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고(故) 이순재의 영결식이 27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엄수됐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故 이순재는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했다.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로 활동했으며, '동의보감', '목욕탕집 남자들', '허준' 등 생전 140편에 달하는 드라마에 출연했다. 박세완 엔터뉴스팀 기자 park.sewan@jtbc.co.kr
27일 오전 5시 30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1층 영결식장에서는 故이순재 영결식과 발인이 엄수됐다. 영결식 사회는 MBC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그의 사위를 연기한 정보석이 맡고, TBC 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내온 후배 김영철과 2010년 MBC '더킹 투 하츠'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하지원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영결식장에는 이른 새벽부터 정보석, 김영철, 하지원과 한국방송대중예술인단체연합회 회장을 맡은 유승봉을 비롯해 장용, 유인촌, 유동근, 정동환, 박상원, 최수종, 이원종, 정준호, 이무생, 유태웅, 정태우, 유태웅, 방송인 정준하, 장성규 등이 모였다. 고인이 생전 석좌교수를 맡았던 가천대학교 연기예술학교 제자들도 자리했다. 고인의 영정 사진 옆에는 금관문화훈장이 놓였다.
배우 고(故) 이순재의 영결식이 27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엄수됐다. 배우 정보석이 사회를 보고 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故 이순재는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했다.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로 활동했으며, '동의보감', '목욕탕집 남자들', '허준' 등 생전 140편에 달하는 드라마에 출연했다. 박세완 엔터뉴스팀 기자 park.sewan@jtbc.co.kr정보석은 애써 눈물을 참으며 차분하게 영결식을 진행했다. 그는 “선생님께서는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정치 활동을 하시며 후배들을 위해 지대한 공헌을 하셨다. 선생님의 한 걸음, 한 걸음은 후배들이 따라갈 수 있는 큰 역사였다. 항상 제일 앞에서 큰 우상으로서 마음 놓고 연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다. 앞으로도 없을 대한민국 방송 영상 예술에 있어서는 가히 개척과 너무나 큰 족적을 남기셨다. 유일무이한 국민배우가 아닐까 싶다”며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사회 정보석이 '선생님이 자랑처럼 늘 말씀하셨던 팬클럽 회장'이라 소개한 하지원은 故이순재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배우로서 연기 때문에 흔들렸던 시기 선생님께 조심스레 여쭌 적이 있었다. '선생님 연기는 왜 할수록 어려운가요?'라고 했다. 선생님께서 잠시 바라보시더니 특유의 단단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인마, 지금 나도 어렵다'고 말이다”라며 “수십년간 연기를 하시면서도 여전히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순간 솔직함과 겸손함이 제게는 어떤 말보다 위로이자 평생의 가르침이 되었다”고 추억했다.
배우 고(故) 이순재의 영결식이 27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엄수됐다. 배우 하지원이 추도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故 이순재는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했다.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로 활동했으며, '동의보감', '목욕탕집 남자들', '허준' 등 생전 140편에 달하는 드라마에 출연했다. 박세완 엔터뉴스팀 기자 park.sewan@jtbc.co.kr이어 “선생님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이실 뿐 아니라 연기 앞에서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않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길 멈추지 않았던 진정한 예술가였다. 저에게는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행동과 태도로 보여주신 가장 큰 스승이기도 하다. 선생님께 배운 마음과 자세를 앞으로 작품과 삶 속에서 꾸준히 실천해 나가겠다. 작품 앞에서는 정직하고, 사람 앞에서는 따뜻하게, 연기 앞에서는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않는, 선생님께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겠다”면서 “선생님 사랑합니다. 선생님의 영원한 팬클럽 회장 하지원”이라 추모사를 마무리할 때는 결국 오열하고 말았다.
김영철은 “어떤 하루를 없던 날로 지울 수 있다면 선생님 돌아가신 날을 잘라내고 싶다. 오늘 아침도 지우고 싶다. 거짓말 같다. 드라마 한 장면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오케이 컷' 소리에 툭툭 털고 일어나 '다들 좋았어'라고 말씀하실 것만 같다”면서 “선생님께서 어느 날 제게 말씀하셨다. '영철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게 만만치가 않다. 항상 겸손하고 진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제서야 그 울림의 깊이가 와 닿는다”고 말했다.
