
왜 왔냐는 말에 '아파서 조퇴했는데 집에밥이없어요' 라며
말했어. 다행이도 따뜻한 밥에 조기찌개를 내어주시더라
매일 그렇게 내려가서 말동무해드리고,
학교를 가지않았어.
아마 아셨을꺼야 내가 거짓말을 하고 학교를 가지 않았다는걸 그저 말못할 사정이겠거니 하며 챙겨주신거같아.
내 생기부는 병가,무단결석으로 채워졌어
그래서 어린시절 흔히받던 개근상,전근상을 나는
받아본적이 없어.
그러다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연락이왔다더라
내가 학교에 오지않는다는 이야기였어.
그때도 두려움에 학교를 가지않은이유를 말하지
못하였어. ' 그저 가기싫었어요 ' 그 한마디였지
다시 그곳으로 가는건 너무 힘든일이였어
그래서 생각했던건 아주 무모하게도
'자살' 그 두글자였어
칼로 손목을 긋는다는건 상상도 못했어
그때 눈에띈건 뉴스였고, 그 뉴스안에서는
'크라맥손' 이라는 제초제이름이였어.
너무 독성이 강해 사람이 음독할경우 사망에 이른다해서
판매중지가 되었다는 내용이였고,
우리집에 그 제초제는 아주 찾기 쉬웠어.
농사를 짓는 집은 늘 미리사다두고 농작물에 뿌리거든.
난 그걸 작은병에 담아서
학교에 데려다주는 아빠를 뒤로하고 학교로 갔어
그날도 '너가 안나오는동안 심심했다.'는 이유로
한참을 맞아야했어.
그리고 결심했지 '어느곳도 내가 있을곳은 없다.'
나는 그 다음날 작은병이 든 가방을 메고
학교에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학교앞에서
멈춰서서 아빠가 가길 기다렸어.
그리고 아이들의 반대로 걷기 시작해 버스를 탔어.
버스터미널에 내려 골목길을 찾아내어
가방속 작은병을 꺼내 내입으로 넣었어.
너무 맛이없더라고.
당장에 나에게 느껴지는 고통도 없었어.
아무래도 원액이아니라 음료에 섞어서였나봐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어.
점점 이상했어.
난 왜 아무렇지 않지? 고민이 들때쯤
누군가 내머리를 때리더라.
일어나라고 하면서말야.
하루종일 창백해진얼굴, 파래진 입술, 나만 모르던
내상태. 앉아서 잠이들었나봐.
그래서 늘 방관만하던 남자애 하나가 나를
깨우려고 때린거였어.
놀랍게도 그 아이의 대답은
" 너지금 잠들면 죽을거같으니까 일어나" 였어.
날 보건실로 데려갔고, 보건선생님은 물어봤어
오늘 늦게왔다던데 어딜다녀왔는지.
그상황에서도 무서웠던나는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어요. 감기요."
라고 거짓말을했어.
그 이후 복통이 심했었어. 모든걸 다 토해내고도
화장실에 뛰쳐가야했어.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러면서 내속에 들어간것들이
빠져나온건지.
차차 괜찮아지더라고.
초등학생이 겪기엔 너무나큰 고통이였어.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덮어쓰며 할줄아는건
우는것. 더 할줄아는건 없었어.
그 이후에도 왕따는 계속됬고, 맞아야했고
성적도 떨어지고, 나의 삶의의욕은 없었어.
어느날 불꺼진 도서관 앞, 한 아이가 내게 손내밀어.
애석하게도 그건 나를 괴롭히던 그 아이였어.
가진 돈을 다 내놓으라는 얘기였지
주머니에 든건 꼴랑 몇백원이였지만 내겐
버스를타야할 소중한 돈이였어.
내가 돈을건내니 그러더라고
"거지새끼도 아니고 이딴거들고다니냐"라며
내 앞에서 오히려 기분나쁘다는듯이
동전을 바닥에 던져버렸어.
