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학년이 되고 첫 짝꿍이 너였다. 속으로는 예쁜 아이가 짝꿍이 돼서 꽤 기뻤던 것 같다. 함께 노는 친구들이 겹쳤던 덕분일까, 우리는 금세 가까워졌다. 그 무렵 나는 여러 여자아이들에게 쉽게 관심을 보였는데, 그런 나를 보고 너는 “너 금사빠잖아”라고 말했다.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뜻도 몰라서 너에게 물어봤고, 알고 나서는 꽤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너를 꼬시고야말겠다고.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이유지만, 그게 정말 시작이었다. 2016년 가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빼빼로데이가 찾아왔다. 나는 늘 일찍 등교했기에 너의 사물함에 몰래 빼빼로를 숨겨두는 건 일도 아니었다. 다음날 아침, 빼빼로를 발견한 너는 이리저리 물어보고 다녔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않아 문자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다행히 너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고, 그 사소한 대화들이 중학생이 되어 다시 가을이 올 때까지 이어졌다.
주마다 좋아하는 아이가 바뀌던 내가, 너를 꼬시겠다는 다짐 하나로 거의 1년을 너에게 집중했다. 그렇게 썸을 타던 그 시간 속에서 내 마음은 점점 진심이 되어갔다. 너를 보면 그냥 웃음이 나왔고, 단순한 친구 이상의 감정이 생겼다.
너도 알고 있었겠지.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걸. 하지만 나는 끝내 고백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혹시라도 친구조차 아니게 될까 봐.” 그게 두려웠다.
그러다 어느 날, 더는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터질 것만 같았으니까. 결국 고백을 했고, 시원하게 차였다. 연애 금지래. 뭐, 부모님 말씀 잘 듣는 네 성격에 어쩔 수 없었지. 그래도 난 미련하게 다시 연락했다. “우리... 아직 친구 맞지?”
그렇게 다시 연락을 이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중, 너에게서 문자가 왔다.
“우리 사귈래?”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그땐 장난 고백이 유행이었고,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건 학교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귀게 됐다. 2017년 10월 23일, 우리가 14살이던 날이었다.
사귀고 나서도 한동안은 친구 때와 별다를 게 없었다. 단둘이 있으면 어색했고, 친구들이 함께할 때만 자연스러웠다. 사귀고 1년이 지나서야 처음 손을 잡았을 정도였다.
2학년 겨울방학이 되자, 학교에 가지 않으니 너를 볼 일이 없어졌다. 그래서였을까, 점점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이러려고 사귀는 건가.
당시 나는 친구 문제, 가족 문제 등으로 불안한 시기였고, 결국 충동적으로 “헤어지자”고 말해버렸다. 집 앞 계곡에서 문자로 통보하고 집에 오니, 눈물이 났다. 엄마가 어이없어하더라. “네가 헤어지자 해놓고 왜 울어?”
한 달쯤 지나 개학이 다가왔다. 막상 너의 얼굴을 다시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어색했다. 그래서 다시 말을 꺼냈다. “다시 사귀자.”
이유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은 그거였다. 그냥... 어색하게 마주보는 게 싫어서.
3학년이 되고 우리는 자주 싸웠다. 아니, 사실 내가 자주 너를 화나게 했던 거지. 그래도 그만큼 더 가까워졌다. 덕분에 욕이 입에 붙었던 내가 말투도 고치게 됐다.
우리 첫 키스, 기억나? 우리들의 아지트 같은 공간에서였지. 선생님이랑 친구들이 우리가 사귄 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키스 안 하냐며 놀렸잖아. 그래서 수업 종 치기 직전에 네 양볼을 꼬집고 살짝 뽀뽀했지. 너에게도, 나에게도 첫 키스였는데, 낭만적이지 못해서 늘 미안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귀엽고 풋풋했다.
그렇게 진짜 연인처럼 지내던 3학년이 끝나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택했다. 너는 인문계로, 나는 특성화고로. 졸업식 날 너를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에 많이 울었다. 다른 학교로 가면 헤어질 것만 같았거든.
하지만 뜻밖에도 코로나가 터졌다. 덕분에 우리 집 앞 학교에 다니던 너와, 온라인 수업을 듣던 나는 자주 만날 수 있었다. 그 시절 쌓은 추억이 많았기에, 이후에도 관계는 이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넌 대학에 진학했고 나는 일을 시작했다. 서로 바쁜 일상 속에서도 주 1~2회씩은 꼭 만났다. 그러다 내가 호주로 워홀을 가기로 했다.
