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지은이:개장수 나는 1995년 4월 24일 방배동의 어느 한 병원에서1남4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사랑 많이 받고 자랐겠어요”라고 말이다 이말이 지겨울만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지금 내 머릿속에 어린시절은 단지 아침에 아버지가 주고가는 천원짜리 한장을 들고 비디오방에가서 비디오를 빌려 하루종일 그 한 개의 비디오를 돌려보는 것이였다 나는 혼자 자랐다고 생각한다 그런만큼 애정결핍도 크다는걸 나는 알고 살아왔다 그렇기에 상대방에게 사랑을 갈구했고 그거에 지쳐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지만 그사람들이 정말 대단했고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살면서 가장많이 들은 말이 뭐에요? 라고 물어보면 딱한가지 말이 떠오른다 “안돼” “안돼” “안돼” 이 말이 주위를 맴돈다 컴퓨터도 안돼 만화책도 안돼 가수도 안돼 운동선수도 안돼 공부만 해야했다 물론 그마저도 나는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중학교 1학년때 까지만 해도 모범생까지는 아니였지만공부도 곧 잘하고 학교도 잘 다니는 그래도 말을 잘 듣는편인 아이 였던걸로 기억한다 내가 삐뚤어 졌던건 중학교 1학년 2학기 쯔음 이였던거 같다 셋째누나가 결혼을 하고 우리집에 같이 살았다 그래서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사춘기가 오고있었더라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컴퓨터도 맘대로 할 수 없었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건 하나도 없었다 비록 반항과 방황뿐이였다 누나들과 사이가 안좋아졌고 1년 정도를 그렇게 살았던거 같다 2학년 마지막 겨울방학쯤 나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누나들과 싸움이 났었다 보고있던 큰매형과 셋째매형은 와서 나를 때렸다 밟았다 아버지한테도 그렇게 맞아본적 없던 나는 그렇게 맞았다 그리고 주위사람들은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나란 존재는 없어졌다 내가 죽었던건 그때였을까? 우울증이 왜 생겼냐는 말을 들으면 나는 항상 이 얘기를 꺼낸다 그럴 때마다 반응은 두가지로 나뉜다 “맞을 짓을 했겠지”“아무리 그래도 애를 왜때려” 라는 두가지 반응이 나온다 전자 반응을 처음 들었을땐 속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맞는 소리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일 뒤로 나는 몸이 아픈게 아니라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던거 같다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었다 의지할 사람마저도 없었다내가 왜 태어났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을 했고 그렇게 아파하던 나는 네이버 지식인에 죽으려고 한다는 글을 올린적이 있다 그냥 단지 그내용 뿐이였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살으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얼마있다 알림이 와있었다 지식인에 답글이 달린 것이다 무슨일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들어줄테니 밥 한끼먹자는 내용이였다 장기매매 같았다 하지만무슨 용기였을까 쫄렸지만 어차피 죽을건데 뭐 어떨까싶어서 그분에게 동네를 알려주었고 몇일있다 동네에서 만났다 30대 중 후반 정도 돼보이시던 조금 외소한 남자분이셨다 처음 보는 그분을 만나 함께 샤브샤브를 먹었다 단지 내 기억은 이것이 끝이다 조금 무서웠지만 그분은 밥을 사주고 카페에 갔다가 돌아가셨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그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가끔 생각해보면 한 번 뵙고 싶기도 한다 그 이후 중학교 3학년 새학기가 시작 될 쯔음에 자살기도를 준비했다 하나씩 마음을 내려놓고 죽기위해 약국을 돌아다니며 수면유도제를 90알 정도를 구했다 그땐 몰랐다 수면 유도제는 배가 터질때 까지 먹어도 죽지않는다고 한다 그때 유행하던 싸이월드에 마지막 글을 올렸다 내 비록 이렇게 가지만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그런 내용이였다 그 글을 올리고 피시방에서 한창 게임을 하고있는데방송부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하다면 친한 하지만 학교에서만 만나는 그런 친구였다 내 그 글을 보고 걱정이 되었나보다 하지만 귀찮은 마음에 받지 않았고얼마 지나지않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궁금한걸 참지 못하는 나는 전화를 받았고 그 전화는 경찰서의 여경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무슨 일인지 들어보니 그 방송부 친구가 내가 이상한 글을 올렸다고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한것이였다 신고가 접수 되었으니 경찰서로 와야 한다고 했다 피시방에 앉아있던나는 경찰서로 발걸음을 옮겼다 살면서 경찰서는 처음 가봤던거 같다 어떤 마음으로 거길 갔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황당한 마음과 ‘여경이면 영화처럼 예쁜 분일까?‘ 라는생각을 하며 갔더거 같다무슨 부서로 오래서 갔더니 그친구와 여경분이 같이 계셨다 그 친구는 학원에 있다가 내 글을 보고 바로 경찰서로 달려와 신고를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고마웠던 친구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귀찮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거 같다 그냥 죽게 냅두지 라는 생각 뿐이였다 신고가 접수되어서 부모님 연락처를 알려줘야 한다고 해서 실랑이를 좀 벌이다 결국 막내누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막내누나가 도착하고 친구는 다시 학원으로 돌아갔다 나와 누나는 경찰서에서 금방 나왔고 누나는 나에게 얘기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카페에 갔다 누나는 내게 말했다 게임중독 같으니 병원에 입원하자는 말을 나에게 했다 나는 동의하지 못했다 내가 게임을 하는것은 게임이 좋아서 하는게 아닌 같이 하는 사람들과의 친목이 좋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나는 애정결핍을 달고 살아왔고 다른사람들의 친절이나 사랑에 목말라 있었기에 그 사람들과 친해지며 혼자서 애정결핍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였다 지금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렇기에 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보낼 수 있다는거에 목을 매달며 버텨왔던 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누나의 말에 동의하지 못했고 부정했다 그러자 내가 옷장 안에 꼭 꼭 숨겨놨던 수면유도제를 어떻게 찾았는지 몇 박스를 내앞에 내놓았다 나는 당황했고 내 주머니에 꾸역꾸역 다시 넣었다 누나는 다시 줘 보라며 몇 알을 가져갔고 나머지는 다시 챙겨서 나는 피시방 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도 게임 길드원들과 게임을 한 후 나는 마지막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누나는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엄마는 방에서 주무시는 듯 했다 나는 나머지 남았던 수면유도제 74알을 몰래 화장실에 가져가 입에 털어 넣었다 그때 무슨 생각을 나는 하고 있었을까 삶에 미련이 없었기에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던거 같다 다만 이제 눈을 뜨면 다른세상에 가 있길 바랬을뿐나는 오사쯔를 못먹는다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먹었던게 오사쯔라 그때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잠이 들었고 얼마 지나지않아 심장이 아파서 깨고말았다고통을 호소했고 누나의 질문에 나는 약을 먹었다고 말했다 구급차를 불렀고 엄마와 누나는 내 옆에 서있었다 너무 아파서 죽을거 같은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구급차는 생각보다 빨리 오지 않았다 체감 30분은 기다린 느낌이였다 구급차가 도착했고 나는 안도했는지 잠이드려고하자구급대원은 나를 발로차며 자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때 내가 정신이 있었다면 구급대원 마저 나를 병신으로 생각 하나 라는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처음 타보는 응급차는 매우 덜컹거렸고 그거때문에 쉽사리 잠들기도 어려웠었다 기억도 안나지만 어느병원에 도착했었고 거기서 위세척을 받은뒤 병실에 자리가없어 중대병원으로 이송되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눈을 떳을때 난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생과 사가 오가는곳 거기에서 난 5일이라는 시간을 보냈다간수치가 떨어질때 까지 말이다 중환자실 안에도 밀폐된 공간은 아니지만 1인으로 떨어진 곳에서나 혼자 지냈고 거기서 유일한 낙은 라디오를 듣는것이였다 잘때 빼고는 라디오를 틀고 있었고간호사누나가 주신 간식 몇개에 정말 행복했었다 그때는 초코칩쿠키가 왜이렇게 맛있었던지 지금도 가끔 그때 생각이 나면 사먹고는 한다 내가 자는사이에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였고 그 소란에도 나는 잠을 잘 잤던걸로 기억한다 중환자실에는 화장실이 없다 그래서 배가아프면 침대위에 간이 변기와 기저귀같은걸 깔아준다 그럼 침대위에서 쪼그려 싼뒤 뒷처리를 하면 간호사분들이 치워주신다 한번 겪고나서 나는 계속 화장실을 참았던 기억이 있다화장실 병균 때문인지 중환자실에 있는 사람이 화장실을 갈 일이 없어서 인지 둘다 인거같기도하다 이제 간수치가 막 되돌아 와서 일반병실로 옮긴다는 말에 아쉽움반 설램 반이였다 간호사가 링거에 주사를 놓았고 나는잠들었다 눈을 떳을땐 정신병동 안이였다 정신병원에 입원을 한다는 것 처음에는 절망이였다 세상과 단절된곳 여기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상한 사람같았고 모든것이 낯 선 공간이였다하지만 지금 내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꼽으라면 그 정신병원 생활을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달 가량 병원에서 지냈고 그것마저도 내가 퇴원하고 싶지않아 의사선생님의 계획보다 늦게 퇴원을 한것이였다 거기서 만난 형들 누나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 이였다 물론 정말 정신병자라 들어와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단지 우울증 때문에 들어와 있는 환자가 많았기에 우리는 우리를 의지하며 지냈던거 같다 하루를 하루종일 같이 보낸다는 것 안들래야 안들 수 없는 정이 들었던 그날들을 생각하면 가끔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 병동에서 나의 별명은 꼬마 신랑이였는데그 이유는 골프선수였다가 희귀병 때문에 선수생활을 못하게되어 알콜중독에 걸렸던 한 누나가 그렇게 불러줬기 때문이다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매일 있는 여러 가지 치료 수업을 들었으며 하루하루가 정말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탁구도 배워보고 그림도 그리고 심지어 노래를 하는시간도 있었으며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냈고내 16살의 생일도 여기에서 보냈었다 가끔 실습오는 의대생들과 간호학과 학생들과도 매일 헤어지는 시간이아쉽고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나중에는 몰래 서로 연락처를 교환할 정도로 친하게 지냈었다 하지만 그 연락처들이 적혀있던 수첩은 내가 퇴원하던날 없어졌다 아무래도 알고있던 간호사분들이 몰래 가져간거 같았다 그때는 참 섭섭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거 같기도하다 어차피 나와서 연락은 시들시들 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병원에 입원한지 2주쯤 되었을때 내또래 여자아이가 들어왔다그아이는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무서웠다 얼음공주가 있다면 그런 느낌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처음 들어온 그날 그 여자애는 의자에 앉아서 울었다 흐느껴 펑펑 울었다 나와 골프선수 누나는 그 아이를 사이에 두고 앉아 휴지를 주며 위로해 주었다 나중에 얘기들어보니 그 여자애는 내가 너무 싫었다고 한다 그런데 위로해주는거 보고 마음이 좀 열렸었다나 뭐래나 그 여자애는 날 좋아했었다 병원에 나와서도 연락을 했었고 잠깐 사귀었었지만 내가 상황이 상환인지라 연락이 두절 되었었는데 그렇게 의도치않게 이별잠수를 시전 했었다 보라색을 좋아하던 그 여자아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중에 싸이월드에 들어가 연락을 취했지만“꺼져” 라는 말 뿐이였다 하루는 병동에서 개인 면담?상담?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사회복지사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는 시간에 선생님이 한마디 하셨었다무슨말인지 기억은 안난다 하지만 정말 아무말 아니였던그냥 나를 불렀던거 같은데 나는 펑펑울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이유없이 계속 펑펑 울었고 도저히 면담이 불가능 하자 수면제를 먹여 나를 재우셨다 뭐가 그리 서글펐을까 그나이에 그렇게 울 일이 뭐가 있었을까 나의 사춘기에게 미안하다 그렇게 한달이라는 시간을 정신병원에서 지내고 나왔고 그렇게 달라질거 없는 내인생은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왔을 뿐이였다한가지 달라진점이 있다면 학교에가지않아도 수업시간에 잠을 자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선생님들도 내버려 두셨다 입원을 하기 전 2학년때 인가 잘 기억이 나지않는데 재밌는 일이 있었다 그때 영어선생님이 새로 오셨는데 이제막 시험에 합격해서 첫학교를 배정되어 오신 여성 선생님이였다 그 선생님의 나이는 25살이고 그때는 참 어려운 어른 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도 때뭍지않은 어린 나이였구나하고 생각이든다 그 선생님과 어떻게 된건진 모르겠지만 어쩌다 친해졌었다 얼굴도 예쁘고 모두가 좋아하는 선생님이였다 자기가 맨날 신민아랬다지금은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선생님과 함께 밤에 만나 술집에가서 술도 마셨었고 그렇게 친해져 잘 지냈었다 철이 없던 나는 교무실까지 찾아가 선생님을 귀찮게 했었는데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얼마나 난처했을까 생각이 들기도한다갑자기지만 뜬금 없는 소리지만 나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때까지 반장 부반장을 놓친적이 없었다내가 반장이였고 부반장이 있었는데 남자 부반장이 그 영어선생님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친하게 지내는게 아니꼬아 내 뒷담을 그렇게 까고 다녔다고 한다 그와 같이다니던 무리중 한명이 나와 베프가되어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사이가 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이야기다그때 쯤 인터넷으로 알게 된 노래하는 크루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크루라고 하기엔 3~4명밖에 없는 모임이긴 했다그때는 변성기가 오기 전이였는지 높은음도 잘 올라가고 노래를 조금 했었다 그 크루에서 사랑받기위해 최선을 다했고 경희대를 다니던 크루장 인 형에게 돈을주고 영어과외를 받기도 했다그때 나는 그 형에게 애정결핍을 채우려고 했었고 과외랍시고 두번정도 만나서 수다떨던게 다였다나는 영어선생님에게 그 형을 소개팅 겸 소개를 시켜줬고 우리는 두,세번 술을 같이 마셨었다 그 형이 영어선생님에게 처음 본날 사귀자고 했다고 한다 자기는 오래보고 사귀는 성격이라고 처음본날 우리 앞에서 얘기를 해놓고 말이다 그말을 듣고 좀 짜증이 났던거 보면 나도 그 영어선생님을 좋아했던거 같다그렇게 짧은 시간을 셋이서 보냈고 얼마 않있다 관계는 흐지부지 되었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그 형은 엄마에게 과외비를 선불로 2달치를 땡겨갔었다고 한다 정말 나중에 들은 소리라 참 씁쓸하기도 했다그렇게 이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리고 병원에 다녀왔고 병원에서 나오면서 친해진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날라리는 아니고 그냥 철이 없는 아이였는데 어쩌다 친해졌는지도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우리는 서울사람 이였고 그 여자애는 인천에 한 남자아이와 연애를 하는 사이였다그래서 그 무리와 우리 무리는 정말 친하게 지냈다 학교가 끝나면 그 시간에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제물포 역까지 친구들을 보러 매일 갔으며 그 친구들도 가끔 우리동네로 오곤 했다서로 있는 돈 한푼 두푼 모아 노래방도 갔고 제물포역 지하에 바우바우라는 분식집에가서 떡볶이 하나 탕수육 하나를 시켜서 나눠먹었다 그렇게 매일을 보았다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다우리는 노래방가서 안재욱의 친구라는 노래를 부르며눈물바다가 된적도 있다 정말 평생 볼줄 알았던 친구들이였다중학교 졸업 할때까지 그렇게 매일 보며 친하게 지냈었고 나는 그 친구들에게 정을 너무줘서 또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다그때즘 여자아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나서 헤어지게 되었고 우리는 고등학교에 가며 서로 연락도 끊어지며 그렇게 즐거웠던 근 1년의 시간이 끝이 났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고 고등학교 가면서부터 공부가 하고 싶었던 나는 고등학교 선택제로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열심히 다니려던 마음도 찰나 이미 망가져버린 내 생활패턴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였고 지각을 밥먹듯이 하고 학교에서는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어 한달정도 다닌뒤 결국 자퇴를 하게되었었다 그렇게 아무 의미 없이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었다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갑자기 엄마가 짐을 챙기라고 했다나는 직감적으로 느꼈었다 엄마가 나를 다시 정신병원에 넣는다는 것을하지만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갔다 정신병원에서의 기억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병원에 도착했고 진료가 끝난후 성인 남자 두명에게 잡혀 무슨 감옥 들어가듯이 두개의 철창을 넘어 병실에 들어가게 되었다그날은 괜찮았다 들어가서 2~3일 저도는 잠만 잤던거 같다하지만 내가 기억하던 병원이 아니였다 지옥이였다 바닦은 더럽고 밥은 맛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할 만한게 없었다 거기 간호조무사 아저씨들은 우리를 벌래보듯이 하고 슬리퍼를 신고다녔는데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에도 밖에서 신던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화장실도 말이다너무 최악이였다 입원을 하고 한 일주일동안 담배를 피는 꿈만 꾸었었다 무었보다도 처음엔 그게 제일 힘들었던거 같다거기에도 내또래 아이들이 있었고 층이 나뉘어 밑에층은 여자들이 쓰는곳 위에층은 남자들이 쓰는곳 으로나뉘어 있었는데 서로 마주칠일은 별로 없었다일주일에 한번정도 프로그램 하는날만 잠깐 모였었던거같다거기에는 동갑친구가 두명이나 있었다 한명은 부모님 말을 안들어서 들어왔었고 한명은 차량 털이를 하다 보호관찰? 