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었다.그렇지 않으면 울음이 나올 것 같아 울음을 참을 때 배가 고파서 잘 안 참아진다.그래봤자 입맛이 없어서 밥 반 공기에 물을 말아서 파김치 몇 쪽과 몇 입이면 끝난 밥. 나는 엄마한테 항상 죄인이다.나와 남동생을 키우느라 이혼하지 못했다고 한다.이혼하면 학교 선생님들에게 차별받을 수도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어렸을 때 아빠는 직장을 들어갔다 하면 핑계를 대며 나왔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집 생계는 엄마가 책임졌다.아빠는 내가 중학생이 된 이후에 엄마랑 크게 싸우고 자영업을 하면서 생활비를 보냈지만 역부족이었나보다. 그 이후로 아빠와 엄마는 별거하고 살았고 아빠와는 주말마다 만나거나 몇 달에 한 번 만나는 사이가 됐다.엄마는 돈을 아껴야 한다며 집에서 나갈 땐 냉장고를 제외한 모든 콘센트를 뽑고 나가고 여름에 에어컨을 구매하지 않았고 겨울엔 보일러를 떼지 않고 단 10원이라도 아껴야 한다며 수도꼭지에서 물을 조금씩 떨어뜨려서 세탁기 물세와 전기세가 아깝다며 그걸 모아 손빨래를 했다. 회사 식당에서 이모들이랑 친해진 이후엔 식당 반찬을 싸와서 우리에게 줬고, 한번은 회사에서 잘못된 공중화장실에서 쓰는 롤 휴지가 배달 왔을 때는 그걸 집으로 가져왔다.그걸 얼마나 많이 가져왔는지 십 몇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사용한다.내가 한 번이라도 콘센트를 뽑지 않는 날엔 너가 나가서 벌어서 전기비를 갚으라고 했다. 나한테는 남동생과 사촌동생이 있는데 나랑 1살 터울이다.뭘 하던 느리면 사촌동생처럼 빨리빨리 못하고 넌 왜 이렇게 미련한 곰 마냥 느려텨졌냐고 하고, 말을 잘 못 알아들으면 넌 왜 이렇게 동생처럼 캐치를 빠르게 하지 못하냐고 핀잔을 했다.동생은 그 이후로 곧잘 날 무시하곤 했다. 그래도 동생이라 어쩔 수 없이 싸우면서 지냈다.이 때는 밤에 이불 속에서 곧잘 울곤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우는 건 지는거라고 생각이 들어 잘 울지 않게 됐다. 중학생 때 학교가 많이 멀지 않아 몰래 버스비를 용돈으로 쓰고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다녔다.하루는 친구가 넌 왜 항상 걸어다니냐고 물어봐서, 버스카드를 잃어버렸다고 했더니 엄마가 새로 안 사주냐고 놀라며 물어봤다.혼날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런걸로 혼나냐며 놀라길래 그 날 저녁 엄마에게 넌지시 버스카드를 잃어버렸는데 다시 줄 수 있겠냐고 죄송하다며 말했는데 엄마는 칠칠맞다며 걸어다니라고 했다.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땐 엄마가 찾는 것을 나보다 친구가 먼저 찾았던 적이 있다. 그러자 친구를 치켜세워주고 나한텐 캐치를 잘 하지 못한다며 핀잔을 줬다.그 이후로 어떠한 잘못을 해도 내가 해결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말을 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엄마한테 신발을 살 수 있게 만원만 받을 수 있냐고 전화했다. 그 당시 잘나가던 워커부츠였다.엄마는 니가 무슨 신발이냐며 집에 있는 걸 신으라고 뭐라고 했는데, 그 날 귀가한 엄마 손엔 새로 사왔다는 옷 몇 벌이 있었다.한 달 용돈이 만원이었는데, 그걸로 간단한 학용품 등 은 그 돈으로 사야했다. 온전한 내 용돈이 아니었다.친구들이랑 놀게 되면 난 항상 빚쟁이가 되어 명절에 받은 용돈으로 갚을 수 밖에 없었다. 성인이 되기 직전에 나는 취업을 했다. 취업을 하자마자 집에 생활비와 아빠의 자영업을 도와 달라며 월급에서 50만원을 달라고 했다. 