그때가 진짜 위기였지. 출국 전날까지도 네가 헤어지자고 할지 말지 고민하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 우리 서로 다른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 결혼식에 초대하자고 말했지. 그 말을 하며 얼마나 마음이 아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넌 결국 “헤어질 자신이 없다”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호주에 도착한 후, 나는 바이크를 탔다. 너도 알고 있었지, 예전부터 그게 내 로망이었다는 걸. 하지만 두 달 만에 큰 사고를 당했고, 한 달을 병원에서 보냈다.
아픈 건 괜찮았는데, 너를 걱정하게 만든 게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다시는 타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고 덕분에 조기 귀국하게 됐다. 네 마음이 식기 전에 돌아올 수 있었던 거지.
덕분에 우리는 7주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뭔가 달라졌다. 조기귀국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해외에 대한 내 미련 때문이었을까. “만약 우리가 헤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대화 속에서 나는 늘 이렇게 말했다.
“난 해외에 나갈 거야. 근데 네가 같이 가지 않겠다면, 그때는 헤어져야겠지.”
사실 알고 있었다. 넌 해외에서 살 생각이 없다는 걸. 아마 그때부터였을지도 몰라. 너가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한 게.
잠실에서 마지막 데이트를 하던 날, 너는 유난히 기운이 없어보였다. 왠지 알 수 있었다. 이러다 우리, 끝나겠구나.
그날 이후 난 계속 생각했다. 내가 왜 처음 해외에 나가고 싶었는지. 결국 이유는 하나였다. 너와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나는 그 단순한 꿈을 잊고, 목표만 쫓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다음 데이트 때 너에게 그 말을 전하려고 했는데… 그날은 오지 않았다.
예정된 데이트 이틀 전, 밤에 전화가 왔다.
“결혼 얘기도, 해외 나가는 것도... 나한테 너무 부담스러워. 시간을 좀 가지자.”
그 말이 나에겐 곧 ‘이별’이었다. 다음날 퇴근하자마자 너를 찾아갔다. 앞뒤 다 생략하고 그냥 말했다.
“나... 해외 안 나가도 돼.”
지금 생각하면 너무 멍청했다. 그때 내가 정말 진심으로 어떤 마음이었는지, 너와 어떤 미래를 꿈꿨는지 말했더라면 달라졌을까.
그래도 너는 “괜찮아, 시간 안 가져도 돼”라며 일단 우리를 봉합했다. 하지만 그건 불안한 봉합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마음이 이상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정말 시간 안 필요해?”
너는 잠시 망설이다가 “필요할 것 같아”라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일주일의 시간을 가졌다.
첫날은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하게도 희망이 생겼다. 내가 이렇게 힘든 만큼, 너도 내 소중함을 느끼겠지.
드디어 다시 만나기로 한 날, 너는 내 회사 앞으로 왔다. 근처 카페에서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넌 나랑 있을 땐 너무 좋은데, 떨어져 있으면 연락이 귀찮아. 그리고는 앞으로 더 바빠질 것 같아서 만나기도 쉽지는 않을것같아.”
아마 그 말은 “그래도 자주 보고 싶다”는 다른 표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바보같이 말했다. “괜찮아, 나도 주 6일 일하니까. 연락 잘 안 돼도 이해해.”
그때라도 “그래도 얼굴보면 너무 좋으니깐 오래는 못보더라도 조금씩 자주 보자”고 말했더라면 달라졌을까.
그날 너는 끝내 붙잡히지 않았다.
집에 데려다주는 길, 너는 울었지.
그 울음의 의미가 아직도 궁금하다.
나를 여전히 좋아해서였을까,
아니면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었을까,
혹은… 완전히 다른 이유였을까.
사실 오늘 만나보고싶었어 우리가 함께였다면
8주년이니깐 그래서 저번주에 연락했던거고 그때 하고싶었던 말들을 다하긴했지만 그래도 못한말이 남아있네
나 아직 많이 좋아해. 물론 나도알아.
앞으로 너도 나도 좋은 사람 만나겠지. 근데 그럼에도 서로에게 처음인것처럼 서로에게 마지막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들어.
너가 이미 마음 정리한 거 알아.
이제 시간이 지나면 나도 조금씩 희미해지겠지.
그래도 난 당분간,
내가 제일 잘하는 거 하면서 지낼 것 같아
짝사랑은 내 특기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