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것이 쾌락의 증발로까지 확대되는 것은,
지혜로 바라본 적이 없는 상당한 편견으로 가득찬
즐겁지않은 천국으로 이어집니다.
결혼에는 쾌락이 왜 있습니까.
ㅁㅇ은 결혼을 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쾌락이었단 말씀입니까.
금욕도 오히려 쾌락을 증가시키는데,
큰 기여하는 것으로 드러난 이상,
"마라톤의 러너스 하이"와 같이 해본적도 없으면서
금욕을 무조건 힘들기만 한 것이다라고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금욕을 마라톤으로 비유하자면,
마라톤에 쾌락이 있을줄을 알고 있었습니까.
그런데, 마라톤에는 "러너스 하이" 라는 쾌락이
실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금욕에도 쾌락이 존재한다면,
무조건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까.
이처럼 몸의 신비는 알아가야 할 만큼,
모르는 것으로 가득하기도 합니다.
일단, 금욕을 해 보십시요.
마라톤과 같이 고통만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금욕을
해 보시라는 말씀입니다.
마라톤과 같이 고통만 있을 것이라고,
마라톤이 생각하는 방향대로 고통만 있게 흘러갔습니까?
금욕에도 그처럼 신비를 담고있는 것으로써,
항상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사실을 알고나 계셨습니까.
금욕이 오래되면, 오히려 가만히 있어도 몸이 쾌락을 갈구하므로써 쾌락의 부족으로 얻어지는 항상성으로인해, 저절로 쾌락이 몸안에서 꿈틀거리는 그리고 꿈틀거릴때마다 괘락이 느껴지는 등 우리는 우리 몸의 신비로운 쾌락의 영역까지도 느끼실수도 있는 게, 몸의 신비의 영역입니다.
성경에서도 결혼은 없다는 진리는 지혜로 바라보아야하는
성경에서도 "결혼은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ㅡ 루카 20장 35,36절
그러나, 우리가 그렇다고, 쾌락이 아예 없다고 극단적으로
단정까지 하는것은,
올바르지 않는 지극히
모순적인 논리가 되는 것입니다.
시집이나 장가들지 않아도
쾌락을 느끼는 것은
지금도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마ㅇ"
다만, 이에 반박할 수 있는 진리는 또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모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이
쾌락을 싫어한다는 소리는 못들어 보았습니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ㅡ 마태오 22장 30절
성경에서도 보신바와같이 결혼이 없다고 하시며, 천사들과 같아진다고 하십니다.
다만, 하느님의 말씀을 지혜를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성경구절을
최근 우리는 그 성경구절을 찾았을 따름입니다.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ㅡ 지혜서 7장 28절
그렇다면, 우리가 천사들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많거나,
천사를 실제로 만나서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만, 편견으로 모르면서도
천사들은 쾌락을 느끼지는 않을 거라는,
막연한 추즉에 휩싸이며, 곧바로 그렇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에 놓아야 한다고
배우지 않으셨습니까.
공자의 그 유명한 말을 모르신다는 말씀입니까.
금욕을 할 때에도 우리는
막연히 천사들에게 가졌던 편견과 같은 맥락으로,
모르면서도 미리 핀단하여 놓고서는,
금욕을 굉장히 힘들것이라고 강하게 이야기하고 또
생각도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금욕도 1년 정도를 넘어가게 되면,
"마라톤과 같은 러너스 하이" 같은 증상이 찾아온다고
경험자가 이야기 한다면, 당신은 믿겠습니까.
그래도 당신은 믿지 않는 오류를 범하고 말것이며,
공자의 철학도 쓸모없는 것으로 순식간에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처럼, 실제로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라는
틀안에 두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은
옛날에도 유명한 공자께서 하신 말씀이란 말입니다.
