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ㅡ 마태오 7장 13ㅡ14절 또 다른 성경구절.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ㅡ 마태오 22장 14절 "하느님의 종교들" 사이의 신자수가 전세계의 1/2입니다. 연옥이 좁은 문일까요. 연옥이 생명으로 이끄는 문일까요. 연옥이 선택된 이들일까요. 다 연옥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면, "직천당"을 이야기 하는 것 입니다. 13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14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ㅡ 마태오 7장 13,14절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ㅡ 마태오 22장 14절 여기에서 좁은문은, 천국이 맞습니다. 선택된 이들이 적다는 뜻도 천국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천국은 바로 천국으로 간다는 "직천당"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석이 쉽다며 이 짧은 성경구절을 바라보고서는 연구조차 하지 않은 흔적들이 드러나듯이 이 성경구절 그 흔적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로인해 수많은 천주교 사람들이 선교에도 힘쓰지 않는 결과가 나왔으며 천주교의 이 잘못된 성경해석 때문에 선택된 자는 적은 것이라며, 내버려 방치되고 있지 않습니까. 짧고 해석이 순식간이라면 또 그게 해석이 굉장히 쉬워 보인다면 더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성경구절이 될수도 또는 이런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것 때문에 천주교는 선교를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선교에는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 자기만 아는 이 행동들은, 얼마나 악에 받친 행동들 입니까. 얼마나 자신만을 위한 못된 행동들이 아니겠습니까. 이는 누가 심어논 악의 뿌리란 말입니까. 이 성경구절이라면, 전세계의 모든 사람중에 하느님께서는 일부만 사랑하신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또 지옥은 온유하고 따스한 지방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천주교는 선교나 다른 사람의 구원에 그다지 큰 열정과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는 지독한 이기주의적인 행동을 양산하여 왔습니다. 이 성경구절 하나로, 개신교와 같은 오류를 범하는 만행을 저질러 왔던 것입니다. 바로 여러가지 사실을 종합적으로 결론을 내리지않고, 바로 직관적이고 주관적으로 생각하고는 "이 뜻은 이렇다"고 바로 결론을 내려버리는 이 행위를, 이 성경구절에서만은 개신교와 별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너무 쉽다고 생각한 결론의 결과를,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너무나 비참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선교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데도 뒷짐을 지고, "그들은 원래 그런거야" 라고 하며, "선교는 무슨 선교. 다 운명이야" 라는 꼴보기싫은 지독히 겉은 아닌척하지만 속은 이기주의적인 행동을 양산하여 우리나라는 개신교 1000만보다, 훨씬 적은 600만의 신자수만 교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적상 600만이지만, 실제 나오는 신자로치면, 실제로 영성체를 모시는 자들은 90만으로써 상상외로 더더욱 비참한 결과로 나옵니다. "선교에 전혀 힘쓰지 않은 결과"입니다. 자, 주관적인 생각과 성경구절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은 이렇게나 결과가 안좋게 나왔습니다. 주관적인 것이 얼마나 안 좋다고 제가 얼마나 수없이 이야기를 해 왔습니까. 자비하신 하느님이라는 말만할뿐, 행동으로는 무자비한 절대자 하느님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연민은 없고, 무관심이란 악마만 천주교의 뱃속에 지닌채, 악마를 잉태하여 왔습니다. 무지막지한 하느님. 무자비한 하느님. 전세계의 1/2이 신자인데도, 결국엔 천국에 있을 자가 적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실제로 그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당연하다. 성경에도 쓰여있다." 그러나, 틀렸습니다. 마음의 심연까지도 바라보시는 하느님을, 인간처럼 여기는 이유도 이와같은 시선이라면 하느님을 모르니까, 매우 당연한 결과입니다.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만을 바라고 또 우리는 이미 받았기에, 성경에서도 끔찍하게도 좁은길, 비좁은 길을 이야기를 하는데, 좁은길, 비좁은 길 이야기를 심각하게 연구조차 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무자비함의 극치를 달리시지만 "그냥 받아들이겠습니다"하며, 이기적이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다 큰 갈등이 있는 문제앞에서는 이렇게 편하게 마음 먹었습니다. "아, 골치 아파. 남들도 다 지옥가는데, 그냥 뭐 나도 가지." 이게 정상적인 생각입니까. 