그와 동시에 모든 공과금을 내가 내게 됐다.엄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50만원을 내면서도 고무장갑 같은 생활용품을 눈치껏 몇 개 사다 두곤 했다.그때마다 엄마는 고맙다며 사용했고 알바를 하는 동생에게 누나는 이런 것도 사오는데 넌 아무것도 안 사온다며 뭐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러더니 동생이 쇼파를 사온 날 그 잔소리가 나에게 돌아왔다. 동생은 비싼 쇼파를 샀다고 넌 아무것도 안 사온다고 잔소리를 했다.몇 년 지나 동생이 돈으로 큰 사고를 한번 쳤을 때도 죽일듯이 같이 은행에 다녀오더니 엄마는 신나하며 동생이 폰을 바꿔 줬다고 나한텐 그런 적이 없다고 하듯이 말했다.항상 서운했지만 그 땐 더 많이 서운했고 허무했다. 하루는 엄마에게 지갑 생신선물을 했는데 엄마는 지갑 선물엔 돈을 넣어줘야 한다고 해서 5만원권 한 장을 넣었다. 그랬더니 돈은 쏙 빼고 선물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몇 년 동안 쓰지 않았고 돈으로 달라고 했다. 그 이후로 선물은 하지 않고 돈만 이체한다. 이러저러한 일로 엄마랑 싸웠다. 물론 나도 잘못 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박수는 한 손으론 치기 어렵다. 그러다가 하루는 엄마랑 싸운 날 나가라고 했다. 나도 이젠 지쳤다는 생각으로 그러겠다고 했다.그래서 자취를 했더니 결혼한 동생은 엄마에게 매달 5만원씩 준다고 했다. 넌 결혼 안 했으니 10만원을 달라고 했다.싸우기 싫어서 매달 용돈처럼 줬다. 그 후 만날 때 마다 너 얼마 모았냐고 물어볼 때 너도 자취하니까 돈이 없지? 라며 내보내면 돈을 모을 줄 알았다며 착각이었다며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게 싫어서 자취하는 친구집에서 같이 살았다.그랬더니 니 나이 29살 먹고 친구집에서 지내는 건 쪽팔린 줄 알라며 다시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조금 더 버티다가 친구가 결혼하게 되었고 엄마도 계속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갔다.다시 들어올 거 뭐하러 나갔냐며 엄마가 아무리 나가라고 했어도 빌어서라도 엄마한테 있었어야 했다며 호통을 쳤다. 지금도 계약직 문제로 2달 정도 일을 쉬고 있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내 생활비로 생활하고 생활비를 주고 있음에도 엄마는 모아둔 돈이 아깝지 않냐며 너가 제일 문제라며 너가 답답하다고 빨리 아무데나 들어가서 일하라고 한다.옛날엔 엄마와 싸웠지만 지금은 싸우기 싫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둔다.나도 직장이 안 구해져 지쳐버렸다.그랬더니 너도 이제 현실을 알았냐며 왜 따지고 우기지 않느냐고 묻길래 그냥 엄마 말이 다 맞다고 해줬다. 난 이로 인해 남자친구와 상의 한 후 딩크족이 되었다.살아온 환경이 이런 환경 뿐이라 내 아이에게 엄마와 같은 상처를 준다면 큰 상처를 준 나를 원망하고 자책 할 것 같았다. 난 내가 왜 살고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삶에 회의감이 든다.밖에서 교통사고로 급사하여도 삶에 미련은 들지 않을 것 같다.난 뭘까, 잘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 되는대로 살아갈 뿐이다. 글을 쓰니 조금 후련해졌다.누가 들으면 이정도로 힘든가 싶겠지만, 사람은 원체 자신의 앞에 있는 파도가 제일 크다.이 글을 읽는 모두가 삶에서 작은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나도 작은 행복을 찾아보러 노력해야겠다.
