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삶과 사후세계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없길 바랍니다. 내가 아는 분명한 한가지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었다. 신이 있다면, 죽음후의 세계이냐 현재의 삶이냐를 고르라고 한다면, 어느것이 너무 강력히 중요하다고 볼수있는 부분입니까. 지금처럼 돈에 집착하는 행위는, 버리셔야 합니다. 7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8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9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10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ㅡ 디모테오 1서 6장 7-10절 다음생이라는 불분명한 출처인 불교를 믿는다고, 그 어떤 정확한 증거가 아예 없는 불교가 지금 당장 아니, 갑자기 나타나서는 신이란 증거로 악신에게 대항하기 위해 무장하고 싸워야함에도, 불교의 영적존재가 그들과 싸우기는커녕 불교는 분명한 실체인 모습조차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재판에서조차, 증거가 없어서 기각이 얼마나 많습니까. 증거가 없어도 되는 부분이 종교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신이 오늘날처럼 나타나지 않았던, 옛날에 사는 옛사람 고지식한 마인드는 마땅히 버려야 합니다. "천주교는 실제라는 실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옛시대를 살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옛사람 마인드를 거슬러 올라가야만 하는, 신이 불분명한 옛시대들을 거쳐 욌으며, 그 신이 불분명한 시대들을 사는 것이 아닌 신이 확정된 시대를 살아가고 게다가 그 증거로 또 신의 현존도 간접적으로 보았습니다. 악신의 괴롭힘을 말입니다. 이래도 신에 올인하지 않고 돈에 얽매인다면, 그 사람은 지혜가 부족해도 너무나 부족한 사람 아닙니까? 신이 있다고 너무나도 분명한 시대에 살고 있음은, 이제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분명한 물적증거 그리고 영적 증거가 확실하다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또 이렇게 분명한 신으로인해, 불분명한 신이 존재가 확실하다는 그들도 확실시 존재하는 사람처럼 존재하는 영적존재로써 인정받았다는 역사는, 불분명한 분야이기보다는 글씨로 남겨서 "신이라는 분야"에서의 책들을 신에 대한 실제 방대한 정보의 분량이 늘어나 "신에 대해 진짜 있다"라고 새로 써도 될만큼, 말라키 성인주교님의 마지막 시대가 도래하였음은 왜 지금도 신에 올인하고 있지 않는가를 우리에게 도리어 되묻고 있습니다. 말라키 성인주교님의 예견한 일들이 100 %모두 이루어 진 사실과 더불어, 우리에게는 신에 대해서도 체감까지 하는 등 마지막시대에 해당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라는 면에서도, 신에 대한 증거와 기적들이 그리고 성모님의 발현과 말씀중에 드러난 전세계의 1/2 하느님의 신자수라는 비밀이 밝혀짐은 또 다른 기적이자 너무나 강렬한 믿음을 선사하는 바입니다. 안믿는자들에게도 보여줄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들로써는, "성모님께서 발현하시어 일으키신 기적들이 전세계에 만연하다"는 점도 성모님은 가톨릭의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시기에 하느님과는 감히 비교할 수가 없겠지만, 성모님께서도 비교적 큰 한 축이심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번에도 두 종교가 혹시 논란이 있다면, 개신교를 믿어야 하겠습니까. 천주교를 믿어야 하겠습니까. 개신교는 구원이 있습니까? 아니, 개신교는 예수님께서 있습니까? 우리는 신에 대해서, 특히 절대자이신 천주교의 하느님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하고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이 진짜인데다가, 신만이 오로지 사후세계를 주관하며, 또. 하느님의 사후세계 중에 지옥이 있다는 사실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 모두 사실인데, 전세계 1/2이나 하느님의 신자수가 되는데, 지구상에서 지옥을 감내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증거가 없는 불교에 대해 증거가 없음으로인해서 불교는 많은 부분에서조차 우리는 상상으로 믿고 있으며, "불교는 증거가 왜 없을까"혹은 "증거가 없는데도 불교를 믿어도 될까? "라는 의문을 가져야만 할 만큼, 오히려 불교와 결을 같이 하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오직 믿을수 있는 실제만을 이야기하는 데다가, 신이여야만 가능한 수많은 기적들도 전세계적으로 수없이 방대하게 가지고 계십니다. 모든 종교를 제외한 "하느님의 종교들" 분야에서만큼은 오히려 불교와는 정반대로 불교와는 달리 오직 실제라는 실제 증거만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실제라는 극한의 믿음을 주는 증거만을 채택하고 취급합니다. 반면에 그로써 돌아오는 불교에 대한 물음은 "불교는 증거가 있습니까" 라고 되묻고 있습니다. 