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너무 원망스러워요

쓰니202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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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대 백수입니다.

원래 1년 정도 미국에 있는 대학에 다니다가 그 학교 공부가 너무 맞지 않고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작년 가을에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어요.

돌아온 뒤에는 운동도 하고 정신과 약도 먹고 친구들도 만나고 하면서 서서히 회복 돼서 올해 초부터 한국 대학에 가기 위해 수능 공부를 하고 있어요. 다른 과목 보다도 수학이 너무 안 올라서 과거를 돌아보니 후회되는 부분이 너무 많더라고요. 부모님이 원망스러운 부분도 있고 한데 이런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서 눈팅만 하다가 처음 글을 써봅니다.

시작은 중3이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 대학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중3때 엄마가 중국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대안 학교를 우연히 알게 돼서 이 학교를 진학하는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외국에 가보고 싶은 마음에 당연히 좋다고 했지요. 그리고 11월 중순에 중국 유학 길에 오르게 됐습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제가 상상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더라고요. 저를 포함한 한국 학생은 약 15명정도 밖에 없었고 나이대도 초등학생 6학년 부터 18살까지 다양했습니다. 저희는 중국 대학교 안에 있는 기숙사에서 살았어요.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중국에 있던 기억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중국어, 영어 수업 외에 수학, 과학 수업의 질이 너무 낮아 불안했지만요.

그런데 2월 달쯤 코로나가 텨져 중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됐고 한국에 있는 대안 학교에 다니게 됐습니다. 중국에 있던 사람들중 절반이 나가고 저 포함 소수만이 학교에 남았는데 그나마 이때 학교를 나갔으면 좀 나았을걸 싶네요. 학교라고 부를 규모도 안 됐고 거의 학원과 마찬가지였습니다. 학생 수는 손으로 꼽을 수 있었고 집에서 왕복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저는 한달에 100만 원 씩을 내며 다녔습니다. 단지 미국 대학에 보내준다는 말 때문에요. 하지만 제대로된 커리큘럼이 짜여있는 것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질 것이 걱정돼어 하루하루 불안만 쌓여 갔습니다.

심지어 기독교 학교여서 아침 그리고 집 가기 전마다 채플이라고 간이 예배를 드렸는데 시간 낭비 같았고 전 집이 멀어서 늦게 가는게 너무 스트레스였습니다. 심지어 하루 한 번 성경 구절을 암기하고 외우지 못하면 집에 못가게 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집 가는 시간은 더욱 늦어졌죠.

왕복 2시간+커리큘럼+예배 등등이 겹쳐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결국 부모님께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고 울면서 얘기했는데 아빠가 힘든거에 잘 공감해주는 것 처럼 하다가 그래도 그만두는 건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늦었다고요.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 갈 수 없었거든요. 그때 전 인생에서 그렇게 큰 분노를 느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부모님이 학교를 떠나는 걸 원치 않으시는 것 같아서 결국 학교 근처 고시원에서 지내는 걸로 합의를 보았어요. 그 때가 17살 겨울이었습니다. 아 참고로 저는 여자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떤 깡으로 고시원에 살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리고 그때부턴 그냥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나름 열심히 해보려고 했지만 혼자서 하는 건 한계가 있더라고요. 학교 선생님들과의 마찰까지 더해 그때부턴 그냥 관성적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스트레스와 불안이 극에 달해 몇 개월동안 공부도 제대로 안했어요. 학교 갔다가 고시원으로 돌아와서는 그냥 하루종일 미드만 보다가 잤습니다. 그나마 죄책감이라도 좀 덜고 싶어서 한국 영화, 드라마는 쳐다도 안 봤고 미국 드라마, 영화 위주로 봤는데 그게 삶의 낙이었던거 같아요.