행복
나는 엄마한테 항상 죄인이다.나와 남동생을 키우느라 이혼하지 못했다고 한다.이혼하면 학교 선생님들에게 차별받을 수도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어렸을 때 아빠는 직장을 들어갔다 하면 핑계를 대며 나왔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집 생계는 엄마가 책임졌다.아빠는 내가 중학생이 된 이후에 엄마랑 크게 싸우고 자영업을 하면서 생활비를 보냈지만 역부족이었나보다.
그 이후로 아빠와 엄마는 별거하고 살았고 아빠와는 주말마다 만나거나 몇 달에 한 번 만나는 사이가 됐다.엄마는 돈을 아껴야 한다며 집에서 나갈 땐 냉장고를 제외한 모든 콘센트를 뽑고 나가고 여름에 에어컨을 구매하지 않았고 겨울엔 보일러를 떼지 않고 단 10원이라도 아껴야 한다며 수도꼭지에서 물을 조금씩 떨어뜨려서 세탁기 물세와 전기세가 아깝다며 그걸 모아 손빨래를 했다.
회사 식당에서 이모들이랑 친해진 이후엔 식당 반찬을 싸와서 우리에게 줬고, 한번은 회사에서 잘못된 공중화장실에서 쓰는 롤 휴지가 배달 왔을 때는 그걸 집으로 가져왔다.그걸 얼마나 많이 가져왔는지 십 몇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사용한다.내가 한 번이라도 콘센트를 뽑지 않는 날엔 너가 나가서 벌어서 전기비를 갚으라고 했다.
나한테는 남동생과 사촌동생이 있는데 나랑 1살 터울이다.뭘 하던 느리면 사촌동생처럼 빨리빨리 못하고 넌 왜 이렇게 미련한 곰 마냥 느려텨졌냐고 하고, 말을 잘 못 알아들으면 넌 왜 이렇게 동생처럼 캐치를 빠르게 하지 못하냐고 핀잔을 했다.동생은 그 이후로 곧잘 날 무시하곤 했다. 그래도 동생이라 어쩔 수 없이 싸우면서 지냈다.이 때는 밤에 이불 속에서 곧잘 울곤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우는 건 지는거라고 생각이 들어 잘 울지 않게 됐다.
중학생 때 학교가 많이 멀지 않아 몰래 버스비를 용돈으로 쓰고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다녔다.하루는 친구가 넌 왜 항상 걸어다니냐고 물어봐서, 버스카드를 잃어버렸다고 했더니 엄마가 새로 안 사주냐고 놀라며 물어봤다.혼날 것 같다고 했더니 그런걸로 혼나냐며 놀라길래 그 날 저녁 엄마에게 넌지시 버스카드를 잃어버렸는데 다시 줄 수 있겠냐고 죄송하다며 말했는데 엄마는 칠칠맞다며 걸어다니라고 했다.친구가 집에 놀러 왔을 땐 엄마가 찾는 것을 나보다 친구가 먼저 찾았던 적이 있다. 그러자 친구를 치켜세워주고 나한텐 캐치를 잘 하지 못한다며 핀잔을 줬다.그 이후로 어떠한 잘못을 해도 내가 해결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말을 하지 않았다.
고등학생 때는 엄마한테 신발을 살 수 있게 만원만 받을 수 있냐고 전화했다. 그 당시 잘나가던 워커부츠였다.엄마는 니가 무슨 신발이냐며 집에 있는 걸 신으라고 뭐라고 했는데, 그 날 귀가한 엄마 손엔 새로 사왔다는 옷 몇 벌이 있었다.한 달 용돈이 만원이었는데, 그걸로 간단한 학용품 등 은 그 돈으로 사야했다. 온전한 내 용돈이 아니었다.친구들이랑 놀게 되면 난 항상 빚쟁이가 되어 명절에 받은 용돈으로 갚을 수 밖에 없었다.