종교에 대한 정의와 판단이 오직 실제여야만 한다고 할만큼, 그만큼 신에 존재가 물음표인 미지의존재에서 완전히 바뀌어 종말이 가까운 마지막 시대로 불리는 현재는, “신은 가상이 아닌 실제존재다”라고 “신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변화되었다”는 오늘날에도, 하느님께서는 증거와 실제기적으로만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아예 증거가 없음을 대수롭지않게 여긴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여, 시대착오적이며, 오히려 퇴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게다가, 신들도 창조하셨다는 성경구절이 말씀하신 바로는, 부처님 역시 창조죈 존재일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은 왜 아직도 아무도 실행하지 않고 게십니까. 이는 불교가 증거가 없다면, 당연한 소리가 되지 않습니까. 왜 부처를 창조된 인간에게 너희는 신들이며, 라고 하신것 처럼 창조된 신으로 볼수 없다는 말씀 입니까. 이는, 논리에 맞지않는 편견입니다. 성경에서도 "너희는 신들이며,"라는 성경구절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신인데, 부처가 창조된 신이 아니다? 더군다나 부처는 증거도 없다?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부처도 창조된 신의 자리에 놓으십시요. 중요한 성경구절은 34절 하나 뿐이지만, 문맥을 모르기에, 다른 성경구절도 함께 살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35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36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ㅡ 요한복음 10장 34-37절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중요한 성경구절은 단 하나, 34절입니다. 종교가 증거가 없어도 된다는 생각을 아직도 가지고 계십니까. 그런데, 오직 증거만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 하느님께서는 불교보다 훨씬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하나의 데이터로 비교와 분석을 이보다 더 순식간에 일어나게 해 드리겠습니다. 불교는 전세계의 1/20. 하느님께서는 전세계의 1/2. 이 상황에서 누가 지구를 창조하셨다고 믿는게, 현명하겠습니까. 진리는 이 아래줄 모두 일뿐입니다. [하나의 신이, 전세계의 1/2인 신자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고의적으로 창조하실때 그렇게 만들 의도를 가지고,] [지구를 만들었다는 사실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1
신이 있다면 돈에 집착하는 행위는, 버리셔야 합니다.
신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삶과 사후세계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없길 바랍니다.
내가 아는 분명한 한가지는,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었다.
신이 있다면, 죽음후의 세계이냐 현재의 삶이냐를
고르라고 한다면,
어느것이 너무 강력히 중요하다고
볼수있는 부분입니까.
지금처럼 돈에 집착하는 행위는,
버리셔야 합니다.
7
우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8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는 그것으로 만족합시다.
9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리는 유혹과
올가미와 어리석고 해로운 갖가지 욕망에
떨어집니다.
10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ㅡ 디모테오 1서 6장 7-10절
다음생이라는 불분명한 출처인 불교를 믿는다고,
그 어떤 정확한 증거가 아예 없는 불교가 지금 당장 아니,
갑자기 나타나서는 신이란 증거로
악신에게 대항하기 위해 무장하고 싸워야함에도,
불교의 영적존재가 그들과 싸우기는커녕
불교는 분명한 실체인 모습조차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재판에서조차,
증거가 없어서 기각이 얼마나 많습니까.
증거가 없어도 되는 부분이 종교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신이 오늘날처럼 나타나지 않았던,
옛날에 사는 옛사람 고지식한 마인드는
마땅히 버려야 합니다.
"천주교는 실제라는 실제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옛시대를 살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옛사람 마인드를 거슬러 올라가야만 하는,
신이 불분명한 옛시대들을 거쳐 욌으며,
그 신이 불분명한 시대들을 사는 것이 아닌
신이 확정된 시대를 살아가고 게다가 그 증거로
또 신의 현존도 간접적으로 보았습니다.
악신의 괴롭힘을 말입니다.
이래도 신에 올인하지 않고 돈에 얽매인다면,
그 사람은 지혜가 부족해도
너무나 부족한 사람 아닙니까?
신이 있다고 너무나도 분명한 시대에 살고 있음은,
이제 신의 존재에 대해서도 분명한
물적증거 그리고 영적 증거가
확실하다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또 이렇게 분명한 신으로인해,
불분명한 신이 존재가 확실하다는
그들도 확실시 존재하는 사람처럼
존재하는 영적존재로써 인정받았다는 역사는,
불분명한 분야이기보다는 글씨로 남겨서
"신이라는 분야"에서의 책들을
신에 대한 실제 방대한 정보의 분량이 늘어나
"신에 대해 진짜 있다"라고 새로 써도 될만큼,
말라키 성인주교님의 마지막 시대가 도래하였음은
왜 지금도 신에 올인하고 있지 않는가를
우리에게 도리어 되묻고 있습니다.
