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미사가기를 열심히 하거나, 일주일에 성령회관에는 꼭 참석하기를 각오한다거나 등등 신에 대하여 진심으로 진지해지고, 진심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신이 진짜로 있다는 오늘날에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건 신이라는 삶의 모든것 중에 그 무엇보다 신이라는 가장 중요한 본질은 외면하고, 신이 밝혀진 이 시대에서조차 신에 대한 차갑거나 미지근한 태도라면은, 다음 재창조때 신에게 받는 복은 기대하지 마십시요. 자신의 노력으로 받을수 있는, 한때 자신의 힘으로 마련한 신에게 받을 복으로 재창조때 자신의 모습이 형성되지 않겠습니까. 지금의 삶에서 노력한만큼, 재창조때 받는다라는 공평함을 자신의 발로 차버리고 내팽개치고 있다는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지금 노력하십시요. 신이 진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지금 현재이지만, 그러한 장점을 지금세대를 살아가고 또 가지고 있음에도, 인간의 본성인 게으름으로인해, 망가뜨리면 안되지 않습니까. 금세 하기 싫어지는 경향이, 자유의지가 주어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이 밝혀진 마지막 시대라면, 신앙태도를 차거나 뜨겁거나 명확하게 해야지 오늘날에도 미지근한 신앙 태도는 오히려 신앙에 있어서는 가지지 못하고 있는것보다 못한 가장 결과가 좋지않은 신앙의 독 그 자체가 되어 버립니다. 15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ㅡ 요한묵시록 3장 15,16절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이처럼, 미지근한 신앙태도를 보이면 하느님께서 입에서 뱉어 버리는 위의 성경구절처럼 됩니다. 곧, 뱉어졌으니 신앙을 찾지 않게 되어 버립니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구절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미지근한 신앙태도를 보이면, 절대로 안됩니다. 뱉어버린 물질처럼, 하느님을 향하여 열심히 살지 않습니다. 유혹이 많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게으르다가 이도저도 아닌 꼴이 되어 버립니다. 신이 명확해도, 그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의지가 주어진 우리는 누구에게나 나태하게 지내려는 속성이 누구나 존재하고 있기에, 나의 삶의 목적을 신앙이라고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항상 기회를 노리고 있는 악의 공격으로인해 저절로 나태를 불러일으켜 나태해집니다. 아직도 삶의 목표를 하느님으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고서는, 성당에 다니다가는 얼마 못가 다른 유혹에 빠져 들어간다는 게,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의 루트입니다. 악의 방해와 악의 유혹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렇게 되어버리는 사람이 나는 절대 아닐것이라는 쓸모없는 자신감과 고집을 버려 버리고, 일주일에 성령회관에는 꼭 참석하기를 목표로 삼는다든지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확히 하십시오. 그러지않으면, 포기라는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세상이라는 나락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매일 미사가기로 정하였으니, 님들도 미지근한 신앙태도를 버리고, 매주 성령회관에 꼭 참석하기를 바랍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수 없습니다"라고 성경에서도 말씀하십니다. 직접 성령을 알고 느껴 보는것이 이렇게나 믿음에는 중요합니다. 천주교는 성령을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개신교는 성령을 전면에 내세운 바람에 천주교보다 짧은 시간에 1000만을 이루는 불같은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개신교는 이 성령 때문에, 천주교를 순식간에 앞지르고는 개신교 1000만이 순식간에 이루어졌습니다. 개신교는 성령만 있어도, 개신교처럼 성령세례를 받게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모든 답의 답안지에 해당하는 성경을 통해 생생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인 믿음이라는 게, 성령세례를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중요가 있겠습니까. 구원은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는 천주교에만 있지 않습니까. 개신교는 불행히도 악신에게 지기만 한 역사와 기억이 있는데, 또 악신을 이긴 천주교조차 개신교의 틀린 부분을 성경을 근거로 지적하고 있는데, 이래도 악신에게서의 승리와 패배를 중요하다고 볼수는 없다는 말씀입니까. 구원이 개신교에게도 있다는 증거가 꼭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바로 지금입니다. 구원이 개신교에게도 있다는 생각이, 개신교는 악신에게 진 이후로부터는 매우 불투명한 상태로 바뀌었고 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는 구원받았다? 증거가 없습니다. 악신에게 진 이후로부터는, 개신교는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절대로 없게 되었으며, 개신교가 성령을 증거로 내세우기에는 아브라함의 복인 믿음으로인한 성령세례도 있음을, 성경에서 알게 된 이상, 성령을 증거로 내세우기에는 증거로써의 힘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개신교는 성경대로 진짜 아브라함의 복 때문인 성령세례로 인한 것이라면, 또는 예수님의 무리가 아니면서도 마귀를 쫓아내는 예수님의 무리가 아닌 또 다른 무리들도 있다고 하시는데 개신교는 예수님의 무리가 아닌, 또 다른 무리들이 개신교에 해당된다고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이도저도 아닌 성령만으로는 개신교는 구원받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이상 성령이 증거로 존재할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마귀를 쫓아낼수 있는데, 성경에서처럼 성령만 가진 개신교 그리고 예수님의 무리가 아니면서도 마귀를 쫓아내는 또다른 무리가 서로 개신교와 너무 닮아 있지 않습니까. 신은 있습니다. 그러면 신은 가장 중요합니다. 어떠한 것보다 무엇보다 신은 가장 중요합니다.1
미지근하여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매일 미사가기를 열심히 하거나,
일주일에 성령회관에는 꼭 참석하기를 각오한다거나 등등
신에 대하여 진심으로 진지해지고,
진심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신이 진짜로 있다는 오늘날에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건 신이라는
삶의 모든것 중에 그 무엇보다
신이라는 가장 중요한 본질은 외면하고,
신이 밝혀진 이 시대에서조차 신에 대한
차갑거나 미지근한 태도라면은,
다음 재창조때 신에게 받는 복은
기대하지 마십시요.
