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사태와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 여론이 들끓고 있다.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민주화 운동으로 강요되다시피 하던 광주사태, 과연 민주화 운동인가. 광주사태는 일방적인 시민군의 희생이고 절대선적 성역인가? 매번 대선기간 중 흑색선전과 유언비어, 촛불 광우사태, 각종 유언비어, 법안통과 반대, 국회폭력 난투극 등으로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재조명 요구가 사회전반에서 제기되고 있다. 전두환 대통령 다시보기, 전두환 대통령 재평가 등은 사실 친북 주사파들이 스스로 자초하였다. 친북 주체사상파들의 계속된 깽판과 선동으로 인한 폭력에 신물을 느낀 나머지 때늦은 회한에 의한 반전이겠지만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는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광주폭동이 과연 신성불가침의 성역인가. 여러 역사학도님과 전사모 회원들 수십여 명과 지만원 박사, 이주천 교수, 이종윤 목사 등 애국인사들에 대한 상습적인 탄압과 박해를 목격하고 있다. 그들은 오늘도 묵묵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것처럼 진리는 언젠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 확신한다. 친북 주사파들은 광주사태의 진실을 왜곡하며 광주학살, 광주정신을 말하지만 학살과 정신을 말하는 그들의 이면에는 자신들만이 오직 피해자요 희생자이며 절대적 선이라는 유치한 속좁음과 극도의 피해의식과 보상욕구가 그들의 심리저변에 자리잡고 있다.
친북 주사파들의 유언비어 날조극은 비단 하루 이틀의 문제는 아니다. 친북 주사파들의 유언비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97년 김영삼 정권 말기 IMF로 정권을 뒤흔든 것이나 그 뒤 김대중 일당의 IMF를 이용해서 경제를 파탄낸 뒤 국내 기업을 국제투기자본에 매각한 사실은 친북세력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김대중, 이헌재 등의 매국행위로 대우그룹이 GM사에 넘어갔고 외환, 제일은행 등이 론스타 법인으로, 쌍용자동차는 상하이 자동차로, 최대의 반도체회사 하이닉스나 건설사 극동건설 등도 전부 외국자본으로 팔려나갔다. 그들이 말한 IMF 졸업은 사기이다. 국내 기업체를 팔아넘기고 국내 근로자들의 실직을 담보로 한 완벽한 사기행위였던 것이다.
그뒤에도 그들은 15대, 16대 대선에서 사기전과범들을 동원해서 이회창씨 내외를 상대로 한 병풍사기조작 등의 정치테러를 벌인 것이나 17대 대선에서 땅투기니 다스니 하는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야당 후보자를 낙선시키려던 음모, 2008년 연간에 발생한 촛불집회와 광우병집회, 광우괴담을 포함한 각종 유언비어 등은 그들의 실체를 유감없이 국민앞에 드러내 왔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사회의 개념이 뭔가 의심스럽다. 행동하는 양심이 아니라 행동하는 비양심 세력이라 해야 바른 말이다. 사실여부도 불투명한 악성 유언비어와 고집불통식 떼쓰기와 집단으로 떼거지로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상대편을 죽이기 위해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불특정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무차별적 폭력을 행사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반드시 관철시켜야만 그것이 민주화와 평화가 살아숨쉬는 민주사회더란 말인가!
전두환 대통령 집권기간 중에는 살인, 방화와 음주운전이 없었고 흉악극성범죄자는 거두어들여 삼청교육대에 보내 인간을 개조시켜 사회에 내보냈으며 각종 구악법을 폐지하였고 누이나 딸을 야밤에 보내고도 두려워하는 일은 없었다. 일부 학원가에 돈벌어 주고 공교육을 붕괴시키는 사학을 단속하였으며 83년경 부터는 두발과 복장의 자율화를 실시했지만 효과가 없음이 드러나 다시 규정대로 돌렸던 일도 있었으며 맹목적 반일보다는 극일정신을 강조하였다. 침략의 원흉이 죽자 대통령이나 당 총재가 아닌 부총리급 인사인 여당 부총재를 보냈는데 당시 한 야당 총수는 직접 조문을 가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진정한 친일 세력은 과연 누구였을까? 전두환 집권기의 중요 치적은 경제와 물가의 안정일 것이다. 경제를 안정시켜서 연평균 8%대의 성장을 유지하였고, 8년간 고용임금은 꾸준히 상승하였지만 물가는 80년과 87년 단 두 차례인상되어 서민들이 생활하기에는 가장 안정된 시절이 제5공화국 8년일 것이다.
