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국인 랍비: 군목의 잊혀진 전쟁 속의 여정> 서평

phantom2026.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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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국인 랍비: 군목의 잊혀진 전쟁 속의 여정> 서평

“An American Rabbi in Korea: A Chaplain’s Journey in the Forgotten War”

잊혀진 전쟁(한국전쟁) 한복판에서 들려오는 신앙과 인간의 목소리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51년, 정통파 유대교 군목 밀턴 J. 로젠은 뉴욕의 이디시어 일간지 <데어 모르겐 조르날>에 19편의 장편 기사를 기고했다. 이 기사들은 그가 직접 겪은 전쟁 경험과 그가 돌보던 군인들의 체험을 기록한 것이다. 『한국의 미국인 랍비』는 로젠의 아들이 편집한 그의 주요 기사들을 영어로 번역한 책으로, 로젠의 군 복무 배경, 한반도 전쟁과 분쟁에 대한 일반적 소개, 그리고 다수의 지도와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한국전쟁을 다룬 수많은 전쟁 기록 가운데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총과 포, 전략과 승패의 언어가 아니라, 랍비이자 군종 사관(Chaplain)이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지닌 한 인간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밀튼 J. 로젠(Milton J. Rosen)은 이 책을 통해 ‘잊힌 전쟁(Forgotten War)’이라 불리는 한국전쟁을 다시 기억하게 만들 뿐 아니라,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신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전쟁을 기록하는 또 하나의 방식

이 책은 전형적인 회고록과 다르다. 로젠의 글은 전쟁이 끝난 뒤 기억을 정리하며 쓴 글이 아니라, 1950–1951년 전쟁이 진행 중인 시점에서 이디시(Yiddish) 신문에 기고한 현장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글은 정제되지 않았고, 때로는 혼란스럽고, 때로는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담고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힘이다.

저자는 전투의 세부 묘사보다는 전쟁 속 인간의 얼굴을 기록한다. 혹한 속에서 떨고 있는 병사들, 신앙을 잃어버린 젊은 군인들, 죽음 앞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는 전쟁을 ‘사건’이 아니라 ‘경험’으로 읽게 만든다.

군종 랍비라는 자리의 무게

로젠은 단순히 유대인 병사들만을 위한 종교 지도자가 아니다. 그는 모든 병사의 고통을 마주해야 하는 영적 동반자다. 유대인 병사가 거의 없는 부대에서도 그는 장례를 집례하고, 상담을 하고, 침묵 속에 함께 앉아 있는 역할을 수행한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점은, 저자가 신앙을 쉽게 답으로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라는 단순한 언어로 전쟁의 참혹함을 덮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도 질문한다. “이 광기 속에서 신앙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율법과 계명은 전쟁터에서도 유효한가?”

이러한 질문은 종교를 선전 도구로 삼지 않고, 의심과 갈등을 포함한 살아 있는 신앙을 보여 준다.

유대적 정체성과 한국전쟁의 만남

이 책은 한국전쟁을 다루지만, 동시에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역사적 기억이 겹쳐진다. 로젠은 유럽에서 벌어진 홀로코스트의 그림자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세대에 속해 있다. 그에게 전쟁은 추상적인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유대인 집단 기억과 연결된 반복되는 비극이다.

특히 한국 민간인들의 고통을 바라보는 대목에서는, 저자의 시선이 단순한 외국 군인의 관찰을 넘어선다. 그는 난민과 폐허를 보며 유대인 박해의 역사와 자연스럽게 연결 짓는다. 이 점에서 이 책은 한국전쟁을 세계사적 고통의 연속선 위에 올려놓는다.

‘잊힌 전쟁’을 기억하는 또 다른 이유

『An American Rabbi in Korea』는 한국전쟁이 왜 ‘잊힌 전쟁’이 되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전쟁은 끝났지만, 명확한 승리도 패배도 없었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서서히 희미해졌다. 그러나 로젠의 글은 말한다. “잊혔다는 것은 치유되었다는 뜻이 아니라고.”

이 책은 전쟁의 영웅담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상처 입은 인간들의 목소리를 남긴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나면, 한국전쟁은 더 이상 교과서 속 연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얼굴과 감정을 가진 사건으로 다가온다.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현재성에 있다. 종교, 전쟁, 정체성, 타자의 고통이라는 주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로젠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고통 앞에서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 “신앙은 확신인가, 아니면 함께 머무는 용기인가?”

