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첫 직장, 나는 기뻤다

voide3072025.07.29
조회592



나는 재혼가정에서 태어났다.

우리 부모는 매일 싸웠다.

형은 어렸을때 가출했다.

누나는 내가 중학생때부터 알바를 다니고, 어린나이에 곧 독립을 했다.

밤마다 안방이 시끄러워지면, 엄마는 몸에 멍이 매번 생겼다.

어느날 엄마는 아빠 배에 칼빵을 했고, 교도소에 들어갔다.

주말마다 1시간 넘게 버스를 타서 면회를 갔다.

초범에, 우발적 범행으로 집행유예를 받았다고한다.



이제 우리 가족은 모두 흩어졌다.





난 고등학생이 되어, 빠른 취업을 위해 공고를 나왔다.

학교 선생님 추천으로, 20살 되자마자 한 관광호텔로 취업을 하게되었다.



나는 기뻤다.

직장으로 금방 그만두는 공장보다는 호텔이 나을것 같았다.



20년 1월 4일에 입사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표님 지시로 31일에 일찍 출근하게 되었다.

친구들과의 20살 기념 약속을 취소하고, 직장으로 향했다.

기숙사를 안내받았고, 그날 바로 근무 투입되었다.



주 6일 일했고, 매일 12시간 이상 일했다.

손님이 너무 많았지만, 동시에 여러 일을 감당해야했다.

바쁜날엔 담배 필 시간조차 없었다.

매일 출근때마다 용모 확인을 위해 셀카를 찍어 단톡에 보고했다.



첫 휴무날, 나는 회사에 머물렀다.

쉬는날마다 커피 내리는것을 연습하라고 했다.

나는 오히려 기뻤다.

어차피 교통편도 적었고, 내 열정을 보여줄 기회였다.



드디어 월급을 받았다.

110만원 들어왔다.

나는 기뻤다.

난생 처음 통장에 백만원 단위가 찍혔다.



밥은 우리가 사먹어야해서, 선배들에게 자주 얻어먹었다.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소식하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항상 배불리 먹을때마다 통장은 날씬해져갔다.





같이 일하던 선배가 그만두었다.

아마 노동청에 신고한 것 같았다.

그 후 무슨일 있었는지 다음달부터 월급이 조금씩 더 들어왔다.

그래서 기뻤다.





선배가 타던 차량을 물려 받으라고 한다.

내가 외제차를 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지만 거절했다.

내 월급에 달마다 80만원을 내기는 힘들었다.

대신 16만키로 중고차를 업어왔다.

그래도 나는 기뻤다.



매주 정해진 루틴에 따라 업무 할댱량이 있었고,

전 직원 다 달라붙어도 못 끝내면 새벽까지 마무리했다.

a4 수 장을 꽉채우는 주간 업무를, 나중에는 혼자서도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었다.

객실청소도 마스터했고, 청소 부분은 달인이 된듯했다. 동시에 로비외 부대시설 손님 보기도 수월해졌다.

혼자 1층을 지킬때면, 부대시설 2개와 발렛, 프론트를 뛰어다니며 손님을 보았다.

점점 손이 빨라져 하나씩 대표님에게 인정받아,

나는 기뻤다.



퇴근하면, 매일 발에 물집이 10개씩 생겼고, 티눈은 점점 커지고, 구두는 모두 해져 매번 3개월에 한개씩 바꿔야했다.

절뚝거리며 일하게 되어도, 나에게는 뭔가 영광의 상처같았다.



밤에는 점점 잠들기 힘들었다.

대표번호를 돌아가면서 개인 폰으로 착신해두었다.

새벽에 프론트에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전화오면 칼같이 뛰어갔다.



그래도 첫 직장이어서, 소중한 기회이기에

기쁘게 일했다.



회사가 점점 커지며, 다른 지점도 생겼다.

호텔 오픈하며 매일 2시간씩 차타고 리모델링 청소를 도왔고, 나중에는 부대시설 식당 서빙에도 투입되었다.

이제는 식당 관리도 문제 없었다. 동시에 손님이 부르면 언제든 뛰어갔다.



입사 1년차, 선배가 타던 랜드로버를 타라고 권유 받았다.

월 납입금 120만이었다.

이제 월급이 200 조금 넘었지만, 이걸 타야 외적으로 인정받고 더 열심히 일하게 될거라고 설득받았다.

21살, 랜드로버를 타게되었다.

그래도 첫 외제차라 기뻤다.



내 회사 내 위치는 점점 높아져갔다.