그리고 더럽다는 듯 쳐다보며 못만질걸 만진것마냥
표정을 구기면서 그 아이가 떠났지.
그리고 얼마되지않아 나를 불러낸 너희는
화장실 구정물을 마시게했어.
당연한거였을까.
위염이며 식중독이며 장염이며
걸릴수있는 모든게 다 내게왔어.
고열이나도, 배가아파도, 음식을 먹지못하고
누워만있어도 나는 좋았어.
적어도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됬었으니까.
추운겨울에도 물에 뒤집혀져야 했던나는
아프면 학교를 못가니 감기를 참게 되었고
결국 폐렴까지오게 되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어.
일주일이 지나도 폐렴은 낫지않았고
아파도 행복했던건,
오로지 가족과 함께보내는 즐거운 생일이되었었어.
병실 사람들도 무작정 헤맑은 나를 예뻐해주셔서
늘 따뜻한 손길로 나를 챙겨주셨었어.
그때가 내생에 가장많은 따스함을 느낀 순간이야.
중학교를 올라가기까지에 계속되었어 이런 나날들은
중학교에 가선 다른 장난감이 생긴듯
나를 때리는 횟수가 줄었어.
이유는 단하나. 내돈으로 빵셔틀을 하게하고
모든 말에 존댓말하며 말을 잘 들으니
착하게 잘 길들여졌다고 생각한거겠지.
이후에 몇몇 아이들은 사과하며, 미안했다 진심을담아
날 도와주더라.
날 때리던 손길이 따뜻한 손길이 되니
안심이라도 됬던걸까.
나의 어린아픔을 애써 감추고 지냈었어.
외면하고 또 외면하며 나를 지워냈지.
근데 그거아니?
난 아직도 싸움의 기술이라는 영화는 못봐.
학교에서 싸우는 장면이 있는 영화는 눈을감고
덜덜떨어. 자다가도 소리가 들리면 온몸이 떨리고
눈물이나.
더 글로리 참 재밌다고 유명하던데
난 아직도 단 한편을 못봤어.
그때의 너희가 떠오를까봐 너무 괴로워서 말야.
그런데 얼마전 너희들의 소식을 들었어.
누군가는 결혼을 해 아이를 가졌고,
누군가는 우리부모님을 뵙게되어 반가웠단 인사를 보냈지
물론, 난 답하지 않았지만 말야.
그런데, 나에게 끝끝내 사과한번 하지않던 너의 소식을
들었어.
아직도 누군가를 욕하며 이간질하고, 거짓말한다는 소식.
본성은 변하지 않았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는데말야.
지인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우연히 또 너의
이름을 듣게되었어.
술기운을 빌려, 어린시절 나의이야기를 해주니
다들 놀라는 눈치더라.
너에게 때마침 온 지인폰의 연락에
' 나 ㅇㅇ이랑 같이있어. 같은학교던데 혹시알아? '
라고 보내니 그다음날 답장받았다는 소식 들었어.
'내가 괴롭히던앤데 걔, 미친x이야.'
라고 말한 너의 답변을 말이야.
차라리 나를 모른다고 하지 그랬니.
여전히 넌 그렇게 이기적이고 못되게 자랐구나.
결혼도 파혼당하고, 친구들에게 손절당했다는 소리도
들었어. X야.
내 인생에서 나는 너를 지울예정이니,
제발 가해자면서 더이상 당당하게 남을 괴롭히지 않길
바래.
남을 가르치겠다며 된 트레이너라는 직업.
너 또한 누굴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면
폭력이아니라 운동을 가르쳐야 하는거잖아.
내 이야기엔 허구란 없어.
내 인생은 너무 안정되었고,
좋은사람만나 결혼을 꿈꾸고 있고
내가 어떠한 사람이든 후회하지않고
사랑해주는사람만나 충분히 행복하게 지내.
그러니 니 인생에서도 나를 지워주길 바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