로 들어왔다고 했던거 같다 그나마 친구들이 있어서 얘기는 많이 나눴지만 마음이 그렇게 가지는 않았었다 이곳이 너무 싫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여자아이들과 일주일에한번 만나는 날이 있었다청소년끼리 모여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였는데 한 여자이가 우울증에 걸렸던 이유가 나는 기억에 남는다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갔는데 집에 돌아가는 길 에 그 친구 집에 불이나서 죽었다고 한다 그 일에 죄책감이 생겨 우울증이 생겼다고 한다 자기가 조금만 더 같이 있었으면 살릴 수 있었다고 믿는 아이였다 동갑인가 한살 누나였나 그랬던거 같다 그여자아이는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다 보니 친구가 소중했었나보다나는 이해가 안되는 일이지만 위로해 주었다 그게 어떻게 네 탓이나며 말이다 웃기지 않는가 내자신도 우울증을 내탓을 하면서 다른사람에게는 위로를 전하고 있는게 말이다 그 아이와 친해졌었다 아니 그냥 마음이 쓰였었다 밥을 먹으려면 옥상으로 가야했는데 아까 말했듯이 2층이 여자 병동 3층이 남자 병동 4층이 식당 이였다 여자들은 밥을먹으려면 3층 남자병동을 지나 4층 식당으로 가야했고 그 지나가는 시간에 잠깐 잠깐 잠깐 인사를 나누었다 어느날 그 아이가 나에게 구겨진 쪽지를 던져주었다 거기에는 번호가 써 있었고 나가면 연락 하자는 내용이였다 나는 그 쪽지를 소중하게 갖고 있었다 이런재미도 있었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지옥이였고 감옥이였다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었고 참다참던 나는 샴푸를 먹었다 그렇게라도 병원을 나가고싶어서 말이다 친구들 앞에서 샴푸를 입에 짜서 4~5번 먹었었고 그 밤에 응급실에 실려간 것도 아닌 조무사 아저씨랑 걸어서 병원에 갔었다 응급처치를 받고 다시 병원에 돌아왔었고 달라질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미련하게 샴푸를 또 먹었고 그때는 격리를 당했었다 그 이후로 꽤 오랫동안 머리감는게 힘들었다 샴푸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꾸역 꾸역 버티다 외출을 하루 받았었다 집에 왔었고 나는 그날 도망쳐서 부산에 있는 큰누나네로 도망을 갔다 아무리 싫어도 갈 곳이 거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사실 무서웠다 누나가 다시 병원에 넣지 않을까무서웠다 하지만 별일 없었고 그렇게 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날 큰누나와 아빠는 통화를 했는데 아빠가 우는걸 처음 봤다고 한다 부산에 있다 집으로 와서 짐 정리를 하는데 분명히 챙겼던 그 번호가 적혀진 쪽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흘린거 같았다 속상하긴 했지만 그 아이를 신경 쓰기엔 내 자신도 힘들었기에 대수롭지않게 넘겼다 그렇게 두번째 정신 병원의 기억은 여기서 끝이다 그리고 또 아무의미 없이 한 해가 지났다 18살이 되었고 고등학교에 1학년으로 다시 복학 하게 되었다 공부가 하고싶었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버린 나의 진도는 아무것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이미 뇌가 굳어버린 기분이였다 수학은 아예 손도 댈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학교생활은 재밌었다 우리반은 또라이들의 집합소 같았다 그 우두머리 중에 하나는 나였고 정말 철없이 놀며 지냈었다복학생같지 않게 그 한살 어린 동생들과 친구가 되어서 말이다 창피한 얘기지만 천천히 지나가는 수박 트럭에 수박도 서리해서 먹어보고 (내가 한 건 아니지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맥도날드에 가서 12만원어치 감자튀김을 시켜먹기도 했다우리때문에 감자튀김이 털려서 한시간동안 셋트메뉴를 못 팔았다고 한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 막 중간고사가 끝나고 사건이 터졌었다 복학생에 공부도 못하고 담배나 펴대며 학교를 다니던 나를 담임선생님은 싫어 하셨다 물론 당연히 그럴만도 하다하지만 쉬는시간 아이들이 뒤에서 장난치는걸 보고있던 나의 머리위로 책이 내리쳐졌다 담임이였다 그냥 가만히 보고 있던 나 에게 책을 휘두른 것이였다 화가 났고 어차피 이동수업이라 반을 옮겨야했기에 문을 박차고 이동을 했었다 이런일이 몇번 있었고 분노조절이 불가능했던 나는 결국 또 자퇴의 길에 들어섰다이런일을 엄마게 말한적이 있었고 엄마는 사립학교라그런지담임선생님에게 책이라도 드려야되는지 고민을 하셨다 자퇴를 하며 친구들과 멀어졌고 나는 원상복귀 되었다 그렇게 또 하루하루를 의미없이 살았다 성인이 될때까지도 성인이 되어서도 20살 때 인터넷으로 알게된 친구들과 친해져 방탄하게 놀았다 그때는 정말 미친 듯이 놀았다 금,토,일은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으며 웃는일 도 많고 우는일 도 많았던 날들을 보내왔다 그때는 술도안마시면서 뭐 그리재밌게 놀았는지 참 신기하다그러다 자존감이란 가지고 있지 않던 나에게 심한 여드름들이 올라왔고 피부까지 망가져버린 못생긴 나는 점점 움츠려 들었으며 인생의 나락을 느끼며 나는 점점 숨어들었다 친구들도 만나지않고 잠수를 탔으며 게임만하며 1~2년을 집과 피시방만 다니며 지냈었던거같다그렇게 24살쯤 세상에 다시나오게되었는데 배드민턴 때문이였다 어렸을때 한때는 배드민턴 선수를 꿈꾸던 나는 어떤분의 초대로 배드민턴 모임을 나가게 되었고 또 거기있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바치며 배드민턴에 목숨을 걸고 살았었다 2년정도를 배드민턴에 미쳐 살았던거 같다 그러다 그 모임에서 처음으로 미친듯이 사랑을 했던 그분을 만나게 되었다 미술학원 원장님이였던 그분과 한달이라는 짧은 연애를 했었다우리는 매주 주말만 볼 수 있었고 사랑=집착 이였던 나의 행동들에 힘들어 하던 내 첫사랑은 결국 이별을 고했고 나는 그날밤 펑펑 울며 같이 아는 지인분들에게 도와달라고 연락을 했었다얼마나 찌질했을까 하지만 그럴 겨를도 없을만큼 슬픈 일이였다 아무리 매달려도 편지를 써도 영광까지 쫒아가도 그분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분도 나의 집착을 채워주기위해 노력을 많이 해주셨기 때문이다 백수였던 나와 하루종일 일 하는 도중에도 영상통화를 해주셨고 연락은 틈틈히 언제나 해주셨다 하루 하루 매시간 나와 함께 해주었다 그러다 하루는 연락이 안되길래 잠드셨나 했는데 페이스북 메시지창에 5분전 접속이 떠있길래 눈이 뒤집혀 전화를해서 서운하다고 했더니 나에게 이별을 고하셨었다나는 왜 그랬을까 왜 그 순간을 참지 못했을까 왜나는 그를 믿지 못하고 기계를 믿었을까 물론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후회되는 일이였다 하지만 그날 내가 전화를 하지 않았어도 내가 변하지 않는 한 우리는 금방 끝날 인연이였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자살생각만 가지고 있던 나는 매마르고 시들어갔다 오죽하면 매형이 나에게 말했었다요즘 널 보면 금방 죽을 사람 같다고 했었다 그때는 별짓을 다했던거 같다 인터넷에 재결합을 검색하면서시라노연애조작단이라는 업체를 찾아서 돈을 내고 상담도 받아보았다거기에서 나의 얘기를 했고 200만원을 주면 도와준다고 했다돈만 있었다면 그런 짓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만한 돈이 없었기에 허망한 마음을 가지고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정도로 나는 피폐해졌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정말 그냥 아무한테나 연락을 한 번 했었다 도와달라고그 분은 카페에서 나를 만나 위로해 주셨고 지금색각해보면나는 그렇게라도 살고싶긴 했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살시도를 또 했었고 약을먹고 잠든 나는 눈뜨니 병원에서 위세척을 하고 있었고 다시 눈을 뜨니 집이였다 그렇게 또 살았다 끈질기게 살아졌다 그렇게 또 하루하루 죽을듯이 살다 다니던 피시방 매니저형이 알바할 생각 없냐며 나에게 물어봤다 몇일만 고민해본다 하던 나는 결국 피시방 알바를 하게 되었고 나름 할만 했었던거 같다 돈도 쏠쏠했다 야간 알바기에 일 잠 일 잠 뿐이였다 배드민턴도 못치고 그렇게 나는 그분을 조금씩 잊어갔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그때가 또 그분이 가슴아픈 추억에 남아있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나는 졸업사진을 제때 찍어본적이 없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사진 찍기 전날 가장 마음에드는 옷을 세탁기에 돌리고 있었다우리집 세탁기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 뚜껑이 없었다 오래 써서 뚜껑이 부러져 그냥 쓰고 있는 상태였고 빨래가 잘되고있나 궁금하던나는 배즙을 하나 들고 빨래를 보러갔다 그렇게 까치발을 들며 세탁기 속을 보는 순간 정말 만화처럼 배즙이 세탁기안에 빠졌다 탈수중이였지만 나는 누나에게 혼날 생각에 손을 집어넣었고 내팔에 빨래가 감겨 세탁기는 멈췄다정말 아팠다 놀래서 누나를 불렀고 누나는 달려와서 세탁기를 끄고 난후 내손을 풀어 주었다 정말 너무아팠다 잠을 못잘 정도로 하지만 아파도 응급실따위는 가지 않는 집안이였고 끙끙밤새앓다가 병원에 갔다 월요일아침이라 사람이 너무 많았다 한시간을 넘게 기다리다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를 봤는데 부러져서 뼈가 돌아갔다고했다 누나가 부러진건 아닌거같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말이다 그때부터 울음이 터졌다 너무 무섭고 더 아픈 기분이였다무슨 기계에 팔을 올려놓고 의사선생님이 힘을 주어 팔을 몇번 비틀었고 뼈는 맞쳐졌다 나는 비틀때마다 정말 아파서 소리소리를 질렀고 끝나고는 엄살이 심하다며 핍박을 받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못찍었고중학교때는 병원에있어서 못찍었다고등학교는 다니다 말았고 말이다더 어렸을때 4살5살 무렵이였던거 같다 누나가 안방겸 거실을 청소하고 있었고 거기 탁자에 있던 정확히 맥주잔 안에 귤껍질이 들어있는걸 부엌에 있는 엄마에게 갖다주라며 나에게 주었고 그걸 들고가던 나는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유리가 깨져서 발바닥 옆쪽에 박혔고 크게 찢어져 살이 튀어나왔었다 아프고 놀래서 나는 펑펑 울었고 놀란 엄마는 수건으로 내발을 감싸고 안아서 뛰쳐나갔다진짜 모르는 차를 잡아서 도와달라고 말해 그 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그뒤로 마취를 했었는지 기억은 없고 상처만 남아 있을뿐이다 그때도 병원에 입원을 했었는데 면회 올 때마다 누나들이 사오던 해피밀 장난감들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반지를 끼고자다가 긁어서 손가락이 부어오른적이 있다 그래서 동네 정형외과를 갔는데 맞는 뺀치가 없어서 응급실까지 갔었다 그 응급실에서 병원에 입원했을때 보았던 의사가 되어있는 의대생 형들을 만났었다 그들은 더 발전해 있었고 나는 멈추어 있는것도 모자라 퇴행하고 있는 기분이였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길이 얼마나 비참하던지 그때의 기억이 가끔 나긴한다. 나는 28살에 가장 많은것을 이루었다 검정고시도 합격했고 운전면허도 땄다 다른사람이 보면 별거 아니겠지만 검정고시를 보고 집에 왔던날 엄마는 잘했다며 우셨고 막내누나도 덩달아 울었다 가 채점을 해보니 수학을 100점 맞았길래 참 신기했었다 그래도 내 인생에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나는 재능이란걸 가지고 있지 않다 베테랑 개인 택시기사 아버지를 둔 나는 운전면허 도로주행에 4번째에 합격했다 나는 두 가지를 잘 못한다 하지만 엄마가 남자는 1종 이라며 1종 보통을 따게 하셨고 클러치를 잘 못다루던 나는 사실 면허를 딴 지금도 못 다룰거 같다 면허를 따고 운전할일이 없어 한달뒤면 31살이 되는 나는 3년째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다 차를 살 능력이 도 없고 운전할 자신도 없다 하지만 나이가 먹으니 차를 사는 주위사람들이 부러울 뿐이다 나는 20살까지 사는게 꿈이였다 20살이 되면 다시 자살기도를 하려고 했고 그 스무살의 추억이 좋았던걸 보니 그때 잠시 행복 했었기에 잊고 있었던거 같다 하지만 잠시 잊었을 뿐 그 기억들은 시도때도 없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래서 결심했다 30살까지만 살아보자 하지만 그 다짐도 무심하지 나는 31살을 달려가고 있었다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온다 군대를 간다는거 대수롭지 않았다 오히려 다녀오면 내가 좀 더 강해지길 바랐었다 그렇기에 군대에 가는것도 두렵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신체검사 날짜가 잡히자 두려움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신체검사를 받기위해 내가 다녔던 병원기록을 때어갔고 그 서류를 신체검사날 제출했다 중앙대병원 기록과 한참 다니다 거리가 좀 멀어 집앞에 잠시 다녔던 기록까지 제출했다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께 그 서류를 제출했고 선생님은 서류를 대충 흝어 보셨다 그러자 나에게 재검 판정을 주시면서 집앞에서 때온 서류는 알아볼 수가 없으니 중앙대병원을 계속 다니라고 하셨다 그래서 중앙대병원으로 옮겨 나는 병원을 다시 다니기 시작했고 재검날 서류를 다시 제출 하였다 선생님은 나에게 2급 판정을 내리셨다 괜찮았다 군대가 가기 싫었던건 아니니깐 그래서 아무생각 없었다 내년쯤이면 가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장이 나오자 그 생각은 달라졌다 2개월 남 짓 남지않은 시점에 영장을 받았다 나는 갑자기 두려워졌고 재검 신청을 했다 재검신청은 대구까지 가야했고 나는 서류를 준비해 대구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흔히 공익이라고 불리는 것이였다 그 뒤에 빨리 공익을 가려고 신청을 두번정도 했는데 둘다 떨어졌었다 하루라도 빨리가고 싶은 마음이였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2~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20대 중반이 된 나는 통지서를 하나 받았다 대기면제라는 통지서였다 그렇게 나는 신의 아들이 되었다 그때는 참 신이났었다 하지만 아쉽기도 했다군대에 가서 마음이 단단해져 세상을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에 갔다면 나는 이미 죽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재검을 받을 시기쯤 이였다그때 나는 롤이라는 게임에 빠져있었고 하루 종일 피시방에서 그 게임만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는 게임을 하다 동갑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 칭찬을 하다 친해졌다 같이 게임을 하고 연락처도 교환하고 지냈고 지방에 살던 그 친구들을 만나러가고 싶었지만 그때는 돈이 없어서 ktx 타는것도 무리였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대구에서 재검신청이 왔었고 그걸 빌미로 아버지에게 돈을 요구했고 대구에서 재검을 받은뒤 친구들에게 가서 그 돈으로 족발을 사줬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도 한 친구랑 특히 친하게 지냈는데 그 친구는 부모님이 없었다 한마디로 고아였고 얼마 후에는 고아원도 나가야하는 상황이였던걸로 기억한다그 친구는 소주를 참 좋아했다 술을 안좋아하던 나는 그 친구에게 같이 술을먹으며 물은적이 있다 “소주가 맛있어?” 그말에 그친구는 허탈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술이 맛있었어서 먹겠냐 안좋은 기억을 잊으려고 먹는거지” 그 답변에 나보다 그친구가 더 걱정이 되었던 순간이였다 한동안 친하게 지내던 그 친구들과도 얼마 지나지않아 내가 사는게 힘들어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렇게 서서히 멀어져갔고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인생 이란게 정답도 없고 틀린것도 없다 다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틀렸다 생각하고 절망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찌질했다 초등학교 6학년때 한 친구가 자기 따까리를 괴롭혔다고 나를 때린적이 있다 그 친구는 노는 무리에 속해 있었고 나는 무서워서 아무말 없이 맞았었다너무속상해서 점심시간에 집으로 갔고 집에간 나는 울음이 터졌다 누나들은 왜그러냐고 물어봤고 나는 상황 설명을 했다 화가 난 누나들은 학교에 찾아왔고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고있던 그 친구를 불러서 훈계를 했다 어떻게보면 화를 낸게 맞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은 커졌다 모든 사람들이 그 일을 알게 되었고 나는 집에가서 이른 찌질이가 되었다 한 여자아이는 나에게 와서 네가 너무 심했다 라는 말을 했었고 나는 내가 뭘잘못을 한지 모른채 그말에 비수가 꽃혀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담임선생님 귀에까지 들어간 그일은 우리 둘을 불러 면담을 하셨다 어떻게 할거냐고 둘이 화해를 하거나 매일 한시간씩 싸울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둘중에 하나를 택해야 했고 그 친구와 원하지 않는 화해를 했어야 했다 사과를 받지도 않고 우리는 화해를 하게 되었다 커서 생각해보니 참 씁쓸한 사건 이였다 피해자는 나였고 사과도 받지 못하고 선생님의 등초리에 화해를 해야했던 내가 안쓰러웠다 그 선생님은 막 위임한 28살의 어린 선생님 이였고 그런 선생님을 지금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그 친구와 중학교 올라가서 까지 친하게 지냈다 물론 학교에서만 이다 그 친구는 항상 거짓말을 했다 다른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거짓말들이 다 보였었다하지만 학교에서 영향력이 있던 그친구와 3년내내 같은반이 되었고 손절할 수는 없었기에 거짓말을 믿으려 노력하며 학교를 다녔던거 같다 그 친구는 노래를 참 잘했다 나는 가진것이 하나 없었기에 노래를 정말 잘하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는 그 친구가 참 부러웠었던거 같다 초등학교 5학년때의 일이다 나는 부반장이 되었고 임원수련회를 가게 된 날이였다 어느때나 바쁜 엄마는 무서운 둘째누나에게 아침에 학교 가기전에 나에게 김밥을 사주고 가라는 말을 했고 아침에 은박지에 꽁꽁 싸여 검은봉지에 들어있언 참치김밥 두줄을 나에게 