성인이 되기 직전에 나는 취업을 했다. 취업을 하자마자 집에 생활비와 아빠의 자영업을 도와 달라며 월급에서 50만원을 달라고 했다. 그와 동시에 모든 공과금을 내가 내게 됐다.엄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50만원을 내면서도 고무장갑 같은 생활용품을 눈치껏 몇 개 사다 두곤 했다.그때마다 엄마는 고맙다며 사용했고 알바를 하는 동생에게 누나는 이런 것도 사오는데 넌 아무것도 안 사온다며 뭐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러더니 동생이 쇼파를 사온 날 그 잔소리가 나에게 돌아왔다. 동생은 비싼 쇼파를 샀다고 넌 아무것도 안 사온다고 잔소리를 했다.몇 년 지나 동생이 돈으로 큰 사고를 한번 쳤을 때도 죽일듯이 같이 은행에 다녀오더니 엄마는 신나하며 동생이 폰을 바꿔 줬다고 나한텐 그런 적이 없다고 하듯이 말했다.항상 서운했지만 그 땐 더 많이 서운했고 허무했다.
하루는 엄마에게 지갑 생신선물을 했는데 엄마는 지갑 선물엔 돈을 넣어줘야 한다고 해서 5만원권 한 장을 넣었다. 그랬더니 돈은 쏙 빼고 선물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몇 년 동안 쓰지 않았고 돈으로 달라고 했다. 그 이후로 선물은 하지 않고 돈만 이체한다.
이러저러한 일로 엄마랑 싸웠다. 물론 나도 잘못 한 게 있다고 생각한다. 박수는 한 손으론 치기 어렵다. 그러다가 하루는 엄마랑 싸운 날 나가라고 했다. 나도 이젠 지쳤다는 생각으로 그러겠다고 했다.그래서 자취를 했더니 결혼한 동생은 엄마에게 매달 5만원씩 준다고 했다. 넌 결혼 안 했으니 10만원을 달라고 했다.싸우기 싫어서 매달 용돈처럼 줬다. 그 후 만날 때 마다 너 얼마 모았냐고 물어볼 때 너도 자취하니까 돈이 없지? 라며 내보내면 돈을 모을 줄 알았다며 착각이었다며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게 싫어서 자취하는 친구집에서 같이 살았다.그랬더니 니 나이 29살 먹고 친구집에서 지내는 건 쪽팔린 줄 알라며 다시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조금 더 버티다가 친구가 결혼하게 되었고 엄마도 계속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갔다.다시 들어올 거 뭐하러 나갔냐며 엄마가 아무리 나가라고 했어도 빌어서라도 엄마한테 있었어야 했다며 호통을 쳤다.
지금도 계약직 문제로 2달 정도 일을 쉬고 있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내 생활비로 생활하고 생활비를 주고 있음에도 엄마는 모아둔 돈이 아깝지 않냐며 너가 제일 문제라며 너가 답답하다고 빨리 아무데나 들어가서 일하라고 한다.옛날엔 엄마와 싸웠지만 지금은 싸우기 싫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둔다.나도 직장이 안 구해져 지쳐버렸다.그랬더니 너도 이제 현실을 알았냐며 왜 따지고 우기지 않느냐고 묻길래 그냥 엄마 말이 다 맞다고 해줬다.
난 이로 인해 남자친구와 상의 한 후 딩크족이 되었다.살아온 환경이 이런 환경 뿐이라 내 아이에게 엄마와 같은 상처를 준다면 큰 상처를 준 나를 원망하고 자책 할 것 같았다.
난 내가 왜 살고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삶에 회의감이 든다.밖에서 교통사고로 급사하여도 삶에 미련은 들지 않을 것 같다.난 뭘까, 잘 모르겠다. 그저 하루하루 되는대로 살아갈 뿐이다.
글을 쓰니 조금 후련해졌다.누가 들으면 이정도로 힘든가 싶겠지만, 사람은 원체 자신의 앞에 있는 파도가 제일 크다.이 글을 읽는 모두가 삶에서 작은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다.나도 작은 행복을 찾아보러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