친북 주체사상파, 그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외치던 자들이다. 이런 친북 주체사상파, 주사파들에 의해 전두환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형편없이 폄하,격하되고 의도적으로 저평가되어 왔다. 이는 하나의 사회적 인식으로까지 자리잡게 됐던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악의적 폄하의 주요 원인은 5.18 광주사태일 것이다. 5.18 광주폭동이 발생하기 전인 3월부터 북한군 심리전대대 간첩이 남파되었다가 서울 근교 북한산과 벽제에서 검거되었고 4월, 5월 2개월간 전국 각지에서 화염병과 최루가스와 사제 흉기로 중무장한 대학생들의 폭력데모가 계속되는 중에 5월 18일 새벽, 전일 구성된 자칭 시민군이 군부대와 경찰서를 습격하고 병기고를 약탈했다.
유언비어 확산에 대한 어떤 검증도 없이 광주만 미화한다면 이는 결과를 위해서는 과정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것을 의밓나다. 5.18 광주사태를 재조명하면서 유언비어 확산 사실은 의도적으로 왜곡되고 묻혀진다. 시민군이 들고 일어서기 전에 여고생의 젖가슴을 도려냈다, 여대생을 강간했다,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 경상도 군인들이 씨를 말리러 온다 등 사실여부 조차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확산, 유포되었고 이 유언비어는 분노한 시민들이 궐기하는데 일정 부분 기여하였다. 5.18 광주사태 관련 자료나 작품, 관련 학술회의가 열리고 있지만 누구도 5.18 광주폭동 발발 전에 시민들 사이에 출처불명과 사실여부 미확인의 유언비어가 돌았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고 거의 의도적으로 묻혀진다.
계엄군이 구성되기도 전에 계엄군이 나타나서 시민군을 선제발포하였다는 것은 유언비어였다. 게다가 경상도 군인들이 몰려온다는 것은 어떤 근거로 하는 소리인가? 18일 새벽 6시는 계엄군이 구성되기도 전이었으며, 선제공격을 한 측은 시민군측이었다. 5월 18일 당일 새벽까지만 해도 계엄군은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 구성되지도 않은 계엄군이 어디에서 나타나 어떻게 여성들을 사살하겠는가. 계엄군이 구성되었어도 무장 우려가 있는 젊은 남성을 사살하지 왜 자기방어의 능력조차 어려운 여학생이나 임산부 등 여성 중에서도 약자에 속하는 여성을 사살할까? 보통의 여성이라고 해도 수긍이 갈까 말까 한데...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여고생의 젖가슴을 도려냈다, 여대생을 강간했다,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 경상도 군인들이 씨를 말리러 온다 등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들이 날조, 확산되면서 시민군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게다가 경상도 병력이 몰려온다는 것도 터무늬없다. 남한에서 군대를 갔다왔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 있을까? 병력이 전부 경상도 군인이라는 주장도 터무늬없다. 간부들은 부대 주둔지 내 BOQ나 관사에서 살거나 영외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므로 대부분 전남, 광주 근교 출신이거나 거주자일 것이며 병력은 무작위 배치에 의해 전국 각지에서 오는 병사들이 대부분이다. 경상도 병력이 넘어온다는 거짓말을 얼굴빛하나 바뀌지 않고 한 자들은 혹시 남한 사정을 모르는 북한군은 아닌었을까? 5.18 당시 이런 유언비어를 누가 확산시켰는가도 찾아내고 검증해야 된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도 등장하고 당시 진술에도 나타나듯이 당시 차량으로 돌아다니며 확성기로 이런 유언비어를 날조하였던 전 옥주라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이 묘령의 여성의 정체에 대해서는 확인조차 되지도 않고 있다.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광주폭동 진압과정에서의 전두환 책임론은 사실무근성 음해일 것이다. 음해라고 봐야 한다. 5월 17일 저녁 비상국무회의에서도 계엄령을 연장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놓고 의견이 맞지 않아서 통과되지도 못한 시점이다. 사태가 발생한 뒤에 부랴부랴 31향토사단과 32향토사단을 계엄군으로 구성해서 31사단장 정 모 소장을 비상계엄군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광주폭동 주동자들을 토벌하게 했다. 전라남도 광주시(광주직할시로 되기 전 이름이다.) 출신 정 모 소장은 뒤에 평화민주당 공천으로 다선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87년 11월 김대중이 통일민주당의 대통령후보자 경선 중 김영삼 대통령후보자 선출에 불복종하고 나서 따로 차린 그 평화민주당이다. 이 어찌된 일인가?