그의 대답은 명시적이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는 설명하는 종교인이 아니라 동행하는 종교인으로 전쟁을 통과했다는 점이다.

『An American Rabbi in Korea: A Chaplain’s Journey in the Forgotten War』는 한국전쟁을 다시 읽게 만드는 책이자, 전쟁 속 인간성과 신앙의 가능성을 묻는 기록이다. 이 책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전쟁을 기억하는 일은, 결국 사람을 기억하는 일이라고.

<An American Rabbi in Korea>의 유대적 관점

전쟁터에서 시험받는 토라

이 책은 한국전쟁에 대한 기록이지만, 그 본질은 전쟁사가 아니라 신학적 실험실에 가깝다. 밀튼 J. 로젠 랍비는 총성이 멈추지 않는 한반도에서, 토라와 할라카가 현실 속에서 어디까지 유효한지를 몸으로 검증한다. 그는 전쟁을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전쟁 속에서 유대 신학이 어떻게 흔들리고, 또 어떻게 버텨내는지를 기록한다.

유대교는 추상적 신앙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규율(토라)을 중심으로 형성된 전통이다. 문제는 전쟁이라는 비상 상황이 이 율법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가이다. 로젠의 기록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긴장은 다음 질문으로 압축된다.

“율법은 전쟁 중에도 그대로 지켜져야 하는가, 아니면 생존 앞에서 유보되어야 하는가?”

안식일, 모에딤, 기도 시간과 같은 계명은 전선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로젠은 할라카를 완벽히 지켜야 할 법전이 아니라, 윤리적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으로 이해한다. 그는 율법을 포기하지 않되, 율법을 절대화하지도 않는다. 이는 탈무드적 전통—피쿠아흐 네페쉬(pikuach nefesh, 생명 보존의 우선성)—을 전쟁 상황에 적용한 실천적 신학이라 할 수 있다.

로젠의 정체성은 독특하다. 그는 전투원이 아니라 군인이며, 민간인이 아니라 성직자다. 이 중간 위치는 그를 중재자(mediator)로 만든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뿐 아니라, 전쟁과 인간성 사이, 군사 논리와 윤리 사이에 서 있다.

그의 군종 사역은 설교 중심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함께 걷고, 함께 묻고, 함께 침묵한다. 이는 예언자적 신학이라기보다 제사장적 신학에 가깝다. 제사장은 악을 고발하기보다, 부정한 상태에 있는 공동체와 함께 머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로젠은 한국 민간인들의 고통을 기록하면서, 그들을 선교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צֶלֶם אֱלֹהִים, tzelem Elohim)을 지닌 존재로 인식한다. 이는 유대 윤리의 핵심이다. 이 인식은 전쟁윤리의 결정적 기준이 된다. 적군, 민간인, 난민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다면, 폭력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이 점에서 로젠의 신학은 국가·이념·군사적 정당성을 넘어서는 급진적 인간 중심 윤리를 드러낸다.

유대교는 기억의 종교다. 자코르(Zakhor)—기억하라—는 반복되는 명령이다. 이 책이 한국전쟁을 “잊힌 전쟁”이라 부르는 순간, 그것은 신학적 문제로 전환된다.

전쟁터에서 로젠이 보여준 유대교 신학은 다음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님은 전쟁을 설명하지 않으시며, 인간에게 서로를 포기하지 말라고 요구하신다.”

이 책은 전쟁윤리를 말하기보다, 전쟁 속에서도 인간성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유대교적 신학의 한 증언이다.

By 토라와 유다이즘

 

※ 6.25 한국전쟁 중 미군 혹은 영국군으로 참전한 유대인 병사는 적게는 4,000명에서 최대 40,000명으로 추정됩니다. 많은 참전 용사들이 이후 이스라엘로 귀환하여 참전용사로서의 공식적인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늦었지만 그 분들의 기록과 기억을 되찾으려 합니다. 2월 중 <한국전쟁 유대인 참전에 관한 제2차 학술 세미나>가 개최됩니다.

◆ 유대인 한국전 참전 관련 자료실

https://blog.naver.com/jewishlearning/223972083996