자신의 노력으로 받을수 있는,
한때 자신의 힘으로 마련한 신에게 받을 복으로
재창조때 자신의 모습이 형성되지
않겠습니까.
지금의 삶에서 노력한만큼, 재창조때 받는다라는 공평함을
자신의 발로 차버리고 내팽개치고 있다는게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지금 노력하십시요.
신이 진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지금 현재이지만,
그러한 장점을 지금세대를 살아가고 또 가지고 있음에도,
인간의 본성인 게으름으로인해,
망가뜨리면 안되지 않습니까.
금세 하기 싫어지는 경향이, 자유의지가 주어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이 밝혀진 마지막 시대라면,
신앙태도를 차거나 뜨겁거나 명확하게 해야지
오늘날에도 미지근한 신앙 태도는
오히려 신앙에 있어서는 가지지 못하고 있는것보다 못한
가장 결과가 좋지않은
신앙의 독 그 자체가 되어 버립니다.
15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16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ㅡ 요한묵시록 3장 15,16절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이처럼, 미지근한 신앙태도를 보이면
하느님께서 입에서 뱉어 버리는 위의 성경구절처럼 됩니다.
곧, 뱉어졌으니 신앙을 찾지 않게 되어 버립니다.
이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구절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미지근한 신앙태도를 보이면,
절대로 안됩니다.
뱉어버린 물질처럼,
하느님을 향하여 열심히 살지 않습니다.
유혹이 많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게으르다가 이도저도 아닌 꼴이 되어 버립니다.
신이 명확해도,
그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유의지가 주어진 우리는
누구에게나 나태하게 지내려는 속성이
누구나 존재하고 있기에,
나의 삶의 목적을 신앙이라고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항상 기회를 노리고 있는 악의 공격으로인해
저절로 나태를 불러일으켜
나태해집니다.
아직도 삶의 목표를 하느님으로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설정하지 않고서는,
성당에 다니다가는 얼마 못가
다른 유혹에 빠져 들어간다는 게,
일반적인 보통 사람들의 루트입니다.
악의 방해와 악의 유혹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렇게 되어버리는 사람이
나는 절대 아닐것이라는 쓸모없는 자신감과 고집을
버려 버리고, 일주일에 성령회관에는 꼭 참석하기를
목표로 삼는다든지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확히 하십시오.
그러지않으면, 포기라는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세상이라는 나락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매일 미사가기로 정하였으니,
님들도 미지근한 신앙태도를 버리고,
매주 성령회관에
꼭 참석하기를 바랍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수 없습니다"라고 성경에서도 말씀하십니다.
직접 성령을 알고 느껴 보는것이
이렇게나 믿음에는 중요합니다.
천주교는 성령을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개신교는 성령을 전면에 내세운 바람에
천주교보다 짧은 시간에 1000만을 이루는
불같은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개신교는 이 성령 때문에, 천주교를 순식간에 앞지르고는
개신교 1000만이 순식간에 이루어졌습니다.
개신교는 성령만 있어도, 개신교처럼 성령세례를 받게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모든 답의 답안지에 해당하는
성경을 통해 생생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인 믿음이라는 게,
성령세례를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게 무슨 중요가 있겠습니까.
구원은 예수님께서 함께하시는
천주교에만 있지 않습니까.
개신교는 불행히도 악신에게 지기만 한 역사와 기억이 있는데,
또 악신을 이긴 천주교조차
개신교의 틀린 부분을 성경을 근거로 지적하고 있는데,
이래도 악신에게서의 승리와 패배를
중요하다고 볼수는 없다는 말씀입니까.
구원이 개신교에게도 있다는 증거가 꼭 반드시
필요한 순간이 바로 지금입니다.
구원이 개신교에게도 있다는 생각이,
개신교는 악신에게 진 이후로부터는
매우 불투명한 상태로 바뀌었고
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는 구원받았다?
증거가 없습니다.
악신에게 진 이후로부터는,
개신교는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절대로 없게 되었으며,
개신교가 성령을 증거로 내세우기에는
아브라함의 복인 믿음으로인한 성령세례도 있음을,
성경에서 알게 된 이상, 성령을 증거로 내세우기에는
증거로써의 힘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개신교는 성경대로 진짜 아브라함의 복 때문인
성령세례로 인한 것이라면,
또는 예수님의 무리가 아니면서도 마귀를 쫓아내는
예수님의 무리가 아닌 또 다른 무리들도 있다고 하시는데
개신교는 예수님의 무리가 아닌,
또 다른 무리들이 개신교에 해당된다고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49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와 함께 스승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50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이도저도 아닌 성령만으로는
개신교는 구원받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이상
성령이 증거로 존재할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마귀를 쫓아낼수 있는데, 성경에서처럼
성령만 가진 개신교 그리고 예수님의 무리가 아니면서도
마귀를 쫓아내는 또다른 무리가 서로
개신교와 너무 닮아 있지 않습니까.
신은 있습니다.
그러면 신은 가장 중요합니다.
어떠한 것보다 무엇보다 신은 가장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