광주사태를 평가함에 있어서 의도적으로 왜곡되고 숨겨지는 것이 또하나 있다. 북한군 침투사실이다. 북한은 5.18 광주사태가 발생하기 전부터 틈을 노려왔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지금까지도 배후가 밝혀지지 않은 의문의 암살을 당한뒤 출범한 최규하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였다. 북한은 박정희 대통령의 의문의 암살 이후 무능력한 최규하 정부에 대한 국민의 반발을 김일성, 김정일, 조선노동당 등에 대한 지지인 것처럼 착각하였다. 김정일은 광주폭동이 발생하기 전인 3월에 휴전선을 통해 심리전대대 소속 북한군을 파견하여 선전과 선동을 하게 했지만 남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서울 은평 등지에서 검거되어 봉기는 실패했고, 각 방송언론과 신문에 붙잡힌 간첩의 얼굴들과 실명들이 보도된 일이 있다. 서울의 봄이라고 했다. 이 사건으로 서울의 봄에 찬서리를 끼얹는 시국론이 나오기까지 했다.
5.18이 발생하고 전세계적으로 보도되자 북한은 서해안으로 잠수정을 파견하여 특수부대 1개 대대원 5~8백여 명을 침투시키기도 했다. 해변가에 미 주둔군이 해안가에 있었다는 의견도 있는데, 그들은 분명 잠수복 차림의 북한군을 보았을 것이다. 만일 미군이 있었다면 이들은 왜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까지 가도록 그냥 방치한 것일까? 이들은 경찰과 군인으로 변복하여 민간인을 구타 사살한 뒤, 다시 민간인 복장으로 환복하고 시민군 행세를 하기도 했다. 규율이 엄하던 5공화국 시대에 경찰과 군인이라면 장발이나 수북한 수염을 기를 수가 없었다. 사진으로도 남은것과 같이 장발 머리와 긴 수염을 했던 군인과 경찰관은 과연 어디에서 온 누구였을까?
광주사태 기간 중 택시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약탈하는 장면이 외신 언론에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되었고 지만원 박사나 시스템클럽, 여러 역사학도님 외에도 외국에서도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광주사태가 실시간으로 방송되었고, 이를 본 북한측 목격자들이 있다. 북한군의 한사람으로 광주폭동에 투입된 과정을 듣고 목격한 목격자들도 있다. 이들이 언제 만나서 말을 맞추었을까? 만날 기회 조차 없었다. 더구나 탈북자들은 2000년대 이후 공산당 독재정권의 폭정과 가난과 기근으로, 자유를 찾아서 남하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외신이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은 뭘까? 이 사진과 동영상들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세상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동영상편집, 사진편집이라는 해괴한 주장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1990년대 초반이면 한국사회는 동영상재생기술도 인터넷 조차도 선보이기 전, DOS 버젼 시대였다. 광주사태를 벌집으로 만들고 비밀리에 북한으로 돌아간 북한군들은 인민영웅 칭호와 대우를 받았고 일부는 애국렬사릉이라는 곳에도 안장됐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미처 수거하지 못한 시신들이 있다는 의혹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미 유명한 사건으로 기록된 이 광주사태가 남한에서는 민주화운동으로 미화, 신격화, 절대성역화 되어 있지 않던가.
광주사태는 역피해자를 대량으로 생산했다. 광주폭동의 한을 푼답시고 폭동의 진압주역으로 마녀사냥된 전두환 대통령, 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을 비롯한 노태우, 정호용 등 군 관계자와 역피해자들이 그들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 군 관계자와 역피해자들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광주사태에 관련된 광주측 주장 강요도 합리적이지 못하다. 우선 객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광주측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반대편에게는 해명이나 입증, 반박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불공정한 처사다. 5.18 광주사태에 대한 한국 사회의 평가는 공정하지 않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광주사태 주동자쪽 견해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것이 아니겠나.