주고 누나는 학교에 갔다 그 참치김밥 이 든 검은 봉지를 들고 나는 학교에 갔다 수업을 좀 들은후 점심쯤 수련회로 출발했고 수련회에 도착해서 밥을 먹는시간이 왔었다 다른 친구들은 옹기종기 모여 엄마가 예쁘게 정성스럽게 싸준 김밥 유부초밥 볶음밥 등이 들어있는 도시락을 꺼내 먹었고 임원중에 별로 친한 친구가 없었던 나는 혼자 멀리 앉아 검은 봉지 속 은박지를 열자 그 참치김밥이 반은 뭉개져 먹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있는걸 보고울어버렸다 우는게 창피해 다른친구들에게 들킬까봐 멀찌감치 떨어져 눈물을 흘리며 배고픔에 눈물 젖은 참치김밥을 삼켜냈다 외로웠다 항상 그랬듯이 외로워했다초등학교 2학년 때 쯤인가 운동회를 하는 날이였다 그날 무슨 일인지 나는 혼자였다 부모님도 누나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 많은 인파중에 나의 가족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집이 가까워서 점심먹을 시간에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가란 엄마의 말만 기억이난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집에가서 밥을 먹었고 나는 다시 학교로 와서 운동회를 이어갔었다 외로웠다 그 행복해보이는 가정들 속에 나는 나는 정말 혼자였다 항상 그랬었다 외로움을 생각하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많지는 않다 항상 외로웠기 때문에 너무 많은 기억이 과부화 되지 않았을까 싶다 중학교 졸업식 날이였다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나는 졸업식에 올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졸업식을 진행하고 있었고 교실뒤에는 나이든 엄마가 혼자 꽃다발을 들고 와 계셨다 그때는 말은 못했지만 기뻤다 나이든 엄마가 학교에 오는걸 창피해했던 나는 그날 처음으로 엄마가 반가웠다 눈물이 났지만 꾹 참았다 그만은 인파속에서 울 수는 없었기에 초라한 내가 더 초라해 지고 싶지 않았기에 그날 나는 엄마와 사진한장을 찍었다 그사진이 아직도 기억이난다 빨간 노스페이스패딩을 입고 꽃다발을 들고 엄마옆에서서 찍었던 그 사진을 말이다 하지만 그 사진은 이 세상에 없다 그 사진이 있던 핸드폰을 어느날 내가 부숴버렸기 때문이다참 후회가 되는 일이다 살면서 나는 자전거를 참 많이 잃어버렸다 어쩌다 잃어버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던 내 자전거는 반으로 접혀 어느 전봇대 옆에 버려져 있었다 그 자전거는 나의 첫 자전거였고 네발자전거 였던 것을 아버지가 뒷바퀴를 빼 두발 자전거로 만들어 주셨던 소중한 자전거였다 두발자전거를 처음 타게 되던날 나는 아버지와 학교에서 자전거를 탔다 정말 기분이 좋았지만 두발자전거가 서툴던 나는 결국 화단에 빠져 바퀴가 찢어지고 말았었다 요즘은 보기힘든 자전거 집에가서 바퀴를 갈아주셨고 그날의 기억은 아버지와의 행복했던 마지막 기억이였다 초등학교 1학년때 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비오는날 먼지나듯이 맞은 적이 있다 아버지는 택시를 하셔서 돈가방을 들고 다니셨는데 그 돈가방을 항상 옷장 맨밑에 넣어놓으셨다 나는 그 돈가방에 손을 댔었고 친구들에게 맛있는걸 사주면서 몇일을 보냈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돈이 없어지는걸 느끼셨고 점점 대담해져 빼가는 돈이 늘어가던 찰나 아버지에게 걸리고 말았다 나는 그때 왜 그게 나쁜짓이라고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나는 아버지에게 비오는날 먼지 나듯이 맞았고 그게 아버지가 나를 때렸던 첫 기억이다 내가 담배를 처음 입에 대본건 6~7살때 쯤이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던날 시골에서 사촌형이 할아버지의 담배를 몰래 빼와서 나에게 한번 해보라고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배를 입에 대봤고 입에넣다 빼는것이 아닌 빨아야 한다고 친절히 알려주었고 처음 담배를 빨아보았던 나는 기침을 엄청 했다 그걸 보며 웃었던 사촌형이 기억이난다 그형도 9살인가 그랬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담배가 나쁜 것 인지 몰랐다 아버지 택시와이셔츠 앞 주머니에는 항상 담배가 있었고 그게 나쁜 것인지 몰랐던 나는 한가치를 빼서 가지고있다 아버지 친구가 놀러왔을 때 옆에서 담배를 같이 핀 적이 있다 그때 그 아저씨은 나에게 화를내며 혼을 내셨고 그때야 담배가 나쁜 것임을 알게 되었었다 8살때 큰누나가 큰 매형을 집에 데리고 왔다 결혼을 하기로 한것이였다 그날 나는 매형이 마음에 안들었다 그래서 매형 앞에서 꼬장을 부렸고 결국 참지 못한 누나들은 나를 작은방에 가뒀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였던 걸 알았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큰누나를 그 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왜 그랬는지 나도 참 궁금하다 그렇게 8살때 첫 조카가 생겼고 나는 조카를 좋아하면서도 질투에 살았었다 엄마가 신생아였던 조카에게 이불을 사주셨었는데 나도 없던 이불을 조카에게만 사줘서 질투가 났었다 나는 갖지 못했던 것을 큰 조카는 하나씩 가지고 있었고 그래도 조카를 정말 이뻐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부러움과 시기 질투가 자랐던거 같다 지금은 그 조카가 나도 안다녀온 군대를 다녀왔고 대학에 다니고 있다 나는 조카들을 안 좋아한다 부모님에게 마저 정이 없는 내가 조카들을 좋아할까 싶다 하지만 조카들을 안좋아하게 되었던건 매형들에게 맞은 후부터 였고 그들의 피가 흐르는 자식들을 내가 좋아할 수 는 없을거 같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가족이란 나에게 그런 존재다 애정도 없고 의지할 수 도 없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나는 중학교 1학년때 처음 소아 심리 치료센터를 갔었다 둘째이모가 내가 걱정 되었는지 엄마에게 말을 하고 데려갔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살짝의 우을증 진단을 받았고 2~3개월동안 매주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었다 진전도 없고 꽤 비싸던 병원비를 아버지는 내기 힘들어 하셨기에 그만두었었다 강아지를 한번 키워보고 싶었던 나는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랐었고 그걸 지켜보던 막내누나는 수의사를 언니로 두고있던 친구에게 수소문해 시츄 한마리를 데려오게 되었다 행복했다 이름은 에비게일이였다 멋있는 이름을 짓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그마한 시츄에게는 과분한 이름이였고 에비라도 부르기엔 좀 그랬던 그 시츄에겐 게일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한두달 동안은 행복했다 강사모에서 만난 누나들과 애견카페도 가보고 산책도 해보고 좋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책임감이란 1도 없던나는 게일이를 방치했고 결국 키우는건 막내누나였다 게일이가 1살쯤 되던 날이였다 그나마 게일이를 키우던 누나가 사회복지학과였기에 해외로 6개월동안 봉사를 가게 되었고 봐줄 사람이 없던 게일이를 엄마의 친구분에게 보내게 되었다 외면했다 나는 내 중심적이였고 게일이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채 그렇게 엄마 친구에게 보내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누나는 게일이를 보내며 편지를 써서 보냈다고 한다 잘 부탁드리고 혹시나 못키우게 되시면 버리지 마시고 다시 되돌려 달라는 편지를 써서 보냈고 그 편지가 무색하게 강아지가 생각보다 크다는 이유로 시골로 보내졌다고 한다 16년이 지났다 정말 건강하다면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있을 게일이가 수명을 다해 이세상에 있지 않을 게일이가 나는 보지는 못하더라도 소식이라도 듣고 싶다 미안한 마음 뿐이기에 가끔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적도 있다 어느날 또게일이가 생각나 찍어놓은 사진을 찾아보았는데 그마저 다 날라가 버렸기에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우리 게일이가 많이 보고싶다 그 뒤로 막내누나는 강아지를 키우자는 말만해도 화를 냈었다 물론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그 소중한 생명에게 상처를 준 나는 강아지룰 키울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28살때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나는 국비지원을 받아 제과제빵 학원을 다녔다 빵을 좋아하는 나에게 제빵사가 되고싶은 꿈이 조금이나마 있었기 때문이다 2개월동안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는 한 유명한 빵집에 취업을 했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일에 나는 서툴렀고 두가지일은 잘 못하던 나는 한달만에 짤리고 말았었다 서러웠다 잘 하고싶었는데 열심히 했는데 나는 인정받지 못했었다 그렇게 또 방황을 하던중 누나가 유명한 빵집에 공고가 나왔으니 한번 지원해 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었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무서웠고 자신이 없었기에 한참을 고민하던중 내 옆에있던 어떤 분이 용기를 주었기에 면접을 보았었다 나는 바로 합격을 했고 큰 빵집에 출근을 하게되었다 정말 힘들었다 지금 까지 해본 일중에 가장 말이다 택배 상하차보다 힘들었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꾸역꾸역 버티며 다녔었다 나는 인정받기 위해 노력을 해왓지만 한 여자대리는 나를 탐탁해 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을 시달렸지만 그래도 버텼다 모두가 나를 싫어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잠이 많기에 점심시간에 밥도 먹지않고 잠을자며 일을 다녔다 하지만 1년쯤 다녓을때 번아웃이 왔고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던내가 이틀연속 점심시간에 알람을 못들어 지각을 한적이 있었다 그때 그 여자대리는 나에게 “죽여버리고 싶다”라는등 폭언을 했었고 그 말에 더이상 일은 할 수 없었던 나는 바로 그 다음날 사직서를 내었다 일년을 그 트라우마에 살았다 일을 할 수 없었고 지금도 아직까지도 그 상황에에 화가나며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욕을퍼부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물론 나도 잘못을 했지만 말이다 그 뒤로 일년동안 또 방황을 했다 너무 힘들고 슬픈 하루 하루를 보내다 어느날 갑자기 다시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졌다 물론 그런 생각이 몇번 들었었지만 그날은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나는 밤을 새워 강아지를 알아보았다 그러다 어느 곳 에서 강아지를 199000원에 입양이 가능하다는 글에 속아 방문을 했지만 강아지들은 그 가격에 구할 수 없었다 강아지들은 100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였고 얼마정도 생각하고 왔냐고 물어보는 직원분에 말에 자존심이 있어 199000원의 광고글을 보고 왔다고 하지못하고 50만원 선에서 보고 있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보여준게 우리 짜장이 였고 내손을 핥아주던 짜장이를 고민도 없이 집에 데려오게 되었다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엄마에게 방에 못들어오게 하며 4일정도를 숨겼다 그러다 놀러온 막내누나가 내 방에있는 강아지 용품들을 보고 전화를 했다 강아지를 또 입양했냐고 말했다 누나의 잔소리에 나는 그냥 “내가 죽어 버릴테니 내버려둬”라고 말했고 그 말에 누나는 왜 말을 그렇게 하냐며 강아지를 데려오라고 했다 혹시나 들킬까봐 나갈때마다 크로스백에 넣어 다니던 짜장이를 누나에게 처음 소개 시켜줬다 그렇게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되었다누나는 우리 짜장이를 예뻐해줬고 지금도 나보다 예뻐해주고 있다 그러다 욕심이 생겨 곱백이를 입양했다 혼날걸 알았던 나는 누나와 엄마게에게 거짓말을 했다 친구가 입양을 해서 잠깐 나에게 맡겼는데 그뒤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나는 후회하고 있다 그날 짜장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짜장이도 곱백이도 더 행복한 가정에 입양되어 지금도 행복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 항상 집에 혼자 있었는데 주말에 왜인지누나가 출근할일이 생겼는데 나를 데려갔다그래서 누나는 열심히 일을하고 나는 옆에 앉아 있었는데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누나 나오줌마려워”누나는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그때는 화장실을 찾아가지도 못할 나이 였던걸로기억한다 소변을 참고 참고 누나 한테 쌀거같다고 계속얘기를 했지만 누나는 조금만 참으라는 소리만 계속 했었다그러다가 결국은 의자에앉아 오줌을 싸버렸고 혼날줄 알았던 나는 무서웠지만 누나는 화장실에가서 나를 씻기고 옷을빨아서 선풍기에 널어주었다 그 큰 회사에서혼자 발가벗고 있었다 물론 출근한건 누나와 나뿐이였지만너무 창피하고 누가 들어올까 무서웠었다 안그래도 부끄러움이많은 성격이였는데 그때 수치심이라는 걸 처음 느껴봤던거 같다나의 첫알바는 15살 때 였다 한 헬스장에서 16살이라고 속이고전단지 붙이러 다니거나 헬스장 청소, 탈의실청소 이런 일을 하는 2시간짜리 알바를 했었다 매니저님도 직원분들도 너무 착했고 좋았었다3개월정도 하다가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그만두게 되었던거 같다중학교 1학년때 한 친구가 전단지붙이는 알바를 하자고 제안했다별로 친한 친구는 아니였는데 이친구에 대한 기억은아버지랑 밥을먹다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서 숟가락을 밥그릇에 꽂아놓고 화장실을 다녀왔다가 아버지한테 제사 지내냐며 맞은적이있었던 재미있는 친구였다 돈이 필요했던 나는 친구를 따라나섰고 피잣집에서 전단지를 받아 붙이러 다녔었다 한 여름이라너무 더웠고 정해진 구역을 다 붙여도 전단지가 많이 남아버린것이였다 그걸 우리는 그냥 편의점에 가서 쓰레기봉투에 버렸고다음날 그 친구는 나에게와서 피자 배달부가 배달하다가 우리가전단지를 버리는걸 봐서 돈을 못받았다고 했다그걸 멍청하게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친구가 그냥 그돈을 꿀꺽 했던거 같다 17살 때 법적으로 알바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었고샤브샤브집에서 알바를 했었다열심히 다녔고 매니저님도 나를 좋아해주셨었다왜 직원을 안하고 알바로 왔냐고 물어봤었는데17살에 직원을 할 수 있을 리가 지금 생각해보면좀 멍청했던 사람같았다 열심히 일을하다 지각을 몇 번 하기 시작했다 그 때도 게임에 빠져 사람들과 밤새게임을 하는게 일상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조금 찍히게 되었고거기 나보다 늦게 들어온 남자직원이 나를 싫어하는거 같은 느낌을항상 받았다 나에게 발을 건적도 있었기에 같이 알바하는 누나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그러다 나는 일을 그만둔다고 말했고 그말을 하던날 그 매니저는나에게 쌍욕을 했다욕을 하며 나에게 왜 자기 직원을 욕하냐고 말했다 정확히나에게 강아지라고 했던거 같다그렇게 쌍욕을 먹고 나왔다 욕을 먹은건 나인데 말이다그리고 얼마있다 생일 이였던 나는 케잌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 월급으로 케잌을 사다가 방에서 혼자울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짜장이를 키우면서 재밌었던 일도 있었다강아지를 처음 키우는것과 마찬가지로 지식이 없던나는보듬이라는 강형욱 선생님의 학교를 알게 되었다1년약정에 200만원이라는 거금의 금액을 지불하고그 학교를 다녔었다 차가 없었기에 친한 형이 갈때마다 태워줬고거기에 다니던 짜장이는 인기스타였다 조금 특이하게 생겼기 때문이다짜장이를 예뻐하던 선생님들이 추천을 해주셔서 강형욱 선생님과함께 유투브를 찍은 적도 있었다 짜장이는 나보다 유명한 강아지다유치원 다닐때의 일이다 그날은 나와 막내누나 둘이 집에 있었고막내누나는 작은방에서 무언갈 하고 있고 나는 안방에서 티비를보고 있었던거 같다 누가 문을 두드려서 나가봤더니 어떤 할머니가 서계셨다나보고 엄마가 집에 있냐고 물었다 잠시 나가셨다 했고할머니가 자기는 엄마 친구인데 잠깐들어가도 되겠냐고 했다나는 들어오라고 했고 그분은 안방까지 들어와 아버지의 돈가방을 뒤졌다나는 아무생각 없었다 그냥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주머니가 동전을몇 개 흘렸기에 주워서 드렸다 그랫더니 나에게 500원을 주셨다 그걸로 가서 뽑기를 했다 엄마가 돌아왔고 얘기를 했더니 도둑년이였다 그걸 그때 알았다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븅 신인거 같다 하지만엄마는 나를 혼내지 않으셨고 오히려 막내누나가 자기를 왜 안불렀냐며뭐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멍청했던거 같다 매미가 왔던 해였다 어린 나는 엄마아빠와 함께 자고 있었는데 자다가 새볔에 깻더니 혼자 남아있었다 어두컴컴한 방안에 혼자 있는게무서워서 일어나 엄마 아빠를 찾았는데 집에 계시지 않았다밖에서 인기척이 났고 나가보니 물난리가 나서 물에잠긴 지하집을 도와주고 계셨다 비가 엄청 왔다 억수로 쏟아졌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엄마아빠를 지켜보고 있었고그날이 나는 왜인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살면서비를 그렇게 맞아본적이 없어서 인거같다나는 금사빠다 외로움을 많이타는 사람들이 많이 그렇지 않나 싶다 정이 많아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본다쉽게 좋아하고 쉽게 포기하고물론 가슴아픈 정도는 비슷 할 것이다마음의 아픔은 비교할 수 없는 것 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에게는 짧은 시기에 사랑하게 되어 사랑을 퍼주면서30년동안 나 하나 사랑하지 못하는지 의문이다내 자신하나 좋아하지도 못하면서 다른사람이 나를사랑해주길 바라는 마음만 갖고 살아왔고구걸하고 요구했다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를 조금만 더 사랑했다면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면 나는 지금 어땠을까?