공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유(由)야!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주마.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이것이 아는 것이니라!」
나는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라고 줄여서 말하였지만,
이 철학은 이미 옛날에도 밝혀진 적이 있는,
공자라는 출처가 있는
유명한 말이었던 것 입니다.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에 두지 않으니,
공자의 말씀에 의하면, "이는 아는것이 아니며"
거짓정보를 가지고,
자기 논리의 뼈대를 설정하고 있다고 보아야 맞습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에 의하면,
모른다면, 모른다에 그대로 두고
그 어떠한 판단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하느님께서는 쾌락을 싫어하시지 않는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 금욕에 대해 금욕을 하고나서 나타난 정보들인,
오히려 금욕을 하게되면 무질서한 쾌락의 연속보다
인내로인한 더 질좋은 쾌락으로 개선된다는 정보들이 밝혀짐과 이미 쾌락의 최대치는 상상을 못할정도의 수치에 해당하는,
곧 성관계로 인한 쾌락의 수백배까지 도달하는게 가능하며,
ㅁㅇ에 의해 밝혀진 사실이라고 편견을 갖지 말고,
오히려 쾌락의 최대수치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라는 사실에
지혜를 가지고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장가들지 않아도,
시집가지 않아도 쾌락을 느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지혜를 가지고 바라보아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천사들이 쾌락을 느끼고 있을 수 있다는게,
충분히 가능한 존엄하시고 위대한 하느님의 창조의 능력안에
있는 가능한 일들일 뿐만 아니라,
정작 가장 중요한 본질은 우리는 모르는데도
쾌락과는 멀 것이라고 그렇다고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편견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금욕을 하면, 젊음의 유지가 가능하다"를 알게 해주신
하느님의 비밀은,
이처럼 모르는 상태에서는
우리가 감히 절대 추측조차 할수 없는 것이며, 지금도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ㅡ 지혜서 7장 28절
지혜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지혜를 가지고 바라보니,
쾌락은 결혼이 없어도 가능한 일로써
오히려 왜 결혼이 없다고,
쾌락이 왜 같이 없어져야 하는가를 역으로
다시 우리에게 묻고 있었습니다.
단지 거룩하지 않을 때에만,
쾌락에 회초리를 드시는 하느님을
우리는 편견으로 착각할수 있었으며,
또 역으로 지금까지 우리는 착각했던 것이
사실일 수가 있는데다
애꿎은 쾌락까지 몽땅 싸잡아서,
쾌락은 무조건 거룩하지 않을 것이라는
객관적이지 않고 오로지 추측성이 다분한 이유로
쾌락을 땅속 깊이 매장해 버리고서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논리는
심하면 결혼의 쾌락도 거룩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사람들은 지극히 별개의 존재인데다가,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큰 틀마저
파괴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편견에 깊이 빠져 있는 우리들 스스로가
스스로의 지혜가 없음일 수가 있습니다.
보십시요.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
거짓입니까. 사실입니까.
그러면서도, 우리는 왜 하느님을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까.
하느님께서도 인간도, 비슷하시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다시 보십시요.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
이 뜻을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쾌락을 아직도 나쁘게만 보아야 하겠습니까.
"죄중에 태어났다"는 연도책에서,
"쾌락이 죄라서 말한 것일까요" 아니면
"사람의 수명과도 직결되는 소중한 물질이 성관계 중에 나오기 때문이다"이기에, 죄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죄가 쾌락이라서 이야기 하는 것일까요.
정은 실제로 노화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로 볼 때,
다른 의미로, 정의 소모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죄 때문에 죽는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쾌락이 죄라면,
쾌락이 왜 죄가 되는지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정이나 여자의 사정시 분비물이 노화와 관련이 있다고 한의학에서만큼은 이야기 하지 않습니까.
여자는 잘 몰라도, 남녀 비슷하다는 가정에서 일부러 집어넣었습니다.
남자의 경우인, 정은 확실하게 수명과 관련된 물질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왜 결혼 속에
"죄인 쾌락"을 넣으셨는지도 세분화된 결론을
다시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다는
사실로 본다면 무조건 쾌락이 죄가 될수 있는지도,
다시 살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이 노화와 관련이 있다는 오늘날 새로 밝혀진
새로운 정보 때문에 말입니다.
쾌락을 느껴도 오로지 정만 소모하지 않는다면,
젊음이 유지된다는 새로운 정보 때문에 말입니다.