86년부터 94년까지 국회에서 열린 광주청문회와 5.18청문회, 12.12청문회, 5공청문회는 정치보복과 추궁의 현장이었지 해명과 증언의 현장이 아니었다. 광주사태 재조명이란 하나의 떡밥은 1992년 김영삼 문민정부 출범 이후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계승한 정부라는 등의 허언이 돌면서 군사정권 관계자들에 대한 보복 목적의 좋은 칼날로 악용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평가를 뒤집는 것이지 제대로 된 광주사태 재평가가 아니었다. 신군부나 하나회 숙청도 문제점이 많다. 군내 친목단체에 대한 김영삼 정권의 과도한 철퇴와 숙청이 뒤이어졌다. 신군부나 하나회는 당시는 퇴역자나 예비역으로 구성된 한 친목단체 정도로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악랄하게 탄압해서 해산시킬 이유가 있었을까? 일개 친목단체들을 해체하고 대단한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을 한 것처럼 왜곡한 김영삼 정권의 행위는 실정이고 치졸한 정치보복이다. 신군부, 하나회 등 군내 친목단체들의 강제해산과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정치보복, 당시 민주자유당내 있던 민정계, 공화계 등에 대한 일종의 숙청작업의 일환은 아니었던가.
광주사태를 재조명하고 공개 토론회라도 열어야 한다. 산 자들의 몫은 오직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5.18 광주사태는 국민공청회, 청문회를 통해 재평가, 재논의가 필요하다. 광주사태의 민주화 기여도와 기여 여부 등의 평가는 성급하였다. 민주화 여부 평가는 사실상 보류되었어야 했다. 이해관계 당사자가 사라진 뒤 객관적 평가가 가능할 다음 세대까지는... 이해관계를 떠나 진실이 입증될 때까지는 역사의 몫으로 넘겼어야 했다. 그러나 광주폭동은 일방적인 정치보복용으로 활용되었다.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들 에게는 전교조 등의 좌경 용공단체들에 의해 일방적, 무차별적으로 광주학살, 광주정신 이라는 것이 강요, 세뇌되어 왔다.
광주사태는 아직도 의문점 투성이다. 그럼에도 교과서에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고 백과사전에도 천편일률, 민주화 운동으로 기술한 것은 잘못된 행위다. 모 여론기관의 조사결과, 응답자만 놓고 보면 30% 인데, 설문에 응하지 않고 조용히 사는 국민들까지 포함했을때 국민의 절반 이상은 광주사태를 인정하지 않는 마당에 5월 5.18 광주사태 직전 조직적인 유언비어 확산 주범, 선제공격을 시도한 시민군, 광주사태에 전후해서 투입된 북한군 등도 찾아내지 못한 마당에 어떻게 어린 학생들을 세뇌할수 있는가. 조직적인 유언비어 확산 주범, 선제공격을 시도한 시민군, 광주사태에 전후해서 투입된 북한군 등에 대한 재조사와 발굴 없이 광주를 무조건 민주화의 성역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인민군이 절대 민주화 운동일수 없다.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북한 공산독재정권의 하수인인 북한 인민군의 무장폭동은 민주화 운동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지금도 북한 공산당 독재정권의 폭정과 독재에 북한주민들이 어떠한 비판도 쉽게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인민군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감이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우선 그들 광주측은 기본 태도부터가 틀렸다. 반대의견은 묵살하고 무차별 탄압하는 것이 어떻게 민주적인 자세고 민주 정신일 것이며, 장기간 동안 광주사태에 침투한 북한군의 모습을 찍고 촬영한 외국 언론의 사진과 동영상을 근거로 북한군 투입설을 주장해 온 여러 역사학도님과 전사모 회원들 수십여 명과 지만원 박사, 이주천 교수 등 애국인사들에 대한 상습적인 탄압과 박해 부터가 그릇된 것이다. 탄압이나 고소를 남발하기 이전에 만나서 어떤 토의나 의사교류, 공개토론이라도 시도했어야 했다. 국가에서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무색하다. 국가에서 인정하려면 범국민적 동의가 우선되었어야 하지 않았겠나. 5.18 광주사태는 광주폭동, 광주사태를 광주봉기나 광주항쟁, 광주민중항쟁으로, 다시 광주항쟁에서 민주화운동으로 미화하고 승격시키는 일련의 과정에서도 범국민적 동의조차 얻지 못했다. 이제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진상을 규명하고 관계자들이 나와서 전국민의 앞에서 공개 토론회를 열어야 한다. 전두환 대통령과 5.18 광주사태에 대한 범국민적, 범사회적 청문회와 재평가, 재조명이 필요하다.