그 결과, "선교는 마지막시대에 무슨 못할짓마냥" 바라보게 하지 않았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무엇보다 영혼의 구원을 가장 바라신다는 저의 외침이자 성경에서의 외침은, 성경속에서의 작은 성경 한구절인 "좁은 문" 앞에서는 이기적인 그들에게 농락이나 당하여 지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던게, 실제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한 종교 천주교는 "이 성경구절 하나를 매우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짧고 쉽다"며, "바로 결론을 짓는 행위"로 말미암아 이 비극은 탄생되었습니다. 선교는 개나줘라. 그러나 성경은 쓰여있었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수 없습니다." 성령회관을 활용하여 신자수를 늘려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성령에 힘입는 방법은, 성당이 아닌 성령회관이 아니었습니까. "방치된 성령회관." 성령에 힘입는 방법은 오직 성령회관. 어쩐지 천주교는 선교에 통 관심이 없었습니다. 영혼을 구하기를 지극히 바라시는 여러 성경구절에서의 하느님의 소리들이, 자기들만 보는 이기적인 눈앞에서는 흐리게 보였는지, 하느님께서는 영혼의 구원을 가장 바라신다는 해석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저마다 나 자신만 지옥안가기"에만 돌입하고 악과 은밀히 손잡고 또 동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우습읍니까. 얼마나 웃깁니까.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겠습니다. 개신교처럼 이 성경구절 하나만을 바라보는 오류를, 쉽고 짧은 상식선에서도 풀수 있다는 이유로, 초등학생의 상식으로도 풀이하겠다는 그 교만으로, 결국 그 짧은 성경구절들이 이렇게 강력한 악마의 독침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선 상식으로만 봐도, 아니 내글만 봐도 그들의 주장은 전혀 아니지 않습니까. 한 영혼을 더 구하기를 지극히 간절히 바라시는 하나님을, 여태껏 한번도 성경구절에서도 전혀 그 하느님의 간절한 느낌을 느껴 본 적이 그들은 한번도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경에서 많이 느꼈던 저는 무엇인가요? 그 결과, 종말이 가까운 마지막 시대인 지금 현재조차, 하느님께서 "늘 구하기를 힘쓰라 하신 방언"을 구경조차 못한 천주교인들이 상당하다는,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불편한 현실을 지금 당장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방언은 말합니다. "종말은 멀었다. 내가 나타나지도 않았잖냐" 그런데말입니다. 개신교에서는 나타난지 꽤 되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1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13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14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ㅡ 마태오 7장 13ㅡ14절
또 다른 성경구절.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ㅡ 마태오 22장 14절
"하느님의 종교들" 사이의 신자수가
전세계의 1/2입니다.
연옥이 좁은 문일까요.
연옥이 생명으로 이끄는 문일까요.
연옥이 선택된 이들일까요.
다 연옥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면,
"직천당"을 이야기 하는 것 입니다.
13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14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또 그 길은
얼마나 비좁은지 ㅡ 마태오 7장 13,14절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ㅡ 마태오 22장 14절
여기에서 좁은문은, 천국이 맞습니다.
선택된 이들이 적다는 뜻도 천국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천국은 바로 천국으로 간다는
"직천당"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석이 쉽다며
이 짧은 성경구절을 바라보고서는
연구조차 하지 않은 흔적들이 드러나듯이
이 성경구절 그 흔적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로인해 수많은 천주교 사람들이
선교에도 힘쓰지 않는 결과가 나왔으며
천주교의 이 잘못된 성경해석 때문에
선택된 자는 적은 것이라며,
내버려 방치되고 있지 않습니까.
짧고 해석이 순식간이라면
또 그게 해석이 굉장히 쉬워 보인다면
더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성경구절이 될수도 또는 이런 모양으로
존재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것 때문에 천주교는 선교를 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선교에는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 자기만 아는 이 행동들은,
얼마나 악에 받친 행동들 입니까.
얼마나 자신만을 위한
못된 행동들이 아니겠습니까.
이는 누가 심어논 악의 뿌리란 말입니까.
이 성경구절이라면, 전세계의 모든 사람중에
하느님께서는 일부만 사랑하신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또 지옥은 온유하고 따스한 지방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천주교는 선교나 다른 사람의 구원에
그다지 큰 열정과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는
지독한 이기주의적인 행동을
양산하여 왔습니다.
이 성경구절 하나로, 개신교와 같은 오류를 범하는
만행을 저질러 왔던 것입니다.
바로 여러가지 사실을 종합적으로
결론을 내리지않고,
바로 직관적이고 주관적으로 생각하고는
"이 뜻은 이렇다"고 바로 결론을 내려버리는 이 행위를,
이 성경구절에서만은
개신교와 별 다를바가 없었습니다.