학교 성적은 잘 나왔습니다. 당연하죠 문제도 중학교 수준에 학생 수도 별로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SAT(미국 수능)을 보면 1260점이 최대였는데 수능으로 치면 4-5등급 정도 될 겁니다. 더 낮을 수도 있고요. 이 수준으로 대학 가면 어떤 결과가 펼쳐질지는 뻔했고 저는 현실을 마주하기 보다는 외면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런 일상에 적응 된 줄 알았는데 주말에 본가로 내려갔던 어느 날 침대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이질감이 들더라고요. 현실감이 잘 느껴지지 않았어요. 감정도 막힌 것 같았고요. 나중에 알고보니까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고통을 아예 느끼지 못하게 하도록 감정을 둔감해지게 한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때는 괜찮아지겠지 싶어서 나뒀던 것이 더 큰 화를 부를 줄은 몰랐네요.

결국 졸업은 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대학에 합격하긴 했어요. 기쁘진 않았습니다. 별 감흥 없었어요. 인간과 세상에 대한 혐오와 환멸이 극에 달해 무엇을 해도 즐겁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나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에 가 있던 3달 정도는 즐거웠던거 같아요. 그 뒤엔 지옥이었습니다.

제가 간 대학교는 학생수가 400명 남짓한 작은 대학인데요 모두가 기숙사에 살다보니 모두가 모두를 알고 있어요. 안 그래도 작은 학교와 체계적이지 못한 시스템에 환멸이 나있어서 다른 애들은 학교가 작아도 나름 만족하고 다니는 것 같은데 전 그 공간 자체도 스트레스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제가 작은 학교에서 지내다보니 사회성이 많이 떨어져있었다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예민할 때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해 있다보니 학교 애들하고 엄청 싸웠거든요. 매일같이 서로 비난하고 기싸움했죠. 누가 나쁘다 할 건 없고 그냥 서로 다 예민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다행히 졸업하고 나서는 화해하고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런데 안 그래도 문화차이가 나는데 사회성까지 떨어져 있다보니 점점 고립되기 시작했고 심지어 공부도 안 맞았습니다. 제가 다녔던 학과는 대충 철학과 비슷했는데 처음엔 재밌다가 뒤로 갈수록 흥미가 안 생기더라고요. 수업에 나가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고 거기에 한인커뮤니티에서 문제가 생기니 부모님은 버티라고 했지만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돌아왔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동만 운동하고 정신과만 다녔습니다. 상담도 받아봤는데 별로 도움이 안 되더라고요. 그렇게 두 달 정도 보내니 좀 나저져서 친구들도 만나고 그러다보니 다시 하고 싶은게 생겨서 수능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원래 공부를 좋아했는데 고등학교 때 공부를 제대로 못해본 것에 아쉬움이 남아서 수능 공부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국어, 영어, 탐구과목 모두 2등급 이상 나오는데 수학만 4등급에서 정체 돼있어 안 그래도 수능이 다가와서 불안한데 고등학교 때 제대로 공부를 안 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남다보니 아직 해결되지 않은 원망이 더 커져서 분출 된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랑 사이가 나쁜 편도 아니에요. 아빠는 저 수영 갈 때마다 태워다주시고 아직까지도 친밀한 사이입니다. 엄마랑도 고등학생 때나 미국에 있을 때보다는 낫지만 그거랑 원망스러운 건 별개인거 같더라고요.

고등학교 졸업 후인가? 제가 아빠한테 너무 화가 나서 그 고등학교 때 그 학교에 갔던게 너무 후회된다는 식으로 말하니까 아빠는 네가 선택한 것이지 않냐고 하는데 그 말이 너무 상처로 다가오더라고요. 근데 거길 그만두고 싶다고 했을 때 막은건 정작 아빠였거든요. 제가 그 얘길 하니까 아무 말도 못하더라고요.

저희 집안은 그리 유복한 편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고등학생때 부모님이 큰 돈(저희 집 입장에서)을 쓰는 것이 죄책감이 들어 더 성공해야한다는 마음에 불안했고 대학에서는 안 그래도 비싼 학비를 내고 있는데 타국어로 공부도 제대로 안 되니 더 불안해했죠. 차라리 17살 때 그 학교를 그만두고 그 돈으로 학원을 다녀서 2년 동안 공부했으면 대학 들어가서 지금쯤이면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가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네요.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생각하면서도... 참 억울하기도하고 복잡한 감정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