모든 시설 청소를 도맡아 했고, 아직은 객실청소도 매일 만실청소 진행했고, 동시에 프론트도 관리했다. 발렛도 매일 하니 주차 실력도 늘었다.

발에 감각이 없어질때까지 뛰어다녔다.





또 호텔 리모델링을 하게되어서, 한달간 나 혼자 호텔을 맡아야했다.

다른 직원이 없었기에 한달 넘게 쉬는 날 없이 일했다.



여전히 밤에 전화오는 손님이 많아, 쉽게 잠을 들지 못했다.

불면증 진단을 받고, 매일 수면제를 먹었다.

매일 저녁을 먹지 못해 새벽에 야식을 시켜먹었다.

술에 취하면 잠이 쉽게 들기에, 매일 술에 의존해 잠에 들었다.

체중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벨소리를 끌 수 없었고, 전화를 못받으면 다음날 아침 손님의 샤우팅이 두려웠다.

우리 호텔의 평가가 크게 떨어지는 짓이었다.

그래도 내 자리와 책임이 높아졌다는 사실에, 아주 기뻤다.

나보다 더 힘들게 돈버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입사 3년차, 매일 나는 업무 생각밖에 없었고, 매일 퇴근 후 머릿속으로 스케줄을 짜고, 해결방안 고민하고, 직원 관리와 어떻게하면 손님을 만족시킬지, 호텔 점수를 높일지 생각만 들었다.



인정받기위해, 쉬는날에도 일부러 일을 만들었다.

사실, 쉬기도 눈치 보인다.

내가 없으면 호텔이 돌아가지 않을것 같았다.

내가 없으면, 무슨일 생길까 불안했다.

후뮤여도, 괜히 한번씩 프론트를 섰다.



직원들 월급이 밀리고, 거래처 결제가 몇달씩 늦어질때마다 핸드폰이 불났지만, 나는 계속 기다려달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당장 나도 통장에 돈이 없었고, 적금 하나 없었다.

현금이 부족해 소액결제로 매일 때웠고, 신용카드는 매달 리볼빙했고, 고정지출은 매달 200이 넘어갔다.

통장 사정에 맞춰 차도 매번 바꿨다.

나는 골프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매번 골프를 따라가야했고 좋아하는척 했다. 영하 5도에도 필드 따라갔고, 그린피와 캐디피 모두 눈물을 머금고 내가 내야했다.

대표님 두명 기념일 마다 선물도 해야했다.

가방, 팔찌, 클러치 등 모두 명품으로 몇백만원씩 했고, 직원들과 나눠냈다. 카톡 인사 10줄은 기본이었다.

그래도 나는 기뻤다.



우리 회사는 연애 금지였고, 20살때 몰래 만났다.

어쩌다 대표님에게 들켰을때도, 질타를 받았다.

내가 실수하면 연애 때문이었고, 핸드폰 하고있으면 연애때문이었고, 쉬는날 밖에 나가면 연애 때문이었다.

바빠서 2,3달에 하루씩만 만나는것도 미안했다.



그래서 3년째 만나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일에 더 집중해야 할 것 같았다.

아직 스스로 많이 부족했다.



나는 일과 사랑중에, 일을 택했다.







4년차, 다른 호텔을 인수하게되어 더욱 바빠졌다.

청소를 더 꼼꼼히 했고, 업체 일정잡고 직원 스케줄 관리도 도맡아 했다.

내가 쌓아온 능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점 현타가 왔다.

매일 7시에 출근해 중간에 2시간 쉬고, 24시에 퇴근했다

이제 새벽 당직은 매일 하게되었고 항상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역시 매일 저녁을 못먹어 야식먹고 잘 준비 하면 새벽 2시였다.



잠이 오지 않는다.



머릿속은 온통 호텔 생각이었다.



억지로 잠을 청해도,



3시



4시



5시



시계만 보게 된다.



밤을 새는날이 많아졌다.



매일 술을 먹으며 울었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밤을 샌다.



다른날은 3시 4시에 잠들었다.



새벽 손님 전화도 많아져서, 계속 움직였다.



출근 후 매일 몬스터 2캔과 커피 5잔 이상 먹었다.



내과 수면제에서 이젠 정신과용 수면제를 처방받기 시작했다



수면제를 3개먹어도, 잠이 안온다.



매달 타오는 약이 부족해졌다.



동시에 내 후임도 나를 먹으려 들었다.



나는 혼자가 되었다.







나는 쉬는날 정신병원에 방문했다.



우을증 초기 진단 받았다.



항우울제를 처방받았고,



나는 그날따라 좀 쉬고싶었다.