광주사태와 전두환을 바로 조명해야
5.18 광주사태와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재조명 여론이 들끓고 있다.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민주화 운동으로 강요되다시피 하던 광주사태, 과연 민주화 운동인가. 광주사태는 일방적인 시민군의 희생이고 절대선적 성역인가? 매번 대선기간 중 흑색선전과 유언비어, 촛불 광우사태, 각종 유언비어, 법안통과 반대, 국회폭력 난투극 등으로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재조명 요구가 사회전반에서 제기되고 있다. 전두환 대통령 다시보기, 전두환 대통령 재평가 등은 사실 친북 주사파들이 스스로 자초하였다. 친북 주체사상파들의 계속된 깽판과 선동으로 인한 폭력에 신물을 느낀 나머지 때늦은 회한에 의한 반전이겠지만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는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 광주폭동이 과연 신성불가침의 성역인가. 여러 역사학도님과 전사모 회원들 수십여 명과 지만원 박사, 이주천 교수, 이종윤 목사 등 애국인사들에 대한 상습적인 탄압과 박해를 목격하고 있다. 그들은 오늘도 묵묵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지만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것처럼 진리는 언젠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 확신한다.
친북 주사파들은 광주사태의 진실을 왜곡하며 광주학살, 광주정신을 말하지만 학살과 정신을 말하는 그들의 이면에는 자신들만이 오직 피해자요 희생자이며 절대적 선이라는 유치한 속좁음과 극도의 피해의식과 보상욕구가 그들의 심리저변에 자리잡고 있다.
친북 주사파들의 유언비어 날조극은 비단 하루 이틀의 문제는 아니다. 친북 주사파들의 유언비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97년 김영삼 정권 말기 IMF로 정권을 뒤흔든 것이나 그 뒤 김대중 일당의 IMF를 이용해서 경제를 파탄낸 뒤 국내 기업을 국제투기자본에 매각한 사실은 친북세력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김대중, 이헌재 등의 매국행위로 대우그룹이 GM사에 넘어갔고 외환, 제일은행 등이 론스타 법인으로, 쌍용자동차는 상하이 자동차로, 최대의 반도체회사 하이닉스나 건설사 극동건설 등도 전부 외국자본으로 팔려나갔다. 그들이 말한 IMF 졸업은 사기이다. 국내 기업체를 팔아넘기고 국내 근로자들의 실직을 담보로 한 완벽한 사기행위였던 것이다.
그뒤에도 그들은 15대, 16대 대선에서 사기전과범들을 동원해서 이회창씨 내외를 상대로 한 병풍사기조작 등의 정치테러를 벌인 것이나 17대 대선에서 땅투기니 다스니 하는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야당 후보자를 낙선시키려던 음모, 2008년 연간에 발생한 촛불집회와 광우병집회, 광우괴담을 포함한 각종 유언비어 등은 그들의 실체를 유감없이 국민앞에 드러내 왔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사회의 개념이 뭔가 의심스럽다. 행동하는 양심이 아니라 행동하는 비양심 세력이라 해야 바른 말이다.
사실여부도 불투명한 악성 유언비어와 고집불통식 떼쓰기와 집단으로 떼거지로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상대편을 죽이기 위해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불특정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고 무차별적 폭력을 행사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반드시 관철시켜야만 그것이 민주화와 평화가 살아숨쉬는 민주사회더란 말인가!
전두환 대통령 집권기간 중에는 살인, 방화와 음주운전이 없었고 흉악극성범죄자는 거두어들여 삼청교육대에 보내 인간을 개조시켜 사회에 내보냈으며 각종 구악법을 폐지하였고 누이나 딸을 야밤에 보내고도 두려워하는 일은 없었다.
일부 학원가에 돈벌어 주고 공교육을 붕괴시키는 사학을 단속하였으며 83년경 부터는 두발과 복장의 자율화를 실시했지만 효과가 없음이 드러나 다시 규정대로 돌렸던 일도 있었으며 맹목적 반일보다는 극일정신을 강조하였다. 침략의 원흉이 죽자 대통령이나 당 총재가 아닌 부총리급 인사인 여당 부총재를 보냈는데 당시 한 야당 총수는 직접 조문을 가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진정한 친일 세력은 과연 누구였을까?
전두환 집권기의 중요 치적은 경제와 물가의 안정일 것이다. 경제를 안정시켜서 연평균 8%대의 성장을 유지하였고, 8년간 고용임금은 꾸준히 상승하였지만 물가는 80년과 87년 단 두 차례인상되어 서민들이 생활하기에는 가장 안정된 시절이 제5공화국 8년일 것이다.