너무 쉽다고 생각한 결론의 결과를,
한마디로 말씀드리자면,
너무나 비참하게 수많은 사람들이 선교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데도 뒷짐을 지고, "그들은 원래 그런거야" 라고 하며,
"선교는 무슨 선교. 다 운명이야" 라는 꼴보기싫은
지독히 겉은 아닌척하지만 속은 이기주의적인 행동을 양산하여
우리나라는 개신교 1000만보다,
훨씬 적은 600만의 신자수만 교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교적상 600만이지만, 실제 나오는 신자로치면,
실제로 영성체를 모시는 자들은 90만으로써
상상외로 더더욱 비참한 결과로 나옵니다.
"선교에 전혀 힘쓰지 않은 결과"입니다.
자, 주관적인 생각과 성경구절에 대한 주관적인 판단은
이렇게나 결과가 안좋게 나왔습니다.
주관적인 것이 얼마나 안 좋다고
제가 얼마나 수없이 이야기를 해 왔습니까.
자비하신 하느님이라는 말만할뿐, 행동으로는
무자비한 절대자 하느님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연민은 없고, 무관심이란 악마만
천주교의 뱃속에 지닌채, 악마를 잉태하여 왔습니다.
무지막지한 하느님.
무자비한 하느님.
전세계의 1/2이 신자인데도,
결국엔 천국에 있을 자가 적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실제로 그들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당연하다. 성경에도 쓰여있다."
그러나, 틀렸습니다.
마음의 심연까지도 바라보시는 하느님을,
인간처럼 여기는 이유도 이와같은 시선이라면
하느님을 모르니까,
매우 당연한 결과입니다.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만을 바라고 또 우리는 이미 받았기에,
성경에서도 끔찍하게도 좁은길, 비좁은 길을 이야기를 하는데,
좁은길, 비좁은 길 이야기를 심각하게 연구조차 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무자비함의 극치를 달리시지만
"그냥 받아들이겠습니다"하며, 이기적이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다 큰 갈등이 있는 문제앞에서는
이렇게 편하게 마음 먹었습니다.
"아, 골치 아파. 남들도 다 지옥가는데, 그냥 뭐 나도 가지."
이게 정상적인 생각입니까.
그 결과, "선교는 마지막시대에 무슨 못할짓마냥"
바라보게 하지 않았습니까.
하느님께서는 무엇보다 영혼의 구원을 가장 바라신다는
저의 외침이자 성경에서의 외침은,
성경속에서의 작은 성경 한구절인 "좁은 문" 앞에서는
이기적인 그들에게 농락이나 당하여 지고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던게,
실제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한 종교 천주교는
"이 성경구절 하나를 매우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짧고 쉽다"며,
"바로 결론을 짓는 행위"로 말미암아
이 비극은 탄생되었습니다.
선교는 개나줘라.
그러나 성경은 쓰여있었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수 없습니다."
성령회관을 활용하여
신자수를 늘려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성령에 힘입는 방법은,
성당이 아닌 성령회관이 아니었습니까.
"방치된 성령회관."
성령에 힘입는 방법은 오직 성령회관.
어쩐지 천주교는
선교에 통 관심이 없었습니다.
영혼을 구하기를 지극히 바라시는 여러 성경구절에서의
하느님의 소리들이, 자기들만 보는 이기적인 눈앞에서는
흐리게 보였는지, 하느님께서는 영혼의 구원을 가장 바라신다는 해석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저마다 나 자신만 지옥안가기"에만
돌입하고 악과 은밀히 손잡고
또 동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우습읍니까.
얼마나 웃깁니까.
하느님께서 좋아하시겠습니다.
개신교처럼 이 성경구절 하나만을 바라보는 오류를,
쉽고 짧은 상식선에서도 풀수 있다는 이유로,
초등학생의 상식으로도 풀이하겠다는 그 교만으로,
결국 그 짧은 성경구절들이 이렇게 강력한 악마의 독침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선 상식으로만 봐도, 아니 내글만 봐도
그들의 주장은 전혀 아니지 않습니까.
한 영혼을 더 구하기를 지극히 간절히 바라시는 하나님을,
여태껏 한번도 성경구절에서도 전혀 그 하느님의 간절한 느낌을
느껴 본 적이 그들은 한번도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성경에서 많이 느꼈던 저는
무엇인가요?
그 결과, 종말이 가까운 마지막 시대인 지금 현재조차,
하느님께서 "늘 구하기를 힘쓰라 하신 방언"을 구경조차 못한
천주교인들이 상당하다는,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불편한 현실을
지금 당장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방언은 말합니다.
"종말은 멀었다. 내가 나타나지도 않았잖냐"
그런데말입니다.
개신교에서는 나타난지 꽤 되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