말라키 성인주교님의 예견한 일들이
100 %모두 이루어 진 사실과 더불어,
우리에게는 신에 대해서도 체감까지 하는 등
마지막시대에 해당하는 시대가
바로 지금이라는 면에서도,
신에 대한 증거와 기적들이 그리고
성모님의 발현과 말씀중에 드러난
전세계의 1/2 하느님의 신자수라는 비밀이 밝혀짐은
또 다른 기적이자
너무나 강렬한 믿음을 선사하는 바입니다.
안믿는자들에게도 보여줄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들로써는,
"성모님께서 발현하시어 일으키신 기적들이
전세계에 만연하다"는 점도
성모님은 가톨릭의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시기에
하느님과는 감히 비교할 수가 없겠지만,
성모님께서도 비교적 큰 한 축이심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번에도 두 종교가 혹시 논란이 있다면,
개신교를 믿어야 하겠습니까.
천주교를 믿어야 하겠습니까.
개신교는 구원이 있습니까?
아니, 개신교는 예수님께서 있습니까?
우리는 신에 대해서,
특히 절대자이신 천주교의 하느님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하고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이 진짜인데다가,
신만이 오로지 사후세계를 주관하며,
또. 하느님의 사후세계 중에
지옥이 있다는 사실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 모두 사실인데, 전세계 1/2이나 하느님의 신자수가 되는데, 지구상에서 지옥을 감내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증거가 없는 불교에 대해
증거가 없음으로인해서 불교는
많은 부분에서조차 우리는
상상으로 믿고 있으며,
"불교는 증거가 왜 없을까"혹은
"증거가 없는데도 불교를 믿어도 될까? "라는
의문을 가져야만 할 만큼, 오히려
불교와 결을 같이 하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오직 믿을수 있는 실제만을 이야기하는 데다가,
신이여야만 가능한 수많은 기적들도
전세계적으로 수없이 방대하게 가지고 계십니다.
모든 종교를 제외한 "하느님의 종교들" 분야에서만큼은
오히려 불교와는 정반대로 불교와는 달리
오직 실제라는 실제 증거만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실제라는
극한의 믿음을 주는 증거만을 채택하고
취급합니다.
반면에 그로써 돌아오는 불교에 대한 물음은
"불교는 증거가 있습니까" 라고 되묻고 있습니다.
종교에 대한 정의와 판단이
오직 실제여야만 한다고 할만큼,
그만큼 신에 존재가 물음표인 미지의존재에서 완전히 바뀌어
종말이 가까운 마지막 시대로 불리는 현재는,
“신은 가상이 아닌 실제존재다”라고
“신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변화되었다”는 오늘날에도,
하느님께서는 증거와 실제기적으로만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아예 증거가 없음을 대수롭지않게 여긴다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여, 시대착오적이며,
오히려 퇴보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게다가, 신들도 창조하셨다는 성경구절이 말씀하신 바로는,
부처님 역시 창조죈 존재일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은
왜 아직도 아무도 실행하지 않고 게십니까.
이는 불교가 증거가 없다면,
당연한 소리가 되지 않습니까.
왜 부처를 창조된 인간에게 너희는 신들이며, 라고 하신것 처럼
창조된 신으로 볼수 없다는 말씀 입니까.
이는, 논리에 맞지않는 편견입니다.
성경에서도 "너희는 신들이며,"라는 성경구절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신인데,
부처가 창조된 신이 아니다?
더군다나 부처는 증거도 없다?
무엇을 망설이십니까.
부처도 창조된 신의 자리에 놓으십시요.
중요한 성경구절은 34절 하나 뿐이지만,
문맥을 모르기에,
다른 성경구절도 함께
살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35
폐기될 수 없는 성경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이들을
신이라고 하였는데,
36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시어
이 세상에 보내신 내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다 해서,
‘당신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소.’
하고 말할 수 있느냐?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들을
하고 있지 않다면
나를 믿지 않아도 좋다.
ㅡ 요한복음 10장 34-37절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율법에 ‘내가 이르건대 너희는 신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중요한 성경구절은 단 하나,
34절입니다.
종교가 증거가 없어도 된다는 생각을
아직도 가지고 계십니까.
그런데, 오직 증거만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 하느님께서는 불교보다 훨씬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또 하나의 데이터로 비교와 분석을
이보다 더 순식간에 일어나게 해 드리겠습니다.
불교는 전세계의 1/20.
하느님께서는 전세계의 1/2.
이 상황에서 누가 지구를 창조하셨다고 믿는게,
현명하겠습니까.
진리는 이 아래줄 모두 일뿐입니다.
[하나의 신이,
전세계의 1/2인 신자수를 가지고 있다는 말은,]
[고의적으로 창조하실때
그렇게 만들 의도를 가지고,]
[지구를 만들었다는 사실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