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항상 듣는 노래가 있다“나의 자라나는 마음을 못 본채 꺽어버릴 수는 없네“라는 구절이 들어간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라는 노래다 짝사랑이라는 것을 참 많이 해왔다표현도 잘 하지못하고 누가 날 좋아하겠어 라는 생각을달고 살아왔기에 좋아해도 표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이 아파했고 많이 슬퍼했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시들어가고 있는 기분이다 나는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놓을 생각이다이렇게 죽을 생각을 하면서도 걱정하는게 무엇이냐 하면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하면 재수없게생각할까봐 그게 두렵기도하다 그렇게 나보다 남의 시선이더 중요하고 신경쓰인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해주시던말이 있다 누군가 때리면 그냥 맞고 들어와라누군가 욕을하면 네 네 하고 넘겨라우리아버지도 그런사람이다 가족보다 남이 더 중요하고 자기가이룬 가족,자식보다 자기원래의 가족이 더 소중한 그런 사람이다언제나 나를 탐탁지 않아 하셨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다칭찬따위도 한번도 받아본 적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으셨다차라리 없는게 낫지 않았을까 그런생각을 아직도 하곤 한다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었다 나는 그때도 아무생각도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었던거 같다 그냥 중환자실에 앉아있는 아버지가 안쓰러울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던거같다철없는 소리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족애가 없는 나는 그렇다아버지에 대한기억은 이렇게 딱 두세개 뿐이다 자전거 타던날맞았던날, 쓰러지셨던날 그거말고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것일 수 도 있겠다8살때부터 50미터정도 거리에사는 친한 친구가 있었다그친구와는 정말 별일 없으면 매일 붙어있을정도로 친했었다그 친구는 1남 3녀중 막내였다 그래서 잘 통했는지 모르겠다나쁜 아이는 아니였는데 돈이 많아서 돈으로 사람을 좀 부리는 친구였고자기중심적인 싸가지는 좀 없는 친구였다 매일 나와 친구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피시방비를 내줬고라면도 사주고 그랬었다 그 친구에게 나는 하인 같은 존재였고우리에게 그 친구는 돈줄 같은 느낌이 아니였을까 싶다하지만 나는 정말 친한 친구라 생각했고 그 친구와오래오래 지내고 싶어 비위를 내내 맞추며 친하게 지냈었다하지만 그 친구와의 기억은 잘 없는거 같다 특별히 동네에서노는거랑 같이 학원을 다닌거 말고는 없어서 그런가보다 그러다 그 친구랑 사이가 틀어진건 중학교1학년때 였다점심시간에 같이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운동을 좀 격하게 하는스타일이라 하다보니 격해졌고 그 친구와 부딪혔는데 나에게 욕을하며짜증을 냈었다 그때 6년동안 참아왔던게 그날 터졌던거같다그 친구의 멱살을 잡았고 주먹다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뒤로 사이가 멀어졌다 소중한 친구를 내 손으로 하나 잘라낸 것이다pc방 알바할 때 그친구가 몇 번 온 적이 있었다 한번쯤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말이 안떨어졌었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그래도 올때마다 음료 하나씩 서비스로 주고 오긴했었다지금 연락하는친구는 딱 두명이다 여자아이하나 남자아이하나여자아이는 중학교때부터 메이플을 같이하다 친해졌었고남자아이는 내가 병원에서 퇴원을하고 학교에 잘 안나갈 때가정통신문을 전해주러 오거나 시험범위를 알려주던 친구였다물론 두 친구다 잠시 친했을 뿐이였다 여자아이랑은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기에 한순간에 멀어졌고남자아이는 별로 친하지는 않아서 인사만 하고 지냈었는데고등학교 입학하고 싸인펜이 필요한데 살돈도 없고 빌릴 친구가 없어서빌릴겸 그 친구네 놀러갔다가 친해져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안면만 있던 그 둘을 내가 소개시켜줘서 셋이 친하게 지냈고서로 연락 없이도 걱정이 없는 사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가끔 만나며 지냈지만 20대중반 쯤부터는 거의 연락도 안하고 지내다가 최근에 여자아이한테 연락이 와서다시 연락을 가~아끔 하고 지낸다 오늘 여자아이에게 말했다죽기전에 자서전을쓰는데 너희와의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쿨타임돌았냐고 답장이 왔다 나는 이런얘기를 평생 해왔기때문에 이런 답장이 온 것이다 쓸데없는 수다를 떨다가 친구가물었다 뭐가힘드냐고 자기는 사람 때문에 힘들면 친구들 생각이 나는데니는 왜 연락한번 안하냐 물었다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한 기분이였다생각해보면 내가 먼저 연락하는일은 항상 뒤져야겠다 라는 말을 할 때뿐이였던거같다 어떻게보면 가장 친한 친구들이자 가장 어려운 친구들이 아닐까싶다 잃을까봐 무서운마음도 한켠에 자리잡고있는거같다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다 사실 만약 그 이유가 친구들을 귀찮게 하고싶지 않아서 라고 생각해 봤지만그랬다면 죽는다고 연락도 안했을터 모순인거같다 그럼나는 위로를 받기위해 죽는다는 소리를 하는걸까?라는 생각을 잠시 가져본다 인생은 혼자 사는거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인생은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나는 후자쪽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혼자 동떨어져 있기에여기까지 온거같다. 의지하는 것 내게는 왜이렇게 어려운 일 일까?혼자사는 것도 못하고 의지하는 것도 못하는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유치원다닐때쯤 어느 크리스마스날 이였다 그날 동네친구들과아침부터 놀다가 뭔가 가지러 점심쯤 집에 들어왔는데 안방에 새 스케치북과 새 크레파스가 같이 놓여있었다 집에 있던 막내누나에게 이게뭐냐고물었고 누나는 산타할아버지고 놓고간거 같다고 했다 나는너무 신이나서 친구들에게 가서 자랑을 했고 산타를 믿으며 시간을 보냈다그리고 몇시간뒤 문방구에 갈일이 생겨서 단골 문방구에 갔는데무언가 사고 나오는데 아저씨가 한 말씀 하셨다“누나가 너 준다고 스케치북이랑 크레파스 사갔는데 받았니?”라고 말이다 그때 나의 마음은 와장창 무너졌다 산타는 없다는걸 그렇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꾀 큰 충격이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막내누나에게눈물날 정도로 고마운 기억이다 근데 누나는 기억을 못한다 나는 산타라는게 없다는걸 일찍 알아차린 편이지 않나싶다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던날이였다 겨울한파 속에 눈이 많이와서쌓인 날이였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집앞에 나가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택시를 하는 아버지는 모임이 있으셨고 엄마와 함께 그 모임을 가셨다한 30분을 기다렸을까 추위에 덜덜떨다가 버스가 안와서 엄마아빠에게 갔다 엄마가 유치원에 전화를 했었고 우리집 오는 길에 언덕을 하나 내려와야했는데그길을 지나오지못했서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은 유치원에 가지않고 모임에껴서 팥죽을 먹었던걸로 기억한다유치원에 가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버스가 못 내려오면 선생님이라도 데리러 와야 하는게 맞지않나 싶다요즘은 유치원에서 알림장도 있고 통신문도 나눠주고 부모님에게 전화도하고 하며 준비물을 챙기도록 선생님들이 노력을 하는거 같다 조카들 보면 말이다우리때라 그런건지 아니면 우리 유치원이 그런건지 구전으로만 전해줬었고어렸을때부터 깜박하던 나는 준비물을 잘 안챙겨가는날이 많았다 특히한복이나 수영복을 챙겨가야하는날은 거의 안챙겨갔었다그래서 맨날 한복입고 사진찍는 친구들 사이에 혼자 사복을 입고 찍는게부끄럽고 창피했고 수영장에 가던날은 수영복을 안가져와서 친구들이 노는걸 지켜만 봐야 했었다 그걸보고 있던 나는친구들에대한 부럼움보다 나에대한 수치심이 컸었던거같다그리고 하루는 수업시간이 아닌데 친구한명이 교과서를 책장에서 꺼냈고우리는 그걸보고 에에에를 시전했었다 그걸들은 원장님이 와서 우리를 다 불러내서 바닦에 앉혔고 에에에 한 사람들은 나오라며 화를 엄청 내셨다그러다 어떤여자아이가 먼저 용기내서 나갔고 나도 그뒤를 따라 나가서호되게 혼났던 기억이 있다 내가 뭘 잘못한지도 몰랐었고 정말 별일 아닌데 그나이에 그렇게 혼나야 했나 싶다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둘다 다녔었는데 어디에서 일어났던 일인지는 기억이 안나서 다 유치원이라고 칭하고 얘기를 하고 있다2층에 있는 유치원을 다닐 때 어떤날은 친구들과 먼저가기 싸움이 붙었고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1등으로 뛰어가던나는 거의 다 올라갈 때 쯤넘어지고 말았다 무방비로 턱을 계단에 박았고 혀를씹으며 넘어졌다진짜 아팠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나를 약국에 데려가셨고 약을 발라주고응급처치는 끝이였다 그날 나 때문에 급식은 스프가 나왔고 친구들은 러스크가 들어간 스프를 먹었고 나는 맹 스프만 먹었다 그것도 힘들었던 걸로 기억한다초등학교때 군대에간 사촌형이 휴가에 나와서 우리집에서 몇일 지낸적이있다 그때 형이 나갈 때 마다 나를 데려가줬고 피시방에서 몇시간씩 죽치다 왔었다나는 그시간이 너무 좋았고 형이너무 좋았다 그래서 형이 휴가가 끝나고돌아가던날 형이 배고자던 배게를 안고 운적도 있다나는 그만큼 사람에게 취약한 사람이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나이가먹으면서 그래도 그래도 조금이나마 덜 해진거 같다시라노연애조작단에 갔을 때 프레임이라는 책을 추천받았다나는 그 책을 바로 사서 읽었고 삶에 정말 도움이 되는책이지만 너무 어려워서 다 읽지는 못했다 그 책은 한 사건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 할 수 있게도와주는 책이다 예를 들어 썸녀 썸남과 연락을 할 때 읽씹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이 있다하지만 아예 답장이 없는건 아니고 빠르면 5분 10분 몇시간 늦어도 그날 안에는 답장이오기는 한다 그사람은 왜 읽씹을 하고 한참뒤에나 연락을할까 라고 생각했을 때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정말 귀찮아서 늦게라도 답장을 하는것이고둘째는 읽고 답장을 하려다 갑자기 일이생겨서 늦게 답장을 한 것셋째는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고싶지않아 생각을하다 늦게 답장을 보내는 것등등 쉽게말하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였던거 같다 생각해보니 나는 자살기도를 하기전에 항상 책을 한권씩 읽었던거 같다보통 마음을 위로해주는 에세이를 읽었고 지금은 힘들 때보며 위로를 받던 유투브 웃따 선생님의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라는 책을 읽고 있다 책읽는걸 정말 싫어하는내가 정말 힘들면 책이라도읽어본다 나는 노래들으며 걷는걸 좋아한다 죽고싶을때는 최대한 많이 걷는편이다 그래서 정말 죽고싶고 시간이 많을때는 살이 많이 빠지기도 한다 밥도못먹고 죽어라 노래들으며 걷기 때문이다 입맛이 없어서 정신과에서입맛도는 약도 처방받아 같이 먹는중인데 별로 효과는 없는거 같다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다 그러다보니 잘 안먹게 된다 내가 죽으려 생각한 것은 그냥 단지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내가 죽기위함이고누구나 세상을 떠나기 때문에 슬퍼 할 필요가 없다앞으로 앞날에 무슨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지도 기대되지도 않는다면그건 살고있는게 맞는 것 일까?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삶이 아닐까?아니면 삶의 이유를 찾아가며 아등바등 사는게 맞는것일까?우울증에 걸리는 이유중 하나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걸리는 경우도많다고 한다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대를 채우기위해 높은 기준점을 잡고 있기에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것이라고 한다나도 그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나를 조금만 덜 사랑했다면 나는 살아갈 수 있었을까?나도알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내가 나약한 사람이아니라 모든 사람이 대단한 것이라고 위안을 했을 때모든 사람은 대단한데 왜 나는 대단하지 못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고그거에 회의감이드는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각은 이렇게 돌고돌아 다시 나의 자책으로 돌아온다 이런 생각을 고치지 못하는한나는 살아갈 수 없을거같다.이 글은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기위한 글도희망을 줄 수 있는 글도 아니지만 나는 이 글을 쓰며 나는 어떤 사람이였는지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모두에게 전할 수 있는말은시간이 약 이다 라는 말이다 전에 있었던 어떤 슬픈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조금씩 괜찮아 진다 하지만 못을 박았다 뺏을 때 그 구멍이 없어지지 아니하듯 마음의 상처는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걸 사람들을그 구멍에 벽지를 붙여놓듯 한 켠에 묻어두고 살고 있다 그런 여러분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나는믿고있고 부럽기도 하다 언젠간 내 삶에도 봄날처럼 꽃이 피길 바랬지만30이라는 나이를 먹어도 나에게 그런 시간은 시절은 오지 않았고앞으로도 오지 않을것만 같다.언젠가는 누군가 와서 못을 뺀 구멍에 시멘트를다시 발라주길 바랄 뿐이다한동안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그는 내게 말했다 자기를 사랑해달라고 했다 나는 충분히 사랑을 표현하고 보여주고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그 말에 화가 났고 그 동안 지쳐있던 마음때문인지 이별을 고했다 뭘 더 해줘야 할지모르겠다고 나는 말했다.지금 생각해보면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나는 사랑을 할 줄도모르는 것 같다. 한동안 또 내가 죽으려 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는지 이런 나쁜 생각들은 항상 스믈스믈 기어올라와나를 괴롭혔다. 삶을 살아갈 용기도 희망도 남지 않았다.지금 내 옆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인생은 혼자 사는거다 라는 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되지않는다.혼자 라는 말이 얼마나 외롭고 슬픈 말인지 오늘 또 한번 되새겨본다.오늘은 일을하다 펑퍼 울고말았다. 서러웠다 일이 힘든건 둘째치고사람 사람이 너무 싫어지는 하루였다. 요즘도 자꾸 눈물이 난다. 지하철에서 릴스를 보다가도 눈물을 흘리고자려고 누워서도 갑자기 눈물이 흐르곤한다.30이 넘어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도 모르는막막한 하루가 오늘도 지나갔다 이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면살아지겠더러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다..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들은 다 짝있더라. 그래서 주의사람에게이런소리를 한 적이 있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애인이 있더라.. 근데 나는 애인이 없으니 나는 괜찮지 못한사람인가봐 라는 말을 했었다..물론 위에 말했듯이 나는 괜찮지 못한사람이란걸 알면서도 아니길 바라며 꺼낸 얘기일지도 모르겠다..당신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당신이 없어 죽을 것 같이 힘들던 나날들이 이제는 조금이나마 무뎌져 더는 아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게 밥을 먹었냐고 물어봐줄 사람도, 내가 아플 때 걱정해줄 사람도 나를 행복하고 맑은 눈동자로 바라봐줄 사람도 이제는 없게 되었다는게 많이 쓸쓸하네요. 어쩌면 누구에게나 받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그 대상이 당신과 나 였기에 더욱 특별했다고 생각합니다.다른 것보다도 이거 하나는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당신만이 날 그 맑고 투명한 눈동자에 예쁘게 담아줄 수 있었습니다.당신 눈에 비친 내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당신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당신 눈에도 아름다웠길 바랍니다..어디선가 읽고 눈물이 흘렀기에.. 당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한번 담아 보았습니다.제가 이 글을 쓰고도 살아있다면..언젠가는 이 글을 좋은 방향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 2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내가 죽으려고 생각한 것은
지은이:개장수
나는 1995년 4월 24일 방배동의 어느 한 병원에서
1남4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이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사랑 많이 받고 자랐겠어요”
라고 말이다 이말이 지겨울만큼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렇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금 내 머릿속에 어린시절은 단지 아침에 아버지가 주고가는
천원짜리 한장을 들고 비디오방에가서 비디오를 빌려
하루종일 그 한 개의 비디오를 돌려보는 것이였다
나는 혼자 자랐다고 생각한다 그런만큼 애정결핍도 크다는걸 나는 알고 살아왔다
그렇기에 상대방에게 사랑을 갈구했고 그거에 지쳐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그렇지 않았던 사람들도 있지만
그사람들이 정말 대단했고 아직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나는 살면서 가장많이 들은 말이 뭐에요? 라고 물어보면
딱한가지 말이 떠오른다
“안돼” “안돼” “안돼” 이 말이
주위를 맴돈다 컴퓨터도 안돼 만화책도 안돼 가수도 안돼
운동선수도 안돼 공부만 해야했다
물론 그마저도 나는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중학교 1학년때 까지만 해도 모범생까지는 아니였지만
공부도 곧 잘하고 학교도 잘 다니는 그래도 말을 잘 듣는편인
아이 였던걸로 기억한다 내가 삐뚤어 졌던건
중학교 1학년 2학기 쯔음 이였던거 같다
셋째누나가 결혼을 하고 우리집에 같이 살았다
그래서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사춘기가 오고있었더라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컴퓨터도 맘대로 할 수 없었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건 하나도 없었다
비록 반항과 방황뿐이였다 누나들과 사이가 안좋아졌고
1년 정도를 그렇게 살았던거 같다
2학년 마지막 겨울방학쯤 나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누나들과 싸움이 났었다
보고있던 큰매형과 셋째매형은 와서 나를 때렸다
밟았다 아버지한테도 그렇게 맞아본적 없던 나는
그렇게 맞았다 그리고 주위사람들은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나란 존재는 없어졌다 내가 죽었던건 그때였을까?