배우 고(故) 이순재의 영결식이 27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엄수됐다. 배우 김영철이 추도사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故 이순재는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했다.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로 활동했으며, '동의보감', '목욕탕집 남자들', '허준' 등 생전 140편에 달하는 드라마에 출연했다. 박세완 엔터뉴스팀 기자 park.sewan@jtbc.co.kr더불어 “선생님은 현장에서도 늘 흔들리지 않는 품위와 예의를 지키셨다. 그 한결같음 속에서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고 조용히 배웠다. 선생님은 따뜻하게 온 사람을 바라보셨다. 누가 힘들어 보이면 말없이 등을 두드려 주시고 말보다 행동으로 더 많은 것을 건넸다. 지금도 그런 순간들을 잊지 못한다. 미묘하지만 큰 행동이 후배들의 하루와 인생을 바꿔 놨다. 평생 보여주신 일에 대한 열정, 사람을 대하는 너그러움은 우리 모두 마음에 남아 앞으로의 길을 밝히는 기준이 될 거다”고 추모했다.
故 배우 이순재의 발인식이 2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박세완 엔터뉴스팀 기자 park.sewan@jtbc.co.kr추모사가 끝난 후에는 故이순재를 추모하는 영상이 7분가량 송출됐다. 'MBC 스페셜'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제60회 백상예술대상 특별 무대 등 고인의 인터뷰 영상들이 줄지어 나왔다. 이순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현장 곳곳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막바지에는 정보석의 주도로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국화꽃을 헌화했다. 정보석은 “선생님의 나이에 맞게 91송이 꽃이 준비됐다. 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부디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유족과 후배들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저마다 헌화와 묵례, 기도로 고인을 추모했다.
영결식 직후 가천대 제자들이 운구를 맡아 발인이 진행됐다. 유족과 후배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故이순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정보석, 정준호 등 대부분 후배가 눈물을 참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연신 눈가를 훔쳤다. 운구 차량이 장지인 이천 에덴낙원을 향해 움직이자 모든 후배는 깊이 고개를 숙이며 큰 스승을 떠나 보냈다.
故 배우 이순재의 발인식이 2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박세완 엔터뉴스팀 기자 park.sewan@jtbc.co.kr1934년 함북 회령에서 태어난 故이순재는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연기는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시작했다. 1960년 KBS 1기 탤런트 출신으로 약 140편이 넘는 드라마, 영화, 연극에 출연했다. 최근까지 다양한 무대를 누비며 지난해에만 KBS 2TV 코믹극 '개소리', 영화 '대가족',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등을 연달아 주연했다.
수상 이력은 화려했다. 1966년 제2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 1972년 제15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1973년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최우수남우상, 2019년 제39회 황금촬영상영화제, 2023년 제13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연극예술인상 연기공로상, 2024년 KBS 연기대상 등을 품에 안았다. 정부는 140여 편의 영화, 드라마, 연극에 출연하고 대학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힘쓴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26일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정치 활동도 펼쳤다. 1992년 14대 총선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 후보로 서울 중랑갑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국회의원으로서 민자당 부대변인과 한일의원연맹 간사 등을 역임했다. 1970~80년대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회장도 세 차례 역임했다. '영원한 현역'으로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지난해 말 건강 이상설에 휩싸였고, 올해 1월 KBS 연기대상 무대를 끝으로 치료에 전념하다 끝내 일어나지 못해 대중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故이순재, 후배·제자들 오열 속 영면…91송이 국화꽃 품고 하늘로(종합)
배우 고(故) 이순재의 영결식이 27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엄수됐다.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한 故 이순재는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했다.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로 활동했으며, '동의보감', '목욕탕집 남자들', '허준' 등 생전 140편에 달하는 드라마에 출연했다. 박세완 엔터뉴스팀 기자 park.sewan@jtbc.co.kr
대중문화계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국민 배우 故이순재가 영면에 들었다.27일 오전 5시 30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1층 영결식장에서는 故이순재 영결식과 발인이 엄수됐다. 영결식 사회는 MBC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그의 사위를 연기한 정보석이 맡고, TBC 시절부터 절친하게 지내온 후배 김영철과 2010년 MBC '더킹 투 하츠'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하지원이 추모사를 낭독했다.