친북 주체사상파, 그들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를 외치던 자들이다. 이런 친북 주체사상파, 주사파들에 의해 전두환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형편없이 폄하,격하되고 의도적으로 저평가되어 왔다. 이는 하나의 사회적 인식으로까지 자리잡게 됐던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악의적 폄하의 주요 원인은 5.18 광주사태일 것이다. 5.18 광주폭동이 발생하기 전인 3월부터 북한군 심리전대대 간첩이 남파되었다가 서울 근교 북한산과 벽제에서 검거되었고 4월, 5월 2개월간 전국 각지에서 화염병과 최루가스와 사제 흉기로 중무장한 대학생들의 폭력데모가 계속되는 중에 5월 18일 새벽, 전일 구성된 자칭 시민군이 군부대와 경찰서를 습격하고 병기고를 약탈했다.
유언비어 확산에 대한 어떤 검증도 없이 광주만 미화한다면 이는 결과를 위해서는 과정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것을 의밓나다. 5.18 광주사태를 재조명하면서 유언비어 확산 사실은 의도적으로 왜곡되고 묻혀진다. 시민군이 들고 일어서기 전에 여고생의 젖가슴을 도려냈다, 여대생을 강간했다,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 경상도 군인들이 씨를 말리러 온다 등 사실여부 조차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가 확산, 유포되었고 이 유언비어는 분노한 시민들이 궐기하는데 일정 부분 기여하였다. 5.18 광주사태 관련 자료나 작품, 관련 학술회의가 열리고 있지만 누구도 5.18 광주폭동 발발 전에 시민들 사이에 출처불명과 사실여부 미확인의 유언비어가 돌았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고 거의 의도적으로 묻혀진다.
계엄군이 구성되기도 전에 계엄군이 나타나서 시민군을 선제발포하였다는 것은 유언비어였다. 게다가 경상도 군인들이 몰려온다는 것은 어떤 근거로 하는 소리인가? 18일 새벽 6시는 계엄군이 구성되기도 전이었으며, 선제공격을 한 측은 시민군측이었다. 5월 18일 당일 새벽까지만 해도 계엄군은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 구성되지도 않은 계엄군이 어디에서 나타나 어떻게 여성들을 사살하겠는가. 계엄군이 구성되었어도 무장 우려가 있는 젊은 남성을 사살하지 왜 자기방어의 능력조차 어려운 여학생이나 임산부 등 여성 중에서도 약자에 속하는 여성을 사살할까? 보통의 여성이라고 해도 수긍이 갈까 말까 한데...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여고생의 젖가슴을 도려냈다, 여대생을 강간했다, 임산부의 배를 갈랐다, 경상도 군인들이 씨를 말리러 온다 등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들이 날조, 확산되면서 시민군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게다가 경상도 병력이 몰려온다는 것도 터무늬없다. 남한에서 군대를 갔다왔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 있을까? 병력이 전부 경상도 군인이라는 주장도 터무늬없다. 간부들은 부대 주둔지 내 BOQ나 관사에서 살거나 영외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므로 대부분 전남, 광주 근교 출신이거나 거주자일 것이며 병력은 무작위 배치에 의해 전국 각지에서 오는 병사들이 대부분이다. 경상도 병력이 넘어온다는 거짓말을 얼굴빛하나 바뀌지 않고 한 자들은 혹시 남한 사정을 모르는 북한군은 아닌었을까? 5.18 당시 이런 유언비어를 누가 확산시켰는가도 찾아내고 검증해야 된다.
영화 화려한 휴가에도 등장하고 당시 진술에도 나타나듯이 당시 차량으로 돌아다니며 확성기로 이런 유언비어를 날조하였던 전 옥주라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고 한다. 이 묘령의 여성의 정체에 대해서는 확인조차 되지도 않고 있다.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광주폭동 진압과정에서의 전두환 책임론은 사실무근성 음해일 것이다. 음해라고 봐야 한다. 5월 17일 저녁 비상국무회의에서도 계엄령을 연장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놓고 의견이 맞지 않아서 통과되지도 못한 시점이다. 사태가 발생한 뒤에 부랴부랴 31향토사단과 32향토사단을 계엄군으로 구성해서 31사단장 정 모 소장을 비상계엄군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광주폭동 주동자들을 토벌하게 했다. 전라남도 광주시(광주직할시로 되기 전 이름이다.) 출신 정 모 소장은 뒤에 평화민주당 공천으로 다선 국회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87년 11월 김대중이 통일민주당의 대통령후보자 경선 중 김영삼 대통령후보자 선출에 불복종하고 나서 따로 차린 그 평화민주당이다. 이 어찌된 일인가?