우울증이 왜 생겼냐는 말을 들으면 나는 항상 이 얘기를
꺼낸다 그럴 때마다 반응은 두가지로 나뉜다
“맞을 짓을 했겠지”
“아무리 그래도 애를 왜때려”
라는 두가지 반응이 나온다 전자 반응을 처음 들었을땐
속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맞는 소리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일 뒤로 나는 몸이 아픈게
아니라 마음이 아프기 시작했던거 같다
세상에 믿을 사람이 없었다 의지할 사람마저도 없었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에 대해 항상 생각을 했고
그렇게 아파하던 나는 네이버 지식인에
죽으려고 한다는 글을 올린적이 있다 그냥 단지 그내용 뿐이였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행복하게 잘 살으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얼마있다 알림이 와있었다 지식인에 답글이 달린 것이다
무슨일로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들어줄테니
밥 한끼먹자는 내용이였다 장기매매 같았다 하지만
무슨 용기였을까 쫄렸지만 어차피 죽을건데 뭐 어떨까싶어서
그분에게 동네를 알려주었고 몇일있다 동네에서
만났다 30대 중 후반 정도 돼보이시던
조금 외소한 남자분이셨다 처음 보는 그분을 만나
함께 샤브샤브를 먹었다 단지 내 기억은 이것이 끝이다
조금 무서웠지만 그분은 밥을 사주고 카페에 갔다가 돌아가셨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그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가끔 생각해보면 한 번 뵙고 싶기도 한다
그 이후 중학교 3학년 새학기가 시작 될 쯔음에
자살기도를 준비했다 하나씩 마음을 내려놓고 죽기위해
약국을 돌아다니며 수면유도제를 90알 정도를 구했다
그땐 몰랐다 수면 유도제는 배가 터질때 까지 먹어도 죽지않는다고 한다
그때 유행하던 싸이월드에 마지막 글을 올렸다
내 비록 이렇게 가지만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그런 내용이였다
그 글을 올리고 피시방에서 한창 게임을 하고있는데
방송부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친하다면 친한
하지만 학교에서만 만나는 그런 친구였다
내 그 글을 보고 걱정이 되었나보다
하지만 귀찮은 마음에 받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않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궁금한걸 참지 못하는 나는 전화를 받았고
그 전화는 경찰서의 여경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무슨 일인지 들어보니 그 방송부 친구가 내가 이상한 글을
올렸다고 경찰서에 가서 신고를 한것이였다
신고가 접수 되었으니 경찰서로 와야 한다고 했다
피시방에 앉아있던나는 경찰서로 발걸음을 옮겼다
살면서 경찰서는 처음 가봤던거 같다 어떤 마음으로
거길 갔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황당한 마음과
‘여경이면 영화처럼 예쁜 분일까?‘
라는생각을 하며 갔더거 같다
무슨 부서로 오래서 갔더니 그친구와 여경분이 같이 계셨다
그 친구는 학원에 있다가 내 글을 보고 바로
경찰서로 달려와 신고를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고마웠던 친구였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귀찮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거 같다
그냥 죽게 냅두지 라는 생각 뿐이였다
신고가 접수되어서 부모님 연락처를 알려줘야 한다고 해서
실랑이를 좀 벌이다 결국 막내누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막내누나가 도착하고 친구는 다시 학원으로 돌아갔다
나와 누나는 경찰서에서 금방 나왔고 누나는 나에게 얘기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카페에 갔다 누나는 내게 말했다
게임중독 같으니 병원에 입원하자는 말을 나에게 했다
나는 동의하지 못했다 내가 게임을 하는것은 게임이 좋아서 하는게 아닌
같이 하는 사람들과의 친목이 좋았던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나는 애정결핍을 달고 살아왔고
다른사람들의 친절이나 사랑에 목말라 있었기에 그 사람들과
친해지며 혼자서 애정결핍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였다
지금생각해보면 그렇다 그렇기에 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공유하고 보낼 수 있다는거에 목을 매달며
버텨왔던 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누나의 말에 동의하지 못했고
부정했다 그러자 내가 옷장 안에 꼭 꼭 숨겨놨던
수면유도제를 어떻게 찾았는지 몇 박스를 내앞에 내놓았다
나는 당황했고 내 주머니에 꾸역꾸역 다시 넣었다
누나는 다시 줘 보라며 몇 알을 가져갔고 나머지는
다시 챙겨서 나는 피시방 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도 게임 길드원들과 게임을 한 후
나는 마지막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하루였다
누나는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엄마는 방에서 주무시는 듯 했다
나는 나머지 남았던 수면유도제 74알을 몰래 화장실에 가져가
입에 털어 넣었다 그때 무슨 생각을 나는 하고 있었을까
삶에 미련이 없었기에 눈물조차 흘리지 않았던거 같다
다만 이제 눈을 뜨면 다른세상에 가 있길 바랬을뿐
나는 오사쯔를 못먹는다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먹었던게
오사쯔라 그때 기억이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잠이 들었고 얼마 지나지않아 심장이 아파서 깨고말았다
고통을 호소했고 누나의 질문에 나는 약을 먹었다고 말했다
구급차를 불렀고 엄마와 누나는 내 옆에 서있었다
너무 아파서 죽을거 같은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구급차는
생각보다 빨리 오지 않았다 체감 30분은 기다린 느낌이였다
구급차가 도착했고 나는 안도했는지 잠이드려고하자
구급대원은 나를 발로차며 자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때 내가 정신이 있었다면 구급대원 마저 나를 병신으로 생각 하나
라는 생각을 했을지 모르겠다
처음 타보는 응급차는 매우 덜컹거렸고 그거때문에 쉽사리 잠들기도 어려웠었다
기억도 안나지만 어느병원에 도착했었고
거기서 위세척을 받은뒤 병실에 자리가없어
중대병원으로 이송되었던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눈을 떳을때 난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다
생과 사가 오가는곳 거기에서 난 5일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간수치가 떨어질때 까지 말이다
중환자실 안에도 밀폐된 공간은 아니지만 1인으로 떨어진 곳에서
나 혼자 지냈고 거기서 유일한 낙은
라디오를 듣는것이였다 잘때 빼고는 라디오를 틀고 있었고
간호사누나가 주신 간식 몇개에 정말 행복했었다
그때는 초코칩쿠키가 왜이렇게 맛있었던지 지금도
가끔 그때 생각이 나면 사먹고는 한다
내가 자는사이에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였고
그 소란에도 나는 잠을 잘 잤던걸로 기억한다
중환자실에는 화장실이 없다 그래서 배가아프면
침대위에 간이 변기와 기저귀같은걸 깔아준다
그럼 침대위에서 쪼그려 싼뒤 뒷처리를 하면 간호사분들이 치워주신다
한번 겪고나서 나는 계속 화장실을 참았던 기억이 있다
화장실 병균 때문인지 중환자실에 있는 사람이 화장실을 갈 일이
없어서 인지 둘다 인거같기도하다
이제 간수치가 막 되돌아 와서 일반병실로 옮긴다는 말에
아쉽움반 설램 반이였다 간호사가 링거에 주사를 놓았고 나는잠들었다
눈을 떳을땐 정신병동 안이였다 정신병원에 입원을 한다는 것
처음에는 절망이였다 세상과 단절된곳 여기있는 사람들은
모두 이상한 사람같았고 모든것이 낯 선 공간이였다
하지만 지금 내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꼽으라면
그 정신병원 생활을 다섯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한달 가량 병원에서 지냈고 그것마저도
내가 퇴원하고 싶지않아 의사선생님의 계획보다 늦게 퇴원을 한것이였다
거기서 만난 형들 누나들은 정말 좋은 사람들 이였다
물론 정말 정신병자라 들어와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단지 우울증 때문에 들어와 있는 환자가 많았기에 우리는 우리를 의지하며
지냈던거 같다 하루를 하루종일 같이 보낸다는 것
안들래야 안들 수 없는 정이 들었던
그날들을 생각하면 가끔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 병동에서 나의 별명은 꼬마 신랑이였는데
그 이유는 골프선수였다가 희귀병 때문에 선수생활을 못하게되어
알콜중독에 걸렸던 한 누나가 그렇게 불러줬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매일 있는 여러 가지
치료 수업을 들었으며 하루하루가 정말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탁구도 배워보고 그림도 그리고 심지어 노래를 하는시간도 있었으며
우리는 서로를 의지하며 하루하루 행복하게 지냈고
내 16살의 생일도 여기에서 보냈었다
가끔 실습오는 의대생들과 간호학과 학생들과도 매일 헤어지는 시간이
아쉽고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나중에는 몰래 서로 연락처를 교환할 정도로 친하게 지냈었다
하지만 그 연락처들이 적혀있던 수첩은 내가 퇴원하던날
없어졌다 아무래도 알고있던 간호사분들이 몰래 가져간거 같았다
그때는 참 섭섭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맞는거 같기도하다
어차피 나와서 연락은 시들시들 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병원에 입원한지 2주쯤 되었을때 내또래 여자아이가 들어왔다
그아이는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무서웠다
얼음공주가 있다면 그런 느낌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들어온 그날 그 여자애는 의자에 앉아서 울었다 흐느껴 펑펑 울었다
나와 골프선수 누나는 그 아이를 사이에 두고 앉아
휴지를 주며 위로해 주었다 나중에 얘기들어보니
그 여자애는 내가 너무 싫었다고 한다 그런데
위로해주는거 보고 마음이 좀 열렸었다나 뭐래나
그 여자애는 날 좋아했었다 병원에 나와서도 연락을 했었고
잠깐 사귀었었지만 내가 상황이 상환인지라 연락이 두절 되었었는데
그렇게 의도치않게 이별잠수를 시전 했었다
보라색을 좋아하던 그 여자아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중에 싸이월드에 들어가 연락을 취했지만
“꺼져” 라는 말 뿐이였다 하루는 병동에서
개인 면담?상담?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사회복지사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는 시간에 선생님이 한마디 하셨었다
무슨말인지 기억은 안난다 하지만 정말 아무말 아니였던
그냥 나를 불렀던거 같은데 나는 펑펑울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이유없이 계속 펑펑 울었고
도저히 면담이 불가능 하자 수면제를 먹여 나를 재우셨다
뭐가 그리 서글펐을까 그나이에 그렇게 울 일이 뭐가 있었을까
나의 사춘기에게 미안하다
그렇게 한달이라는 시간을 정신병원에서 지내고 나왔고
그렇게 달라질거 없는 내인생은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왔을 뿐이였다
한가지 달라진점이 있다면 학교에가지않아도
수업시간에 잠을 자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선생님들도 내버려 두셨다 입원을 하기 전
2학년때 인가 잘 기억이 나지않는데 재밌는 일이 있었다
그때 영어선생님이 새로 오셨는데 이제막 시험에
합격해서 첫학교를 배정되어 오신 여성 선생님이였다
그 선생님의 나이는 25살이고
그때는 참 어려운 어른 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직도 때뭍지않은 어린 나이였구나
하고 생각이든다
그 선생님과 어떻게 된건진 모르겠지만 어쩌다 친해졌었다 얼굴도 예쁘고
모두가 좋아하는 선생님이였다 자기가 맨날 신민아랬다
지금은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선생님과 함께 밤에 만나
술집에가서 술도 마셨었고 그렇게 친해져 잘 지냈었다
철이 없던 나는 교무실까지 찾아가 선생님을 귀찮게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얼마나 난처했을까 생각이 들기도한다
갑자기지만 뜬금 없는 소리지만 나는 초등학교부터
중학교때까지 반장 부반장을 놓친적이 없었다
내가 반장이였고 부반장이 있었는데 남자 부반장이
그 영어선생님을 좋아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친하게 지내는게 아니꼬아
내 뒷담을 그렇게 까고 다녔다고 한다
그와 같이다니던 무리중 한명이 나와 베프가되어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사이가 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이야기다
그때 쯤 인터넷으로 알게 된 노래하는 크루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크루라고 하기엔 3~4명밖에 없는 모임이긴 했다
그때는 변성기가 오기 전이였는지 높은음도 잘 올라가고
노래를 조금 했었다 그 크루에서 사랑받기위해 최선을 다했고
경희대를 다니던 크루장 인 형에게 돈을주고 영어과외를 받기도 했다
그때 나는 그 형에게 애정결핍을 채우려고 했었고 과외랍시고
두번정도 만나서 수다떨던게 다였다
나는 영어선생님에게 그 형을 소개팅 겸 소개를 시켜줬고
우리는 두,세번 술을 같이 마셨었다
그 형이 영어선생님에게 처음 본날 사귀자고 했다고 한다
자기는 오래보고 사귀는 성격이라고 처음본날 우리 앞에서
얘기를 해놓고 말이다 그말을 듣고 좀 짜증이 났던거 보면
나도 그 영어선생님을 좋아했던거 같다
그렇게 짧은 시간을 셋이서 보냈고 얼마 않있다
관계는 흐지부지 되었었다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그 형은 엄마에게 과외비를 선불로 2달치를 땡겨갔었다고 한다
정말 나중에 들은 소리라 참 씁쓸하기도 했다
그렇게 이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리고 병원에 다녀왔고 병원에서 나오면서
친해진 여자아이가 하나 있었다 날라리는 아니고
그냥 철이 없는 아이였는데 어쩌다 친해졌는지도
기억도 나지 않는다 우리는 서울사람 이였고
그 여자애는 인천에 한 남자아이와 연애를 하는 사이였다
그래서 그 무리와 우리 무리는 정말 친하게 지냈다
학교가 끝나면 그 시간에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제물포 역까지
친구들을 보러 매일 갔으며 그 친구들도 가끔 우리동네로 오곤 했다
서로 있는 돈 한푼 두푼 모아 노래방도 갔고
제물포역 지하에 바우바우라는 분식집에가서 떡볶이 하나
탕수육 하나를 시켜서 나눠먹었다
그렇게 매일을 보았다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다
우리는 노래방가서 안재욱의 친구라는 노래를 부르며
눈물바다가 된적도 있다 정말 평생 볼줄 알았던 친구들이였다
중학교 졸업 할때까지 그렇게 매일 보며 친하게 지냈었고
나는 그 친구들에게 정을 너무줘서
또 마음고생을 많이 했었다
그때즘 여자아이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나서
헤어지게 되었고 우리는 고등학교에 가며 서로
연락도 끊어지며 그렇게 즐거웠던 근 1년의 시간이 끝이 났었다
그렇게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고 고등학교 가면서부터
공부가 하고 싶었던 나는 고등학교 선택제로
한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열심히 다니려던 마음도 찰나 이미 망가져버린
내 생활패턴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였고
지각을 밥먹듯이 하고 학교에서는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어
한달정도 다닌뒤 결국 자퇴를 하게되었었다
그렇게 아무 의미 없이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갑자기 엄마가 짐을 챙기라고 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었다 엄마가 나를 다시 정신병원에 넣는다는 것을
하지만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따라갔다