정ㅇ나 여자의 분비물이
사람의 노화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로 볼 때,
무언가 소모되는 아주 소중한 이것이,
노화와 죄에 직결되기에 연도책에 "죄중에 태어났다"는
연도의 이야기 일수도 있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내놓습니다.
그게 소중한 물질의 배출과 낭비가,
죄이기 때문에 늙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쾌락 때문에 우리몸이 늙는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새로운 정보에 대한 빠른 판단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밝혀진 사실은,
"하느님께서는 쾌락을 싫어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뜻대로 쾌락을 난잡하지 않고,
거룩하게 즐기시기를 바라십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쾌락을 즐기는게 아닌 경우에만,
죄를 논하십니다.
성매매, 자기ㅇㄹ 는 분명히 죄입니다.
결혼생활에서의 부부간의 성관계의 쾌락은
같은 쾌락이어도 전혀 죄가 되지 않습니다.
사후에 성경에서도 말씀하시기를,
시집드는 일이나 결혼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쾌락의 증발로까지 확대되는 것은,
지혜로 바라본 적이 없는 상당한 편견으로 가득찬
즐겁지않은 천국으로 이어집니다.
결혼에는 쾌락이 왜 있습니까.
ㅁㅇ은 결혼을 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쾌락이었단 말씀입니까.
금욕도 오히려 쾌락을 증가시키는데,
큰 기여하는 것으로 드러난 이상,
"마라톤의 러너스 하이"와 같이 해본적도 없으면서
금욕을 무조건 힘들기만 한 것이다라고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금욕을 마라톤으로 비유하자면,
마라톤에 쾌락이 있을줄을 알고 있었습니까.
그런데, 마라톤에는 "러너스 하이" 라는 쾌락이
실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금욕에도 쾌락이 존재한다면,
무조건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까.
이처럼 몸의 신비는 알아가야 할 만큼,
모르는 것으로 가득하기도 합니다.
일단, 금욕을 해 보십시요.
마라톤과 같이 고통만 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금욕을
해 보시라는 말씀입니다.
마라톤과 같이 고통만 있을 것이라고,
마라톤이 생각하는 방향대로 고통만 있게 흘러갔습니까?
금욕에도 그처럼 신비를 담고있는 것으로써,
항상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사실을 알고나 계셨습니까.
금욕이 오래되면, 오히려 가만히 있어도 몸이 쾌락을 갈구하므로써 쾌락의 부족으로 얻어지는 항상성으로인해, 저절로 쾌락이 몸안에서 꿈틀거리는 그리고 꿈틀거릴때마다 괘락이 느껴지는 등 우리는 우리 몸의 신비로운 쾌락의 영역까지도 느끼실수도 있는 게, 몸의 신비의 영역입니다.
한가지 밝혀진 확실한 예를들면,
금욕을 초보자단계인 1주일만 참다가 ㅅㅈ하게 되면,
쾌락의 강도는 매일매일 ㅅㅈ하던 때와는 다른,
매우 질 좋은 쾌락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이렇듯이 쾌락이 몸안에서 꿈틀거리는 그리고
그럴때마다 꿈틀거리는 쾌감이 전해져오는 신비의 영역까지
한번만이라도 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습니까?
옛날부터 성에너지는,
에너지의 크기가 매우 크고 또 단련에 중요하다고 생각하였기에,
옛부터 수련의 대상이었습니다.
성에너지가 얼마나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에,
젊음마저 유지시켜주는 좋은 역할을 한다는 말입니까.
게다가 성에네지는, 십계명 중 제6계명으로써,
"간음하지말라"에 해당됩니다.
쾌락을 참다가 참다가 또 참으니까, 항상성의 법칙에 의해,
몸안에서 쾌락이라는 벌레가 진짜로 존재하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그리고 꿈틀거릴때마다 쾌락이 전해져 오는만큼,
옛부터 왜 성에너지를 수련하였는지 깨닫게 해주기에,
금욕을 평생의 숙제로
계속 단련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젊음도 얻게 되니, 헛수고가 아닙니다.
옛부터, 성에너지는 수련의 대상이었습니다.
옛사람들이 더 똑똑하고 지혜롭기까지 한 것은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