영결식장에는 이른 새벽부터 정보석, 김영철, 하지원과 한국방송대중예술인단체연합회 회장을 맡은 유승봉을 비롯해 장용, 유인촌, 유동근, 정동환, 박상원, 최수종, 이원종, 정준호, 이무생, 유태웅, 정태우, 유태웅, 방송인 정준하, 장성규 등이 모였다. 고인이 생전 석좌교수를 맡았던 가천대학교 연기예술학교 제자들도 자리했다. 고인의 영정 사진 옆에는 금관문화훈장이 놓였다.
사회 정보석이 '선생님이 자랑처럼 늘 말씀하셨던 팬클럽 회장'이라 소개한 하지원은 故이순재와의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배우로서 연기 때문에 흔들렸던 시기 선생님께 조심스레 여쭌 적이 있었다. '선생님 연기는 왜 할수록 어려운가요?'라고 했다. 선생님께서 잠시 바라보시더니 특유의 단단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인마, 지금 나도 어렵다'고 말이다”라며 “수십년간 연기를 하시면서도 여전히 어렵다고 말씀하시는 순간 솔직함과 겸손함이 제게는 어떤 말보다 위로이자 평생의 가르침이 되었다”고 추억했다.
김영철은 “어떤 하루를 없던 날로 지울 수 있다면 선생님 돌아가신 날을 잘라내고 싶다. 오늘 아침도 지우고 싶다. 거짓말 같다. 드라마 한 장면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오케이 컷' 소리에 툭툭 털고 일어나 '다들 좋았어'라고 말씀하실 것만 같다”면서 “선생님께서 어느 날 제게 말씀하셨다. '영철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게 만만치가 않다. 항상 겸손하고 진심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제서야 그 울림의 깊이가 와 닿는다”고 말했다.
막바지에는 정보석의 주도로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국화꽃을 헌화했다. 정보석은 “선생님의 나이에 맞게 91송이 꽃이 준비됐다. 선생님께 마지막 인사를 부디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유족과 후배들뿐만 아니라 제자들도 저마다 헌화와 묵례, 기도로 고인을 추모했다.
영결식 직후 가천대 제자들이 운구를 맡아 발인이 진행됐다. 유족과 후배들은 서로를 다독이며 故이순재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정보석, 정준호 등 대부분 후배가 눈물을 참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연신 눈가를 훔쳤다. 운구 차량이 장지인 이천 에덴낙원을 향해 움직이자 모든 후배는 깊이 고개를 숙이며 큰 스승을 떠나 보냈다.
수상 이력은 화려했다. 1966년 제2회 백상예술대상 연극 부문 연기상, 1972년 제15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1973년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최우수남우상, 2019년 제39회 황금촬영상영화제, 2023년 제13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연극예술인상 연기공로상, 2024년 KBS 연기대상 등을 품에 안았다. 정부는 140여 편의 영화, 드라마, 연극에 출연하고 대학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힘쓴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난 26일 금관문화훈장(1등급)을 추서했다.
정치 활동도 펼쳤다. 1992년 14대 총선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민자당) 후보로 서울 중랑갑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후 국회의원으로서 민자당 부대변인과 한일의원연맹 간사 등을 역임했다. 1970~80년대 한국방송연기자협회 회장도 세 차례 역임했다. '영원한 현역'으로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지난해 말 건강 이상설에 휩싸였고, 올해 1월 KBS 연기대상 무대를 끝으로 치료에 전념하다 끝내 일어나지 못해 대중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유지혜 엔터뉴스팀 기자 yu.jihye1@jtbc.co.kr
사진=박세완 엔터뉴스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