정신병원에서의 기억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병원에 도착했고 진료가 끝난후 성인 남자 두명에게 잡혀
무슨 감옥 들어가듯이 두개의 철창을 넘어 병실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날은 괜찮았다 들어가서 2~3일 저도는 잠만 잤던거 같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던 병원이 아니였다
지옥이였다 바닦은 더럽고 밥은 맛도 없었으며
아무것도 할 만한게 없었다
거기 간호조무사 아저씨들은 우리를 벌래보듯이 하고
슬리퍼를 신고다녔는데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에도
밖에서 신던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화장실도 말이다
너무 최악이였다 입원을 하고 한 일주일동안
담배를 피는 꿈만 꾸었었다 무었보다도 처음엔 그게 제일 힘들었던거 같다
거기에도 내또래 아이들이 있었고 층이 나뉘어
밑에층은 여자들이 쓰는곳 위에층은 남자들이 쓰는곳 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서로 마주칠일은 별로 없었다
일주일에 한번정도 프로그램 하는날만 잠깐 모였었던거같다
거기에는 동갑친구가 두명이나 있었다 한명은
부모님 말을 안들어서 들어왔었고
한명은 차량 털이를 하다 보호관찰? 로 들어왔다고 했던거 같다
그나마 친구들이 있어서 얘기는 많이 나눴지만
마음이 그렇게 가지는 않았었다 이곳이 너무 싫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여자아이들과 일주일에한번 만나는 날이 있었다
청소년끼리 모여 여러가지 주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였는데 한 여자이가 우울증에 걸렸던 이유가 나는 기억에 남는다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갔는데 집에 돌아가는 길 에
그 친구 집에 불이나서 죽었다고 한다 그 일에 죄책감이 생겨
우울증이 생겼다고 한다 자기가 조금만 더 같이 있었으면
살릴 수 있었다고 믿는 아이였다
동갑인가 한살 누나였나 그랬던거 같다
그여자아이는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다 보니 친구가 소중했었나보다
나는 이해가 안되는 일이지만 위로해 주었다
그게 어떻게 네 탓이나며 말이다
웃기지 않는가 내자신도 우울증을 내탓을 하면서
다른사람에게는 위로를 전하고 있는게 말이다
그 아이와 친해졌었다 아니 그냥 마음이 쓰였었다
밥을 먹으려면 옥상으로 가야했는데 아까 말했듯이 2층이 여자 병동
3층이 남자 병동 4층이 식당 이였다
여자들은 밥을먹으려면 3층 남자병동을 지나 4층 식당으로 가야했고
그 지나가는 시간에 잠깐 잠깐 잠깐 인사를 나누었다
어느날 그 아이가 나에게 구겨진 쪽지를 던져주었다
거기에는 번호가 써 있었고 나가면 연락 하자는 내용이였다
나는 그 쪽지를 소중하게 갖고 있었다 이런재미도 있었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지옥이였고 감옥이였다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었고 참다참던 나는 샴푸를 먹었다
그렇게라도 병원을 나가고싶어서 말이다
친구들 앞에서 샴푸를 입에 짜서 4~5번 먹었었고
그 밤에 응급실에 실려간 것도 아닌 조무사 아저씨랑 걸어서
병원에 갔었다 응급처치를 받고 다시 병원에 돌아왔었고 달라질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미련하게 샴푸를 또 먹었고
그때는 격리를 당했었다
그 이후로 꽤 오랫동안 머리감는게 힘들었다
샴푸냄새만 맡으면 구역질이 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꾸역 꾸역 버티다 외출을 하루 받았었다
집에 왔었고 나는 그날 도망쳐서 부산에 있는 큰누나네로
도망을 갔다 아무리 싫어도 갈 곳이 거기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무서웠다 누나가 다시 병원에 넣지 않을까
무서웠다 하지만 별일 없었고 그렇게 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날 큰누나와 아빠는 통화를 했는데 아빠가 우는걸 처음 봤다고 한다
부산에 있다 집으로 와서 짐 정리를 하는데
분명히 챙겼던 그 번호가 적혀진 쪽지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흘린거 같았다 속상하긴 했지만
그 아이를 신경 쓰기엔 내 자신도 힘들었기에 대수롭지않게 넘겼다
그렇게 두번째 정신 병원의 기억은 여기서 끝이다
그리고 또 아무의미 없이 한 해가 지났다
18살이 되었고 고등학교에 1학년으로
다시 복학 하게 되었다 공부가 하고싶었다
그래서 나름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어버린
나의 진도는 아무것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미 뇌가 굳어버린 기분이였다
수학은 아예 손도 댈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학교생활은 재밌었다 우리반은 또라이들의 집합소 같았다
그 우두머리 중에 하나는 나였고 정말 철없이 놀며 지냈었다
복학생같지 않게 그 한살 어린 동생들과 친구가 되어서 말이다
창피한 얘기지만 천천히 지나가는 수박 트럭에 수박도 서리해서 먹어보고
(내가 한 건 아니지만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맥도날드에 가서 12만원어치 감자튀김을 시켜먹기도 했다
우리때문에 감자튀김이 털려서 한시간동안
셋트메뉴를 못 팔았다고 한다 그렇게 잘 지내다가
막 중간고사가 끝나고 사건이 터졌었다 복학생에
공부도 못하고 담배나 펴대며 학교를 다니던 나를
담임선생님은 싫어 하셨다 물론 당연히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쉬는시간 아이들이 뒤에서 장난치는걸 보고있던
나의 머리위로 책이 내리쳐졌다 담임이였다
그냥 가만히 보고 있던 나 에게 책을 휘두른 것이였다
화가 났고 어차피 이동수업이라 반을 옮겨야했기에 문을 박차고
이동을 했었다 이런일이 몇번 있었고 분노조절이 불가능했던 나는
결국 또 자퇴의 길에 들어섰다
이런일을 엄마게 말한적이 있었고 엄마는 사립학교라그런지
담임선생님에게 책이라도 드려야되는지 고민을 하셨다
자퇴를 하며 친구들과 멀어졌고 나는 원상복귀 되었다
그렇게 또 하루하루를 의미없이 살았다
성인이 될때까지도 성인이 되어서도 20살 때
인터넷으로 알게된 친구들과 친해져 방탄하게 놀았다
그때는 정말 미친 듯이 놀았다 금,토,일은 집에 들어가지도 않았으며
웃는일 도 많고 우는일 도 많았던 날들을 보내왔다
그때는 술도안마시면서 뭐 그리재밌게 놀았는지 참 신기하다
그러다 자존감이란 가지고 있지 않던 나에게 심한 여드름들이 올라왔고
피부까지 망가져버린 못생긴 나는 점점 움츠려 들었으며
인생의 나락을 느끼며 나는 점점 숨어들었다
친구들도 만나지않고 잠수를 탔으며
게임만하며 1~2년을 집과 피시방만 다니며 지냈었던거같다
그렇게 24살쯤 세상에 다시나오게되었는데
배드민턴 때문이였다 어렸을때 한때는 배드민턴 선수를 꿈꾸던
나는 어떤분의 초대로 배드민턴 모임을 나가게 되었고
또 거기있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바치며
배드민턴에 목숨을 걸고 살았었다 2년정도를
배드민턴에 미쳐 살았던거 같다 그러다
그 모임에서 처음으로 미친듯이 사랑을 했던
그분을 만나게 되었다 미술학원 원장님이였던
그분과 한달이라는 짧은 연애를 했었다
우리는 매주 주말만 볼 수 있었고
사랑=집착 이였던 나의 행동들에 힘들어 하던
내 첫사랑은 결국 이별을 고했고
나는 그날밤 펑펑 울며 같이 아는 지인분들에게 도와달라고 연락을 했었다
얼마나 찌질했을까 하지만 그럴 겨를도 없을만큼 슬픈 일이였다
아무리 매달려도 편지를 써도 영광까지 쫒아가도
그분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분도 나의 집착을 채워주기위해 노력을 많이 해주셨기 때문이다
백수였던 나와 하루종일 일 하는 도중에도 영상통화를 해주셨고
연락은 틈틈히 언제나 해주셨다
하루 하루 매시간 나와 함께 해주었다
그러다 하루는 연락이 안되길래 잠드셨나 했는데
페이스북 메시지창에 5분전 접속이 떠있길래
눈이 뒤집혀 전화를해서 서운하다고 했더니 나에게 이별을 고하셨었다
나는 왜 그랬을까 왜 그 순간을 참지 못했을까
왜나는 그를 믿지 못하고 기계를 믿었을까
물론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후회되는 일이였다
하지만 그날 내가 전화를 하지 않았어도
내가 변하지 않는 한 우리는 금방 끝날 인연이였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자살생각만 가지고 있던 나는
매마르고 시들어갔다 오죽하면 매형이 나에게 말했었다
요즘 널 보면 금방 죽을 사람 같다고 했었다
그때는 별짓을 다했던거 같다 인터넷에 재결합을 검색하면서
시라노연애조작단이라는 업체를 찾아서 돈을 내고 상담도 받아보았다
거기에서 나의 얘기를 했고 200만원을 주면 도와준다고 했다
돈만 있었다면 그런 짓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만한 돈이 없었기에 허망한 마음을 가지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정도로 나는 피폐해졌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정말 그냥 아무한테나 연락을 한 번 했었다 도와달라고
그 분은 카페에서 나를 만나 위로해 주셨고 지금색각해보면
나는 그렇게라도 살고싶긴 했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살시도를 또 했었고 약을먹고 잠든 나는
눈뜨니 병원에서 위세척을 하고 있었고
다시 눈을 뜨니 집이였다
그렇게 또 살았다 끈질기게 살아졌다
그렇게 또 하루하루 죽을듯이 살다 다니던 피시방 매니저형이
알바할 생각 없냐며 나에게 물어봤다
몇일만 고민해본다 하던 나는 결국 피시방 알바를 하게 되었고
나름 할만 했었던거 같다 돈도 쏠쏠했다
야간 알바기에 일 잠 일 잠 뿐이였다 배드민턴도 못치고
그렇게 나는 그분을 조금씩 잊어갔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그때가 또 그분이 가슴아픈 추억에 남아있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나는 졸업사진을 제때 찍어본적이 없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사진 찍기 전날
가장 마음에드는 옷을 세탁기에 돌리고 있었다
우리집 세탁기는 나보다 나이가 많아 뚜껑이 없었다
오래 써서 뚜껑이 부러져 그냥 쓰고 있는 상태였고
빨래가 잘되고있나 궁금하던나는 배즙을 하나 들고
빨래를 보러갔다 그렇게 까치발을 들며 세탁기 속을 보는 순간
정말 만화처럼 배즙이 세탁기안에 빠졌다
탈수중이였지만 나는 누나에게 혼날 생각에
손을 집어넣었고 내팔에 빨래가 감겨 세탁기는 멈췄다
정말 아팠다 놀래서 누나를 불렀고 누나는 달려와서
세탁기를 끄고 난후 내손을 풀어 주었다 정말 너무아팠다
잠을 못잘 정도로 하지만 아파도 응급실따위는 가지 않는 집안이였고
끙끙밤새앓다가 병원에 갔다
월요일아침이라 사람이 너무 많았다
한시간을 넘게 기다리다 엑스레이를 찍고 진료를 봤는데
부러져서 뼈가 돌아갔다고했다
누나가 부러진건 아닌거같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말이다
그때부터 울음이 터졌다
너무 무섭고 더 아픈 기분이였다
무슨 기계에 팔을 올려놓고 의사선생님이 힘을 주어
팔을 몇번 비틀었고 뼈는 맞쳐졌다 나는 비틀때마다
정말 아파서 소리소리를 질렀고 끝나고는 엄살이 심하다며 핍박을 받았다
그래서 초등학교 졸업사진을 못찍었고
중학교때는 병원에있어서 못찍었다
고등학교는 다니다 말았고 말이다
더 어렸을때 4살5살 무렵이였던거 같다
누나가 안방겸 거실을 청소하고 있었고
거기 탁자에 있던 정확히 맥주잔 안에 귤껍질이 들어있는걸
부엌에 있는 엄마에게 갖다주라며 나에게 주었고
그걸 들고가던 나는 미끄러지며 넘어졌다
유리가 깨져서 발바닥 옆쪽에 박혔고
크게 찢어져 살이 튀어나왔었다 아프고 놀래서
나는 펑펑 울었고 놀란 엄마는
수건으로 내발을 감싸고 안아서 뛰쳐나갔다
진짜 모르는 차를 잡아서 도와달라고 말해
그 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그뒤로 마취를 했었는지 기억은 없고 상처만 남아 있을뿐이다
그때도 병원에 입원을 했었는데 면회 올 때마다 누나들이 사오던
해피밀 장난감들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반지를 끼고자다가 긁어서 손가락이 부어오른적이 있다
그래서 동네 정형외과를 갔는데 맞는 뺀치가 없어서
응급실까지 갔었다 그 응급실에서
병원에 입원했을때 보았던 의사가 되어있는 의대생 형들을 만났었다
그들은 더 발전해 있었고 나는 멈추어 있는것도 모자라 퇴행하고 있는 기분이였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길이 얼마나 비참하던지
그때의 기억이 가끔 나긴한다.
나는 28살에 가장 많은것을 이루었다
검정고시도 합격했고 운전면허도 땄다
다른사람이 보면 별거 아니겠지만 검정고시를 보고 집에 왔던날
엄마는 잘했다며 우셨고 막내누나도 덩달아 울었다
가 채점을 해보니 수학을 100점 맞았길래 참 신기했었다
그래도 내 인생에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나는 재능이란걸 가지고 있지 않다
베테랑 개인 택시기사 아버지를 둔 나는
운전면허 도로주행에 4번째에 합격했다
나는 두 가지를 잘 못한다 하지만 엄마가 남자는 1종 이라며
1종 보통을 따게 하셨고 클러치를 잘 못다루던 나는
사실 면허를 딴 지금도 못 다룰거 같다
면허를 따고 운전할일이 없어 한달뒤면 31살이 되는 나는
3년째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다 차를 살 능력이 도 없고
운전할 자신도 없다 하지만 나이가 먹으니 차를 사는 주위사람들이 부러울 뿐이다
나는 20살까지 사는게 꿈이였다
20살이 되면 다시 자살기도를 하려고 했고
그 스무살의 추억이 좋았던걸 보니 그때 잠시 행복 했었기에
잊고 있었던거 같다 하지만 잠시 잊었을 뿐
그 기억들은 시도때도 없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그래서 결심했다 30살까지만 살아보자
하지만 그 다짐도 무심하지
나는 31살을 달려가고 있었다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온다 군대를 간다는거 대수롭지 않았다
오히려 다녀오면 내가 좀 더 강해지길 바랐었다
그렇기에 군대에 가는것도 두렵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신체검사 날짜가 잡히자 두려움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신체검사를 받기위해 내가 다녔던 병원기록을 때어갔고
그 서류를 신체검사날 제출했다
중앙대병원 기록과 한참 다니다 거리가 좀 멀어
집앞에 잠시 다녔던 기록까지 제출했다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께 그 서류를 제출했고
선생님은 서류를 대충 흝어 보셨다 그러자 나에게
재검 판정을 주시면서 집앞에서 때온 서류는 알아볼 수가 없으니
중앙대병원을 계속 다니라고 하셨다 그래서
중앙대병원으로 옮겨 나는 병원을 다시 다니기 시작했고
재검날 서류를 다시 제출 하였다 선생님은 나에게
2급 판정을 내리셨다 괜찮았다
군대가 가기 싫었던건 아니니깐 그래서 아무생각 없었다
내년쯤이면 가야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장이 나오자 그 생각은 달라졌다 2개월 남 짓 남지않은
시점에 영장을 받았다 나는 갑자기 두려워졌고
재검 신청을 했다 재검신청은 대구까지 가야했고
나는 서류를 준비해 대구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흔히 공익이라고 불리는 것이였다
그 뒤에 빨리 공익을 가려고 신청을 두번정도 했는데
둘다 떨어졌었다 하루라도 빨리가고 싶은 마음이였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2~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20대 중반이 된 나는 통지서를 하나 받았다
대기면제라는 통지서였다 그렇게 나는 신의 아들이 되었다
그때는 참 신이났었다 하지만 아쉽기도 했다
군대에 가서 마음이 단단해져 세상을 살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에 갔다면
나는 이미 죽어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재검을 받을 시기쯤 이였다
그때 나는 롤이라는 게임에 빠져있었고
하루 종일 피시방에서 그 게임만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나는 게임을 하다 동갑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 칭찬을 하다 친해졌다
같이 게임을 하고 연락처도 교환하고 지냈고
지방에 살던 그 친구들을 만나러가고 싶었지만
그때는 돈이 없어서 ktx 타는것도 무리였던 시기였다
그 시기에 대구에서 재검신청이 왔었고
그걸 빌미로 아버지에게 돈을 요구했고 대구에서 재검을 받은뒤
친구들에게 가서 그 돈으로 족발을 사줬던 기억이 있다
그중에서도 한 친구랑 특히 친하게 지냈는데
그 친구는 부모님이 없었다
한마디로 고아였고 얼마 후에는 고아원도 나가야하는 상황이였던걸로 기억한다
그 친구는 소주를 참 좋아했다 술을 안좋아하던 나는
그 친구에게 같이 술을먹으며 물은적이 있다
“소주가 맛있어?”