광주사태를 평가함에 있어서 의도적으로 왜곡되고 숨겨지는 것이 또하나 있다. 북한군 침투사실이다. 북한은 5.18 광주사태가 발생하기 전부터 틈을 노려왔다. 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지금까지도 배후가 밝혀지지 않은 의문의 암살을 당한뒤 출범한 최규하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였다. 북한은 박정희 대통령의 의문의 암살 이후 무능력한 최규하 정부에 대한 국민의 반발을 김일성, 김정일, 조선노동당 등에 대한 지지인 것처럼 착각하였다. 김정일은 광주폭동이 발생하기 전인 3월에 휴전선을 통해 심리전대대 소속 북한군을 파견하여 선전과 선동을 하게 했지만 남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서울 은평 등지에서 검거되어 봉기는 실패했고, 각 방송언론과 신문에 붙잡힌 간첩의 얼굴들과 실명들이 보도된 일이 있다. 서울의 봄이라고 했다. 이 사건으로 서울의 봄에 찬서리를 끼얹는 시국론이 나오기까지 했다.
5.18이 발생하고 전세계적으로 보도되자 북한은 서해안으로 잠수정을 파견하여 특수부대 1개 대대원 5~8백여 명을 침투시키기도 했다. 해변가에 미 주둔군이 해안가에 있었다는 의견도 있는데, 그들은 분명 잠수복 차림의 북한군을 보았을 것이다. 만일 미군이 있었다면 이들은 왜 북한군 특수부대가 광주까지 가도록 그냥 방치한 것일까?
이들은 경찰과 군인으로 변복하여 민간인을 구타 사살한 뒤, 다시 민간인 복장으로 환복하고 시민군 행세를 하기도 했다. 규율이 엄하던 5공화국 시대에 경찰과 군인이라면 장발이나 수북한 수염을 기를 수가 없었다. 사진으로도 남은것과 같이 장발 머리와 긴 수염을 했던 군인과 경찰관은 과연 어디에서 온 누구였을까?
광주사태 기간 중 택시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약탈하는 장면이 외신 언론에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되었고 지만원 박사나 시스템클럽, 여러 역사학도님 외에도 외국에서도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광주사태가 실시간으로 방송되었고, 이를 본 북한측 목격자들이 있다. 북한군의 한사람으로 광주폭동에 투입된 과정을 듣고 목격한 목격자들도 있다. 이들이 언제 만나서 말을 맞추었을까? 만날 기회 조차 없었다. 더구나 탈북자들은 2000년대 이후 공산당 독재정권의 폭정과 가난과 기근으로, 자유를 찾아서 남하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외신이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은 뭘까? 이 사진과 동영상들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세상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동영상편집, 사진편집이라는 해괴한 주장으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1990년대 초반이면 한국사회는 동영상재생기술도 인터넷 조차도 선보이기 전, DOS 버젼 시대였다.
광주사태를 벌집으로 만들고 비밀리에 북한으로 돌아간 북한군들은 인민영웅 칭호와 대우를 받았고 일부는 애국렬사릉이라는 곳에도 안장됐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미처 수거하지 못한 시신들이 있다는 의혹까지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미 유명한 사건으로 기록된 이 광주사태가 남한에서는 민주화운동으로 미화, 신격화, 절대성역화 되어 있지 않던가.
광주사태는 역피해자를 대량으로 생산했다. 광주폭동의 한을 푼답시고 폭동의 진압주역으로 마녀사냥된 전두환 대통령, 당시 보안사령관 겸 중앙정보부장을 비롯한 노태우, 정호용 등 군 관계자와 역피해자들이 그들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 군 관계자와 역피해자들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광주사태에 관련된 광주측 주장 강요도 합리적이지 못하다. 우선 객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광주측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반대편에게는 해명이나 입증, 반박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불공정한 처사다. 5.18 광주사태에 대한 한국 사회의 평가는 공정하지 않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광주사태 주동자쪽 견해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것이 아니겠나.
