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뭐징20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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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내 나이 19살이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친구와 나는 안산 시화공단 근처의 지하도를 걷고 있었다.
퇴근 시간이라 수많은 사람이 지하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는데, 걷는 내내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들었다.
나는 친구에게 "누가 나 부르는 거 같지 않냐?"고 물었지만, 친구는 전혀 듣지 못했다고 했다.
고향이 이곳이 아니어서 만나러 가는 친구들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걸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었다.
결국 가던 길을 멈추고 두리번거리자, 친구가 의아하게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누가 날 부른다니까"라며 시선을 돌렸고, 그때 지하도 한쪽 구석에 앉아 계신 한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 할아버지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손짓하고 계셨다.
내가 그 할아버지에게 다가가자, 할아버지는 갑자기 내 손목을 '확' 잡아채더니 큰 소리로 외치셨다.
"평강 공주는 온달 장군을 만나야 잘살어!"
그러면서 점을 보고 가라는 것이었다. 지나가던 많은 사람이 할아버지가 갑자기 내 손목을 잡고 소리치는 모습에 일제히 우리를 쳐다봤다.
어린 나이에 당황하고 무서웠던 나는 급히 손목을 빼고 도망치듯 친구와 함께 지하도를 벗어났다.
나중에 나이가 좀 더 들어 그때를 되돌아볼수록 신기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지하도는 정말 크고 사람이 가득했는데, 구석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나를 부르는 걸 내가 정확히 느꼈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내가 태어난 곳이 실제로 온달 장군과 평강 공주의 설화가 전해지는 지역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곳을 어떻게 알았으며, 왜 하필 그 순간 내게 "평강 공주는 온달 장군을 만나야 잘산다"는 말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고 기묘하다.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약 그때 내가 용기를 내어 할아버지에게 점을 봤더라면, 내 미래를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지금의 내 삶은 현재와 완전히 달라졌을까?
아니면 할아버지는 이미 내게 펼쳐질 지금의 이 삶을 예견하고 계셨던 것일까? 답을 알 수 없는 그날의 기묘한 만남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