그말에 그친구는 허탈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술이 맛있었어서 먹겠냐 안좋은 기억을 잊으려고 먹는거지”
그 답변에 나보다 그친구가 더 걱정이 되었던 순간이였다
한동안 친하게 지내던 그 친구들과도 얼마 지나지않아
내가 사는게 힘들어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렇게 서서히 멀어져갔고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인생 이란게 정답도 없고 틀린것도 없다 다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틀렸다 생각하고 절망에 빠져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나는 어렸을때부터 찌질했다 초등학교 6학년때
한 친구가 자기 따까리를 괴롭혔다고 나를 때린적이 있다
그 친구는 노는 무리에 속해 있었고 나는 무서워서 아무말 없이 맞았었다
너무속상해서 점심시간에 집으로 갔고 집에간 나는 울음이 터졌다
누나들은 왜그러냐고 물어봤고 나는 상황 설명을 했다
화가 난 누나들은 학교에 찾아왔고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고있던 그 친구를 불러서 훈계를 했다
어떻게보면 화를 낸게 맞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은 커졌다
모든 사람들이 그 일을 알게 되었고 나는 집에가서 이른 찌질이가 되었다
한 여자아이는 나에게 와서 네가 너무 심했다
라는 말을 했었고 나는 내가 뭘잘못을 한지 모른채 그말에 비수가 꽃혀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담임선생님 귀에까지 들어간 그일은
우리 둘을 불러 면담을 하셨다 어떻게 할거냐고 둘이 화해를 하거나
매일 한시간씩 싸울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둘중에 하나를 택해야 했고
그 친구와 원하지 않는 화해를 했어야 했다
사과를 받지도 않고 우리는 화해를 하게 되었다
커서 생각해보니 참 씁쓸한 사건 이였다 피해자는 나였고
사과도 받지 못하고 선생님의 등초리에 화해를 해야했던 내가 안쓰러웠다
그 선생님은 막 위임한 28살의 어린 선생님 이였고
그런 선생님을 지금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그 친구와 중학교 올라가서 까지 친하게 지냈다
물론 학교에서만 이다
그 친구는 항상 거짓말을 했다
다른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거짓말들이 다 보였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영향력이 있던 그친구와 3년내내 같은반이 되었고
손절할 수는 없었기에 거짓말을 믿으려 노력하며
학교를 다녔던거 같다 그 친구는 노래를 참 잘했다
나는 가진것이 하나 없었기에 노래를 정말 잘하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는
그 친구가 참 부러웠었던거 같다
초등학교 5학년때의 일이다 나는 부반장이 되었고
임원수련회를 가게 된 날이였다 어느때나 바쁜 엄마는
무서운 둘째누나에게 아침에 학교 가기전에
나에게 김밥을 사주고 가라는 말을 했고
아침에 은박지에 꽁꽁 싸여 검은봉지에 들어있언 참치김밥 두줄을
나에게 주고 누나는 학교에 갔다 그 참치김밥 이 든 검은 봉지를 들고
나는 학교에 갔다 수업을 좀 들은후 점심쯤 수련회로 출발했고
수련회에 도착해서 밥을 먹는시간이 왔었다
다른 친구들은 옹기종기 모여 엄마가 예쁘게 정성스럽게 싸준
김밥 유부초밥 볶음밥 등이 들어있는 도시락을 꺼내 먹었고
임원중에 별로 친한 친구가 없었던 나는 혼자 멀리 앉아
검은 봉지 속 은박지를 열자
그 참치김밥이 반은 뭉개져 먹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있는걸 보고울어버렸다
우는게 창피해 다른친구들에게 들킬까봐 멀찌감치 떨어져 눈물을 흘리며
배고픔에 눈물 젖은 참치김밥을 삼켜냈다 외로웠다 항상 그랬듯이 외로워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쯤인가 운동회를 하는 날이였다
그날 무슨 일인지 나는 혼자였다
부모님도 누나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 많은 인파중에 나의 가족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집이 가까워서 점심먹을 시간에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가란 엄마의 말만 기억이난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집에가서 밥을 먹었고
나는 다시 학교로 와서 운동회를 이어갔었다 외로웠다
그 행복해보이는 가정들 속에 나는 나는 정말 혼자였다
항상 그랬었다 외로움을 생각하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많지는 않다
항상 외로웠기 때문에 너무 많은 기억이 과부화 되지 않았을까 싶다
중학교 졸업식 날이였다 가족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나는
졸업식에 올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졸업식을 진행하고 있었고
교실뒤에는 나이든 엄마가 혼자 꽃다발을 들고 와 계셨다
그때는 말은 못했지만 기뻤다 나이든 엄마가 학교에 오는걸 창피해했던 나는
그날 처음으로 엄마가 반가웠다
눈물이 났지만 꾹 참았다 그만은 인파속에서 울 수는 없었기에
초라한 내가 더 초라해 지고 싶지 않았기에
그날 나는 엄마와 사진한장을 찍었다 그사진이 아직도 기억이난다
빨간 노스페이스패딩을 입고 꽃다발을 들고 엄마옆에서서 찍었던
그 사진을 말이다 하지만 그 사진은
이 세상에 없다 그 사진이 있던 핸드폰을 어느날 내가 부숴버렸기 때문이다
참 후회가 되는 일이다 살면서 나는 자전거를 참 많이 잃어버렸다
어쩌다 잃어버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던
내 자전거는 반으로 접혀 어느 전봇대 옆에 버려져 있었다
그 자전거는 나의 첫 자전거였고 네발자전거 였던 것을
아버지가 뒷바퀴를 빼 두발 자전거로 만들어 주셨던
소중한 자전거였다 두발자전거를 처음 타게 되던날
나는 아버지와 학교에서 자전거를 탔다
정말 기분이 좋았지만 두발자전거가 서툴던 나는
결국 화단에 빠져 바퀴가 찢어지고 말았었다
요즘은 보기힘든 자전거 집에가서 바퀴를 갈아주셨고
그날의 기억은 아버지와의 행복했던 마지막 기억이였다
초등학교 1학년때 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비오는날 먼지나듯이 맞은 적이 있다
아버지는 택시를 하셔서 돈가방을 들고 다니셨는데
그 돈가방을 항상 옷장 맨밑에 넣어놓으셨다
나는 그 돈가방에 손을 댔었고 친구들에게 맛있는걸 사주면서 몇일을 보냈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돈이 없어지는걸 느끼셨고
점점 대담해져 빼가는 돈이 늘어가던 찰나 아버지에게 걸리고 말았다
나는 그때 왜 그게 나쁜짓이라고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나는 아버지에게 비오는날 먼지 나듯이 맞았고 그게 아버지가 나를 때렸던
첫 기억이다 내가 담배를 처음 입에 대본건 6~7살때 쯤이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던날 시골에서 사촌형이
할아버지의 담배를 몰래 빼와서 나에게 한번 해보라고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배를 입에 대봤고 입에넣다 빼는것이 아닌
빨아야 한다고 친절히 알려주었고
처음 담배를 빨아보았던 나는 기침을 엄청 했다
그걸 보며 웃었던 사촌형이 기억이난다 그형도 9살인가 그랬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담배가 나쁜 것 인지 몰랐다 아버지 택시와이셔츠 앞 주머니에는
항상 담배가 있었고 그게 나쁜 것인지 몰랐던 나는
한가치를 빼서 가지고있다 아버지 친구가 놀러왔을 때
옆에서 담배를 같이 핀 적이 있다
그때 그 아저씨은 나에게 화를내며 혼을 내셨고
그때야 담배가 나쁜 것임을 알게 되었었다
8살때 큰누나가 큰 매형을 집에 데리고 왔다
결혼을 하기로 한것이였다 그날 나는 매형이 마음에 안들었다
그래서 매형 앞에서 꼬장을 부렸고 결국 참지 못한 누나들은
나를 작은방에 가뒀었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였던 걸 알았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좋아하는 큰누나를 그 에게 뺏기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
왜 그랬는지 나도 참 궁금하다
그렇게 8살때 첫 조카가 생겼고 나는 조카를 좋아하면서도 질투에 살았었다
엄마가 신생아였던 조카에게 이불을 사주셨었는데
나도 없던 이불을 조카에게만 사줘서 질투가 났었다
나는 갖지 못했던 것을 큰 조카는 하나씩 가지고 있었고
그래도 조카를 정말 이뻐했지만 마음 한 켠에는
부러움과 시기 질투가 자랐던거 같다 지금은
그 조카가 나도 안다녀온 군대를 다녀왔고 대학에 다니고 있다
나는 조카들을 안 좋아한다 부모님에게 마저 정이 없는 내가
조카들을 좋아할까 싶다 하지만 조카들을 안좋아하게 되었던건
매형들에게 맞은 후부터 였고 그들의 피가 흐르는 자식들을
내가 좋아할 수 는 없을거 같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가족이란 나에게 그런 존재다 애정도 없고 의지할 수 도 없는
그런 존재 말이다 나는 중학교 1학년때 처음 소아 심리 치료센터를 갔었다
둘째이모가 내가 걱정 되었는지 엄마에게 말을 하고 데려갔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살짝의 우을증 진단을 받았고
2~3개월동안 매주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았었다
진전도 없고 꽤 비싸던 병원비를 아버지는 내기 힘들어 하셨기에 그만두었었다
강아지를 한번 키워보고 싶었던 나는 강아지를 사달라고 졸랐었고
그걸 지켜보던 막내누나는 수의사를 언니로 두고있던 친구에게
수소문해 시츄 한마리를 데려오게 되었다 행복했다
이름은 에비게일이였다 멋있는 이름을 짓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그마한 시츄에게는 과분한 이름이였고
에비라도 부르기엔 좀 그랬던 그 시츄에겐 게일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한두달 동안은 행복했다 강사모에서 만난 누나들과 애견카페도 가보고
산책도 해보고 좋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책임감이란 1도 없던나는 게일이를 방치했고
결국 키우는건 막내누나였다
게일이가 1살쯤 되던 날이였다
그나마 게일이를 키우던 누나가 사회복지학과였기에
해외로 6개월동안 봉사를 가게 되었고 봐줄 사람이 없던 게일이를
엄마의 친구분에게 보내게 되었다
외면했다 나는 내 중심적이였고 게일이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채
그렇게 엄마 친구에게 보내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누나는 게일이를 보내며 편지를 써서 보냈다고 한다
잘 부탁드리고 혹시나 못키우게 되시면 버리지 마시고
다시 되돌려 달라는 편지를 써서 보냈고 그 편지가 무색하게
강아지가 생각보다 크다는 이유로 시골로 보내졌다고 한다
16년이 지났다 정말 건강하다면 아직도 어딘가에 살아있을 게일이가
수명을 다해 이세상에 있지 않을 게일이가
나는 보지는 못하더라도 소식이라도 듣고 싶다
미안한 마음 뿐이기에 가끔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적도 있다
어느날 또게일이가 생각나 찍어놓은 사진을 찾아보았는데
그마저 다 날라가 버렸기에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우리 게일이가 많이 보고싶다
그 뒤로 막내누나는 강아지를 키우자는 말만해도 화를 냈었다
물론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그 소중한 생명에게 상처를 준 나는 강아지룰 키울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28살때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나는 국비지원을 받아 제과제빵 학원을 다녔다
빵을 좋아하는 나에게 제빵사가 되고싶은 꿈이 조금이나마
있었기 때문이다 2개월동안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는
한 유명한 빵집에 취업을 했었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일에
나는 서툴렀고 두가지일은 잘 못하던 나는
한달만에 짤리고 말았었다 서러웠다
잘 하고싶었는데 열심히 했는데 나는 인정받지 못했었다
그렇게 또 방황을 하던중 누나가 유명한 빵집에 공고가 나왔으니 한번
지원해 보는게 어떻겠냐고 물었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무서웠고
자신이 없었기에 한참을 고민하던중 내 옆에있던 어떤 분이 용기를 주었기에
면접을 보았었다 나는 바로 합격을 했고 큰 빵집에 출근을 하게되었다
정말 힘들었다 지금 까지 해본 일중에 가장 말이다 택배 상하차보다 힘들었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꾸역꾸역 버티며 다녔었다
나는 인정받기 위해 노력을 해왓지만 한 여자대리는 나를
탐탁해 하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을 시달렸지만 그래도 버텼다
모두가 나를 싫어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잠이 많기에 점심시간에 밥도 먹지않고 잠을자며
일을 다녔다 하지만 1년쯤 다녓을때 번아웃이 왔고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던내가 이틀연속 점심시간에 알람을 못들어
지각을 한적이 있었다 그때 그 여자대리는 나에게
“죽여버리고 싶다”라는등 폭언을 했었고
그 말에 더이상 일은 할 수 없었던 나는
바로 그 다음날 사직서를 내었다 일년을 그 트라우마에 살았다
일을 할 수 없었고 지금도 아직까지도 그 상황에에 화가나며
언젠간 다시 만나게 된다면 욕을퍼부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물론 나도 잘못을 했지만 말이다
그 뒤로 일년동안 또 방황을 했다 너무 힘들고 슬픈 하루 하루를 보내다
어느날 갑자기 다시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졌다
물론 그런 생각이 몇번 들었었지만 그날은 무슨 용기가 났는지
나는 밤을 새워 강아지를 알아보았다 그러다 어느 곳 에서 강아지를
199000원에 입양이 가능하다는 글에 속아 방문을 했지만
강아지들은 그 가격에 구할 수 없었다 강아지들은
100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였고 얼마정도 생각하고 왔냐고
물어보는 직원분에 말에 자존심이 있어 199000원의
광고글을 보고 왔다고 하지못하고 50만원 선에서 보고 있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보여준게 우리 짜장이 였고 내손을 핥아주던 짜장이를
고민도 없이 집에 데려오게 되었다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엄마에게 방에 못들어오게 하며
4일정도를 숨겼다 그러다 놀러온 막내누나가 내 방에있는
강아지 용품들을 보고 전화를 했다
강아지를 또 입양했냐고 말했다 누나의 잔소리에 나는 그냥
“내가 죽어 버릴테니 내버려둬”
라고 말했고 그 말에 누나는 왜 말을 그렇게 하냐며
강아지를 데려오라고 했다 혹시나 들킬까봐 나갈때마다
크로스백에 넣어 다니던 짜장이를 누나에게 처음 소개 시켜줬다
그렇게 우리는 진짜 가족이 되었다
누나는 우리 짜장이를 예뻐해줬고 지금도 나보다 예뻐해주고 있다
그러다 욕심이 생겨 곱백이를 입양했다 혼날걸 알았던 나는
누나와 엄마게에게 거짓말을 했다 친구가 입양을 해서
잠깐 나에게 맡겼는데 그뒤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나는 후회하고 있다
그날 짜장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짜장이도 곱백이도 더 행복한 가정에 입양되어
지금도 행복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내가 어렸을 때 항상 집에 혼자 있었는데 주말에 왜인지
누나가 출근할일이 생겼는데 나를 데려갔다
그래서 누나는 열심히 일을하고 나는 옆에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소변이 마려웠다.
“누나 나오줌마려워”
누나는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그때는 화장실을 찾아가지도 못할 나이 였던걸로
기억한다 소변을 참고 참고 누나 한테 쌀거같다고 계속
얘기를 했지만 누나는 조금만 참으라는 소리만 계속 했었다
그러다가 결국은 의자에앉아 오줌을 싸버렸고
혼날줄 알았던 나는 무서웠지만 누나는 화장실에가서
나를 씻기고 옷을빨아서 선풍기에 널어주었다 그 큰 회사에서
혼자 발가벗고 있었다 물론 출근한건 누나와 나뿐이였지만
너무 창피하고 누가 들어올까 무서웠었다 안그래도 부끄러움이
많은 성격이였는데 그때 수치심이라는 걸 처음 느껴봤던거 같다
나의 첫알바는 15살 때 였다 한 헬스장에서 16살이라고 속이고
전단지 붙이러 다니거나 헬스장 청소, 탈의실청소 이런
일을 하는 2시간짜리 알바를 했었다
매니저님도 직원분들도 너무 착했고 좋았었다
3개월정도 하다가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그만두게 되었던거 같다
중학교 1학년때 한 친구가 전단지붙이는 알바를 하자고 제안했다
별로 친한 친구는 아니였는데 이친구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랑 밥을먹다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서 숟가락을
밥그릇에 꽂아놓고 화장실을 다녀왔다가 아버지한테 제사 지내냐며 맞은적이
있었던 재미있는 친구였다 돈이 필요했던 나는 친구를 따라
나섰고 피잣집에서 전단지를 받아 붙이러 다녔었다 한 여름이라
너무 더웠고 정해진 구역을 다 붙여도 전단지가 많이 남아버린
것이였다 그걸 우리는 그냥 편의점에 가서 쓰레기봉투에 버렸고
다음날 그 친구는 나에게와서 피자 배달부가 배달하다가 우리가
전단지를 버리는걸 봐서 돈을 못받았다고 했다
그걸 멍청하게 믿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친구가 그냥 그
돈을 꿀꺽 했던거 같다
17살 때 법적으로 알바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었고
샤브샤브집에서 알바를 했었다
열심히 다녔고 매니저님도 나를 좋아해주셨었다
왜 직원을 안하고 알바로 왔냐고 물어봤었는데
17살에 직원을 할 수 있을 리가 지금 생각해보면
좀 멍청했던 사람같았다 열심히 일을하다
지각을 몇 번 하기 시작했다 그 때도 게임에 빠져 사람들과 밤새
게임을 하는게 일상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조금 찍히게 되었고
거기 나보다 늦게 들어온 남자직원이 나를 싫어하는거 같은 느낌을
항상 받았다 나에게 발을 건적도 있었기에
같이 알바하는 누나에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러다 나는 일을 그만둔다고 말했고 그말을 하던날 그 매니저는
나에게 쌍욕을 했다
욕을 하며 나에게 왜 자기 직원을 욕하냐고 말했다 정확히
나에게 강아지라고 했던거 같다
그렇게 쌍욕을 먹고 나왔다 욕을 먹은건 나인데 말이다
그리고 얼마있다 생일 이였던 나는
케잌이 너무 먹고 싶어서
그 월급으로 케잌을 사다가 방에서 혼자
울면서 먹었던 기억이 있다.