86년부터 94년까지 국회에서 열린 광주청문회와 5.18청문회, 12.12청문회, 5공청문회는 정치보복과 추궁의 현장이었지 해명과 증언의 현장이 아니었다. 광주사태 재조명이란 하나의 떡밥은 1992년 김영삼 문민정부 출범 이후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계승한 정부라는 등의 허언이 돌면서 군사정권 관계자들에 대한 보복 목적의 좋은 칼날로 악용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평가를 뒤집는 것이지 제대로 된 광주사태 재평가가 아니었다.
신군부나 하나회 숙청도 문제점이 많다. 군내 친목단체에 대한 김영삼 정권의 과도한 철퇴와 숙청이 뒤이어졌다. 신군부나 하나회는 당시는 퇴역자나 예비역으로 구성된 한 친목단체 정도로 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악랄하게 탄압해서 해산시킬 이유가 있었을까? 일개 친목단체들을 해체하고 대단한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을 한 것처럼 왜곡한 김영삼 정권의 행위는 실정이고 치졸한 정치보복이다. 신군부, 하나회 등 군내 친목단체들의 강제해산과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정치보복, 당시 민주자유당내 있던 민정계, 공화계 등에 대한 일종의 숙청작업의 일환은 아니었던가.
광주사태를 재조명하고 공개 토론회라도 열어야 한다. 산 자들의 몫은 오직 진실을 밝히는 것이다. 5.18 광주사태는 국민공청회, 청문회를 통해 재평가, 재논의가 필요하다. 광주사태의 민주화 기여도와 기여 여부 등의 평가는 성급하였다. 민주화 여부 평가는 사실상 보류되었어야 했다. 이해관계 당사자가 사라진 뒤 객관적 평가가 가능할 다음 세대까지는... 이해관계를 떠나 진실이 입증될 때까지는 역사의 몫으로 넘겼어야 했다. 그러나 광주폭동은 일방적인 정치보복용으로 활용되었다.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젊은 세대들 에게는 전교조 등의 좌경 용공단체들에 의해 일방적, 무차별적으로 광주학살, 광주정신 이라는 것이 강요, 세뇌되어 왔다.
광주사태는 아직도 의문점 투성이다. 그럼에도 교과서에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고 백과사전에도 천편일률, 민주화 운동으로 기술한 것은 잘못된 행위다. 모 여론기관의 조사결과, 응답자만 놓고 보면 30% 인데, 설문에 응하지 않고 조용히 사는 국민들까지 포함했을때 국민의 절반 이상은 광주사태를 인정하지 않는 마당에 5월 5.18 광주사태 직전 조직적인 유언비어 확산 주범, 선제공격을 시도한 시민군, 광주사태에 전후해서 투입된 북한군 등도 찾아내지 못한 마당에 어떻게 어린 학생들을 세뇌할수 있는가. 조직적인 유언비어 확산 주범, 선제공격을 시도한 시민군, 광주사태에 전후해서 투입된 북한군 등에 대한 재조사와 발굴 없이 광주를 무조건 민주화의 성역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인민군이 절대 민주화 운동일수 없다.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북한 공산독재정권의 하수인인 북한 인민군의 무장폭동은 민주화 운동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 지금도 북한 공산당 독재정권의 폭정과 독재에 북한주민들이 어떠한 비판도 쉽게하지 못하는 배경에는, 인민군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감이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우선 그들 광주측은 기본 태도부터가 틀렸다. 반대의견은 묵살하고 무차별 탄압하는 것이 어떻게 민주적인 자세고 민주 정신일 것이며, 장기간 동안 광주사태에 침투한 북한군의 모습을 찍고 촬영한 외국 언론의 사진과 동영상을 근거로 북한군 투입설을 주장해 온 여러 역사학도님과 전사모 회원들 수십여 명과 지만원 박사, 이주천 교수 등 애국인사들에 대한 상습적인 탄압과 박해 부터가 그릇된 것이다. 탄압이나 고소를 남발하기 이전에 만나서 어떤 토의나 의사교류, 공개토론이라도 시도했어야 했다.
국가에서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무색하다. 국가에서 인정하려면 범국민적 동의가 우선되었어야 하지 않았겠나. 5.18 광주사태는 광주폭동, 광주사태를 광주봉기나 광주항쟁, 광주민중항쟁으로, 다시 광주항쟁에서 민주화운동으로 미화하고 승격시키는 일련의 과정에서도 범국민적 동의조차 얻지 못했다. 이제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 진상을 규명하고 관계자들이 나와서 전국민의 앞에서 공개 토론회를 열어야 한다. 전두환 대통령과 5.18 광주사태에 대한 범국민적, 범사회적 청문회와 재평가, 재조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