그날



딱 하루,



회사 카톡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날은 푹 잘 수 있었다.







다음날 회사 분위기가 싸했다.



호텔에 상황 터졌는데, 대리급인 내가 카톡을 보지 않았다고 대표님이 극대노 했다.



그날 나에게 무리한 업무를 주었다.



한시간에 한번씩 업무 보고를 해야했다.



사실 어렵진 않지만, 손님대응은 모두 내가 뛰어다니며 하고있어, 폰을 볼 시간조차 부족하다.



그날 저녁, 보고를 3번밖에 못했다고 면담을 하게되었다.

일하는 동안 거의 처음듣는 샤우팅에, 병원 다녀온 나를 정신병자 취급했고, 쉬는날 회사에 신경쓰지 않았다고, 계속 정신적으로 압박했다.



나는 아무말도 못했다.

아니, 안했다.

내 상황과 심정을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저 변명 밖에 안될 것 이었다.



나는 365일 호텔 생각뿐이었고, 워커홀릭인 나를 내 친구들은 모두 떠났고, 집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일하며 발톱도 2개 빠졌다.

모든 사람이 직장 왜 안그만두냐고 한다.

나는 내 시간과 몸을 갈아넣어 열정으로 일했고, 내 개인시간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회사가 내 집이었고, 고객이 내 친구였다.

능력있는 대표님 밑에 들어가서 기뻤고, 인정받고 싶었다.

사업가로 성장하고 싶었다.

내가 발전이 없어 제자리 걸음일때마다, 죄책감과 좌절감으로 가득찼다.

성장은 멈추었고, 내 마음가짐 문제같았다.





근데, 이젠 한계가 왔다.



나는 이젠 모든게 기쁘지 않았다.



다 내 탓 이었다.









그날 새벽,

24년 11월 30일,

나는 가지고 있던 한달치 수면제를 입에 털어 넣었다.

뭔가에 홀린듯, 호텔 옥상으로 올라갔다.

추운 날씨에 칼바람이 온몸을 스쳤다.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고, 심장은 빨리 뛰었다.



내 발밑에는 312호가 있었다.

그날 아이가 있는 객실이라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새벽 내내 울었다.

내편은 아무도 없었다.

날 이해해주는 사람도.

얆은 기둥만 나를 붙잡고 있었다.

내 유일한 동아줄처럼, 위태위태하게 서있었다.



눈앞이 흐려졌고, 정신이 아득했다.

밑에는 제법 높아보였다.

어리석게도, 높이를 계산해서 죽을 수 있는 확률을 계산하고있었다.



내가 떨어지면, 이 회사가 바뀔까?

뭔가 깨닫는게 생길까?

그때서야 바뀔까?

내 육신은 누가 치울까...

미안하네 좀...



근데, 내가 이런다고 달라질것이 없을 것 같았다.

뉴스에도 안나올텐데..



그냥 내가

이곳을 떠나면,



끝이었다.



이 생각이 머리에 스치고, 1층으로 내려왔다

수면제 때문에 비틀거렸다.

술에 취한것 같았다.

한참을 거리를 돌아다녔다.



새벽 5시 반, 기숙사로 돌아왔다.





7시 14분,

눈이 저절로 떠졌다.



알람도 맞추지 않았다.

출근시간에 조금 늦었다.



동시에 대표님 카톡이 울리며, 출근하라고 보채었다.



얼른 일어나 프론트에 가서 오픈준비 먼저 했다.



근데, 거울보니 피범벅이었다.



잘 생각해보니, 밤에 넘어져서 입술이 찢어진게 생각이났다.



급하게 씻고 다시 프론트에 섰다.











나는 한달을 더 일하고 그만두었다.

그만 두는 날도, 40시간을 못잤다.

연말이라서, 내가 책임지고 밤을 새서 손님을 맞이했다.

마지막까지 모든 기력을 쥐어짜내고, 아침에 짐을 챙겼다.



그날 집에서, 오랜만에 푹 잘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기뻤다.





그 후로, 나머지 급여와 퇴직금이 안들어왔다.

2주가 지나도 무소식이었고, 연락하면 기다리라는 말만 했다.



나는 마지막 도리로,

그냥 기다렸다



주변에서 계속 신고하라고 했지만,

근무하는동안 신고하고 떠난 직원들이 몇 있었기에,

어떤말이 나올지 알고있었다.

그리고 대표님에 대한 마지막 예의로,

얼굴 붉힐일 없도록, 그냥 기다렸다.



결국 아버지가 호텔에 전화하고 나서야, 반년만에 돈이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기뻤다.





이제 이 여정을 끝낼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