짜장이를 키우면서 재밌었던 일도 있었다
강아지를 처음 키우는것과 마찬가지로 지식이 없던나는
보듬이라는 강형욱 선생님의 학교를 알게 되었다
1년약정에 200만원이라는 거금의 금액을 지불하고
그 학교를 다녔었다 차가 없었기에 친한 형이 갈때마다 태워줬고
거기에 다니던 짜장이는 인기스타였다 조금 특이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짜장이를 예뻐하던 선생님들이 추천을 해주셔서 강형욱 선생님과
함께 유투브를 찍은 적도 있었다 짜장이는 나보다 유명한 강아지다
유치원 다닐때의 일이다 그날은 나와 막내누나 둘이 집에 있었고
막내누나는 작은방에서 무언갈 하고 있고 나는 안방에서 티비를
보고 있었던거 같다 누가 문을 두드려서 나가봤더니 어떤 할머니가 서계셨다
나보고 엄마가 집에 있냐고 물었다 잠시 나가셨다 했고
할머니가 자기는 엄마 친구인데 잠깐들어가도 되겠냐고 했다
나는 들어오라고 했고 그분은 안방까지 들어와 아버지의 돈가방을 뒤졌다
나는 아무생각 없었다 그냥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주머니가 동전을
몇 개 흘렸기에 주워서 드렸다 그랫더니 나에게 500원을 주셨다
그걸로 가서 뽑기를 했다
엄마가 돌아왔고 얘기를 했더니 도둑년이였다 그걸 그때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븅 신인거 같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혼내지 않으셨고 오히려 막내누나가 자기를 왜 안불렀냐며
뭐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멍청했던거 같다
매미가 왔던 해였다 어린 나는 엄마아빠와 함께 자고 있었는데
자다가 새볔에 깻더니 혼자 남아있었다 어두컴컴한 방안에 혼자 있는게
무서워서 일어나 엄마 아빠를 찾았는데 집에 계시지 않았다
밖에서 인기척이 났고 나가보니 물난리가 나서
물에잠긴 지하집을 도와주고 계셨다 비가 엄청 왔다
억수로 쏟아졌다 그렇게 비를 맞으며 엄마아빠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날이 나는 왜인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살면서
비를 그렇게 맞아본적이 없어서 인거같다
나는 금사빠다 외로움을 많이타는 사람들이 많이
그렇지 않나 싶다 정이 많아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쉽게 좋아하고 쉽게 포기하고
물론 가슴아픈 정도는 비슷 할 것이다
마음의 아픔은 비교할 수 없는 것 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에게는 짧은 시기에 사랑하게 되어 사랑을 퍼주면서
30년동안 나 하나 사랑하지 못하는지 의문이다
내 자신하나 좋아하지도 못하면서 다른사람이 나를
사랑해주길 바라는 마음만 갖고 살아왔고
구걸하고 요구했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를 조금만 더 사랑했다면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면 나는 지금
어땠을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항상 듣는 노래가 있다
“나의 자라나는 마음을 못 본채 꺽어버릴 수는 없네“
라는 구절이 들어간 잔나비의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라는 노래다 짝사랑이라는 것을 참 많이 해왔다
표현도 잘 하지못하고 누가 날 좋아하겠어 라는 생각을
달고 살아왔기에 좋아해도 표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이 아파했고 많이 슬퍼했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시들어가고 있는 기분이다
나는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놓을 생각이다
이렇게 죽을 생각을 하면서도 걱정하는게 무엇이냐 하면
사진관에서 영정사진을 찍으러 왔다고 하면 재수없게
생각할까봐 그게 두렵기도하다 그렇게 나보다 남의 시선이
더 중요하고 신경쓰인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해주시던
말이 있다 누군가 때리면 그냥 맞고 들어와라
누군가 욕을하면 네 네 하고 넘겨라
우리아버지도 그런사람이다 가족보다 남이 더 중요하고 자기가
이룬 가족,자식보다 자기원래의 가족이 더 소중한 그런 사람이다
언제나 나를 탐탁지 않아 하셨고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셨다
칭찬따위도 한번도 받아본 적 없었다 아니 관심이 없으셨다
차라리 없는게 낫지 않았을까 그런생각을 아직도 하곤 한다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었다 나는 그때도 아무생각도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했었던거 같다 그냥 중환자실에 앉아있는 아버지가
안쓰러울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던거같다
철없는 소리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가족애가 없는 나는 그렇다
아버지에 대한기억은 이렇게 딱 두세개 뿐이다 자전거 타던날
맞았던날, 쓰러지셨던날 그거말고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것일 수 도 있겠다
8살때부터 50미터정도 거리에사는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친구와는 정말 별일 없으면 매일 붙어있을정도로 친했었다
그 친구는 1남 3녀중 막내였다 그래서 잘 통했는지 모르겠다
나쁜 아이는 아니였는데 돈이 많아서 돈으로 사람을 좀 부리는 친구였고
자기중심적인 싸가지는 좀 없는 친구였다
매일 나와 친구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피시방비를 내줬고
라면도 사주고 그랬었다 그 친구에게 나는 하인 같은 존재였고
우리에게 그 친구는 돈줄 같은 느낌이 아니였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정말 친한 친구라 생각했고 그 친구와
오래오래 지내고 싶어 비위를 내내 맞추며 친하게 지냈었다
하지만 그 친구와의 기억은 잘 없는거 같다 특별히 동네에서
노는거랑 같이 학원을 다닌거 말고는 없어서 그런가보다
그러다 그 친구랑 사이가 틀어진건 중학교1학년때 였다
점심시간에 같이 농구를 하고 있었는데 나는 운동을 좀 격하게 하는
스타일이라 하다보니 격해졌고 그 친구와 부딪혔는데 나에게 욕을하며
짜증을 냈었다 그때 6년동안 참아왔던게 그날 터졌던거같다
그 친구의 멱살을 잡았고 주먹다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뒤로 사이가 멀어졌다 소중한 친구를 내 손으로 하나 잘라낸 것이다
pc방 알바할 때 그친구가 몇 번 온 적이 있었다 한번쯤 사과를 하고 싶었지만
말이 안떨어졌었다 그놈의 자존심이 뭔지
그래도 올때마다 음료 하나씩 서비스로 주고 오긴했었다
지금 연락하는친구는 딱 두명이다 여자아이하나 남자아이하나
여자아이는 중학교때부터 메이플을 같이하다 친해졌었고
남자아이는 내가 병원에서 퇴원을하고 학교에 잘 안나갈 때
가정통신문을 전해주러 오거나 시험범위를 알려주던 친구였다
물론 두 친구다 잠시 친했을 뿐이였다 여자아이랑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기에 한순간에 멀어졌고
남자아이는 별로 친하지는 않아서 인사만 하고 지냈었는데
고등학교 입학하고 싸인펜이 필요한데 살돈도 없고 빌릴 친구가 없어서
빌릴겸 그 친구네 놀러갔다가 친해져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안면만 있던 그 둘을 내가 소개시켜줘서 셋이 친하게 지냈고
서로 연락 없이도 걱정이 없는 사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가끔 만나며 지냈지만 20대중반 쯤부터는
거의 연락도 안하고 지내다가 최근에 여자아이한테 연락이 와서
다시 연락을 가~아끔 하고 지낸다 오늘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죽기전에 자서전을쓰는데 너희와의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쿨타임돌았냐고 답장이 왔다 나는 이런얘기를 평생 해왔기
때문에 이런 답장이 온 것이다 쓸데없는 수다를 떨다가 친구가물었다
뭐가힘드냐고 자기는 사람 때문에 힘들면 친구들 생각이 나는데
니는 왜 연락한번 안하냐 물었다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한 기분이였다
생각해보면 내가 먼저 연락하는일은 항상 뒤져야겠다 라는 말을 할 때뿐이였던거
같다 어떻게보면 가장 친한 친구들이자 가장 어려운 친구들이 아닐까
싶다 잃을까봐 무서운마음도 한켠에 자리잡고있는거같다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는 모르겠다 사실
만약 그 이유가 친구들을 귀찮게 하고싶지 않아서 라고 생각해 봤지만
그랬다면 죽는다고 연락도 안했을터 모순인거같다 그럼
나는 위로를 받기위해 죽는다는 소리를 하는걸까?
라는 생각을 잠시 가져본다
인생은 혼자 사는거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도 있지만
인생은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후자쪽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혼자 동떨어져 있기에
여기까지 온거같다. 의지하는 것 내게는 왜이렇게 어려운 일 일까?
혼자사는 것도 못하고 의지하는 것도 못하는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유치원다닐때쯤 어느 크리스마스날 이였다 그날 동네친구들과
아침부터 놀다가 뭔가 가지러 점심쯤 집에 들어왔는데 안방에 새 스케치북과
새 크레파스가 같이 놓여있었다 집에 있던 막내누나에게 이게뭐냐고
물었고 누나는 산타할아버지고 놓고간거 같다고 했다 나는
너무 신이나서 친구들에게 가서 자랑을 했고 산타를 믿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몇시간뒤 문방구에 갈일이 생겨서 단골 문방구에 갔는데
무언가 사고 나오는데 아저씨가 한 말씀 하셨다
“누나가 너 준다고 스케치북이랑 크레파스 사갔는데 받았니?”
라고 말이다 그때 나의 마음은 와장창 무너졌다
산타는 없다는걸 그렇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꾀 큰 충격이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막내누나에게
눈물날 정도로 고마운 기억이다 근데 누나는 기억을 못한다
나는 산타라는게 없다는걸 일찍 알아차린 편이지 않나싶다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던날이였다 겨울한파 속에 눈이 많이와서
쌓인 날이였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집앞에 나가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택시를 하는 아버지는 모임이 있으셨고 엄마와 함께 그 모임을 가셨다
한 30분을 기다렸을까 추위에 덜덜떨다가 버스가 안와서 엄마아빠에게 갔다
엄마가 유치원에 전화를 했었고 우리집 오는 길에 언덕을 하나 내려와야했는데
그길을 지나오지못했서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날은 유치원에 가지않고 모임에껴서 팥죽을 먹었던걸로 기억한다
유치원에 가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버스가 못 내려오면 선생님이라도 데리러 와야 하는게 맞지않나 싶다
요즘은 유치원에서 알림장도 있고 통신문도 나눠주고 부모님에게 전화도
하고 하며 준비물을 챙기도록 선생님들이 노력을 하는거 같다 조카들 보면 말이다
우리때라 그런건지 아니면 우리 유치원이 그런건지 구전으로만 전해줬었고
어렸을때부터 깜박하던 나는 준비물을 잘 안챙겨가는날이 많았다 특히
한복이나 수영복을 챙겨가야하는날은 거의 안챙겨갔었다
그래서 맨날 한복입고 사진찍는 친구들 사이에 혼자 사복을 입고 찍는게
부끄럽고 창피했고 수영장에 가던날은 수영복을 안가져와서 친구들이 노는걸
지켜만 봐야 했었다 그걸보고 있던 나는
친구들에대한 부럼움보다 나에대한 수치심이 컸었던거같다
그리고 하루는 수업시간이 아닌데 친구한명이 교과서를 책장에서 꺼냈고
우리는 그걸보고 에에에를 시전했었다 그걸들은 원장님이 와서
우리를 다 불러내서 바닦에 앉혔고 에에에 한 사람들은 나오라며 화를 엄청 내셨다
그러다 어떤여자아이가 먼저 용기내서 나갔고 나도 그뒤를 따라 나가서
호되게 혼났던 기억이 있다 내가 뭘 잘못한지도 몰랐었고
정말 별일 아닌데 그나이에 그렇게 혼나야 했나 싶다
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둘다 다녔었는데
어디에서 일어났던 일인지는 기억이 안나서 다 유치원이라고 칭하고 얘기를 하고 있다
2층에 있는 유치원을 다닐 때 어떤날은 친구들과 먼저가기 싸움이 붙었고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1등으로 뛰어가던나는 거의 다 올라갈 때 쯤
넘어지고 말았다 무방비로 턱을 계단에 박았고 혀를씹으며 넘어졌다
진짜 아팠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나를 약국에 데려가셨고 약을 발라주고
응급처치는 끝이였다 그날 나 때문에 급식은 스프가 나왔고 친구들은
러스크가 들어간 스프를 먹었고 나는 맹 스프만 먹었다 그것도 힘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초등학교때 군대에간 사촌형이 휴가에 나와서 우리집에서 몇일 지낸적이
있다 그때 형이 나갈 때 마다 나를 데려가줬고 피시방에서 몇시간씩 죽치다 왔었다
나는 그시간이 너무 좋았고 형이너무 좋았다 그래서 형이 휴가가 끝나고
돌아가던날 형이 배고자던 배게를 안고 운적도 있다
나는 그만큼 사람에게 취약한 사람이다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나이가먹으면서
그래도 그래도 조금이나마 덜 해진거 같다
시라노연애조작단에 갔을 때 프레임이라는 책을 추천받았다
나는 그 책을 바로 사서 읽었고 삶에 정말 도움이 되는
책이지만 너무 어려워서 다 읽지는 못했다
그 책은 한 사건을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예를 들어
썸녀 썸남과 연락을 할 때 읽씹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아예 답장이 없는건 아니고 빠르면 5분 10분 몇시간 늦어도 그날 안에는 답장이
오기는 한다 그사람은 왜 읽씹을 하고 한참뒤에나 연락을할까 라고 생각했을 때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정말 귀찮아서 늦게라도 답장을 하는것이고
둘째는 읽고 답장을 하려다 갑자기 일이생겨서 늦게 답장을 한 것
셋째는 무의미한 대화를 나누고싶지않아 생각을하다 늦게 답장을 보내는 것
등등 쉽게말하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였던거 같다
생각해보니 나는 자살기도를 하기전에 항상 책을 한권씩 읽었던거 같다
보통 마음을 위로해주는 에세이를 읽었고 지금은 힘들 때
보며 위로를 받던 유투브 웃따 선생님의 인생을 숙제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
라는 책을 읽고 있다 책읽는걸 정말 싫어하는내가 정말 힘들면 책이라도
읽어본다 나는 노래들으며 걷는걸 좋아한다 죽고싶을때는 최대한 많이 걷는
편이다 그래서 정말 죽고싶고 시간이 많을때는 살이 많이 빠지기도 한다
밥도못먹고 죽어라 노래들으며 걷기 때문이다 입맛이 없어서 정신과에서
입맛도는 약도 처방받아 같이 먹는중인데 별로 효과는 없는거 같다
무엇을 먹어도 맛이 없다 그러다보니 잘 안먹게 된다
내가 죽으려 생각한 것은 그냥 단지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는 내가 죽기위함이고
누구나 세상을 떠나기 때문에 슬퍼 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 앞날에 무슨일이 일어날지 궁금하지도 기대되지도 않는다면
그건 살고있는게 맞는 것 일까?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삶이 아닐까?
아니면 삶의 이유를 찾아가며 아등바등 사는게 맞는것일까?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중 하나는 나를 너무 사랑해서 걸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대를 채우기
위해 높은 기준점을 잡고 있기에 내가 나를 힘들게 하는것이라고 한다
나도 그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나를 조금만 덜 사랑했다면 나는 살아갈 수 있었을까?
나도알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내가 나약한 사람이아니라 모든 사람이 대단한 것이라고 위안을 했을 때
모든 사람은 대단한데 왜 나는 대단하지 못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고
그거에 회의감이드는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각은 이렇게 돌고
돌아 다시 나의 자책으로 돌아온다 이런 생각을 고치지 못하는한
나는 살아갈 수 없을거같다.이 글은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기위한 글도
희망을 줄 수 있는 글도 아니지만 나는 이 글을 쓰며 나는 어떤 사람이였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모두에게 전할 수 있는말은
시간이 약 이다 라는 말이다 전에 있었던 어떤 슬픈 일들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괜찮아 진다 하지만 못을 박았다 뺏을 때 그 구멍이 없어지지
아니하듯 마음의 상처는 남아있기 마련이다 그걸 사람들을
그 구멍에 벽지를 붙여놓듯
한 켠에 묻어두고 살고 있다 그런 여러분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나는
믿고있고 부럽기도 하다 언젠간 내 삶에도 봄날처럼 꽃이 피길 바랬지만
30이라는 나이를 먹어도 나에게 그런 시간은 시절은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것만 같다.
언젠가는 누군가 와서 못을 뺀 구멍에 시멘트를
다시 발라주길 바랄 뿐이다
한동안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그는 내게 말했다
자기를 사랑해달라고 했다 나는 충분히 사랑을 표현하고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인지 그 말에 화가 났고
그 동안 지쳐있던 마음때문인지 이별을 고했다 뭘 더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고 나는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나는 사랑을 할 줄도
모르는 것 같다. 한동안 또 내가 죽으려 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는지 이런 나쁜 생각들은 항상 스믈스믈 기어올라와
나를 괴롭혔다. 삶을 살아갈 용기도 희망도 남지 않았다.
지금 내 옆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인생은 혼자 사는거다 라는 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되지않는다.
혼자 라는 말이 얼마나 외롭고 슬픈 말인지 오늘 또 한번 되새겨본다.
오늘은 일을하다 펑퍼 울고말았다. 서러웠다 일이 힘든건 둘째치고
사람 사람이 너무 싫어지는 하루였다.
요즘도 자꾸 눈물이 난다.
지하철에서 릴스를 보다가도 눈물을 흘리고
자려고 누워서도 갑자기 눈물이 흐르곤한다.
30이 넘어 뭘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살아가야할지도 모르는
막막한 하루가 오늘도 지나갔다 이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면
살아지겠더러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싶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들은 다 짝있더라. 그래서 주의사람에게
이런소리를 한 적이 있다.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
애인이 있더라.. 근데 나는 애인이 없으니 나는 괜찮지 못한
사람인가봐 라는 말을 했었다..물론 위에 말했듯이 나는 괜찮지 못한
사람이란걸 알면서도 아니길 바라며 꺼낸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당신이 없어 죽을 것 같이 힘들던 나날들이 이제는 조금이나마 무뎌져
더는 아프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게 밥을 먹었냐고 물어봐줄 사람도, 내가
아플 때 걱정해줄 사람도 나를 행복하고 맑은 눈동자로 바라봐줄 사람도 이제는
없게 되었다는게 많이 쓸쓸하네요. 어쩌면 누구에게나 받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 대상이 당신과 나 였기에 더욱 특별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보다도 이거 하나는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만이 날 그 맑고 투명한 눈동자에 예쁘게 담아줄 수 있었습니다.
당신 눈에 비친 내모습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당신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당신 눈에도 아름다웠길 바랍니다..
어디선가 읽고 눈물이 흘렀기에.. 당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번 담아 보았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고도 살아있다면..
언젠가는 이 글을 좋은 방향으로 이어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